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인간
우로보로스에 대한 글을 읽었다. 끝없이 자기 꼬리를 먹는 괴물이라고 한다. 일본드라마 제목인 줄만 알았는데.
나이트 때 할 게 없었다. 아주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뭘 썼던 게 기억났다. 블로그를 찾아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북마크에는 엄청나게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전체 삭제가 안 돼서 몇 개씩 눌러 일일이 지워야 했다. 사고 싶었던 것, 보세 옷, 신발, 학칙, 학과 사이트, 서울의 명소들, 남들 연애 이야기, 아마 친구들에게 공유했을 식당이나 카페들, 인생에 대한 조언, 또 학교 홈페이지, 그보다 이전으로는 이런저런 대학들의 입학요강들. 영국 및 호주 간호사를 준비하거나 된 이들의 블로그들. 당시에 좋아한 연예인들에 대한 포스팅 주소들, 그보다 훨씬 전에는 세관 공무원에 대한 것과 문예창작과나 무슨 공모전에 대한 것들.
5년짜리 일기장이 있다. 며칠 전에 노트를 다 버렸지만 그거 하나는 남겼었다. 2020년부터 썼다가 중간에 2년을 빼먹고 다시 쓰고 있었다. 칸이 작아서 늘 쓰기 불편했다. 억지로 썼다. 원래 일기는 억지로 쓰는 거니까. 가아끔 시선이 더 닿아 읽어보면 재밌었다. 그마저도 다 구겨진 것 같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어 자주는 못 그랬다. 귀찮았고.
실습, 병원, 졸린 날들, 티켓팅. 친구, 사고 싶던 것, 이유도 모르겠으나 너무 즐거워 보인 날. 또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목을 지나 코끝까지 닿은 날을 다양하게 변주시킨 기록들. 그 싫은 출근도 하는데 이렇게 처박혀 있을 수 없어 돈을 쓰고 시간을 쓴 날들. 늘 무엇에 닿고 싶었으나 닿지 못한 그 기록들이 정말 지겨웠다. 매일이 똑같은 날들, 다른 척 생각하느라 책상에 졸음을 참으며 앉아 있던 스스로가 싫었다.
퇴근하는데 이제야 나와 출근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생에서 그랬다. 회사가 전쟁터 같냐고, 밖은 지옥이라고. 나한테만 전쟁터 같은데. 전쟁터? 나는 절뚝이는 패잔병이다. 언제 일을 잘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지만, 별로 잘하고 싶지 않다. 입사 때부터 거기 있던 사람들을 내가 무슨 수로 넘어. 넘을 필요가 있나. 그냥 한심한 스스로를 조금만 참으면 퇴근인걸.
집에 와서 더 버릴 것들을 찾았다. 예전의 영단어 노트들을 빼면 이제 이 집에 손글씨가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어나서는 인스타그램의 모든 포스팅을 지웠다. 하나하나 삭제하는 것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나는 이렇게나 내 삶을 예뻐하고 싶었군. 실상 별 것도 없는데.
밖? 밖은 춥지. 앉아서 상념이나 쓰는 내 앞에서는 누군가 또 토익 공부를 한다. 토익. 언제 적 토익. 나 몇 점이더라. 몇 점이든 이제 0점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삶도 나쁘지 않다고. 나쁘든 나쁘지 않든 이어진다. 내가 감히 퇴사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우거나 버린 것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줬으니.
모든 그래프에는 업다운이 있다. 또 다른 날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내 삶을 좋아하고 있겠지. 이 또한 내가 구축한 권태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어쩌면 방구석이 아닌 바깥에서 숨 쉬는 사람이 되는 시초일지도? 기록은 언제나 감각의 부산물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