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 quizzicality

그렇다면 좀더 거칠게 다뤄주지

by 이븐도





정자역에서 미금역까지 다시 되짚어 걸어야 하나 생각했다. 다행히도 그 포토이즘 안에 남아 있었다. 단체샷을 찍기 위해 멈춰 섰던 그 거울 앞에. 나는 나랑 살기 몹시 힘들다고 느꼈다. 한두 해가 아닌데도 말이야. 이것만은 참으로 아쉬운 점이다. 나는 아직도 나만큼이나 덤벙대고 허점이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거든.






시나모롤은 정말 아직도, 그 고리에 멀쩡히도 붙어 있었다. 두 가지가 놀라웠다.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것. 생각보다 때가 안 탔다는 것.


이거 목욕시킨 거야? 아니. 그냥 그 때 그대로인데. 뭐, 더 더러워야 해? 그건 아닌데.. 엄청 깨끗하게 데리고 다니네? 나는 시꺼매질까봐 아직 한 번도 안 꺼냈거든. 그래? 그렇다면 더 거칠게 다뤄주지. 뭐? 더 거칠게 다뤄주겠다고. 바라는 게 그거 아냐? 아니, 야. 뭐 말이 그래. 아하하하하.




주말에는 친구를 만났고 어제는 동기들을 만났다. 9월 9일. 병동 Y씨의 생일.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생신. 출근하는 길에는 사놓고 덜 읽고 안 읽은 사십 권에 육박하는 전자책 중 하나를 잠시 읽었다. 뇌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는가. 사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머리글 정도에 다 나온 것 같았다.


책 표지에 갖가지 색의 깃털을 가진 새가 그려져 있어 추측도 가능하다. 번식과 생존. 동일어인가? 아무튼 그 두 가지를 향한 경향성과 선호와 탈락과 도태와 발현과 보존. 볏짚, 꼬리깃, 수컷, 암컷, 몸집, 성적 선호, 형질, 진화.. 까만색과 빨간색이 어쩌고, 어떤 균에 감염되면 견장의 색이 흐릿해져 자연의 선택이 어떻고 하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휘젓다가 병원에 도착했다. 망가지고 결함이 생겨 안 멋진 개체들의 공간. 늙고, 병든 이들의 군집지.




투약 라벨에는 많은 것이 적혀 있다. 환자 번호와 이름과 생년월일 등. 매 해, 분기마다 보던 생일이다. 9월 9일? 기억하기도 쉽네, 생각했었다. 케익은 먹었을까 궁금했으나 딱히 물을 수는 없었다. 어차피 군것질은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살은 찌지 않았다. 몸무게가 늘어난다면 부종 탓일 가능성이 컸고 증가한 게 확실하다면 이뇨제를 써야 했다.


한 때 물을 잔뜩 마시려고 노력해본 적이 있는데, 30분에 한 번은 화장실에 가야 해서 이틀인가 하고 때려치웠다. 그리고 그는 그 때의 나만큼이나 쉬를 했다. 섭취배설량 기록을 보며 계산을 하고 있노라면 그 빽빽한 시간 간격이 내가 다 버거웠다. 거기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투약을 하러 들어갔으나 그가 화장실에 있을 경우 십 분은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와야 했다.


언젠가의 머그컵에는 다른 사람에 잔뜩 둘러싸인 그가 인쇄되어 있었다. 뭔가를 축하하며 다른 이들이 만들어준 기념품 같았다. 배만 볼록한 채 기이할 정도로 마른 몸으로 뒤뚱이며 걷는 그가 아닌 다른 모습. 동기 A는 최근 그의 모습을 보며 마지막 잎새 같다고 했다.






A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어디가 좋냐고 물으니 책을 읽는 사람이라서 좋다고 했다. 정말 책을 읽는 게 좋아? 아니면 다른 게 기대돼서 좋은 거야? 어떤 게 좋은데? 하자, 책 속의 맥락을 읽고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멋있다고 했다. 셔츠핏이 멋있어서 좋다고 했다. 젠체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추리소설을 안 읽던 사람인데 다른 사람이 추천하자 읽고 오는 모습이 멋지다고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맥주에 제로콜라에 샐러드에 피자에 양파튀김이 나올 때 차근차근히 말했다. 나는 대답을 추출해내기 위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려 무진 애를 썼다.




