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의 무게

돈이 나를 구해

by 이븐도





러닝을 하며 돌아오는 동선에서 눈에 띈 모든 크리스마스 트리의 수를 셌다. 20까지 세고 그만뒀다. 오는 길에 셌는데도 이 정도면 대체 왕복으로는 얼마나 많은 걸까 생각하면서. 다음에는 다 세야지, 했다. 근데 못 셌다.


너무 늦게 나가는 바람에 가게들이 트리 전구 불조차 다 꺼버린 상태라 보이는 게 없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다. 사실 12월 초부터 그랬던 것 같은데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놀라웠다. 크리스마스인 걸 모를 수가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 안 즐거우면 유죄야.






늘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뭔가를 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울 한복판의 묵직한 건물. 지난 여름에는 싼 값에 현대무용 공연을 하나 봤다. 통상의 공연장과 달라 전광판 같은 보조장치가 전혀 없었다. 먼 자리에서 보니 정말 그냥 집에서 화면으로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수도권에 붙어 있으니 이런 것도 이 돈에 보는구나 싶어서.




주초에 사물함을 교체했다. 지금껏 사물함 번호키를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병동은 워낙 커서인지 뭐가 없어져 부득이하게 바깥 CCTV를 돌린다는 공지가 심심찮게 떴다. 사물함 잠금을 생활화하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걸 결국 책임은 다 너한테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병동의 불쌍한 뉴비인 나는 고장난 사물함을 썼다. 그 때문에 사물함을 한 번 닫을 때마다 이어폰이 없어져 있으면 어떡하지, 그 키링 비싼 건데 안 떼 가겠지, 누가 나 들어오는 거 봤나. 하는 생각을 쓸데없이도 자주 했다. 이번에는 번호를 설정했다. 문제는 그 새 캐비닛을 한 번 열어보자마자 잠가 버렸다는 것. 주변 모든 병동의 마스터키를 동원해도 열리질 않았다. 이후 나의 바보짓을 내내 지켜보던 친구가 야, 이것도 안 되면 설비팀에 전화하자. 해서 자기 병동에서 가져온 열쇠가 맞았다. 그러느라 퇴근이 늦었다. 정확히 말하면.. 귀가가.




이미 집에 갔으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뒤통수를 마주쳐 한 시간 내내 주변 층계를 함께 오르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헛짓거리를 관두지 않는 나를 보며 즐거워했다. 포카리스웨트를 한 캔씩 들이킨 후에 그녀는 다른 건물 쪽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러 떠났다. 그리고 나는 본관에서 준수를 만났다. 연예인을 본 기분이었다.


베이지색 군밤 장수 모자를 쓰고 줄무늬 카라티 단추를 목끝까지 잠그고 있었다. 내 이름도 모르면서 나를 보고 눈을 잔뜩 접어 웃었다. 나한테 왔던 영상 속의 그 웃음처럼. 그 때는 여름옷. 지금은 겨울옷. 왜 아직까지 오세요? 언제까지 외래 보셔야 한대요, 했더니 이제는 6개월 간격으로 오면 된다고 들었다고 했다. 너 왜 입원해 있을 땐 나 별로 안 좋아하다가 나중에 물고기 주고 그랬어? 했더니 웃기만 했다. 내게 준 인형 이름은 피쉬, 였다. 선생님. 준수 핸드폰 생겼어요, 라는 말에 나는 번호를 줬다. 어차피 쓸 일은 없겠지만. 그 땐 무지방식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퇴원했다. 요샌 뭐 먹어? 잘 먹을 수 있어? 했더니 두부조림이랑.. 생선이랑.. 했다.




기숙사 건물이 크게 지어져 이제는 병원 바깥 아파트 기숙사보다 거기 사는 신규가 더 많아졌다. 셔틀버스 이동 경로가 늘어서 시간도 바뀌었다. 몰랐다. 일부러 그 때까지 탈의실에 처박혀 있다 나간 거였는데. 별로 춥지 않아 바깥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익숙한 부부가 지나갔다. 부부라기보단 그 엄마. 옷차림. 체격. 걸음걸이. 뭔가 잔뜩 들었으나, 놀랍게도 잘 정리된 유모차. A였다. 입원이 내 팀으로 뜨면 싫었다. 입원과 퇴원 준비와 수혈까지 반나절만에 다 해야 했으니까.


늘 옅게 생각했다. 얘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 그리고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는 거였다. 엄마는 깐깐했고 꼼꼼했고 바라는 게 많았고 정리를 잘 했다. 빠뜨리는 게 없었고 어떤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10층에서는 해 주던데 왜 여기선 안 해주세요? 그땐 몇 mg이었는데 왜 오늘은 이래요? 같은 말들. 소아과에 자리 없을 텐데 혈종으로 갔다 집 가나 생각했다. 여전하구나 싶었다. 그 유모차 사이로 A가 보일까 했는데 그래도 겨울 날씨였다. 살결 하나도 안 비치게 담요며 패딩으로 다 감싸서 나왔을 텐데, 보일 리가.






