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맛 닭갈비
이 일이 내 인생에서 계륵이라면 좋겠다.
어쨌든 여기서 어떤 튀는 행동도 더는 하지 않을 거다.
욕은 사실 얼마든지 먹어도 될지 모른다. 책잡히는 것보단 그게 나아. 친해지라고? 그거 다 말 새는 구멍인걸요.
알면서. 뻔히 다 알면서.
일찍 갔는데 수선생이 탈의실에서 이를 닦고 있었다. 나를 보더니 안 그래도 생각났었다고 그랬다. 내가 뭘 또 잘못했던가 생각했다. 20분간 그녀의 방 안에서 대화 아닌 대화를 했다. 둥근 접이식 의자가 절대 안 쓰러지게 문가에 잘 세워 놓고 나왔다. 제발 내가 텀블러를 놔둔 컴퓨터를 누가 쓰고 있지 않길 바라면서.
결국 다 잔소리지, 그래도 너무 잔소리로만 듣지 말구, 라고 했다.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었고 전부 적절했다. 잔소리. 잔소리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 그 잔소리?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나를 생각했다면 잠깐 얘기가 가능하냐고 먼저 물었을 테니까, 내가 뭐라 대답하든.
훈계다. 이렇게 하라는 명령. 어떤 잔소리들이 그렇고 이곳의 모든 말들이 그렇다.
핸드크림을 열심히 발라야 하는 이유. 건조해지면 상처가 잘 난다. 아물지도 않는다. 까진 손등에 알콜젤과 라텍스 장갑을 계속 문대면 결국 항생제를 발라야 한다. 귀찮은 일이다.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이 일이 나한테 뭘까. 바쁜 날은 바쁜 날대로, 안 바쁜 날은 안 바쁜 날대로 집에 오면 멍하다. 조용하고 아무 냄새가 안 난다.
돈을 대하는 마음은 집으로 치면 바닥재 같은 건지 이제는 그렇게나 돈을 못 모았던 작년의 내가 더 신기하다. 이 색깔 컨버스 하나 더, 이 니트 좋으니까 이 색도 저 색도 하는 마음이 다 가라앉아서가 아니라, 그냥 어떤 것을 봐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 아예 기반이 그렇게 잡힌 기분.
대체 작년엔 어땠던 건가 생각했는데 크나큰 핑곗거리가 있긴 했다. 보이스피싱. 일 년 됐구나. 내 손으로 갖다 바친 현금은 2천이었지만 지난 1년의 총 손실은 아마 3천만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들인 것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하루하루를 건널 수 없었다. 그 탓을 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랬다.
목표. 27년 10월까지 돈 모으기. 정말 올해로 넘어올 때 생각한 건 그거 하나뿐이었다. 이직도 퇴사도 아닌 그 목적 달성. 나머지? 그렇게 근로소득을 받아내야 하는 내 몸과 정신 관리하기, 정도. 이후에 뭘 하고 싶다던가 해야 한다는 건 아예 없다. 어떤 생각이라도 더 하게 되면 정말 나는 역으로 병원을 그만둘 것 같아서.
이야기의 요지는 셋. 밥 잘 챙겨 먹어라, 원내외 교육을 수강해서 전문성을 높여라, 부서 사람들과 친하게, 즐겁게 지내라. 수선생은 내가 덧신을 신는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발목이 많이 보이네? 하고서. 이후로 나는 사물함에 열 켤레는 갖다놓은 흰 양말을 출퇴근 때마다 신고 벗기를 반복한다. 사람들이 퇴사할 때마다 주던 게 그렇게 쓰일 줄이야.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 같았고, 역시나 얼마간 수선생은 나를 아래에서부터 훑으며 인사를 받았다.
첫 번째는 그냥 하는 소리, 세 번째도 뭐.. 어쩔 수 없는 것. 퇴근하고는 뭐 하나? 라는 말에 방구석에서 옷도 안 갈아입고 멍청히 앉아서 유튜브나 본다고 말할 수도, 한새벽에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고 말할 수도 없잖아. 내가 일단 웃자 그녀는 아, 카페 가서 책보고 그러나?
