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위치

노이즈 캔슬링

by 이븐도





정리의 끝. 목욕하는 남자와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앉은 비키니 차림의 여자를 수납함에 넣었다. 이제 그 자리에는 구급대원 여자와 머리에 응급처치를 받은 남자가 나란히 앉아 있다.

그게 당신들의 현위치야. 오케이?






출근했을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넘버 원. 현위치 빼고 봐. 현위치. 그걸 누르면 내 앞에 떠 있던 환자 리스트 사이로 낯설거나 안 낯선 이름이 끼어 있다. 어쨌거나 안 반가운 이름. 당장은 중환자실에 있지만 삼십 분쯤 뒤에는 여기 있게 될 것이니 환자파악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알 수 있다. 아, 조졌네, 하고. 그러니까 그 친구는 십몇 층 중환자실에 있지만 사실은 이곳에 있는 거나 마찬가 걸. 수십 개의 내가 할 일들을 침상에 펼쳐놓은 채로.




엄마는 내가 머리에 싸놓은 수건을 빼자마자 기겁을 했다. 너 미쳤냐? 랬던가. 머리가 왜 그래, 어? 염색약 잘못 샀어.

사실이었다. 정말 잘못 사서 그랬다. 잘못 샀다기보단 잘못 쓴 거지만. 그게 그건가? 정신이 좀 이상해, 너? 아. 뭘 또 거기까지 가. 잘못 했다고, 염색. 그게 뭐냐고, 머리가. 너 그러고 다니면 병원에서 뭐라고 안 하냐?

. 안 해. 야, 아무리 안 해도 그게.. 아무도 관심 없어, 내 머리가 어떻든. 일만 똑바로 하면 돼. 너 진짜 어떡하려고 그러냐, 어? 왜 그래? 나는 더 대답하지 않고 나갈 준비를 했다. 어떻게 이렇게 십년 전이랑 다를 게 없는지.




그러니까 가불기였다. 엄마의 논지는 늘 그랬다. 관심이 없긴 왜 없어, 너 진짜 이상해, 지금. 당연히 사람들이 니 앞에서는 말 안 하지, 수간호사는 뭐라 안 하디? 탈색했냐? 아니라니까. 남들이 뭔 말을 하면 하는 거대로 문제였고 안 하면 안 하는 거대로 문제였다. 지겹다고 말하기도 지쳤으나 어쨌든 내가 봐도 노랗긴 했다. 골드 브라운 아니고 키위 브라운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색깔.


쓰던 염색약이 단종되어 비슷한 색을 찾았다. 막상 생각한 것보다 어두워져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조금 더 밝은 걸 샀다. 그 색으로 했더니 익숙한 머리 색이 나왔다. 그 색에 정착하기로 했다. 몇 개를 더 주문했다. 생각이 짧았던 거지, 언제나처럼. 한두 톤은 충분히 어두운 색에 그 색을 얹어 놔서 그 정도로 밝아진 거라는 걸 몰랐다. 다음날 출근해서야 알았다. 쌤 탈색했어요? 엇, 아니요. 많이 밝아요? 아니구나, 탈색한 줄. 완전 멋쟁이네?






학교 다닐 때 배운 함수. 위치. X축, Y축. 그 두 개가 교차하는 지점. 둘 중 어느 쪽이든 하여간 엄마는 압도적인 한 축이었다. 대단하게 말하면 내 인생을 갉아먹은 것일 수도 이만큼 보전해 준 것일 수도 있는 한 축.

나머지는 정말 그 나머지였다. 내가 마주쳐 영향을 받은 평생의 모든 사람들을 99라 친다면 그 99는 몽땅 X 또는 Y였고 엄마는 홀로 나머지 하나를 담당했다. 바빴다. 출근할 준비를 하고 엄마아빠가 가져온 것들도 대강 냉장고에 넣고 같이 밥도 먹은 후에 병원으로 가야 했다. 대거리를 할 시간이 없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너 언제 쉬어, 빨리 미용실 가서 다른 색 해 달라고 해. 니가 했냐? 아, 내가 염색약 잘못 샀다고 몇 번을 말해. 가시나야, 어떡하려고 그래. 뭘 어떡해, 자꾸.






다행히도 부서이동이 있었다. 사자 갈기인지 일본원숭이 털 색깔일지 분간이 안 가는 나의 황금빛 머리색보다 핫할 이슈. 나 11월부터 진짜 딴 데 가.

그래, 잘 됐다. 거긴 어떤 병동이냐? 아니. 어디를 가는 게 문제가 아니고 머리 색이 저래서 어떡하냐고. 잘못했대잖아. 아니면 다음 주에 집에 와, 딴 색 해줄 테니까. 알았다고, 안 그래도 가기 전에 덮으려고 했어. 그만 좀 해, 알았다니까? 지금 바꿀 수 있어, 머리색? 못 하잖아. 나 출근해야 돼.