늦은 셔틀 안에서 그 병동 사람을 하나 마주쳤다. 이제 가세요? 왜요? 너무 늦었는데? 선생님은요, 아 저는 셔틀 시간 착각해서, 그냥 기다리다가요. 선생님. 제가 제일 일찍 나온 거예요, 엥? 진짜요? 열두 신데? 그니까요오.. 진짜. 미친 것 같아요. 거긴 좀 어때요.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입원 많았어요? 아니요. 그것도 그건데.. 인투했어요. 아. 바빴겠네, 근데 누구요. B님이요. 네? 어머, 왜요? 그니까요.

아니. 올 때부터 새츄 60대였는데 외래로 올려가지고 하이플로우 달고 있다가 미큐로 갔어요. 미친. 아, 성인이라 P 아니고 M으로 갔구나. 근데 외래로 올렸어요? 왜? 그러니까요. 다들 그랬는데 C교수가 걍 그렇게 하랬대요. 그거 달아도 새츄 유지 안 되고 사이아노시스 와서 인투 하고 올라갔어요. 그러고 입원 15명. 미쳤죠? 아니.. 고생하셨어요. 무슨 일이야, 어떡해. D쌤 어싸인이었거든요? 아직도 집 못 가셨어요.




담당 주치의는 그 병동에서 일하는 E와 내년에 결혼 예정인 F였다. 돌고 돌았다. 아무튼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한 내내 수혈을 하고 있었으나 수치는 오를 줄을 몰랐고 튜브에서는 시뻘건 색만 몇백씩 배액되고 있었다. 나오는 대로 빼고, 뺀 대로 채워 넣고.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몸무게도 10킬로쯤 늘어 있었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거겠지. 괜찮아지면, 중간에 신장이나 감염으로 전과가 되면, 아니면 폐센터 같은 데로 갔다가 이쪽으로 오게 될 수도 있을까 생각했다. 그는 늘 소아청소년과로 입원했으나 나이가 많았다. 95년생.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으나 그렇게 다시 보게 될 수도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전과가 되면.






지나치게 이입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기울어지려 할 때마다 설거지를 떠올렸다. 쓸만한 깨달음이었다. 나는 사실 출근보다도 설거지를 더 많이 했다고. 그게 도시락통이든 숟가락이든 텀블러 뚜껑이든 일하러 가지 않는 날에도 싱크대에 서서 뭔가를 씻긴 했으니까. 그러나 기억에 남는 설거지 같은 건 없었다. 백 번 중에 세 번은 있을까.


그조차도 설거지 자체보다는 그 날의 다른 사건 때문에 기억이 나는 그런 거였다. 그러니까, 인생에 나타나는 사건들의 무게는 제각기 달랐다. 빈도와 중요성보다는 그냥 마음이 그 방향으로 더 강하게 닿는 것. 앞뒤가 맞으려면 나는 닦았던 식기의 모양새와 기름때를 벗겨낸 정도를 더 잘 기억해야 했다. 나와는 기실 상관도 없는 사람들의 어떤 장면들이 아니라. 그러나 나는 어떤 것들만을 편집해 더 무겁고 세세히 마음에 담았다. 정말로, 내 몸이고 마음이었지만,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편해졌다. 내가 어찌해서 될 게 아니라고.






