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

적기

by 이븐도




늘 익숙했던 할머니의 얼굴과 그녀의 것이 겹쳐 보였다. 새삼 생각했다. 아, 여긴 정말 이상한 데구나. 그게 맞구나.



데이에서 이브닝, 이브닝에서 나이트, 또 나이트에서 데이. 근무자들이 바뀔 때 다 같이 모여서 전체인계를 한다. 공지사항 타임. 어떤 교수가 휴가 중이고 기송관이 어떤 상태고 몇 시부터까지는 어디서 점검을 올 거고 등등을 전하는 시간. 병원에서는 사람이 죽는 걸 익파라고 한다. 익스파이어. 기한이 다 했다는 말. 익파할 것 같은 환자도 인계를 한다. 이브닝 때 가실 줄 알았는데 나이트로 넘어간다고 차지가 그랬다.




2주, 열흘 정도에 한 번씩은 누군가 죽는다. 모르핀을 추가로 엄청나게 주고, 노르에피네프린을 잔뜩 주입하기 시작했다. 임종기. 주치의는 담당간호사에게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는 게 좋겠다고 언질을 한다. 때를 기다리며 아들손자며느리가 가능한 만큼 마지막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환자는 새벽에 갔다. 복도에서 누가 대뜸 곡소리를 내서 알았다. 가셨군. 다섯 시에, 담당은 혈압이 이런데 노에피를 증량할지 물었다. 의사는 안 한다고 답했다. 마지막 BP는 40에 15. 원내 장례식장에 자리가 있는지를 알아봤으나 만실이었다. 환자 표시가 검은색으로 변하고 퇴원 알림이 뜬다. 마지막 차팅은 둘 중 하나. 본원 영안실로 감, 또는 타병원 영안실로 감.


시큐리티, 라고 등판에 쓰인 두꺼운 겨울 잠바를 입은 보안요원들이 와서 시신이 된 그 사람을 이송하는 길에 같이 간다. 사복을 입은 그 환자의 친지들과 함께. 데이, 환자분 가셨다는 짧은 인계가 돌고 다시 아침이다. 인사를 하며 웃고, 미화원들이 쓰레기봉투를 잔뜩 갈고, 주치의들이 오고, 아침밥을 실은 배식차가 오고, 인슐린을 주고, 저녁부터 밤사이 쌓인 컨펌 사항들을 간호사들이 타이핑하는 시간.








1인실 큰 창문 바깥으로 눈이 온 새벽 도로가 반질반질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죽지 않았다. 아빠는 할머니가 난데없는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진작 중환자실에 입실하거나 기도삽관을 하지 않겠다는 요지의 연명의료중단서식에 사인을 했다. 그게 수혈도 투석도 안 한다는 거였는지, 단지 심폐소생술을 안 한다는 단계의 것이었는지 이제야 궁금하다. 당시에는 학생이라 몰랐다. 여하간 아빠는 더 이상의 치료를 원치 않았다. 5년, 해가 바뀌었으니 6년가량 전. 나는 아빠가 냉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말을 서글프지도 않은 기색으로 전해서.


잠시 퇴원해 집으로 왔을 때, 고모가 석션을 하다 피가 나왔다고 했다. 불러도 반응이 없어 돌아가신 걸 알았다고 했다. 격리실. 비닐가운을 입고 장갑을 낀 채 선 방. 사실 그 때의 할머니보다 이십 년은 나이가 적은 환자를 보다 그게 생각났다. 이제는 좀 교체를 해야 할 것 같은 콧줄, 눈썹 문신, 이제는 이름을 불러도 움직이지 않는 시선, 갈색 눈동자, 미형인 얼굴, 기저귀, 자리 옆으로 가득찬 소독용 스프레이와 다 썩은 엉치 쪽 욕창에 바르는 연고, 형형색색의 드레싱 제제들. 베타폼, 알레빈 힐, 메픽스, 컴필, 아쿠아셀. 등등. 다른 환자에게 옮길 수 있는 균이 계속 검출되는 사람. 삐쩍 마른 몸에 잔뜩 주는 힘. 다리 사이에 끼워넣는 베개와 쿠션.



나는 그 환자에게 말을 하지 않고 모니터만 본다. 할 일이 끝나면 카테터 비닐을 치우고 꽉 찬 폐기물 통들을 바깥으로 내놓고. 미화원은 조금 싫은 티를 낸다. 너무 바쁘시면 천천히 치워주셔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밖에 눈 와요, 아침에 가실 때 춥겠어, 그런다. 아하, 그래요? 지난 주엔 별로 안 추웠는데, 이제 춥겠네요. 그러니까요오.






유튜브에서 2000년대 드라마를 편집해 놓은 영상을 봤다. 재밌었다. 여배우가 너무너무 예뻤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그 드라마 말고 다른 것도 보고싶어서 검색했더니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공교롭다면 공교로웠다. 근처에 살던 사람이라 이 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고 나왔다. 나와는 상관이 어떤 식으로도 없는 사람이었으나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동료 배우들의 조문 사진에 내가 출근하는 입구가 보였다. 그 때는 이 별관도 저 건물도 없었을 때지. 엄청 오래전이었다. 그래도. 몰아보기 영상이 절반 이상 남아 있었으나 더 볼 수가 없었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며칠은, 출근할 때마다 잠깐씩 그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안 보게 됐다.


이곳은 여러 모로 이상한 곳이 맞았다. 한쪽에서는 시신을 치우고, 한 쪽에서는 이제는 바깥으로 온전히 걸어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연명하고, 평생 올 일 없었을 것처럼 빛나던 사람이 스스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원래 그런 곳이었으나 나는 이제야 여기가 좀 기묘한 곳이라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게 그 눈 오는 밤의 감상이었다.





병원은 눈이 오면 조금 볼만해진다. 어디든 그렇겠지만 특히 더. 하얗게 덮인 산과 길게 뻗은 건물들이 꽤 괜찮아 보인다. 아빠가 대뜸 12월에 할아버지 사진을 단톡에 올리고, 할머니의 묫자리 사진을 올렸던 것. 얼마 전에 알았다. 할머니의 기일이었다는 것. 나는 당시에 많이 울긴 했으나 울면서도 부채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내내 울었지만 울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내 직업상 환자일 뿐인 그녀의 병실에서 가운을 뜯어 벗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왜 하고 있었을까 스스로가 조금 한심해졌다. 그냥 슬퍼했어야 했다. 이래저래 변하는 건 없었지만.



나는 기묘한 곳에서 일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고,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그 기묘한 곳에서 일했다. 마음을, 써야 하는 곳에 제때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참고, 삭히고, 혼자 처리해 버리려는 아빠의 성정을 닮은 것인지, 그냥 가족적인 정서 같은 게 그런 거였는지는 알 수 없다. 적기. 다 때가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여기는 정말 이상한 곳이었고, 가까운 이들은 이 기묘한 곳의 이들처럼 여생을 보낼지도 몰랐다. 최선을 다한다는 건 그들의 사연이나 이면을 보며 슬퍼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할 일을 하는 거였다. 병원은 그런 것들을 위한 기능이 모인 곳이었으므로.


죽음에 목놓아 울지 않고, 그것을 보며 감상에 젖어 일을 그르치지 않는 그런, 어른들이 모인 기관이자 일터인 곳이라서. 아니면 최소한, 그것들을 깊게 티내지 않는 이들이 굴리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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