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필리 에버 애프터
벌써 정들어 버린 거 아냐? 하고 차지 선생님이 그랬다.
에이, 했던 것 같다. 정은요.
주말에 콘서트를 갔다. 그가 거기서 요네즈 켄시 레몬, 을 불렀다. 드라마 언내추럴의 주제가. 나는 노래보다 먼저 드라마를 봤고 이후에 그게 그렇게나 유명하다는 걸 알았다. 유튜브 댓글창도 뭐, 읽을 수나 있어야 반응이 어떤 줄 알지. 나는 일본어를 모르는걸. 핫한 노래였다. 드라마와 어우러지며 좋은 노래여서 그랬는지 그냥 좋은 노래라 그랬는지는 모른다. 여하간 나는 그 드라마를 재밌게 봤다.
주인공은 미스미 미코토. 법의학자. 시체의 사인을 찾아내는 의사. 지금 생각하면 정말 독한 것들을 많이 보고 사는 여잔데 무뎌진 건지 멘탈이 쎈 건지 둘 다인지 주인공은 꽤나 즐겁게 산다. 일을 좋아하고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냥 일을 한다. 사실은 열 편짜리 신파나 다름없는 그 에피소드의 전부를 건너는 내내 열심히 일을 한다. 그들의 사연에 빠져 덮어놓고 허우적대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감. 공명. 한자어로도 있는 걸 보면 아주 허구는 아닐 텐데. 옛날 옛적에도 사람들은 그런 정서를 포착해서 단어로 만들어냈다는 거니까. 오만과 자기확신의 산물 아닌가 생각한다. 달리 말하면 헛다리 짚기. 안다고 생각해 넘겨짚고, 있는 상상력은 다 엮어 뒷배경을 만들고,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의 결론을 낸 채 인물의 속마음을 확정하는 거지. 그래봐야, 그거 아닌데요. 사실 이랬던 건데. 하면 다 사라지는 거.
열흘 전만 해도 수술을 할 수 있을 상태긴 했다. 잘 모르지만 뭐 대충 보면 긴지 아닌지는 알 수 있잖아. 이제는 안 된다. 불과 2주 새에? 아니. 사실은 한 열흘 사이에. 이제 그는 몸이 버텨낼 상태가 못 된다. 지후. 지후 수술 일정이 잡혔을 때 탈의실에서는 테이블 데스 얘기가 나왔다. 그게 뭔데요? 위에서 죽는 거. 네? 수술대, 테이블. 아. 도중에 가는 거.
성형외과에서 당일 아침에 수술을 취소한 건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뭐, 그 전공의가 한 번만 환자를 눈으로 봤으면 애초에 준비 자체를 안 했을 수술. 발을 저렇게나 가만히 못 두고 뻗대는데 조직을 이식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였다. 절대 유지가 안 될 거라고.
지후는 그 때의 수술이 아닌 망가진 콩팥 때문에 하늘나라에 갔다. 그보다 나중에 들은 소식이었지만 굳이 남의 병원 의무기록을 안 훔쳐봐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도 내내 신장 때문에 고생이었다. 소변을 나오게 하는 약과 멈추게 하는 약을 다 썼고 심할 때는 인풋 대비 아웃풋을 네 시간마다 봤다. 세 시간이던가. 필터는 다 망가졌는데 독한 항생제는 계속 썼으니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
걔는 그 때 신장이식 랩 같은 걸 나갔던가. 안 나갔던 것 같다. 이 병동 온 첫날 선임을 따라다니며 봤던 것 중 하나였다. 첫 진단으로, 투석을 처음으로 하러 온 사람들은 이걸 나간다고. 아, 일단 기증 동의를 받는 거예요? 대기 명단에 일단 올려는 놓는 거죠. 아. 망가졌으면 아예 되돌릴 수가 없는 거라는 뜻이지. 그리고 며칠 전 그의 앞으로는 급성신손상 진단이 났다. 내분비와 신장과 감염을 거쳐 성형외과로 전과가 되나 했으나 결국은 다시 신장.
그의 어머니는 면회를 와서 면도기와 휴대폰을 갖다 달라고 했다. 하도 조용히 있지 못하고 욕설을 하며 침대를 차는 통에 수선생님 지시에 따라 내내 관찰실에서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미처 가져오지 않은 거였다. 면도를 좀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면도가 안 될 날이 오면 정말 갈 때까지 간 거지. 안 될 이유는 없었다. 다만 항응고수치에 변화가 생기면 이제 면도도 손톱깎기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는 않았다.
신기했다. 이렇게나 맛이 가도 사람은 죽지 않는구나. 한 달만에, 아니. 어쩌면 하루만에. 분명 어제는 약을 추가로 맞고서야 잠에 들었는데 오늘은 아무리 불러도 눈동자조차 알아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엄마도 그 정도는 알았다. 눈맞춤이 안 되네. 그쟈. 와 계속 자노. 자는 건 아니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했으나 그 모든 설명을 크게 크게 소리질러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표면적인 말들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속일 수가 없잖아.
