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gh hopes

이 몸이 일백 번

by 이븐도




차라리 시뻘겋기만 했으면 덜 역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 구절이 생각났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흥. 죽긴 뭘 어디서 어떻게 죽냐. 역시 귀족이라 그런가 사람이 어떻게 썩어 문드러는지는 모르는 노인네였던 게 틀림없다.

아무튼 그 고릿적 시가가 떠올랐다. 요새도 수능 국어에 나오나? 북망산이며 백골이 어쩌니 하는 그런 거. 지극히 한국적인 그런 것들.






죽는 건 문제가 아닐지도 몰랐다. 고통 없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사는 는 게 문제였다. 사는 거랑 죽는 건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일까? 누군가 사망하면 의사는 사망선언을 한다. 기계에서 나온 종이쪼가리에 심전도가 자로 쭉 그인 걸 확인한 . 그럼 그는 그 쪽지 하나를 넘어 죽은 인간이 되는 거지.




드레싱 때는 나가 계시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녀는 병동 끝에 서서 단풍을 쳐다보고 있었다. 단풍이긴 해. 가을이 한창이라고. 며칠 전에 누가 복도 창가의 뒷산을 보고 와 액자 같아요, 라고 했다. 나무와 산 모두가 불그스름했다. 왜 이 광경을 이제서야 봤나 싶었는데 여기 층고가 높아서 그런 거였다. 지난 주에 나는 꽤 대단한 일을 했다. 그냥 던져 버리고 싶었던 심폐소생술 교육을 들었다.


정말 펑크내 버리고 싶었는데 올해 마지막 교육이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몰랐지, 나는 내가 이곳에서 이렇게나 문외한일 줄 몰랐다. 하던 대로 그냥 설렁설렁 근무 전에 교육 갔다가 병동으로 가면 되겠거니, 했다. 아마 세 달 전쯤의 내가. 난 후 력을 다해 서둘러야 했다. 이제 난 뉴비니까.





아무튼 교육은 교육이었다. 학술적인 내용에서 시작해 실무로 넘어가는 코스. 심정지. 심장이 멈추면 몸을 돌던 피도 멈춘다. 피에는 산소가 들어 있다. 뇌로 산소가 가는 게 줄어들면 사람은 서서히 죽는다. 그런데, 사실 이미 다 그러고 있는 거잖아? 산화. 안티 에이징. 그게 항산화 아닌가. 산화, 산소에 착실히 부식되어 가는 몸. 그걸 따라가는 영혼. 하지만 아예 공급이, 순환이 끊기면 신체는 썩기 시작한다. 당뇨가 있었고 운이 꽤나 나빴을 그처럼.


붕대를 풀자 지독한 냄새가 났다. 통상의 발냄새가 아니었다. 나는 전문간호사가 잔뜩 뿌려대는 스프레이가 원래 그 냄새였던가 생각했다. 시큰하게 썩은 내에 내가 기침을 하자 그녀는 나에게 마스크를 쓰고 오라고 했다. 저런 걸 본 적 있다. 반 년쯤 전 영화관에서.

정확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해변 씬. 소독약과 핏물과 누런 고름이, 패이고 벌어져 달랑거리는 발뒤축에 거품으로 고이는데도 모니터의 숫자는 똑같았다. 그는 새벽에도 아침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프다는 비명을 외마디로 박박 질렀다. 웃긴 점이었다. 그의 심박동수가 미친 듯이 오르지 않는 걸 보면 통증은 지금이나 아까나 다를 게 없다는 뜻이었으므로. 이렇게 눈으로 보여야만 공감이 가능하다니. 나는 인상을 썼다. 안 쓸 수 없었다. 이제야, 진짜 너무 아플 것 같아서






팔십은 넘겼을 그의 어머니는 영양수액을 다는 나를 탐탁찮게 봤다. 악의가 섞인 그런 시선이 아니었다. 억지로 붙잡고 싶지 않아요. 이게 사는 건지 모르겠어. 이렇게 붙들어 놔서 뭐 해, 나 가면 돌봐줄 사람도 없어요. 어머니, 붙들어 놓는게 아니라요, 병원 오셨는데 식사도 못 하시니까 이거라도 드려야 해요. 억지로 안 하고 싶다니까. 안 돼요, 저혈당 와요. 나는.. 그리고 또 비슷한 말들. 대체로 그냥 애가 소변을 못 봐요, 하는 것 같은 어투로. 또 추가된 검사 때문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병실로 들어오자 다시 비슷한 말들을 했다. 살려 달라고 안 해요. 살려 달라고 안 할게요.


차라리 이렇게 자면 몰라, 아프다고 엄마 엄마 하는 걸 보면 이 가슴이 미어져. 딱히 뭐 더 슬픈 단어도 눈물 섞인 표정도 없었다. 왜 이리 많이 자요? 많이 아니예요. 새벽에 못 주무셨어요. 새벽에, 엄마 엄마 부르는 걸 내가 들었어. 거기서도 엄마를 찾더라고. 나는 이렇게 애를 놔두고 싶지 않아요.






