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entive.

내가 당신을 싫어한다면

by 이븐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고기를 왕창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술이 약하다는 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무튼 가성비가 좋다는 것이므로. 혼자 마시는 술은 우울의 환기, 둘이 마시는 술은 감성의 부추김, 모여들어 마시는 술은 정신의 부채질. 아닌가?어쨌든 내 느낌 그래.


하지만 우르르 다같이 모여들어 별 것 아닌 얘기들에 소리 높여 웃고 단체로 바보가 되는 건 흥겨운 일 같긴 해서. 외로이 멍청해지는 게 아니잖아? 술과 고기의 날. 가격표가 없는 것처럼 고기를 집어들고 와 급한 마음이 채 식기 전에 구워진 새빨간 살코기에 마시는 술. 이래서 소고기구나, 했다.






나 한우 먹는다, 하니까 엄마는 사진 찍지 말고 하나라도 더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또 사진을 보내자 그만 보내고 더 먹으라고 또 같은 말을 보냈다. 소고기의 장점을 알았다. 빨리 익는다는 것. 장기용과 장기오프가 섞여 주제가 전혀 분간되지 않는 대화의 열기에 맛있다는 말을 추임새처럼 자꾸자꾸 더해 왁자한 분위기를 유지시 준다. 돼지고기로는 안 돼. 삼겹살과 목살은 대화가 필요하다. 회식 자리에서의 대화? 대화는 무슨 대화, 그냥 빨리 웃고 떠들어야 하는 건데.





그의 어머니는 나에게 밉지요, 했다. 나는 그녀에게 항상 소리를 질러대는 것처럼 그의 상태를 전해야 했다. 통상의 귀가 어두운 노인네라서 내가 아무리 교양을 챙기는 사근한 인간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었다. 근데 그 말은 그렇게 누굴 다그치듯이 할 수 없었다. 밉긴요, 환자인데. 진짜였다. 내가 누구씨를 왜 미워해. 그리고 달리면서 그 말을 생각했다. 미운가? 글쎄,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그럼 싫긴 한가? 좋진 않았다. 좋을 이유도 없지.


하지만 그럼, 침대에 안 묶어 놔도 되고, 재워서 검사를 보내지 않아도 되고, 혈당이 안 왔다갔다하고, 드레싱 때 지독한 냄새를 견디며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고, 그걸 보고 찌푸리고픈 미간을 참지 않아도 되고, 엄마가 면회를 와서 왜 애를 이렇게 기저귀만 입혀 놨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일이 없는 다른 누구씨는? 그 사람은 좋은가? 그의 엄마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이런 건 소아과나 여기나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식이 특별하다는 생각. 다 귀찮은 환자며 일거리일 뿐인데. 그는 그냥 일거리가 많은 사람이었다.






올리브영 세일 광고를 보고 좀 놀랐다. 11월 30일부터? 지나지 않았나? 12월? 아. 아니지. 벌써 12월이구나. 11월의 끝이구나. 말도 안 되게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내내 일만 한 건 당연히 아닌데 정말 어떻게든 지나갔다. 서서히, 확실히 느낀 거?병원이 소아과에는 인력과 비용을 정말 안 투자하는 거였고, 여기는 그 반대에 있었다는 거. 손도 물품도 시간도 여유도 흘렀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병동의 미쳐버릴 것처럼 사람을 열받게 하는 강도는 이곳에 없었다. 정말로 그거 하나는 내 능력 여하를 떠나 분명했다.




환자 수는 반토막이다. 거기선 열 명 보던 걸 대여섯 명쯤 본다. 그래서 병실에 들어가 일한다. 내가 하나의 모니터인 것처럼 그들의 모든 것을 보는 거지. 그의 엄마보다도 그를 더 오래 보고 있는 것이다. 웃긴 일이다. 어쩌면 죽기 전에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 그런 가족이잖아. 그러나 생판 남인 젊은 노동자와 함께하는 인생의 말년. 하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말씀 드렸죠. 싫어요, 안 풀어 줄 거예요. 진짜 안 빼 드려요. 그만. 그만, 하는 말이나 들으며 보내는 시간.


내가 너무 남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보고 있나 궁금했다. 근데 그렇든 아니든 만약 엄마 아빠가 이렇다면, 나는 그냥 치료를 종결하고 집으로 데려와야겠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 와중에도 그가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게 가여웠다. 차라리 음담패설에 쌍욕에 반말이면 몰라. 나한테 맞으면서도 죄송하다 비는 사회적 약자 같은 걸 괴롭히는 악당이 된 기분란.






그의 몸에서 떨어지는 각질과, 기저귀에 눌려 들러붙은 대변과, 멀쩡한 휴대폰과, 사실은 양옆으로 예쁘게 트인 눈과 립밤을 발라주면 입술을 오므리는 그 멀쩡함 등등은 매번 새롭게 충격이고 또 그냥 그뿐이다. 느새 그렇다.