감, 이 붙은 한자어들은 호도와 관련이 있다고 느낀다. 아니면 반대인가. 감정. 감각. 어쩌면 그게 먼저라 그 비논리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철학이며 심리학이며 사회학을 만들어낸 건지도 몰랐다. 나는 이곳에 와서 울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가 가여워서 울지 않았다. 소아과에서 일하는 동안은 정말 놀랍게도 그 어디 병실의 애들이나 또 애들이 생각나 운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오고서는 그런 이유로 운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의 날들은 화농성 여드름 같았다. 안이 잔뜩 아프게 곪아 열받게 부풀어 오른 염증. 여기는 정말 신장 질환 같은 곳이었다. 망가진 후 되돌아오지 않고 흉한 모습들이 가득한 곳. 여드름도 매한가지일 수 있으나 그건 어떻게든 돈이며 시간을 쏟아부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어떤 애들이 아팠던 모양새처럼.
공연 컨셉은 기록, 이었다. 첫날에는 눈이 왔다. 단지 그래서가 아니라 나는 그 콘서트가 눈송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포스터 속의 그가 흰옷을 입고 있었고 흰 꽃으로 장식된 게 많았으며 실제로 겨울이기도 해서. 그런 식의 연상. 거기다, 기록. 어차피 모조리 사라져 버릴 것들을 남기는 행위. 눈을 떠올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 일본어 노래를 부르는 그를 보면서 딴 생각은 그만두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 왜 저 곡을 모창했는지, 왜 굳이 공연에서 부르기로 결정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객석에 앉아 이시하라 사토미가 했던 대사들을 생각했다. 그게 위로였다. 할 일을 하는 것. 재밌는 사실이었다. 정말 비가역적인 것들이 가득한 이곳에 와서는 울지 않고, 실은 엄청나게 자극적이었던 그곳에서 울고 슬퍼했다는 게. 오히려 어떤 말년을 잔뜩 보면서 그냥 할 일을 해야겠다고 갑자기 제정신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빠는 얼마 전에 대구에 다녀와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냈다. 나는 사람이 거기서 더 늙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뼈만 남은 얼굴이라 내가 아는 모습이 없었다. 그는 늘 할아버지였는데도 그랬다. 좀 알아보셔? 했더니 철이 왔어요, 라고 소리쳐 부르면 눈을 좀 떴다가 감는다고 했다. 철이? 아빠는 50대 중반이었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철이라고 불렀군. 면회를 온 그녀가 그를 현아, 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 건물에서 그를 마주치는 수십 명의 사람들 중 누구도 그를 이름 세 글자 중 마지막 하나만 뗀 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앞으로는 제정신인 채 바깥으로 나갈 일도 없는 그의 얼굴에 난 허연 수염을 구태여 깎겠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소아과에서 자주 슬펐다. 그 때는 슬픈 게 아니라 어떤 다른 거라고 가지각색으로 말을 붙여 길게도 합리화를 했지만 결국은 슬픈 거였다. 정작 이곳에서는 슬프다는 인상은 크지 않다. 그 때 나는 속아 넘어간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산발에 떡진 머리를 하고 더러운 티셔츠를 입고서 애를 보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에, 쪼끄만 애들이 싫어지려 하는 내 모습에,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또 성질을 참아야 하는 상황에. 어린 얼굴과 부드러운 피부와 아주 늙지 않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보호자들의 외형에 속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이입했다. 보지 못한 것을 어떨 거라고 추산하고 그려서 방구석에서 울고 우울해했다. 완전한 오류였다. 문제를 읽지도 않고 긴 답지를 혼자서 몇 장씩이나 써낸 것이다. 그러느라 힘겨웠다.
느끼는 것은 쉽고 착각은 달콤해 강력하다. 수염이 부슬하게 올라온, 이제 자꾸만 몸무게가 늘고 이뇨제를 아무리 줘도 소변이 이백 정도밖에 안 나오는 그를 사랑해 쓸데없는 일들을 하는 그의 엄마의 행위가 그렇다. 사랑이 감각을 가린 형태.
모르기에 속단하지 않아야 했다. 모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귀엽고, 작고, 할 줄 아는 건 빽빽 우는 것밖에 없는, 강력한 보호자를 앞세운 어린애가 아니라 힘없고 고집만 세고 우유부단한 노모가 딸린 늙고 무겁고 시끄러운 환자였으니까. 나는 그에게 정들지 않아 이입할 수 없다.
오랜 시간 길게 속아 왔다는 걸 느낀다. 나 자신이 보고 만들어온 감각의 집에서, 혼자 너무 처박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공감은 정말 선택적인 것이다. 그래서 며칠간 일을 했다. 나는 이입의 세계에서 탈출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