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헉슬리 선셋 포그

by 이븐도




늘 맡으면서도 이게 레몬 냄새인지 몰랐다. 시트러스? 시트러스. 레몬 모양 아크릴 같은 게 달랑거렸다. 이 향이라는 뜻이겠지? 헉슬리. 실제로 얼마짜리든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1초 안에도 금방 균 범벅이 될 손. 가미된 향과 단순함을 꾸며낸 디자인. 좋았다. 이거야말로 진짜 럭셔리잖아.


미끄덩거리지도 냄새가 짙게 남지도 않고 사라지는 감각. 앞으로 받고 싶은 게 없으면 화장품 회사의 손소독제를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동자는 원래도 갈색이었을까 궁금했다. 아홉 시. 배가 고프니 꺼내달라고 했다. 추측한 뜻은 그랬다. 그는 문장을 충분히 이어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기력이 많이 쇠한 거였겠지. 겨우 육십 몇살인데.


아까 저녁 드셨잖아요,하면서 냉장고 앞에 꿇어앉았다. 어제까지 있던 카스테라는 없다. 대신 곧 버려야 할 것 같은 잘린 토마토와 베지밀 한 팩이 있다. 잘 안 보여, 예? 아. 그는 아까도 잘 안 보여 못 먹겠다는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한 번 있으면 버려야 한다고 했다. 정말 다 털어내 따라도 종이컵 반 컵도 안 될만큼 남아 있었다.

그 덩치에 비해 무거운 허리를 일으켜 받쳐 줬다. 그는 싫은 소리를 냈지만 누운 채로 그걸 마시게 둘 순 없었다. 헤밍웨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낙엽 같은 보호색을 띤 두꺼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그에게도 젊음이란 게 있었을까 진지하게 궁금했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였다. 복막투석을 몇 년이나 혼자 집에서 해왔다고 했다. 관이 막혀 응급실로 왔으나 막상 병실로 오니 딴 게 문제였다. 담낭 쪽에 염증이 생겨 있었고 간간이 수혈도 필요했다. 더 큰 감염을 우려한 진료과에서는 복막이 아닌 혈액투석을 권고했다. 권고랄 게 있나. 동의서 서명 받고, 이런저런 걸 준비해서 낮에 검사실로 내리고 혈액투석 일정을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


그는 본인이 얼마나 손을 깨끗이 닦고 조심스럽게 배 쪽으로 투석액을 넣고 빼는지를 떠듬거리며 병실 한가운데의 내게 설명하려 들었다. 복막투석은 3년 전쯤에 한두 번 본 게 다였던 며칠 전의 나는 차라리 그게 고마웠다. 그러니까 이 병동의 선임이 일하는 걸 지켜본 그 때의 나는.

물론 당시의 내 눈에도 그게 전혀 깨끗하지 않다는 건 보였다. 이건 이렇게 하셔야 한다고 태클을 걸라치면, 당신이 칠 년을 매일같이 했다고 짜증 아닌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도 뭔 말을 웅얼거리며 치매가 온 것 같다고 웃기도 했다. 웃은 건 맞았다. 눈이 접혔으니까. 탈. 그 주름 속 눈빛은 그랬지만.






왜 먹지도 않는 국 뚜껑은 열어놓냐고 성질을 냈다. 그는 내가 오후에 들어갔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눈을 절대 안 마주쳤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였다. 신기했다. 내가 뭐라고 나한테 자존심을 부릴까. 사람은 참 나이가 드나 안 드나 다 애 같은 존재라는 걸 느꼈다. 아무튼 자기 기분을 알아주길 바라고 더 관심을 받길 원잖아.


밥 국 반찬 후식 할 것 없이 다 뚜껑이 덮인 식판. 그는 생각보다 더 심하게 손을 떨었다. 덮개 하나 제대로 못 치웠다. 나는 그 옆에 서서 약을 까 놓고 식판의 모든 뚜껑을 다 열었다. 그리고 그는 숟가락을 잘못 넣었다가 국을 침대에 쏟고서 짜증을 냈다. 사람을, 뭔 짐승처럼 사육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할 수 있다면 숟가락이라도 집어던질 기세였지만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것도 뭘 힘이 있어야 하지. 성질머리는 얼굴에만 드러났다. 안타깝게도.