B는 남자친구를 남자친구라고 부르기 싫다고 했다. 사귀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호호호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야앙. 아니기는, 야. 니가 제일 나빠. 아, 그냥 싫어. 모르겠엉. 야, 같이 놀아, 단체로 술 마시자. 그래야 재밌지, 하고 C가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싫다고 했다. 술집에서 나오자 저녁 바람이 선선했다. 야, 소풍가고 싶다. 남자친구랑 가, 했더니 싫어, 했다. 진짜 개나쁘다.


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게 언제 나올지 모르겠엉, 언제 좋아지지? 너 걔 차 없어서 같이 가기 싫지. 응. 어떠케 알아써? 지는? 야, 넌 있어? 없지. 아, 여자 만나기 빡쎄다. 몸관리하니까 헬창이라 그러고 공부 개빡으로 해서 대기업 들어가서 선물 사다 바쳤더니 남친이라고 부르기는 싫고, 집은 있는데 차는 없어서 피크닉은 가기 싫고. 그리고 단체로 와하하 웃었다.




남친 니 어디가 좋대, 라자 C는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입을 오므린 채 웃기만 했다. 아, 말하라고. 말할 때까지 여기서 못 나가. 너무 이쁘대? 이상형이래? 눈이, 쳐져서 좋대. 뭐? 미친. 야, 나도 눈 당장 내려. 하고 B는 양 눈꼬리를 냅다 찢는 것처럼 내렸다. 그게 섬뜩할 만큼 당황스러워서 면전에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 사람 얼굴 두고 그렇게 웃으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야야야 근데 쌍수했다고 말했어 그럼? 했지. 에이. 그게 별거냐, 다 하는데, 별말 없지? 응. 딱히. 그리고? 또 뭐? 누나 뭐가 좋대. 돈 많이 모아서? 뭐?


자기보다 적게 버는데, 더 많이 모았다고. 누나 하고 싶은 거 다 하래. 걔 니 연봉 알아? 어떻게? 아. 두 번째 만났을 때 물어봤어, 누나 얼마 버냐고. 미친. 그걸 왜.. 아니 나는 그래서 세전으로 대답해야 하나 세후로 대답해야 하나 생각했거든. 아니 그걸 왜 고민해 너도 진짜 웃기다. 그래서, 대답했어? 세전으로? 걍 세전으로. 야이씨, 우리 세전으로 치면 연봉, 야. 말하지마 개빡치니까.






A의 짝사랑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하여간 그녀는 꽤 좋아하고 있었다. 정말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가 나를 포함한 이 넷 중 가장 빨리 결혼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약간의 코칭 같은 것만 받는다면. 그녀의 연애 관련 양상은 아직 머릿속을 나오지 못했다. 야, 걍 다음 모임 때 책 핑계라도 대면서 좀더 얘기하고 싶다고 말해. 그냥 던져. 어? 아, 좀더 지켜보고. 뭘 지켜봐, 스나이퍼냐. 참나. 내가 나가줘? 큐피트로? 미친. 야. 당장 나가. 나 진짜 갈건데. 진짜 가? 나 궁금하단 말이야. 니가 좋다고 한 사람. 정말? 난 좋아. 진짜?




B는 내가 평생 본 주변의 여자들 중 가장 예뻤다. 막 새해가 되어 이들과 치킨에 피자에 과자에 안주를 잔뜩 먹고 케익 커팅까지 한 다음 날 아침, 냄비에 라면을 끓이는데 정말 얼굴에 아무것도 안 바른 맨얼굴이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면전에 내가 있다는 게 미안해질 정도로. 키도 커서 그녀는 꼭, 덜 핀 장미 같았다. 바닐라색으로. 입고 있던 잠옷이 상아색이었기 때문에. 원래 장미는 중간쯤 핀 게 제일 예쁘잖아. 내 눈에 그랬고 아마 남자들 눈엔 더 하겠지.

소개팅 상대로 나온 그가 보낸 선물을 보고 우리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나라도 그녀가 상대로 나왔다면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그럴 것 같아서.


