도시의 궤적

달리기의 쓸모

by 이븐도




늘 악당이 누구인지를 구별하려고 했다.

그게 사람이든, 시간이든, 이 도시든. 이어 계산하고 가늠해서 필요한 것만 취하려 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같았기 때문에.






여기 아니고 정반대면 어떡해, 라고 친구가 그랬다. 나는 자신만만했다. 어차피 데이터가 안 터져서 어플은 접속이 안 됐다. 그 인파에서 일단 빠져나와야 하니까 편한 대로 생각했다. 콜플 때도 저기였어, 괜찮아. 가면 돼.

가도가도 창고와 허허벌판뿐이고 버스는 안 보여서 안 괜찮다는 걸 알았다. 셔틀 시간이 10분 남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택시비와 2시간이 넘을지도 모르는 낯선 택시기사와의 독대를 생각했다. 안 돼, 나 피곤해. 절대 안 돼.


나이트 후 두 시간을 자고 다섯 시간쯤을 서 있다가, 워커를 신고 2.5km 정도를 10분여에 주파할 수 있다면, 꽤나 잘 산 거 아닌가? 그렇게나 숨이 차지도 별로 죽을 것 같지도 않아서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했다. 짜증났던 거랑 별개로. 사실 짜증 낼 기운도 없었다. 누구한테 짜증 내? 라이브네이션 코리아? 카카오택시? 아니면 나? 그래, 나.




싸늘했고 축축했고 공기가 깨끗했다. 십대들 나오는 외국 판타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어둑한 반대편에서 또래 무리의 사람들이 자꾸자꾸 걸어나왔다. 원래 추우면 좀 그렇게 느껴지잖아. 버스가 대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또 찾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 전리품 또는 갑옷처럼 오아시스가 찍힌 그 교복 같은 굿즈들을 입거나 걸치고.


사당, 신도림, 서울역, 또 사당. 대중없이 늘어섰거나 지나쳤던 버스들을 따라 끝없이 달리고 나니 그제야 미금행 버스가 나왔다. 나 언제 욕 끊지 생각했는데 친구가 공연장 무대를 가리키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 사람들도 하잖아. 야, 쟤들은 돈이 많아.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닐걸? 아, 그러네.

더 밴드 위트 쓰리 스트라입스. 젊은 노엘과 리암을 닮은 배우들이 잘생겼고, 생각도 없던 아디다스가 사고 싶게 만들어지는 광고. 경기장 전체의 지정석과, 간신히 뒤를 돌았을 때의 수많은 정수리들에 놀라며 서 있던 세 시간 동안 세 번 나왔다. 그거랑 무슨 차 광고. 정작 그 형제는 그런 극한의 환경을 뚫는 SUV가 필요한 땅과는 관련도 없는 곳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지만.






30년 전의 노래들은 더 이상 두 형제의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그보다는 대단한 무대 장치도, 효과도 없이 무슨 초거대 노래방을 차린 것처럼 우뚝 선 채로 노래하는 그들을 보기 위해 모인 몇만 명의 테마곡 같았다. 너무 앞에 서 있던 탓인지 악기 소리도 노랫소리도 안 들렸다. 엄청나게 시끄러웠지만 들리는 게 없었다.

대신, 사람들의 어깨와 팔과 옷가지 사이에 낀 채 난 여길 어떻게, 왜 오게 된 걸까 생각하고 있으면 머리들 사이로 리암이 보였고 노엘이 보였고 전광판이 또 보였고 굿즈 티셔츠를 입은 친구와 앞뒤 양옆을 둘러싼 사람들이 무대 위의 그들보다 크게 부르는 노래가 들렸다. 꿈 같았다. 몽롱한 건 아니었지만 제정신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거기서까지 정신을 챙겨야 한다면, 굳이 왜 그 티켓팅을 하고 시간이랑 돈 써서 와?