주변에서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언급하는 통에 이제는 나조차도 질려 버린 주제, 로테이션. 그 병동의 이모저모와 소아청소년과의 뭣 같은 점. 이미 흥미가 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토픽이었으나 관심을 돌릴 게 그거밖에 없었다. 나는 열심히도 떠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팔짱을 낀 채 내 머리만 노려보고 있을 엄마를 애써 외면하면서.

외면? 진짜 애써 외면이었다. 입으로는 아빠와 딴 얘길 하고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면서 사실은 확, 시뻘건 색으로 염색해 버릴까 보다, 생각했으니까.




식당에 갔다. 그 식탁에서의 화두는 ISA였다. 판교 미래에셋 갔던 거 기억나냐? 거기 엄마 아는 아줌마 번호 있어, 줄 테니까 너 오프 언젠지 알려 줘. 왜.

적금만 해서는 안 돼. 내가 좀 알아보라고 했지? 너 내 말 안 듣잖아. 안 듣는 게 아니라.. 라고는 말 안 했다. 진짜 안 듣긴 했으니까. 나 아줌마들 싫어. 하라는 대로 다 해야 할 것 같잖아. 좀 그렇긴 하지. 아줌마들, 아니면 그 총각. 당신 기억나? 그 젊은 남자애. 아빠는 웃었다. 그렇지, 아줌마들 무섭지. 근데 뭐 그래도 일 잘 한다는 소리야.


그리고 또 얘기는 그 총각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사근사근하고 친절하게 편의를 봐 줬는지에 대한 걸로 빠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식이 어쩌고 이율이 어쩌고 너 유튜브 같은 데서도 봤지? 지금이 어떤.. 음. 안 봐. 나 추천에 아무것도 안 떠, 라고는 안 했다. 아무튼 요지는 그거였다. 그 아줌마는 너같은 월급쟁이 쪼만한 돈 가지고 허튼 짓 할 만큼 한가한 사람 아니니 쓰잘데없이 겁먹지 말아라. 그냥 가서 해주는 얘기 듣다가 와라.






진짜 아무것도 해본 적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부끄러울 만큼 없었다. 경제나 돈의 흐름에 대한 상식 또는 관심은,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이후로.. 4년 전쯤 호기롭게 샀던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에서 멈춰 있었다. 나름의 생각이고 계획이었다. 아, 이제는 정말 다시 돈벌이 시작이니까 새 병원 들어가면 좀 뭐라도 해야겠다. 그 뭐라도의 뭐가 뭐였는지는 기억 안 난다. 그냥, 시간 많으니까 정신 좀 차려보려고 했던 거겠지. 그땐 생백수였을 때니까. 그 때 같이 샀던 책이 금융 초보의 최다질문 어쩌고였나.






잠을 엉망으로 자서 4일 내내 피곤했다. 그저껜가는 커피를 네 잔인가 마셨다. 그 미친 카페인 투여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좀 잤다. 그래서 오늘은 퇴근 후에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이어폰을 한 번 길게 꾹 눌렀다 떼자 주변의 소리가 다 증폭되어서 들렸다.


바람 소리와 저편에서 지나가는 차들 소리가 훅훅훅 쉭쉭쉭 섞였다. 챡챡챡챡 하는 내 발소리와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벌레 소리들과 함께. 출근 전에는 정말 질려 버리는 줄 알았다. 옷에 한 맺혔어? 대체 코트가 몇 개야. 그 무겁고 안 무거운 옷들을 행거며 옷장에 넣고 그 안의 걸 도로 빼서 어떻게든 안 너저분하게 정리하다가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나한테, 그리고 그 옷들에. 짜증났다. 나 뭐 연예인이야?



다 잊어버린 것 같은 그 책 내용에서도 두 개가 생각이 났다. 책 제목이 아들이니 응당 아버지일 그 작가에게도 아내가 있었겠지. 다른 예물을 안 하고 금을 해왔다고 했나, 요구했다고 했나. 달리는 코스에 금거래소가 세 개는 있었다. 그거랑, 아들이 빈폴 셔츠를 깔별로 산 것을 조용히 꾸짖던 챕터.

어제는 그냥 잤지만 오늘은 도저히 이 난장판으로 퇴근하고 싶지 않아서 겨울옷들이며 그 비슷한 것들을 다 정리했다. 수납함도 죄다 투명한 탓에 가진 건 더더 많아 보였다. 이거 뭐 다 이고 지고 죽을 건가, 뭐가 이렇게 많아. 돌아버리겠네. 좁은 공간에 물건만 그득히 차 있는 것만큼 답답한 게 없었다. 그게 이제야 보인 게 아니었다. 진작 알고는 있었지. 엄마의 X 또는 Y축이 나를 건드린 탓이다.






