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설탕 두 조각
렝켄은 꽝꽝 언 호수를 건넌다. 멜빵 청바지를 입고서 펭귄처럼 비틀거리는 뒷모습의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눈이 많이 왔다. 눈이 오는 날은 사실 그렇게 춥지 않다. 그 전날이 추웠다. 그날 나는 머리뼈 속까지 깡 소리나게 얼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뛰었다. 엄청나게 추운 날의 장점.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 생각하게 되면 춥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면 정말로 추워져서 뛸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온 얼굴과 다리로 찬 공기를 받으며 뛰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다시 서 있었다. 생각을 안 해서 실감을 못 한 거다. 얼마나 추웠고, 얼마나 걸렸는지.
살면서 그렇게 씨발, 을 많이 들은 건 처음이었다. 나한테 하는 건가 싶었는데 듣다 보니 나한테 하는 게 맞았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신기한 것까지도 아니었다. 손톱깎이를 달라고 했다. 없었다. 있어도 없는 거였고 당장 만들어낼 수 있어도 없는 거였다. 뒤져서, 뒤져서 나오면 너는 죽었어. 씨발년아. 아무튼 그런 단어를 저렇게 선명하게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거울치료가 될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지만 완전히 와 닿지는 않았다. 그는 나를 위협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떡해. 그가 나한테 하는 욕이며 살해 협박은 광교호수공원의 밤 달리기보다 안 무서웠다.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달리고 싶을 때, 그럴 때가 나는 더 무서웠다. 결정적으로 그는 침대에 묶여 있는걸.
전날 눈이 잔뜩 왔다. 창밖 저 아래쪽 본관 중앙정원에 애들이 보였다. 작년 이맘때쯤 또 차차의 선물을 사러 쇼핑몰을 다녔다. 패딩을 벗어 들고 그 더워 죽을 것 같은 공기와 건조함에 눈을 꿈벅이며 에뜨와와 아가방을 들쑤셨다. 그러다 작은 스키장갑을 찾았다. 패딩부츠를 주고 싶었는데 이미 그건 다른 사람들이 선점했다고 단톡에서 동기들이 그랬다. 나는 그 장갑과 나이키의 털북숭이 백팩을 샀다. 언젠가, 그 언젠가 유치원이며 학교를 가게 된다면 한 번은 쓸 거 아니야.
전남자친구는 코스트코에 갔다가 시키지도 않은 패딩부츠를 사다 줬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신겠나 싶은, 실용성이 전부인 그 부츠. 나는 그 부츠를 신고 막 눈이 내리는 호수공원을 돌았다. 겅중겅중 뛰어도 미끄러지지 않았고 젖지도 않았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걸 샀을까 잠깐 생각했다. 뭐긴, 뭐. 눈 올 때 잘 다니라는 그런 거. 그렇게 눈이 오면 동네 강아지처럼 즐겁게 뛰어다니라는 마음.
한 텀 지나가고 나자 애들은 사라져 있었다. 본인의 외래를 왔거나 누군가의 외래진료를 따라왔을 그 애들. 스타벅스 앞의 그 애들. 거기서 파는 간식거리나 설탕 범벅인 주스를 들고 병원 로비를 보호자 손을 잡고 나갔을 애들. 그리고 햇빛이 잔뜩 들어오는 한낮의 병실. 그는 계속해서 씨발, 씨발 했다. 좀 조용히 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먹히지도 않을 말. 여기 어디예요? 누구님. 님? 니미. 님은 무슨 님이야, 씨발년아. 여기, 어디냐구요. 병원이다, 썅년아. 네. 병원. 다른 분 계시니까, 니미. 야, 야. 씨버럴 것들이.
그러니까 닥치라고, 너 내가 안 풀어 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틀려? 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조용히 하라고도 할 수 없었다. 밖에 수선생이 있고 혹시 지금 면회를 온 보호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환자에게 어떻게 조용히 하라고 하겠어. 그리고 그 단계에서 알았다. 애초에, 이건 사람이 아니구나. 일대일로 소통이 불가능함을 전제해야 하는 존재. 짐승이구나. 동물. 사회성이 사라진 동물.
아프세요? 허리? 발? 야, 야! 썅년이. 그 몇 푼 더 받아처먹겠다는 거 아냐. 씨바럴. 진통제 필요 없으시다는 거죠? 대답하세요. 필요하세요? 니미. 풀으라고, 이거.
