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바람 그 위로

발자국처럼 남아서

by 이븐도




10월 31일은 혹서기 음료쿠폰을 쓰는 날이다. 작년의 나는 그걸 다섯 시가 되어서 썼다. 동기와 함께. 퇴근이 늦었고 스무디는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집에 와서는 스케이트보드를 당근했다. 가끔 브런치에 글을 올리던 때였다. 김밥을 먹었고 어쨌고 하는 걸 다 썼던 것 같다.

일 년이 말끔히 채워졌다. 그 날은 왜 그랬나 생각해 봤더니, 뭐. 일하느라 늦었겠지. 소연이 때문이였다. 그 애는 그 날의 MRI를 시작으로 올 2월쯤 하늘나라에 갔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장례식장에는 못 갔다.





올해는 30일에 썼다. 31일의 나는 아침에 퇴근하고 빨리 집으로 가야 했으므로. 31명분의 편지를 썼어야 했는데 미처 다 쓰지 못했다. 이거 다 못 쓰면 집에 안 간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병원 할리스에 앉아서 버텼다. 열두 시가 되어 병원을 나왔다. 집에 와서 씻지도 않고 잤다. 일어나서는 잔뜩 온 택배들을 뜯었다. 작은 칫솔 세트와 리스테린. 다이소에서 미피 이름표를 사 와서 지퍼백에 붙이고 열심히도 썼던 편지와 대조해 붙였다. 31일? 30일. 어쨌든 다 끝났구나. 올해가 좀 평안하게 지나간 것 같기도 했고. 아닌가?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타포린백을 들고 출근했다. 선물은 그냥 놔두려다가 병원 컴퓨터로 몇 자 쳐서 인쇄해 붙였다. 저의 집이 되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썼다. 나쁜 일들은 잊어 달라고,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해 달라고. 물건 빌리게 많이 전화하겠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길면 열 시간씩 서너 번은 있던 곳. 당연히 엄마아빠보다 더 자주 보고 부대끼던 사람들. 급조하려던 말도 감동을 주려던 단어도 아니었다. 닥치면 그냥 그런 말이 튀어나온다. 좀 오글거리나 고민했는데 막상 써놓고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작년엔 죽은 애들이 꽤 있었다. 10월에 몰려 있었다. 진단명도 다 비슷했다. 뇌와 신경의 종양. 하이라이트 데뷔일 즈음에 한 명. 열흘쯤 지나 내 생일 무렵 하나. 그래서 나는 나머지 한 명도 죽을까 걱정했었다. 엄마는 잘생긴 아들이 수술을 위해 머리를 빡빡 깎은 걸 보며 엄청나게 울었다. 이름이 시원이였나. 나는 제발 그 애가 앞섰거나, 그렇게 될 것 같은 애들처럼 되지 않기를 빌었다. 복도 끝에서 우는 엄마를 보면 할 말이 없었다. 할 말도 없고 그럴 이유도 시간도 없고.


똑같이 일하고 때 이른 송년회 준비 같은 걸 했다. 이후 걔는 상대적으로 멀쩡히 퇴원했다. 죽지도 않고 신경학적 이상도 크게는 안 생긴 상태로. 집에 갈 때쯤이었나 가서였나 엄마와 애는 스타벅스 틴케이스 쿠키 세트를 들고 병동으로 왔다. 이후에, 몇 달이 더 지나서 나는 로비에서 외래를 보러 병원을 찾았을 그들을 혼자 아련한 척 쳐다봤다.





공연은 막상 다가오면 그게 오아시스든 콜드플레이든 하이라이트든 귀찮아 미치겠는 게 국룰인가 했다. 늘 나이트가 끝나는 날로 스케줄을 잡아서 그런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반드시 가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손동운이 연기하는 전우치를 보는 날. 벼락치기하던 대학생 때처럼 몇 시간 안 자고서 뭘 써대다 보니 세상이 좀 도는 것 같았다. 미용실 예약은 펑크를 낸 게 됐고, 이 공연을 꼭 보러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꿈에서도 했다. 하지만 가야지, 어떡해. 언니가 2열로 티켓 잡아줬다고.