국은 그냥 치워드릴까요? 안 드실 거예요? 안 먹어, 입원해서 한 번도 먹은 적 없어! 알겠어요. 아예 아침부터는 안 나오게 해 드릴까요, 국? 안 먹었다니까, 한 번도? 아 멫 번을 말해. 이게, 사람이 사는 거야? 이 정도는 아니었어! 나, 참.

환자분, 언제. 아니면 오늘부터 더 심해졌어요? 그는 역시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뭐 나도, 이런 걸 노티할 마음은 없었다. 뭐라고 해. 환자분 손떨림이 심해지셔서 수저를 제대로 못 잡으시는데요, 매니지 있을까요? 그럼 의사는 뭐라 그러려나. 뭘 뭐라 해. 생짜증이나 안 내면 다행이지. 여긴 요양원이 아니다. 요양원에선 그런 거에 대해서 뭘 해 주나, 근데?






베지밀을 마신 그는 꿈벅꿈벅 조는 것 같았다. 나는 까만 테이프가 칭칭 붙은 그 허름한 충전기가 과연 작동이 되는지가 의아했다. 이거 여기 꽂아 놓을게요, 필요하시면 저 부르세요, 드릴 테니까. 절대 작은 소리로 사근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귀가 어두운 그에게는 불을 켠 침상에서 입모양도 보여 줘야 했기 때문에. 보호자한테 두유를 한 팩 더 사 오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생각했다.


이불 어디쯤에 묻혀 있던 것 같은 휴대폰을 찾았다. 이상하게 진동이 계속 났다. 꽂아 놓고 돌아섰다. 그 후진 충전기가 잘 꽂혔는지 고속 충전이 시작됐다는 알림이 떠서 그 상태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 등 뒤에 말했다. 귀신이 곡헐 노릇이여. 자꾸.. 저거 아까부터 그랬어요? 음. 아마 진동, 이라는 단어를 못 떠올린 것 같았다. 잠겨 있지도 않은 휴대폰에는 정말 끝도 없는 알림이 떠 있었다.




비행기 모드인데 와이파이는 켜져 있고 파일이며 캐시 정리 어플이 끝도 없이 알림을 띄우고 있었다. 나쁜 새끼들. 배경화면에는 아마 손자일 남자애가 잠바를 입고 놀이방 같은 곳에 서 있었다. 눈이 안 보여 반찬도 못 집어먹겠다는 사람이 와이파이로 대체 뭘 볼까? 보기야 보겠지. 아무튼 지금은 아냐. 설정으로 들어가 온갖 쓰레기 같은 광고 알림들을 끄고 비행기 모드를 풀었다. 침상의 그가 손을 내밀었다. 전화, 전화? 아. 부재중이요? 따님요. 딸? 전화 왔어?

음, 네. 그러니까, 오긴 왔죠. 할아버지가 영영 비행기를 타고 있을 때. 따님 전화하실 거예요, 지금? 그럼 지금 할게요?




국을 다 쏟은 그의 바지를 갈아입혀 주고 조무사와 함께 시트를 갈았다. 와중에 그는 계속해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해 달라고 했다. 전화가 안 돼, 전화가. 이것도 못해, 아휴. 이게 사는 거냐고, 이게. 병동에서 전화가 안 터진다는 게 아니었다. 전화번호부 또는 통화기록의 그 사람을 눌러 통화 버튼을 터치하는 걸 못 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잠시만요, 이것까지만 하고 해 드릴게요. 이제 쪽팔린 거고 뭐고 없어, 하면서도 그는 중요부위는 가린 채 바지를 내리는 조무사와 나를 도왔다. 일이 끝난 후, 나는 롯데 김병진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짜 하실 거죠, 이 분한테? 그래, 할거야. 지금. 그리고 얼마 후 들어가니 그는 반쯤 올려놓은 침상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오늘 세 시 이후로, 소변 정말 안 보셨어요? 라는 시끄러운 내 말에도, 가물가물 졸았다. 뭐에 취한 사람처럼. 그는 자기 전에 수면제 같은 걸 먹지도 않는데.