이 병동의 누군가는 그를 보는 내게 신고식 한 번 제대로 하신다고 했다. 7년차쯤 된 한 선임은 일하는 내내 진정기록을 두 번 넣어봤다고 했다. 나는 11월에 이곳으로 출근한 열흘이 넘는 날들 중 그의 이름 앞으로 진정기록을 여섯 번은 넣었다. 차라리 좋았다. 내가 거기서 맨날 하던 거여서. 향정신성 약이나 마약 재서 주사하고 자는지 확인하고 앰부를 준비하고 산소통을 체크해서 인턴 부르고 검사실에서 깨 버리면 또 오더 받고 남은 약 반납하는 거.




다만 그의 행동거지나 말에 남아 있는 잔재가 껄끄럽다. 다음 주에는 사라져 있을지 모르는 그 오른발도, 잔소리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주절거리는 노모도, 꼭 다른 환자를 보고 있으면 물을 달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도 이제는 상관없다. 하지만 해 주고 싶은데 못 해 주는 그 마음을 잊는 게 거지 같다. 오늘은 난데없이 병에 든 약을 찾고, 어제 오후에는 은향이인지 은미인지를 불러대고, 아침에는 나를 보고 간호사라고 멀쩡히 말했으면서 점심 때는 오랜만이예요, 안녕하세요. 하고선 죄송해요, 말 잘 들을게요 그러니까아.. 이것 좀 풀어 주세요. 말 잘 들을게요 하는 그 모습.


안타까운 거지. 사무치게 안타깝다. 뭘 더 해줄 것도 없어서 그렇다. 나도 묶기 싫다고. 이거 왜 자꾸 만져요, 무슨 색이예요. 이거? 모르긴 왜 몰라. 노란색이잖아요. 쉬, 쉬 줄이라고. 만지지 마세요. 이러니까 장갑 해 놓지. 하지 마세요, 만지지 마세요 하고 골백 번을 말해도 선택적으로 못 알아듣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거대한 감자 같은 얼굴이 안타깝다. 왜 자꾸 나를 못된 사람으로 만드냐고. 난 그렇게 큰소리로 떽떽거리면서 누구한테 이거저거 하지 말란 말 하는 사람 싫단 말이야.






회식 자리에서는 열흘쯤 지난 것 같은 과일과 생선을 전달받았다. 진짜 생선은 아니고 생선 모양 인형이다. 준수가 나한테 주고 갔다고 했다. 그게, 그 인형이 피쉬와 피씨 중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9월인가 10월에도 외래를 보러 병원에 왔다가 나에게 과일을 전해 주고 갔다. 성미가 그 영상을 찍어서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병실에 있을 땐 한껏 도도하게 굴었으면서 그 영상 속 걔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눈웃음을 잔뜩 지었다. 쪼끄만 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나 기억해? 근데 그 땐 왜 그렇게 모른 척했어, 내가 친한 척 하는 거 다 무시했잖아. 아니야? 이거 나한테 왜 주고 싶었어? 얘 친구는? 나 보고 싶어? -당연히 아니겠지- 집에서는 잘 지내? 하고. 혹시나 해서 지퍼를 열어 배를 갈라 본 그 인형에는 역시나 지저분한 게 잔뜩 엉겨 있었다. 길바닥에서 눈이라도 뭉쳐서 넣었는데 녹은 건가, 싶은 비주얼. 야, 이거 뭘까. 하고 소맥 한 잔에 풀린 눈을 하고 동기에게 물으니까 그녀는 아마 샤프심이나 지우개똥일 거라고 답했다.


애기들 그러잖아? 너 그랬니? 아닝? 근데 맞을듯? 으으 지지야. 그거 열지 말라고 말할라 했는데. 넌 열어 봤어? 응. 나도 궁금했거든. 안이 얼마나 더러울지.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쿠팡으로 인형솜 1kg를 시켰다. 6000원. 추억을 보존하는 값. 그리고 퇴근길 현관 앞에는 내 베개보다도 더 큰 솜 덩이가 와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세탁기에 돌린 고등어 외피에서는 얕은 세제 냄새가 났다. 어쨌든 나한테 왔으니 된 거잖아? 그대로였다면 나는 그 인형을 미워했을지도 모른다고. 미워한다는 건 그런 거다. 아무튼 사연이 들러붙고 시간이 남아 걸리적거려 귀찮은 것.






기억의, 시간의 잔재는 왜 그리 선명히 상상하게 될까 생각한다. 당장 내 눈에 안 보이는 거라 그런가. 그래서 멋대로 떠올리는 거지. 멀쩡했을 땐 그랬겠구나, 하고. 그는 기어이 아티반까지 써서 꽂고 온 PICC를 손으로 뺐다. 어차피 이제는 소변줄과 그냥 정맥주사 말고는 뺄 것도 없어서 장갑을 풀어 놓았다. 그랬더니 소변줄을 만지작거리고 수액줄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폴대가 침대로 기울어져서 나는 소리를 지르며 다시 그를 묶어놔야 했다. 무슨 털실에 환장하는 길고양이도 아니고. 소아과에서 애들이 그러면 익스텐션이나 경구용 주사기를 줬다. 그럼 수액줄 말고 그걸 좀 만지다 다시 자기 장난감이나 공갈젖꼭지로 관심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역시나 여섯 살은 아니었던지 그게 아니고오.. 풀어달라 이 말입니다. 네에? 좀 그렇게 해 주세요. 라고 하고 이제는 킹콩마냥 가슴을 쳤다. 왜 그렇게 하지 말란 짓만 골라서 하는지. 아픈 노인네지만 덩치가 있어서 힘을 주면 내가 꿈쩍도 못 했다. 그럼 난 또 힘 빼요! 힘 빼시라구요! 하는 지랄맞은 간호사가 되고.