전우치는 창작 가무극이다. 사실 뭔지 잘 몰랐는데, 아무튼 겨우 그 돈을 주고 봐도 되나 싶었다. 하늘거리며 흩날리는 의상들과 편곡된 음악들이 참 풍성했다. 나 손동운씨 보러 간 건데 그 주변에서 어깨에 사람을 올리고 목을 꺾고 허리를 돌리고 팔이며 다리를 쭉 펴고서 세상에 없는 것들을 잔뜩 표현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눈이 두 개인게 아쉬웠다.





작년 10월엔 성수동 팝업에 갔다. 성현이 빈소에 다녀온 날. 전자는 예정된 것, 후자는 예상치 못한 것. 속이 시끄러워서 울적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날 타로집 아줌마는 불교 얘길 했다. 전우치도 비슷했다. 사고로 죽은 사람들. 재가 되어 버린 우리 애기도 돌아올 수 있나, 하는 대사에서 울었다. 나는 걔들 엄마도 아빠도 아닌데.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린 애들이 다시 생각났다. 염라대왕과 저승사자들이 나왔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애들처럼 멋있었다. 역시 다크 컨셉인가. 까만 도포며 비치는 천을 날리며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간지났다. 저런 게 예전부터 있었다면, 그 때도 사람들은 차라리 저승사자들이 빨리 찾아와 버리기를 바라기도 했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데려가야 한다면, 그냥 빨리 끌어내려도 되는 거잖아. 그 땐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몰랐나. 전래동화에 맨날 나오던 구절,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그 한 줄로 퉁쳐진 기간이 그 땐 더 짧았을까, 길었을까 궁금했다.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그냥 단숨에 데려가 버리지, 왜 그리 오랜 시간 괴롭히는 거냐고 무대 위의 분장한 사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하여간, 공연은 재밌었다. 재밌다는 표현으로 단정짓기 너무 미안할 정도로.








같이 일한 선생님들이 조촐하게 환송회를 해 줬다. 퍼먹어도 퍼먹어도 끝이 없는 양의 요아정을 먹었다. 선생님, 이거 얼마치 시키신 거예요. 비싸던데. 나도 몰라, 잘 안 시켜서. 내가 언제 또 너한테 이런 걸 해 주겠니. 잘 가, 잘가. 그녀가 나를 좀 많이 좋아했을까 생각했다. 눈이며 표정에서 아쉬움이 짙게 보여서. 촛불이 뜬 휴대폰 영상을 요아정 위에 간신히 세워 놓고 사진도 한 방 남겨 줬다.


그리고 절반은 예상한 일이 생겼다. 아침이 되자 한 명씩 한 명씩 선생님 편지 읽어 주세요, 하고 데이번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야, 나도 사실 못 읽어서 챗지피티한테 보여줬자나. 뻥 아니야. 아니 그러니까. 감동받고 싶거든? 근데 내가 해독을 해야 돼. 이게 무슨 일이냐고. 아니, 뻥치지 마요. 너도 못 알아보겠어? 다들 짰니? 짠 거 아니야. 야, 봐봐. 아니. 이게.. 온화? 온화 맞지? 아니. 울적이요. 아 울적? 아 난 니가 온화한 표정이라고.. 야 봐, 너도 못 알아보잖아. 아.





작년에 내 편지를 받은 승영언니는 글씨 모양은 예쁜데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팩폭을 날렸다. 이 정도 사이에 그런 말을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나도 내 글씨를 못 알아볼 때가 있어서. 몇 명에게는 읽어주었다. 다행이었다. 본디 글이란 건 나중의 내가 읽었을 때 지나치게는 안 쪽팔려야 하는 거니까? 그래도 아주 역할 정도는 아니었어서. 편지를 그렇게나 많이 쓰는 건 귀찮고 힘든 일이기는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신규 올드 동기 사원님들 할 것 없이 내가 배울 점과 멋진 점이 하나씩은 꼭 있는 사람들과 일했다는 것. 그 점만은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불순한 마음은 다 걸러내고 써서 그런가 사람들은 그래도 다 좋아해 주는 눈치였다.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쓴 보람이 있었다.