무일푼이고 미래 같은 건 생각할 여유가 없을 것 같았던 시절에도 그들은 어디서든 눈을 부라리고 턱을 치켜든 채 당당하게 다녔다. 세상을 탓하긴 했으나 방구석에 들어앉아 스스로를 불쌍하다 생각하는 대신 욕을 하고 물건을 부수고 대책 없는 앞날을 꿈꾸는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그랬던 형제는 살이 찌고 머리가 셌으며 늘 비슷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잃을 게 많은 중년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매되어 지구를 휩쓸었을 노래와 젊은 날의 둘은 사라졌다. 나와 천여 명의 사람들 앞에 있던 것? 인종차별에서 성차별에 이르기까지 하여간 세간의 트렌드와는 뚝 떨어진 언행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하고도 여전한 영향력을 가진 이역만리 땅의 외국인 아저씨 둘.




그러니까 사실은 생존을 위해 달린 거지. 나 내일은 비스트 로즈봉 키링 사야 돼. 택시비로 쓸 돈 같은 거 없어. 이 상태로 정신줄 붙잡고 똑바른 데로 가고 있는지 낯선 차에 탄 채 비몽사몽 생각할 기운도 이제는 없어. 오늘은 오아시스 공연날이잖아. 셔틀을 꼭 타야 한다는 마음이 미친 페이스를 내게 만들었다. 기모 후드티에 짧은 바지에 하루종일의 피로 비슷한 것과 찬 공기. 내가 맨 뒷자리에 널브러져 앉은 지 십 분 정도가 지나자 차는 조명을 모두 끈 채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는 따뜻하고 밝았다. 벌써 이렇게 노근한 온도차를 느끼는 날씨가 되었다니. 기분이 좋았다.






고양부터 정자에서 미금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길었다. 덥거나 춥거나 시원하거나 조금만 따뜻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정빈이와 형록이와 예지와 승영언니와 입사동기들과 초저녁부터 취한 채 무릎을 안고 정자역 길거리에 앉아 있던 낯선 여자까지. 콜드플레이와 노엘 갤러거와 하이라이트와 오아시스, 그리고 이외의 많은 밴드들. 홍대입구, 광나루역, 올림픽 경기장역, 공항철도. 그리고 그 이전의 시기로 넘어가서, 은영이 언니와 용호와 미아사거리와 화랑대역과 별내와 건대입구와 석계. 대학로, 광화문.


갈라졌거나 다행히 갈라지지 않은 사람들. 내가 때로 결점을 찾고, 사실은 자주 내가 받은 상처 같을 것을 가늠해 늘 계산했던 시간. 내가 돈과 시간을 들였으니 즐겨 마땅하다고 당위를 찾았던 것들. 그렇게 해야만 안전히 내 것일 수 있었던 것.






늘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던 차에, 때때로 내가 이곳에 발딛고 있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아무튼 사람들과 있었을 때. 그들이 얼마나 나빴고 끝이 어떻게 마무리됐든 간에 함께한 시간은 매력적이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했다. 근데 그걸 굳이 강조해야 한다면 사실 꽤 매혹적이라는 거잖아. 쓸모도 필요도 없지만 계속 되짚어 돌아보게 되고 애써 쥐어보고 싶은 것.


왜 나는 대학 동기들과 친하지 않은지, 그럼 그 땐 대체 뭘 하고 지냈는지 생각해 보니 그 시간에는 심심이들이 있었다. 항상 혼자 멀쩡히 지낸다고 추어올렸던 시간들 사이에는 타인들과의 교류가 존재했다. 있었던 건 사실인걸. 직장 빼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추운 수도권에서 나와 한때 같이 웃고 뭔가를 공유했던 사람들. 2년 전 노엘 공연 때는 본가에서 엄마가 싸 준 돈까스를 먹고 나갔다. 그게 왜 기억이 나는지 몰랐다. 비록 가족이나, 나일 수는 없는 누군가가 완전히 혼자일 활동에 엮인 기억.