공사로 반대쪽만을 달리게 된 공원. 숲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눈이 많이 오고 있다는 걸 알자마자 운동복을 입고 나갔다. 뛸 게 아니라도, 엉망으로 젖어도 상관없는 그 복장. 도로는 진창이 되려 했고 공기가 적당히 찼고 눈알로 눈송이가 계속 들어왔다. 그래도 좋았다. 욕. 욕보다 싫은 건 기저귀였다. 똥 나온다고! 치우라고. 씨발! 야! 나를 개병신 만들어 놓고.. 아이고야. 니미. 나는 니미가 무슨 뜻인가, 왜 요즘에는 니미라는 말을 별로 안 쓰나 잠깐 생각했다. 인생, 씨발. 왜 이런 거라고 나한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썩은 부분을 떼어내고 온 발은 더럽게 무거웠다. 뼈와 누렇고 뻘건 조직이 드러난 그 발을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드레싱하면 아래쪽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촘촘한 그물같이 생긴 소독 제재를 쑤셔박아 놓고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 주변을 폼 재료로 감싸고 붕대를 둘둘 둘렀다. 쓸만한 발가락은 세 개정도밖에 안 남은 그 발의 부피는 상당히 컸다. 애써 소독한 조직이 다 드러나도록 그가 뻗대는 탓에 붕대를 잔뜩 감아야 해서. 누구님. 욕 그만 하세요. 다른 분들 계시잖아요. 뭐? 니미. 씨발년이. 야. 야. 야, 야. 그래서 그 발에는 억제대를 묶지 못했다. 그가 그 발로 야, 라고 할 때마다 누운 채로 내 가슴을 차고 또 찼지만. 어쨌든 정작 그 발에는 묶을 수 없었다.
입원하는 며칠 내내 그 난동을 듣고 있던 옆 병상의 노인네는, 언니도 힘들겠지만. 나는. 이라고 했다. 나는 다인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다. 뭐 어쩌라구요, 하고 싶었지만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면 어쩌실 건데요. 아흔은 다 됐을 저 사람 엄마한테 이르시게요? 당신네 자식 교육 똑바로 하라고?
그러니까, 가만히 있었으면 됐잖아. 나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 새끼야. 너 나 없이 아무것도 못 해, 그 말들을 못 하는게 열이 받아서 눈물이 좀 났다. 다른 병실을 보던 간호사가 내가 우는 걸 본 것 같아서 쪽팔렸다. 한편으로는 후련했다. 아, 이 정도는 해야 어디 가서 병원에서 일한다고 할 수 있지. 뭐 환자 보호자한테 개지랄 한 번 안 당해 보고 입이나 뗄 수 있겠어? 멱살을 잡힌 것도 정말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불쾌한 일인 건 사실이잖아. 거기다, 언급하기에 얼마나 강렬해. 나 그날 씨발 삼십 번은 들었을걸? 그리고 발로 차더라. 웃기지.
하지만 별로 화젯거리도 못 될 일화. 사람한테 맞은 게 아니니까. 인간이 아니잖아. 인간은 화장실에 가. 저 볼일 좀 보고 올게요, 라고 말하고 알아서 휴지로 뒤를 닦고 손도 씻고 나와. 그리고 그는 침대에서 똥을 싸지. 나는 커튼을 쳐 놓고 조무사들과 함께 매번 그걸 치웠다. 누구누구 님, 이쪽 보시고, 허리 드세요. 엉덩이 들어주세요, 하면서. 살면서 누구 똥을 닦아볼 일이 얼마나 있겠나, 생각했는데. 진짜 똥이잖아. 밖에서는 이걸 위해 시설을 따로 만들어 놓는다고. 이 개체들은 그런 걸 감당할 여력이 안 됐다. 사람이 맞을 리가.
짙게, 늙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리게 하얀, 평소와 달리 미치게 아름답고 조용한 코스를 보면서 늙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눈이 이렇게 오기 시작한다면, 곧 저 호수도 한 번은 꽁꽁 얼겠지 생각했다. 레돈도 비치가 떠올랐다. 아빠한테 종종 묻곤 했다. 그 할아버지는 잘 계셔? 배명승 박사님? 글쎄, 돌아가셨을려나? 엥? 야, 그게 십몇 년 전인데. 아, 그래. 짧게 미국에 갔을 때 교민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나는 그 때 샬롯의 거미줄과 쌍둥이 루비와 가닛을 들고 갔다. 그리고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안 챙긴 걸 후회했다. 그 집에는 영어로 된 책밖에 없었어서.