아, 재미가 없어. 뭐가 재미가 없는데, 아니. 무슨 재미를 원하는데. 아 모르겠어, 그냥. 이거어, 이렇게 하는 게 나은가아아 아닌가아 별론가아아 어떻게 생각해애애 하고 그녀는 잔뜩 목소리를 깔고 흉내냈다. 아마 남자친구로 부르기 싫은 그녀의 남자친구를. 걍 찐따같아서 싫단 거네? 야. 참. 근데 진짜 좋은 사람 같긴 해. 니가 몰라서 그렇지. 좋은 사람이라고?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아. 노잼이라니까? 무서워하는 게 아니고, 니가 안 좋아하는 티를 내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나는 티 안 냈어. 그냥 재미가 없어. 거기다 감정기복 개심해.




나는 병동에서 그녀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예쁜데 화도 안 내고 항상 친절할까 생각했다. 얼굴이 시뻘개지는 말고는 그녀가 화가 났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었다. 그건 그녀가 생각보다 더 평정을 잃지 않는 성격이라는 뜻도 됐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녀의 남친 아닌 남친 앞에서 원래 하던 대로 하던 거였다. 너무나 여신 같은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니 그녀를 떠받드는 그에게는 무슨 여황제 같은 느낌이었겠지. 야, 넌 영원히 몰라. 걔가 왜 좋은 사람인지. 리얼. 죽을 때까지 몰라. 텄어, 걍. 딱 알겠는데? 왜 좋은 사람이라 그랬는지? 딴엔 엄청 노력하는 거잖아. 자기가 아는 선에서, 안 그러냐?





C는 핑크색을 좋아했다. 늘상 핑크빛 섀도우에 핑크색 사원증 홀더에 핑크색 크록스에 핑크색이나 연하늘색 머리끈을 썼다. 중간 크기의 스탠리 텀블러는 딸기우유색이었다. 넌 핑크가 좋아? 응. 왜? 이쁘잖아. 아. 그래. 그 몽글한 색과 외모와 다르게 그녀는 이유를 길게 설명하지 않았고 웃으며 팔랑거리지도 않았다. 우리 중에 가장 자취를 늦게 시작했고 최근에는 첫 해외여행을 갔다. 다낭에서 찍은 사진들 중 어떤 것을 인스타에 올릴지 우리에게 검증받았다.


야, 근데 표정이 왜 다 이렇게 웃참하고 있어? 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웃기니까. 라고 대답했다. 아니 야 웃기면 웃어야지 왜 참아, 이재용이야? 했더니 그녀는 그제야 빵 터졌다. 좀 뿌듯했다. 아닌 것 같았으나 이상하게 웃긴 순간들을 가끔 인스타에 나중에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야 알 수 있었다. 사실 저 때가, 장면이 그녀의 마음에 남았구나.


그녀를 화를 내며 일하지 않았으나 그 똑같은 표정을 고수하면서 단톡에는 쌍욕을 서슴지 않았다. 조금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땐 실상 가장 또라이였기 때문에. 아무튼 티를 내지 않았고 내색하지 않았다. 이전 남자친구가 있을 때도 오프 때는 주로 집에 있었고 언젠가는 침대 밖으로 정말 한 발짝도 안 나간 하루를 워치로 인증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시간을 잤다. 나는 그렇게나 잠을 많이 잔다는 건 체력이 정말 심각한 수준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사실 그녀는 가장 이 일이 힘든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내가 어딜 데려가도 불평 안 하고 말이 없어서 좋대. 토를 안 달아서. 아하. 그리고 취향이 딱히 없댔나, 그래서 좋대. 그녀의 새 남자친구는 낯선 사람들과 섞여 여행을 간 적도 많았고, 사진으로 보아 옷도 트렌디하게 입는 스타일이었다. B가 그런 것의 완전한 대척점에 있던 건 아니었으나 옷이나 꾸미는 것에 관심이 많은 타입은 아니었다. 연분홍색 소품이 드러낼 수 있는 것과 다르게 말이지.