우정 또는 사랑. 아무튼 친밀함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던 관계에서 미래를 가늠해 보게 될 때 궁금해졌다. 취업, 나이 또는 성별 같은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어떤 특성이 지금의 나와 맞지 않아 불편한 것인지. 그걸 알고 싶어서 굳이 용호와 은영이 언니와의 시간을 복기했고, 전남자친구와의 일화들을 정리했다. 궁금했다고 느꼈으나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에는 잘못이 없다고. 즐겁고 행복했고 나를 그 어딘가에 붙여 준 것 같은 기억들은 있는 자체로 괜찮은 거라고.


반쯤 조는 상태로 누가 얼마나 나빴고 나는 어느 정도로 착했고 피해자였는지 생각해보다 늘 상대와 시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똑같이 재단해 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정말 그들이 괴물이었었나? 모르지, 어떻게 알겠어. 몇 년 전의 여름을 떠올리게 할 만큼 미치게 더웠던 날씨가 그렇게 추워졌다.

미금에서 내리자 이가 딱딱 부딪혔고 다행히 택시가 잡혔다. 이제는 그 구도조차도 편했다. 피곤함과 때때로 다 때려치우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서 있던 퇴근길. 야속하게 일찍 끊긴 전철에 열받은 채로 버스를 찾거나 콜을 부르던 곳.






오아시스는 전설이었다. 내가 본 적 없으니 그렇기도 했다. 영상과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젊은 날의 날서고 예민한 그들. 30년 전의 그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 왓에버든 원더월이든 그들은 많이 변했고 그 노래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곡들을 줄창 들은 나는, 사실 그렇게 거칠기만 했던 적이 없었고 그 둘은 어쨌든 수십 년 전보다 유해졌다.


아무것도 실감되지 않는 그 몇만 명이 들어찬 경기장에서 나는 이 밴드를 좋아하던 마음에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었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신기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과연 어디 존재하나 하는 이상한 궁금증이 들어서. 차가워진 공기도 못 느낀 채 잔뜩 뛰고 소리지르면서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재결합이 안 믿기고 공연날이 다가오는 게 안 믿겼던 것만큼 믿기지 않았다. 단지 노래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나 시간을 쓰다니. 내가 무엇에 공명했는지 알 수 없어서 꿈 같았다. 그만큼 새삼 뜬금없어서.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든 둘의 모습을 보자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무슨 환상 속의 관념적 존재가 아니고 그냥 사람이었구나. 내가 왜 지구상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두 사람의 인간적인 면모에 괜히 공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랬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저렇게 나이들어서 과거의 노래를 이 많은 이들과 함께 부르는 것만큼이나, 인생은 언제나 현재에만 있다는 게 보여서.


가본 적도 없는 넵워스도 글래드스톤베리도 바다 건너 후지락 페스티벌도 아닌, 미친 피로와 체력을 갈아넣어 서 있는 거기. 어떤 장면이나 조각들은 이상의 재현이 아니고 조금 별로고 안 어울리는 채로도 굴러가는구나. 사실 색이 좀 안 어울리는, 호박색 자켓을 입은 주름진 형의 얼굴과, 절대 선글라스를 벗지 않고 탬버린을 머리에 끼우는 기행을 삼는 50대의 동생이 부르는 옛날의 노래들처럼.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환호하고 소리지르는 미친 수의 관객들도 거기 더해서.





한밤중, 도로를 달리는 버스가 따뜻해 땀이 식고 잠이 쏟아졌다. 목적지로의 이동, 반쯤 누워 있기만 하면 되는 그런 때에는 괜히 창밖으로 풍경이 아닌 시간들이 지나갔다. 차라리 사고나 났으면 좋겠다, 는 생각 같은 걸 농담 또는 진심으로 떠올리던 출퇴근길과 사실은 매 순간이 지루했던 어떤 만남들, 어느샌가 색이 바래 머리가 아팠던 관계들.