애초에 올해 10월에는 일을 많이 안 했다. 누군가는 왜 너 오늘이 마지막이냐고 했다. 왜긴, 10월 31일이니까. 아니 그니까 왜. 나 10월에 장기오프 아니면 거의 나이트라 그래, 연휴 때 일하고. 아하. 그리고 그녀도 나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마지막이긴 하니까. 올해에는, 이 병동에서 죽은 애들은 없었다. 죽어 가는 애들이랑 죽은 거나 다름없는 애들은 여전히 많았지만.

기억과 감정의 공통점? 건드리면 증폭된다는 것. 내가 병동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편지를 쓰자 갑자기 그들을 사랑이라도 하게 될 뻔했던 것처럼. 잊기 위해 썼던 것들이 자주 떠올랐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의미가 없는 생각이라는 것도 알았다. 베르테르는 해피엔딩이 아니었던 게 생각나서, 전우치는 좀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그런데 뭐 이승 저승 염라대왕 등등이 나오자 그런 건 여기도 없다는 걸 알았다. 해피도 없고 엔딩도 없고. 해피? 해피라기보다는, 조이풀. 정도가 맞지 않을까. 즐거움은 있을지 몰라도 행복은 없다. 엔딩? 없어. 그 엔딩을 기억하는 산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엔딩이야.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걸.






입사 때 받았던 병원 매뉴얼과 소아과 책자를 사물함에서 치웠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랑 낄낄거리면서 만든 내 이름표가 붙은 것. 22년의 버전. 아무튼 이제는 안 봐도 되는 것들. 버릴까 싶었으나 그냥 챙겼다. 이 집에서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 살았던 아파트 기숙사를 지났다.

날이 추워진 것에 비해 단풍은 느려서 아직 가로수는 다 초록색이었다. 뭘 어떻게 해도 우울했던 시절도, 언젠가는 퇴사해 버린다고 생각했던 날들도 다 지나는 기분이었다. 또 신규로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내가 내 밥벌이를 시작하던 때의 설움 같은 거랑은 영영 작별하는 것 같아서.


이런저런 기억을 두고 떠나는 기분이라 퇴근하는 버스에서는 좀 울었다. 좀 피곤해서 더 그랬겠지. 몇 시간을 자고 일어나 팬레터 같은 걸 좀 쓰다가 시간이 늦어서 그냥 전철을 탔다. 배우들의 길게 나부끼는 옷자락과 천조각들과 사뿐거리는 몸짓을 보고 나니 살풀이 같은 걸 한 기분이었다. 잘 모르지만 그랬다. 다 끝났구나. 이 병동, 여기서 함께한 내 일상의 어떤 페이지들이 막을 내렸구나. 다 잊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제는 덮고 돌아서야 할 것.





팔자에도 없는 소아과에 발령받은 건 과연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거였나 생각한다. 모르지. 나중이 되어 봐야 알려나.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하지만 많은 기억이 남았다. 나는 애들이 정말 토를 많이 한다는 걸 알았고 어떤 부모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무능하다는 걸, 그리고 그 무능은 죄라는 걸 알았다. 다시는 이렇게 어린애들을 볼 일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브런치북이란 걸 처음 만들 때의 소개글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떠날 곳, 그리워할지도 모르는 장면.


내가 최선을 다했던가 생각했다. 이어, 뭘 어떻게 했더라도 내가 손쓸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단지 누군가의 생사와 상태를 떠나, 어찌할 수 없는 마음들도 그런 거라고. 그들이 가버린 곳은 정말 그런 데니까.




그리고 뜬금없는 결론? 나는 이제야말로 정말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 되지만, 그 누구도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 바랐다. 정말 아무런 쓸모도 힘도 없는 바람이지만. 아프거나 지나치게 오래 괴로워하지 않기를 외듯이 생각했다.

그것뿐이다. 이미 떠난 이들도 그 어디서는 아프지 않기를. 연이 얕고 깊게 닿은 모든 이들이, 밉고 싫었던 이들이 정말로, 아프지 않기를.



가끔은 뭔가가 좀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상 정말 다시 보고 들으라면 진저리치게 싫어할 것. 이런 마음을 안고 떠나는 건 차라리 아름다운 쪽이다. 정말이야.


그래도, 조금은 보고싶을지 모른다. 정말 조금은.






*제목과 부제는 '다시 봄'의 가사에서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