그러니까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와 반대인 그녀의 단단한 성정이 마음에 드는 거였다. 흥미로웠다. 누군가에는 무뚝뚝한 핑크색 시멘트 같아 보일 특성들이 누군가에게는 성실함과 안정감으로 보였다는 거니까. 그녀는 선즙필승이 개싫다고 했다. 전남친이 그랬다고 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본인이 위로 안 해 주면 더 삐져서 질질 짜는 게 개꼴배기 싫었다고.




B는 외형만 보면 명품에 꽃에 향수에 둘러싸여 살 것 같았다. 3년 전쯤 내가 멋대로 본 첫인상이 그랬다. 샤넬, 루이비통, 입생로랑 등 다른 누군가 들면 그냥 아, 가방을 들었군 하는 느낌이었던 게 그녀가 하면 정말 어울려 보였다. 그녀는 가방에 웃긴 모루인형 같은 걸 달고 있었다. 웃겼던 이유는 정말 볼품이 없고 애꾸였기 때문에. 뭐야, 이건? 얜 뭔 컨셉이야? 야, 컨셉이라니. 내가 직접 만든 거라구우. 어, 어? 아. 너 이런 것도 하니? 야, 다이소 인형 만들기 재밌어. 근데 눈은 어디갔어? 헐. 빠졌네, 어디갔어어?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어떡해. 버려야겠당. 어?어그래.


몇 달 전에는 뜬금없이 보석 젤리였나 하는 걸 만든다고 곤약을 녹이는 사진을 단톡에 보낸 적도 있었고, 병동에 남아돌던 선물용 컬러링북을 가져간 적도 있었다. 아마, 그녀의 남자친구 아닌 남자친구는 그녀의 그런 면을 모르는 거 아닐까 추측했다. 내가 처음 본 그녀의 모습대로 그녀를 보는 중인 거지. 그 남자는 앞으로도 모를 것 같다는 게 문제였지만.




나는 병동의 그에게 생신 축하해요, 했다. 딱히 의미도 무게도 없었지만 어쨌든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는 비틀비틀 복도 끝의 난간을 잡고 가다가 예? 아, 예예. 했다. 몇 년에 걸쳐 본 그는 불평하거나 화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가 항의를 한다면 분명 상대나 상황에 문제가 있는 거였다. 아마 그 성격 덕에 그 머그컵의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걸까 떠올렸다. 그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는 사진은 너무 어색했지만 기억에 남았다. 강하게.


버스에서 읽었던 책 내용과 병원 로비로 들어오자 마주친 수많은 사람들. 엘리베이터에서 생각했다. 그럼 도태되어야 하는 개체는 한둘이 아닌걸. 그런데 인간은 동물이 아니잖아. 생각도 하고 감정도 있고 그 많은 맥락들까지도 문자로 표현해 스스로 또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 각각의 이야기들을 결핍이라 부르고 강점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이어 서사가 건드려질 때 누군가에게 끌리고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부리가 어떻고 깃털의 선명도와 노랫소리의 피치가 짝짓기에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동물과 달리.






친구와는 행궁동에 갔다. 붙어 앉아서 이번 달에 영업종료를 한다는 포케집에서 점심을 먹고 그녀가 찾은 전통찻집 같은 데를 가고 다수의 소품샵을 돌고 사실은 병원 지하의 빨라쪼가 더 맛있는 것 같은 젤라또집에 갔다.


나는 그녀가 십몇 년 동안 그 동그란 눈으로 어처구니 없는 농담들을 웃지도 않고 해서 좋았다. 온갖 쓸데없고 조잡하게 귀여운 것들이 가득한 소품샵에서 편지지를 고르는 걸 좋아해서 좋았다. 내 방에 붙일 포스터와 내가 보고 좋아할 스티커나 작은 인형들을 사는 것과 남에게 줄 편지지를 사는 건 다르니까. 나는 주로 전자였다. 그녀는 예쁜 편지지를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가게들을 돌며 사랑스러운 종이쪼가리를 찾아대면서 나를 꺽꺽꺽 웃게 하는 말을 하는 그녀가 좋았다.