그러다 다른 교민 집에 찾아간 날. 그 집 거실에서 나는 모모, 를 찾아냈다. 레돈도 비치 부근이었다. 우리는 배 위 레스토랑에서 찐 게를 먹었다. 비닐로 된 턱받이를 두른 채 발갛게 익어 나온 게들을 나무 망치로 다 깨부셔서 살을 발라내고 먹었다. 거길 가기 전에는 그 집에 있던 오렌지나무 앞에서 동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여기 서봐, 표정! 똑바로! 했겠지. 그 집에서 할머니가 줬던 초코칩 쿠키는 특이하게 사르르 녹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 사실 내가 읽기에는 글씨가 작았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다. 그래서 허락이 떨어지자 그걸 열심히 읽는 척했다. 마음씨 좋은 노부부는 내게 그 책을 빌려 가라고 했다. 똑똑한 아가씨라고 하면서. 나는 여름 내내 팀네 집에서 모모,를 읽었다.
모든 인간은 아기로 태어나 늙고 죽었다. 나는 이 간단한 명제를 믿을 수 없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갖가지 선물을 지겨운 줄도 모르고 갖다 바쳤고 갤러리에는 여전히 몇천 장의 사진이 남아 있는 차차와 이 징그럽게 늙은 기저귀 찬 노인네들이 같은 인간일 리가 없었다. 허옇게 바랜 콧털이며 눈썹이 신기할 정도로 무성하고, 긴긴 시간을 자고도 또 잤으며, 신기능이 다 망가진 하체는 잔뜩 붓고 피멍이 든 것 같은 흉한 모양새였다. 사실 흉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생선 살점을 이불에 흘렸다가 벌벌 떠는 손으로 집는 모양새도, 아무리 닦아대도 어딘가에는 대놓고 고춧가루가 낀 그 치아가, 틀니가, 기미인지 검버섯인지 모를 게 진득하게 낀 시커멓고 건조한 피부도 흉했다. 두껍고 더러운 손발톱은 말할 것도 없었고.
크게 모양이 잘 잡힌 코, 가로로 길게 뻗은 눈. 지나치게 튀어나오지 않은 광대. 젊었을 때 한 외모 했을 이목구비. 그러나 그는 늙은 인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망가지고 더 흉해질 일밖에 안 남은 노인. 진짜 노인. 커다란 기저귀를 찬 채 누군가 피부보호제와 물티슈로 궁둥이를 박박 닦아 줘야만 하는 개체. 작동을 멈추고 고여서 썩어 가는 인간.
여덟 시간 내내 욕지거리와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보고 느끼다가 마주한 설경이 반가웠다. 늙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늙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늙고 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나 생각했다.
요세미티에서 내 머리 두 개만한 솔방울을 양손에 들고 찍은 사진, 라스베가스 호텔에서 뽑은 테니스채 든 미니 인형, 모모의 만찬 장면을 읽고 또 읽었던 나. 한국으로 돌아와 핑크색 각도기 세트를 들고 다시 늦은 2학기로 등교하던 날의 나. 이십 년 전의 나.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 나도 늙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공평하게 가고 있었다. 선명한 사진의 어린 모습만큼 확실한 사실. 나도 그렇게 될 것이며 사람은 정말 더럽고 추하다는 것.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본디 동물인데 제자리로 돌아가느라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
불현듯 자주 질문했다. 그 어떤 것도 쥐지 못한다 해도 지금처럼 살 것인가. 집, 돈, 사람, 인간. 그 어느 것도 수중에 잡지 못한 채로, 누군가 역겨움을 애써 참으며 뒤를 닦아 줘야만 하는 상태로 필연적으로 가게 된다 해도 지금처럼 살 것인가. 기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질문. 언제나 틀린 적 없던 명제에 붙은 그 질문.
렝켄은 크기를 죄다 줄여 버린 엄마아빠를 되돌리기 위해 다시 각설탕을 준 여인을 찾아간다. 호수는 잔뜩 얼어 있다. 가는 길에는 카누를 탔지만 그 때는 추위에 떨며 얼음 위를 걸어야 했다. 웃긴 일이다. 현실에서는, 그렇게라도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생경하게 닿는 문장이다. 이제서야 느끼게 되는 질문의 크기가 징그럽다. 아무리 향수를 뿌린 옷으로 갈아입고 양치를 하고 손을 씻어대도, 떠오르는 그 주름진 얼굴들과 대변 냄새와 섬망과 반의식에 젖어 쏟아붓는 욕지거리.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존재가 된 그 노인들과 나의 단 하나의 공통점이라 그렇다.
그랬었고, 그럴 거라는 사실. 믿을 수 없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