머리야 뭐 빨간색이 아니고 무지개색으로라도 염색할 수 있었다. 하면 되지, 무슨 상관이야. 엄마의 말에는 늘 틀린 구석은 없어서 기분이 나빴다. 누가 입 아프게 너한테 이상하다고 그러냐, 어? 다른 사람들 다 속으로 흉 봐, 그런 생각 안 할 것 같지. 다 해, 다. , 하든가 말든가. 좀! 좀은, 야.


길거리를 가는 여자애들 머리가 길면 긴 대로 귀신같이 길다고 했고 짧으면 짧은 대로 어차피 나이들면 긴 머리도 못 하는데 아가씨 땐 긴 게 예쁘다고 했다. 몇 년 전에는 나한테 까만 머리가 어울린다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갈색이 낫다고 했다. 까만 옷이라도 입고 있으면 우중충하고 사람이 어두워 보이니 딴 것 좀 입으라고 했다. 그렇다고 베이지색의 뭔가를 입으면 또 재질이 이런 건 뭐가 어떻고 저떻고 하면서 끊임없이 말할 거리를 만들었다. 그런 딴지를 걸면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게 문제였다. 엄마의 시선과 평가가 불특정 누군가의 관점이 되어 나를 재단하는 것.




나는 그 시선과 이십 년 가까이를 살았다. 그게 지겨워서, 그리고 그 잣대 속의 내가 벌써 피곤해져서 일찌감치 집을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점까지는 말대꾸도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대들기도 했지만, 뭐. 아빠? 별다를 것 없었다. 엄마는 자발적 악역일 뿐, 아빠도 무슨 천사나 선비는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보수적인 것만은 둘이 놀랍도록 똑같았다. 싫었다. 내가 정말 머리를 일곱 빛깔로 물들이고 삭발이라도 하고 다녔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난 그랬던 적이 없거든. 결국은 엄마아빠를 이겼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으리란 걸 알았다.






둘은 함께 검소했다. 나와서 살아보니 알 수 있었다. 쓰지 못해서 안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안 쓰는 거였다. 엄마는 툴툴대면서 받았던 내가 사 준 가방을 정말 일 년 내내 들고 다녔다. 비싼 것도 아닌데 진작 좀 사줄걸 싶었다. 그 안의 장지갑은 내가 본 지 십 년은 된 것 같았다.

엄마, 명품 하나 사 줘? 하자 슬쩍 웃다가 니나 사서 써라, 했다. 나 지갑 필요 없어. 왜 필요가 없어. 안 들고 다니니까. 좀 들고 다녀라, 현금도 몇 만원 가지고 다녀야 된다고 몇 번을 말하냐, 엄만 됐어. 이게 크고 널널하고 많이 들어가서 편해. 이거봐, 안에 이런 것도 들어가.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마. 알았어? 돈 좀 가지고 다니고. 하여간 말하는 거 귓등으로도 안 들어먹지.




뭐 그렇다고 다 갖다 버릴 것도 아니건만. 신발장을 뺴곡히 채운, 민망할 정도로 수며 가짓수가 많은 신발과 엄마아빠가 야, 다 가져왔다. 가시나야. 하면서 전해 준 겨울옷들을 생각했다. 뛰면서. 현위치. 내 신발 소리와 가을의 풀벌레 소리와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아이돌 곡들의 비트로 가늠해 보는 나의 현위치. 그들은 그렇게 살아서 그나마 이만큼 지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몰랐다가 아니고 그랬다. 튼튼하게 고쳐서 썼고 덧대어 썼고 오래오래 썼다. 이거 좀 버려, 어? 뭘 버려. 집에서 쓰는 건데 뭐 어떠냐, 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퓨전 국밥집의 그릇은 거의 칼국수 대접만큼이나 컸다. 엄마는 앞접시를 찾아 내 곰탕과 엄마의 소고기국밥을 덜었다. 왜? 성준이 주게? 니 먹으라고. 이거 다 먹겠냐? 가져가면 두 끼는 먹겠다. 이거 하나, 이거 하나. 같이 가져가, 포장해 달라고 해서. 집에 가면 정말 엄마는 하루종일 주식투자 방송 같은 걸 유튜브로 봤다. 넷플릭스로 슈츠 같은 미드를 볼 때 빼고는 늘상 그랬다.