아름다움이 뭘까 생각했다. A에게는 사실 6월에 모여 사진을 찍을 때의 옷차림과 화장 스타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자 전략을 바꾼 것 듯했다. 나는 내심 아쉬웠으나 뭐, 그냥 잘 되길 바랄 뿐이었다. B의 남친 아닌 남친은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때처럼 그녀를 보는 것 같았으나 사실 내게 보이는 아름다움은 한 층위가 더 늘어 색채가 변했다. C는 겉보기에는 여리한 파스텔톤이었지만, 사실은 가장 단단했다. 개복치같은 나와 달리 그녀는 운동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었다.


사학연금은 받아야지? 뭐? 맡겨 놨니. 아니지. 3년 했으니까, 7년은 뭐.. 뭐?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엔클렉스도 대학원도 부서이동도 아닌 그냥 존속을 향한 그 눈빛. 맥주보다 소주를 좋아하고 돈을 많이 모은 게 매력이 되는 그 핑크빛 인간이 달리 보였다. 대단했다.






1년도 더 전에 흰색과 은색으로만 된 산리오 키링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셋을 샀다. 쿠로미와 시나모롤과 마이멜로디. 하나는 눈이 찍 올라가 무서웠지만 그래서 사랑스러웠고 하나는 참 무해하고 구름 같아 보였다. 나는 그것을 각각 다른 친구에게 선물했다. 친구는 그걸 만날 때마다 달고 나왔다. 병원 앞에서 마주쳤을 때, 자기 니가 준 거라서 맨날 바꿔 다는걸? 했다. 그녀의 눈은 실제로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컸다. 남들이 섀도우니 아이라이너니 마스카라니 발라야 할 때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게 쌍커풀진 또렷한 눈.


그런 눈을 한 그녀는 실제로는 실없는 소리를 웃지도 않고 했고 그 말에 배가 끊어져라 웃는 나를 초점 빠진 눈으로 보며 웃으면 복이 와여, 했다. 나는 그녀들의 모든 기묘한 점들이 마음에 들었다.






행궁동 데이트가 끝나갈 때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넌 친구가 왜 좋냐. 응? 친구 하나하나 개개인 말고, 친구가 왜 좋냐고. 뭐? 모르겠는데. 음. 넌 왜 좋은데? 모르겠으니까 묻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넌 그런 걸 맨날 생각하니? 아. 궁금했는데 답이 안 나와. 너도 참, 넌 꼭 운동해야겠다, 지금처럼. 그래? 응. 각각이 왜 좋은지는 알겠는데.. 음.


사람들의 그런 점을 찾는 건 살아가며 생기는 또다른 재미였다. 그 책에서 그랬다. 아름다움의 감상자의 뇌에 있다고. 아름다움의 형질은 누군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만 진화한다고. 그러나 형질과 선호 사이의 부합 관계는 어떻게 발생된 건지 알아보자고. 음. 나는 그녀들과 결혼을 할 것도 진짜 데이트를 할 것도 아니었으나 아무튼 아름다움은 개개인의 것이 흥미로웠고 빛났다. 그러니까 그것들을 보는 내 눈에.






동기들과 모인 자리에서 지난번의 스튜디오 사진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 동네의 포토이즘에 놓고 와서 집에 왔다가 그 모든 길을 도로 다시 다녀와야 했다. 그러느라 집에 와서는 눈이 감겨 달리기는 꿈도 못 꿨다. 가물가물. 나에게는 나의 이런 형질이 아름다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도태되지도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놀랍다. 엄마는 아빠의 이런 점에 매력을 느꼈을까. 유전은 이런 것도 계승시켰던 것이다. 아빠는 늘 현관문을 닫고 돌아서서는 차키나 지갑을 찾으며 가슴팍이나 엉덩이 뒷주머니를 양손으로 더듬으며 계단을 올라왔었다.




이런, 그 망할 형질 때문에, 어쩌면 전혀 아닐수도 있으나 엄마는 내심 귀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그 특성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나랑 사는 게 고달팠다. 내가 새였다면, 이런 건 진작 탈락되어서 발현되지 않았을 성질인데. 참나. 도태되지 못한 형질이 나를 힘겹게 한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남들에게도 그런 면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아름답게 보는 것들 말고. 안 그런가? 그래야 공평하지. 하하.




여름이 간다. 계절이 바뀐다. 나는 11월부터 다른 병동으로 간다. 거기서는, 거길 다니면서는 뭘 찾아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