지겨운 현실을 피하려 듣던 곡들. 그게 인생의 어느 시기든 붕 뜬 채로 궁금해하던 낯선 장면들과 시간. 어떤 전설은 존재하지 않고 당장의 삶만이 계속된다는 걸 알았다. 그게 나와 사실은 전혀 관계가 없는 무대 위 사람들의 것이든, 과거의 영광도 영광이었음을 증명하는 이들의 것이든. 나를 그 현재에 붙여 준 것에 일조했던 추억들이 고마워졌다. 너 나 우리 다 어딘가에서 멀쩡히 살아 교류했다는 방증이라서.






사원증을 반납하고 방을 재계약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자취. 재학과 재직과 월세계약으로 존재하는 이 곳에서의 나. 집에나 갈까, 의 집은 언제나 대전이었고 의정부나 용인이나 서울이었던 적이 없었다. 병원 부근에 도착해 입김이 나오는 채로 떨며 택시를 기다리면서 어쩌면 이제 정말 여기도 내 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했던 때로 어떻게든 잘 살면 되는 곳. 당장의 그게 아름다운 것인지 쥐면 아프기만 할 것인지를 머리 아프게 계산해야만 설 수 있는 낯선 땅이 아니라, 당장의 나로 서 있으면 되는 곳. 무작정 시작한 달리기가 10만원 가량을 아껴 주고, 또 한번 스스로를 공연히 미워할 일을 방지해 준 것처럼. 지난날의 나와 함께한 시간이 만든 나로 살면 된다고 느꼈다. 본가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니 대전도 어쩌면 이제는 내 집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오랜 시간 내가 선 곳을 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나쁜 사람도, 나쁘기만 한 시간도 없었다. 없었다기보단 그걸 계산하고 있을 시간에 그냥 이어폰을 빼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반대로, 깔끔히 만져진 음원같이 멋지기만 한 것도 없는 것처럼. 낯선 이들의 체취와 이목구비가 잔뜩 섞인 채 같은 노래에 비슷한 모습으로 모두가 열광했다. 그 순간이, 사실은 하나부터 백까지 모두가 다를 세상살이 같았다. 그게 내가 느낀 오아시스의 내한이었다. 이역만리에서 온 인종부터 다른 나이든 그들의 오래전 노래 앞의 수만 명. 이상은 없고 현실은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구나.


시간은 지나고 삶의 멋짐 같은 건 가끔 어떤 연출로도 못 가릴 정도로 엉망이며 억지스럽다고. 현재뿐이었다. 그래서 괜히 감사하게 됐다. 날이 추워진 상태에서 잠이 와서, 마찬가지로 이상적이지 않은 당장의 내 삶도 나쁘지 않다는 진한 인상을 줘서. 어떻게든 별로라고 생각하며 기대치를 낮추려 했던 타지에서의 일들을 바로 보게 될 수 있게 되어서.




공연은 현실과 유리된 걸 경험하러 간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나 막상 보니 아예 그럴 수는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꿈 같기야 했지만 사실 정말 그렇다면, 허리가 아프지도 목이 쉬지도 낯선 사람들의 입냄새 또는 새치기 등에서 오는 불쾌함 같은 게 안 느껴지기도 했어야지.

그랬던 적은 없었다. 오아시스 공연은 특히 더 그랬다. 그래서 다행이었고 좋았다. 꿈 같긴 했지만 현실이 초라하고 아픈 정도의 낙차가 없어서.


그래서 뭐, 오피스텔로 돌아와 한결같이 적응 안 되는 금액의 관리비 고지서를 봐도 허무하지 않았다. 악당도 영웅도 없는 현실. 오랜 친구와 각각의 마음에 안 드는 인생의 양상과 함께한 시간. 나이든 아저씨인 그들. 삶은 그 엉망인 채로도 나쁘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그러니까, 기묘하게 즐거운 기억이었다.

노래도 기타소리도 안 들렸지만 아무튼 강렬한 시간.


괜찮다는 걸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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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블리컬?


비블리컬.



정빈아 니가 찍은 엠쥐샷 썼어 괜찮지?

울고 싶어도 립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