엄청 아웃고잉하고 그럴 것 같은데, 의외로. 아니네? 혼자 있는 거 좋아하는구나? 라고 했다. 아아, 다들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여기, 동기들 없나? 있지? 좀 친하게들 지내. 왜, 선생님을 안 끼워줘? 자기들끼리만 그래? 아니아니, 아니요. 엄청 챙겨주세요. 끝나면 밥도 먹고 스트레스도 풀고 해야지. 즐겁게 해야 하잖아.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그제는 차지가 왜 이걸 아직도 안 해놨냐고 핀잔인지 윽박지름인지 모를 질문을 하길래 일찍 간 거였다.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라서. 나 때는 데이 근무 끝나고 교육을 들으러 그렇게도 갔었거든, 들어도 몰라. 그래도 한 번씩 들어 놓고 집에서 공부도 하고 그러면 환자도 더 잘 볼 수도 있고 의사들이랑도 잘 소통할 수 있고, 그렇지 않겠어? 아아. 네네, 그렇죠. 전해질이랑 아이오, 우리 중요하잖아. 시술 검사 투약 다 좋은데 어차피 이제 일은 어떻게든 하고 있으니까, 그죠? 아무리 내과라도 공부 없이 연차만 먹어 가면 나중엔 아는 거 하나도 없는 사람이 돼. 무슨 말인지 알지?
내내 생각했다. 나 또 뭔 사고 쳤나. 뭘 하다가 어떻게 잘못해서 이런 얘길 수선생이 하나. 데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다섯 시. 그리고 그 다음날 다시 데이근무라서 일어나야 하는 시간은 다섯 시. 시간이.. 그래. 없진 않지. 그러나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왜? 나는 단지 내년까지 이 자리를 부지하는 것만이 목표인 사람인데.
그러면서 또 덧붙였다. 이제 여기 환자군에도 익숙해져야지. 섬망 있고 치매 있는 사람들 너무 이입해주지 말고, 언제나 거리를 두고. 예민해져 있으니까, 또 말할 때는 감정이 금방 드러나니까 잘 또 기분 안 상하게 대처해 가면서. 그쵸? 이제는 좀 알 때지?
퇴사를 한다면, 그냥 그 날로 사물함에 있는 이름표며 물건을 다 비우고 어떤 연락도 안 받은 채 사라져 버리고 싶다. 언젠가 단톡에 수선생의 화난 기색이 역력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퇴사는 6개월 전, 휴직은 1년 전에 말하라는 것. 음. 나 여기 처음 발령일 때 3주 전인가 메일 받았던 것 같은데. 2주인가? 부서이동조차 이틀 전에도 통보하면서 나의 퇴사는 6개월 후여야만 한다는 그 으름장이 우습다.
이브닝 끝난 탈의실. 나와 입사 시기가 비슷한 사람들이 그랬다. 나도 퇴사하고 싶다. 퇴사? 해. 용기가 없어, 없어서 못해. 뭔 용기. 수쌤한테 미움 받을 용기. 아, 수쌤 그거 때문에 그런 거야? 한 달 전에 말했다고? 이번 달까지만 한다 그래서? 그거지 뭐. 야, 다시 안 볼 사람인데.. 아. 혹시 모르지.
바빴다. 모르겠는데요, 라는 속에서 맴돈 대답을 계속 곱씹을 시간도 없게. 아무리 애써도 뒤턴은 별 같잖은 걸로 지랄한다. 나도 이제 그 정도 구분은 하는걸. 병원 밥 5년. 중간에 띵가먹은 게 있어도 손소독제를 그 정도로 발라댄 시간이면 대충 눈치는 깐다. 이건 얘가 나한테만 이러는 거구나. 아니면 이 인간의 일하는 스타일이 이렇게 뭣 같구나, 하고. 알면서도 하는 닦달. 본인도 알고 나도 알 거라는 걸 전제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 꼬투리 잡기.
이런 건, 다른 팀 사람 팀박 오면 투약에러 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오더 바꿔 달라고 했어야죠. 이건 왜 이렇게 해 놨어요? 우리 그거 언젠데요? 그러니까. 이 사람 투석 월수금인데, 이게 이렇게 해 놓으면 안 불편할까요? 왜 인계장 정리 안 해요? 출근했을 때 이게 이러면 선생님은 기분 안 더러워요? 난 그렇던데. 정말로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입맛에 안 맞아서 하는 소리들.