고등어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그 인형과 이 누구씨의 과거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 질문만 닿는다는 것. 왜 왜 왜, 도 아니고 다채롭게도 쓸데없이 뻗는 질문들.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였다. 그래서 준수한테 말하고 싶은 거야. 준수야, 너 나 기억나? 우리 아무 사이 아냐. 왜 줬어, 이걸? 너한테 귀여운 애들 아니었어? 근데 날 준 거야? 하면서. 하지만 말할 수 없겠지.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영영 할 수 없을 거다.

언젠가 뭐 연이 닿아 아주 우연히 병원 로비에서라도 마주칠 때쯤이면 걔는, 나를 분명 잊었을 테니까. 정말 닿을 수 없다. 무용지물인 거지. 내가 8시간 내내 누구씨의 바르작거림을 감시하고 헛소리를 제지하면서 나오는 성과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매순간 불쾌함을 느끼며 그에게 눈을 부라릴 때의 플러스? 나도 싫고, 그도 싫고. 뭐, 그래. 더 안 다치기야 하겠지. 그러면 된 건가? 그래.




망상 자체에는 현실감을 제공하되, 불안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사실 나는 그에게 현실감을 주고 싶지 않은걸. 무슨 약병이든 여동생이든 SK 건물의 흰 알약이든 뭐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고 싶어. 그런데 안 되잖아. 쓸데없이 잔인한 진술문이다. 뭔 소용이야. 묶여서 내내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 세계에서 꿈이라도 꾸게 하는 게 낫잖아. 공감. 그에게는 공감을 받아들일 머리가 없. 그거야말로 코미디고.


늦가을, 아니, 초겨울. 아니 정말 겨울. 늦은 오후 버스에 들이치는 햇빛이 지나가는 것처럼 다다다다 하고 농도가 다르게 들어왔다 나가는 듯한 그의 제정신. 저도 풀어주고 싶죠, 불쌍하잖아. 하루종일 묶여서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데. 불쌍해요, 근데 못 풀어줘. 다치니까. 안 풀어줄 거예요. 사실 며칠 내내 혼나듯 들었을 말들과 다르지도 않을 그 말에 그는 합죽이가 된 것처럼 얌전히 잤다. 차라리 그게 공감이 아니길 바랐다. 데 그는 그런 걸 알아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닐 거고, 아니어야 잖아?






회식 밥값은 20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했다. 그럴 만하지. 한우니까. 꿈 아닌 꿈이 생겼다. 이런 데 가족을 데리고 오는 사람이 되는 거. 이런 데,말고 정확히 거기여도 되지, 뭐. 안 그만둔다면 그냥 그 식당을 또 가면 되니까. 나는 내가 혼자 뭔 드라마를 찍고 싶어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꼭 드라마가 아니라고 하기도 그렇다.


나한테 보이는 한정적인 장면, 자극적이거나 강렬한 흔적들.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안 구냐는 말이야. 기실 이 주의 기억 중 가장 쓸만한 건 이름도 안 보고 집어온 그 수많은 살코기들과 소맥의 탄산이 목으로 넘어가던 느낌인데.





두 쪽 다 현실이다. 아니라고 할 수 없어. 주량이 소주 세 병인 동기가 잔 두 개를 겹쳐 말아준 소맥과 그 지저분한 내장을 가진 고등어 인형과 자기 아들이 밉지 않냐는 그 할머니의 말 까지 모두 다. 일터에서 마주친, 그로 말미암은 현실. 퇴근 후 달리기와 자갈치가 먹고 싶다는 생각과 이런저런 향수와 키링들 사이에서 고민한 싸늘한 오피스텔 공기 곁들인. 언젠가는 또 흥미롭게 떠올릴 그저그런 날들 중 하나가 되겠지.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 남의 드라마를 보는 나의 인생.



그래, 장기용 나오는 그 왕유치한데 개재밌다는 그거나 이거나. 똑같다. 내가 보는 남들의 이야기니까. 엄마 말마따나 쓰잘데없는 걸 잘 기억하는, 그런 내가 만든 드라마.

드라마 주인공을 미워하고 싫어하고가 있나? 없어.


있어도, 계속 보잖아. 놓을 수 없어서. 궁금하니까. 그런 거지. 그거다. 그리고 나는 그 바깥의 시청자인걸.

한우를 잔뜩 먹은. 날이 추워져 관리비를 걱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