괜찮아요, 지금이 제일 멘붕 올 때야. 나두 여기 막 왔을 때 완전 그랬다니까? 그래도 그 때가 나아요. 이건 진짜 별 거 아니구, 화이팅. 나중에 이브닝 때 놀러와요, 수쌤. 이 나쁜 사람 없을 때. 아무리 그래도 몇 년 일한 사람 페어웰도 안 해주냐. 안 그래요? 그녀는 그 토끼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토끼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라부부도 토끼인가? 내 동기가 돌리고 떠난 캐릭터 줄자도 토끼 모양을 골라 달고 다녔다.


줄 게 있으니 근무 끝나고 병동에 들려줄 수 있냐고 했다. 이전 병동의 선임 털이 북슬한 토끼 얼굴 모양의 릴홀더와 뭔 꾸러미를 건넸다. 고마운 일이었다. 쪽지나 카드 대신 헉슬리 손소독제가 나왔다. 나는 이미 휴대용 손소독제를 들고 다녔다.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건 써본 적 없었다. 어차피 금방 다 사라지는 거. 똑같은 라인의 향수는 다 가지고 있었다. 이름은 세련됐으나 막상 맡으면 조금 깊은 휴지 냄새가 다 비슷하게 나는 것 같은 그 브랜드. 연하늘색. 향수도 핸드크림도 아닌 손소독제를 이런 걸? 정말 덧없다고.






퇴근하니 택배가 와 있었다. 하다하다 앨범을 다 샀다. 철 지난 아이돌 음반은 대체로 재고가 없다. 몇 년 전 초판으로 찍은 게 아직 덜 나갔는지 절판도 품절도 아니었다. 플레디스 오디션을 홍보하는 종이쪽이 끼여 있었다. 전신샷과 얼굴 클로즈업을 포함한 프로필 사진과 노래나 춤 등을 담은 영상을 첨부해 이메일로 보내라는 안내. 기획사 연습생 지원은 이런 식으로 하는군.


샤워를 했다. 건강하고 제정신이고 젊기까지 하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손을 떨고 말을 더듬거리고 묵은 때 잔뜩 밴 물건을 쓰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은 무슨 죄를 지었나 생각했다. 나는 40년 후에 어떤 모습일지도.






아직 괄괄한 성질머리보다 빨리 낡아 버린 몸을 떠올렸다. 그 쪼끄만 냉장고에 남아 있는 베지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지겹고도 흐릿하게 지나갈 시간을 생각했다. 일주일 가까이 소변을 못 보면서도, 눈앞에 있는 밥을 못 퍼먹어도 배가 고픈 게 느껴지고 뭔가가 먹고 싶을 수 있다는 건 어떤 건가 신기했다.


대체 늙는다는 건 어떤 걸까. 왜 이 정도로 모르고 지냈는지 나 자신이 신기했다. 저게 벌이 아니면 뭐지. 죄, 벌. 죄? 죄라. 죄. 그것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젊어서 시간을 보냈든 그건 형벌이었다. 늙고 병드는 것. 어떤 치료를 어떻게 한다 해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도무지 몇십 년 전의 과거를 연상조차도 하기 힘든 상태가 되는 것.




그래서 결론이 따라왔다. 나는 아직 축복받았다고.

진짜로. 건강하고 제정신이고 젊기까지 하니까. 이런 것을 지니고 다니며 몇 초면 부질없을 살균을 기대하고 향기를 맡을 수도 있는걸.


거기다 아직 난 그 옆에서 방관자로 서 있을 수 있다고. 그 지저분하고 답답하고 무겁게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을 보며 잔뜩 신기해만 하고 있는 게, 특권이 아니면 뭔데.

특권이고 축복이다.



다 말끔히 사라질지라도 정말 그렇다. 축복이다.

아직 생생히 살아 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