여덟 시간, 열 시간 동안 어떤 일을 어떻게 해 놓았든 결국은 까일 것만 남는 엔딩. 병원 일은 언제나 이렇게 밑 빠진 뭐에 물 붓기 같은 거구나, 하고 이제야 느낀다. 조무사들과 계속해서 밀려오는 환자를 침상으로 옮기고, 투약을 안전하게 마치고, 오더를 고쳐 달라고 하고, 또 뭔가 일이 나면 노티해서 푸닥거리하듯 처방난 것들을 해치우고, 또 반복. 근무자가 한 명쯤 비어도 망하지 않을 병원. 누가 나를 어떻게 태우는 건지, 이 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쓰는지 아예 모를 수는 없는 내가 꿈꾸는 판타지.
어차피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 곳. 그냥 그날 아침에 연락을 아예 받지 않고 타 버리는 잠수. 한 달? 6개월? 알 게 뭐야. 어차피 누구나 땜빵이 되어서 일했었고, '사정' 이 있어서 빠진 누군가의 환자를 추가로 더 봤어야 했다. 한 달도 아름다운 이별이지. 그러면서 수선생은 전체인계 때 너스레를 떤다. 우리 간호사들, 너무 바쁘지. 입원 한 명 해봐, 얼마나 할 게 많아. 챙길 것도 한가득이고. 나는 다시 하라 그러면 못 해. 근데 그래도, 다 성장의 기회잖아요. 오늘도 어떻게든, 잘. 살아남아 봅시다들.
딴엔 그들도 내가 싫을까 싶다. 이전 부서에서는 나를 그렇게 볶는 인간에게 인계를 주면 화가 났다. 이제는 좀 울고 싶다. 그냥 그렇다. 내내 병실에 처박혀 밥 먹으러 갔다오겠다는 말도 못 하며 긴장하고 있다 겨우 듣는 말이 그거면. 그래도 참는다. 잘 참는다. 스물아홉이나 먹고 어제 입사한 애처럼 또 그러고 있으면 스스로가 너무 싫을 것 같으니까. 내년까지는 여기 있어야 하니까.
그 이후에 뭘 어떻게 할지는 정말 모르지. 하지만 이 환경에서 매번 힘겨워만 하다가 서른 살을 맞으면, 근데 통장에 그 정도 잔고도 없으면 정말 죽고 싶어질 것 같아서. 신기한 일이다. 병원도 바꾸고 부서도 바꿨다. 조금 있으면 여기서만 만으로 4년을 채우는걸. 그런데도 어렵다니. 퇴근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늘 새롭게 마모되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정신이 마모된다는 건 어떤 걸까. 나도 모른다. 안 보이는 거니까. 그냥 그런 기분이다. 다 빠져나가는 기분. 그래서 집에 갈 때쯤에는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게 자판기였으면 좋겠다고. 버스기사도, 지하철에 탄 사람들도, 내가 내일 다이소에서 사야 할 물건도. 다 그냥 자판기에서 툭 나오는 거였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기사와 둘이 앉아 있는 상황 자체가 싫어 택시도 최소한의 경로로만 탄다. 아무리 차가 끊긴 시간이라도.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게 답답해서.
일 년.. 도 아니고, 거의 2년. 간호사 면허와 이곳의 경력. 월급. 내가 퇴근만 하면 방구석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어도 되게 해 주는 것. 이걸 계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이게 아니면 살 수가 없는데.
아무튼 내일도 다음주에도 출근. 금요일이 싫다. 금요일 이브닝이 싫다. 여기선 토요일 일요일 일까지 해 놔야 해서.
이 멋진 병동은 선물 클라스도 다르다. 한우 세트 받을 주소를 입력하라는 공지가 떴다. 본가로 보내놓고 나 집 가기 전에 다 맛있게 먹으라고 하고 싶다. 그게 무슨 자존심인지는 모르겠다. 먹기 싫다.
근데 이렇게는 못 살겠어. 으엉.
아냐 할 수 있어.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