병원에서는 연말이 되면 계발비 정산을 한다. 한 해의 문화생활이나 자기계발비 영수증을 합산해 내라고 한다. 질리도록 많은 콘서트에 갔으나 대다수가 내 이름이 아니거나 무통장입금이었던 탓에 나는 다른 공연들을 잔뜩 예매한 내역을 모았다. 새삼 비쌌다. 뮤지컬 비싼 자리는 17만원이나 했다. 하이라이트 공연 이번에 얼마였더라. 비싸다 생각했지만 갔다. 관심도 없는 남의 공연들 가격을 보니 그제야 체감이 됐다. 사이트의 호두까기 인형,을 예매했다가 취소했다가 다시 예매했다. 언제나 한 번은 보고 싶었다. 정말 가볼까 했다가, 일하는 중간에 열이 받아 취소했다가, 집에 오는 길에 다시 예매했다가를 반복했다. 내 잘못으로 파토난 약속 날에 일정이 맞았다. 근데 피곤했다. 안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은 여전히, 거기서나 여기서나 답이 없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징징댔고 세 살짜리 애도 아니건만 말은 더럽게 안 들었고 상황은 늘 뭐 같이 흘러갔다. 내과계 중환자실의 그의 근황이 궁금했으나 기록을 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아침에, 동기들 단톡에 그가 익파했다는 소식이 떴다. 내가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그를 입사한 해부터 봤고, 나중에는 꽤나 반갑게 인사했었다. 어제 집에 오면서는, 그의 나이가 뉴이스트 멤버들과 같다는 걸 떠올렸다. 너무 양극단에 있는 비교인가 싶었지만 그냥 연상이 되는 걸 어떡해. 빨리 나아졌으면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이기 전에 환자였다. 자주 봤고 그의 엄마는 나를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반갑긴 하잖아. 올 때마다 안 좋아져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연고지는 전라도였다. 여기였다면, 정말 또 빈소를 찾아갔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가 죽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가더라도 정말 여기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감염 교수는 그냥 로컬이라도 바로 가라고 할걸 후회하며 울었다고 했다. 중환자실 인계장에는 그의 오랜 담당 교수가 임종 시 언제든 바로 연락을 달라고 남긴 지시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갔을까. 못 갔겠지. 기록을 내리고 내리다 멈췄다. 아직 아침이었다. 프야, 오늘.





공연 당일에는 취소가 안 된다. 3시 공연은 늦었고 7시 반 공연을 예매했다. 14만원, 12만원, 9만원, 5만원, 3만원. 12만원 주고 2층에서 보느니 1층에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았고 9만원 주고 2층 한가운데에서 보느니 5만원 더 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야 하나 생각했다. 할 수 있다면 기차를 타고 전라도 어디일 거길 갔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러지 않기로 했잖아. 전화해서, 뭐라고 할 건데.


저 어디 병원 누구 간호사인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머니,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장례식장이 어디일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구태여 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어 그 말을 꺼낼 스스로가 또 생쇼를 한다고 생각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VIP석. 이름도 휘황찬란한 그 1층 자리.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고, 시간이 맞았다. 없는 교양까지 다 털어 치마에 코트를 입고 지하철에 올랐다. 앉아서 아무 상관도 없는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돈을 그렇게 썼으면 울지나 말지. 이건 빽도도 안 되는데. 설거지의 비유대로라면 나는 그런 돈을 쓰지도 울지도 말았어야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건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그렇게 다가온 사건들이었으므로.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냐고.






아빠는 내가 조용필 공연에 가겠냐고 묻자 안 간다고 했다. 작년에 TV로 봤다고 했다. 굳이 그걸 보는 사진을 단톡에 올렸길래 예매한 거였는데 안 간다고 했다. 오가는 게 힘들다고 했다. 너 가고 싶은 공연 가라고 했다. 올해 내가 공연에 쓴 금액을 말하면 엄마는 가시나, 지랄하네. 라고 할 텐데.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크리스마스 발레 공연을 보는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 생각했다. 엄청 옛날도 아니고, 막 입사한 해에 티켓팅 사이트를 열어보다 한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표값이 너무 비싸서.


똑같이 비싸다. 지금이라고 안 비싼 게 아니다. 그냥 자극에 무뎌져서, 돈을 그렇게 쓰는 버릇이 들어서 그렇다. 언젠가 오피스텔 복도를 걸어오면서 무뎌지지 못할 자극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없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생각지도 못하게 준수를 마주친 것과, 그가 그렇게 가버린 것. 사실 그냥 사건들이다. 표면적으로는, 개수대에 서서 세제를 펌핑하는 매일의 그 일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는 것. 나는 이제 펑펑 울지도 않고 병원 전산을 뒤져 빈소를 수소문하려는 짓 같은 것도 안 한다. 정말 그렇다.




연말이다. 성탄절이 일주일 남았다. 비록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내가 번 돈이 나를 구한다. 위장관에서 나온 핏물도, 반코마이신도, 메펨도, CRRT 키트도, 폴스트 서식도, 보호자 연락도, 면회도, 영안실도 없는 세계가 무대에는 있거든. 다수의 공연장에서 느낀 것처럼,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예쁘고 정제된 것들만 아름답게 구현한 세계가 거기 있거든. 그 무게나, 내가 가끔 얼굴을 본 누군가의 임종의 무게나.


광화문 광장이 엄청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 빌딩 전광판에서는 고화질의 까르띠에와 아바타3와 맥주 광고가 끊임없이 나온다. 내가 선택한 무게, 나에게 와닿은 무게. 무려 14만 2천원짜리 공연. VIP석에서 보는 발레 공연. 즐거운 가족과 건강한 애들과 잔뜩 꾸미고 나온 내가 관람할 연말 공연의 최정점 같은 그거.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