내가 궁금했던 건 하나였다. 언제 나갈 건지. 이 병동에서는 보호자가 있을 수 없었다. 한 시간 면회만 가능했다. 저희가 원칙상 들어오신 지 네 시간이 지나면 동의서를 한 번 받아야 해요, 언제 나가실지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두고 가요, 오후 내내 있어야지. 나 기침도 밖에서 하고 왔어요, 인제사 자는 애 깰까 봐. 그렇구나. 덩치 산만한 육십 살 육박한 아들과 노모. 밤중에 이 멀리 떨어진 높은 층고의 병원에서 아들이 내지르는 소리를 들었다는 그 말. 독한 냄새. 진짜 악취. 사람의 살이 순환을 못 해 고이고 썩은 채 덮여 있다가 나는 냄새. 외할머니 집 옥상에 있던 장독대를 열었을 때 그런 냄새가 났었다. 몇 년 전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죽여 달라고 간청한 건 아니나 딱히 다를 것도 없는 문장들. 교수는 마음이 아프네요, 하고 방을 나왔다. 멋쩍게 웃었다. 가여워요, 듣다 보면.






그 악취 때문에 그런 게 생각났다. 여우구슬, 구미호. 무덤 위를 기어다닌다는 상상의 생물. 영물일 수도 흉신일 수도 있는 그 동물. 뮤지컬에서는 여우구슬을 그 천도복숭아만큼이나 찾아대고 지키던데. 그런 영물은 없나?


이 몸이 죽고 죽고 일백 번 고쳐 죽어. 진짜 재수없는 시구 아닌가. 너무 사치스러운 표현이잖아. 백 번? 백 번이나 거듭해 숨이 끊어지길 바란다니. 죽는 건 괜찮았다. 아픈 건 안 괜찮았다. 어차피 가야 하는 거라면 덜 아프게 가야 했다. 그 간다는 표현이 죽는다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든 정말 시간에 따른 육체의 부식이든.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 수십 번을 아프다 내질러도 이제는 아무도 가여워하지 않는 그 추한 환자를 죽여 달라고 말할 수 있는 , 정말 그 엄마뿐이구.

어떤 약을 어떻게 주어도 아프다면, 늙고 병들어 버려서 어떤 동정도 받지 못한다면 그냥 가버리는 게 낫잖아. 나 아니면 돌볼 사람도 없어요, 얘. 억지로 붙잡고 싶지 않아요. 어떤 아픈 형용사도 안타까운 부사도 없는 문장.



드라마는 단순하고 사연은 평범했다. 한국 어딘가의 다 늙은 할머니와 중년 아들의 것처럼. 들리긴 뭘 들려요. 진짜 들렸으면 차라리 이 빌어 드릴 수라도 있지. 또아리 튼 구렁나 꼬리 아홉 달렸다는 서슬 퍼런 존재의 영물 같은 거. 신장에 남을 것 같다는 모르핀이며 페치딘 대신 런 거. 하기만 하고 통증은 못 줄여주는 가짜 약들 말고.






할머니 집에서 새벽에 쉬를 하러 깨면, 그 차갑고 낯선 장판의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요강, 메주, 저 위의 장독대. 그리고 뒷방에 누워 있던 왕할머니. 한밤중이라 괜히 시퍼런 것 같은 벽지와 바닥. 싸구려 만화책이나 전래동화에서 본 것 같은 그런 형태들이 갑자기 어디서 솟아날 것 같아 무서웠다. 이제는 생각한다. 그건 무서운 게 아니고 강력한 거였겠구나. 축축하고 쿰쿰해 사람의 손길은 애저녁에 멀어진 것 같은 산 속이며 동산의 무언가에 대고 빌 정도로 그들은 간절했을지도 몰랐다는 것. 그게 아니면, 어디다 바랄 건데. 이미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정말 온갖 약을 다 지어다 먹이고 양지바른 곳의 사당에 가서 빌고 빌어도 변하는 건 없는데. 가야지, 그거라도 바라야지.





노모는 빌지도 울부짖지도 않았다. 새벽, 자택 이부자리에 누워 이 병실의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치고는 현실적이고 담담한 사람이었을지도. 구미호는 과연 젊고 예쁜 여자이기만 했을까. 저런 한을 품고서도 단단히 살 사람이면 그 옛날에도 구미호가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아닌가? 아닐 수도. 그래도 그 아들의 발이 다 썩어들어간 건 못 봤으니까. 오늘은 안 봤으니까. 죽여 달라고는 말할 수는 있어도 그 독한 광경을 목도할 정도의 냉정한 엄마는 못 되니까. 환청은 들었어도 그 정도 깜에는 못 미치는 거지.




퇴근해서 정말 별 생각을 다 한다. 생로병사가 나한테는 너무 독한 탓이다. 차라리 죽을 날 같은 걸 받아 놓는다면 미치게 슬프기라도 하지. 언제일지도 모를 그 날을 향해 목을 내놓고 몸부림치며 검사를 또 하고 또 피를 뽑고 약을 먹고는 몇 시간의 단잠을 열망하며 명줄을 이어가는 과정. 이것도 삶인가? 정말? 아니야. 개차반이라는 말밖에는.


호상은 따로 있는 게 아닐지도 몰랐다. 궁금하다.

난 여기서 뭘 보고 있는 걸까. 이건 과연 일상일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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