나는 그 소리도 싫었다. 어차피 연금 나오는데 뭐 저렇게까지 사나 싶어서. 속으로는 생각했다. 엄마, 그 나이에도 그렇게 쫓고 쫓으면 안 불행해? 하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당황스럽다. 일 년 전 달리기를 하고 오면 냉동실에 넣어둔 베이글들을 앉은자리에서 두세 개는 그냥 먹고 씻었다. 이제는 그게 두려워 오래 먹을 빵 같은 건 안 사 둔다. 돈과 교환해 낸, 온통 내 것들뿐인 이 방에서 글을 쓴다. 역시나 엄마는 현관의 레인부츠를 보고서도 타박을 했다. 가시나, 이거 비싼 거잖아. 하여튼.. 하고 뒷말은 못 들었다. 뭘 새삼스럽게. 엄마, 저거보다 닥터마틴이 더 비싸. 다 똑같아서 엄마가 분간을 못 해 다행인걸.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밥 굶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굶지 않아도 세상 원망이나 하면서 사는 삶은 더 싫어서 간호사를 선택했다. 남의 시선이며 랭킹을 미치게 신경쓰는 엄마아빠가 싫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이 길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했다. 돌아갈 집 같은 건 없다고. 오프. 할 일이 많다. 그래도 퇴근은 퇴근이라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러니까 집에 와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달리기도, 언제 했다고 돌아오는 빨래도, 가득 차서 먹는 데 우선순위부터 정해야 할 것 같은 냉장고 상황도 다 갑자기 지겨워져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칭 전, 방구석 벽에 다리를 올린 채 누워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나 힘들어, 돈 꽁으로 버는 거 아냐. 나 진짜 힘들어. 그럼 뭐, 관둘라고? 라던 말에 아니. 안 그만 둬. 나 서른까지는 다닐 거야, 다녀야 돼. 라고 했다. 웬일로, 엄마는 그 말에는 토를 안 달았다. 무슨 의미였을지는 모른다. 그 때 엄마랑 아빠 표정은 못 봐서.


소설가, 소설? 쓰고 싶은 게 생기면, 내가 준비가 되면, 아니면 당장이라도. 연습하고 자료를 모으고 구상하고 그전까지 글쓰기의 단점들을 복기해 봐서 쓰는 거지. 하지만 돈. 내가 벌고 내가 쓰고 어쩌면 나의 집이고 인생일 것.

내 삶은, 내 벌이는 다 내 거였다. 우주최강으로 중요한 위치산정이다. 이 시간이 이렇게 가고 있는 것만큼이나 속절없이 흐르는 것. 정말 차곡차곡 쌓기만 해서는 이렇게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교대근무나 피곤하게 이어가게 될 것. 그렇다고 벼락부자가 될 것도 파이어족 또는 기타등등이 될 수 있을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정말 알아야 할 것.






도망치려 했던 그 좌표는 그래도 정말 엄마의 축이긴 했다. 나는 아예 떨어져나올 수는 없다. 그녀 또는 그 환경이나 주제에서. 요새 무슨 영화가 재밌고 주변 애들은 어디로 여행을 갔고 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고 앞으로도 안 그럴 이 사분면. 난 내가 간호사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 라고 하자 아빠는 삼십 년을 했다, 하던 그 환경. 순응해야지, 조금은. 아니. 순응이라고 하면 좀 기분 나쁘니까 이제서야, 승낙이라 쓴다. 지겹지만 어쩌겠어. 그래도 떨어져 나와서 이렇게 살고 있잖아. 비록 아예 다른 존재일 수는 없고, 딱히 그렇게까지 싫은 건 또 아니긴 하지만.




내일도 ICU에서는 전동을 올 것이다. 한 명이나 두 명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다. 나는 그게 싫어서 연휴 내내 근무를 자처하고 연휴가 끝나는 날 오프를 신청했거든. 내일 데이는 그 신규다. 내일도 아니고 오늘이네, 이제.

현위치. 성미야, 현위치 바꿔라. 내가 오늘 봤는데 그 여자애 OS말고 이리로 보낼 거라고 걔들이 인계 중이거든. 나의 현위치. 만년 꿈이기만 할 소설가는 못 되고 간신히 밥을 벌어먹는 머리가 노란 20대 여자. 오프를 깔쌈하게 보내기 위해 기특하게도 빨래도 돌린 나 자신.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했던 주제, 절반은 확신한다. 내가 돈돈 이야기를 피했던 건 분명 엄마의 잔소리와 타박이 싫어서였을 거라고.



오프. 미용실 안 간다. 아직 안 갈 거다. 아직 자를 때 안 됐으니까. 2주쯤 있다가 갈 것 같으면 톤다운 좀 해 달라고 하든가. 그거 말고도 할 일은 많다. 사놓은 그런 책들 좀 훑어보기. 나이트 빼면 출근 세 번 남았으니 병동에 선물 뭐 돌릴지 정하기. 크고 작은 내 삶의 현위치 살펴보기.


빨래는 곧 널 거고, 여름 내내 책장에 앉아 있던 플레이모빌들을 바꿨다. 10월 10일.

숫자가 다 두 자릿수가 됐다.

정말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