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깍딸깍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싶다. 아빠 말고 엄마. 엄마, 나 힘들어. 그럼 엄마는 아마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할 것이다. 왜, 또 누가 뭐라 카데. 또는 관둬, 그러면.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일 끝났나. 밥은.
의문문이라 할지라도 엄마는 정말로는 이유를 묻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굳이 엄마를 떠올린 건지도 모른다.
내일은 아마 보너스가 들어온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뭐가 또 들어온다. 이어 1월에도 또. 아마 2월경에 연말정산을 하느라 다 뱉어내야 할 테니 그 비용으로 모아 두긴 해야 한다. 로비에는 큰 트리가 있다. 올해는 좀 늦었다. 이쯤 보여야 하는데 안 보이길래 또 어디서 이상한 민원이 들어왔나 했다. 자세히 보니 바뀌었다.
가짜 선물만 앞에 놓여 있던 것에서 테디베어 둘이 앉은 썰매도 있는 걸로. 코카콜라 곰을 닮은 애가 베이지색 외투도 입고 있다. 저런 걸 왜 해놓는 걸까 하고 진지하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며칠 전에 보니 휠체어 탄 애가 거기서 브이 한 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 그럼 하나는 있어야지. 생각해보니 준수를 만난 날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날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치는 것도 꽤 재밌다고 느꼈다. 준수는 그 날 아침에야 거기 트리가 생긴 건 몰랐겠지만.
병원을 그만두는 상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아득해졌던 때가 있는데 오늘은 그렇지는 않다. 별 거 없을 것 같아서 그렇다. 이러저러해서 언제까지만 일하고 싶습니다. 그럼 부서장은 두어달 또는 반 년 후로 날짜를 잡아줄 거고, 나는 그 날까지 여전히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입고 크록스에 압박스타킹을 신은 채 병동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근무 날이 되면 캐비닛에서 짐을 빼고 그 다음날쯤 별관으로 가겠지. 가서 서류에 사인을 하고 사원증을 반납할 것이다. 계절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수틀리면, 그냥 언제든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인스타 계정을 지운 후 출근을 안 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아,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 전 병동 수선생은 내 엄마아빠 번호도 알 거라서.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에는 오래 다닌 건지도.
나이트 때는 머스크도 뭣도 아닌 머리 아픈 냄새 속에서 일을 한다. 내가 앉은 위치가 집중치료실 앞이라 그렇다. 그쪽 근무의 시작은 모든 환자의 기저귀를 가는 거고, 그러고 나서는 당연히 별로 좋지는 않을 대소변 냄새를 가리느라 방향제를 잔뜩 뿌리는 탓에 어딘가 이상하게 뒤섞인 냄새가 난다. 사실 그 냄새는 이 병동 전체에서 나지만 계속 노트북 앞에 앉아 전산처리를 하는 나이트 때는 체감이 깊다.
소아과에서는 밤에 애들이 잠을 안 자면, 보호자들은 그들을 안고 나와 하염없이 복도를 돌았다. 앵앵앵앵, 앙앙앙앙. 흉내도 못 낼 그 소리를 내는 애들. 나는 애 좀 데리고 나가시라는 말이 입안에서 터지려 하는 걸 늘 참았다. 당연히, 한 번도 말한 적 없고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다고 해도 그러지는 않겠지. 나만 참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동료들이 마우스를 탁탁거리는 소리나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음이 더 커지면, 그들도 뭔가를 견디고 있다는 걸 느꼈다. 아닐 수도 있지만. 걔들이 그렇게 울어제끼는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여긴 그냥 그런 데니까.
이곳이 아니었다면 나는 진작에 간호사 면허는 없는 것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도권에 붙은, 이 근방에서 가장 크고, 어쨌든 그게 남들 뒤치다꺼리를 잔뜩 하고 폼 나는 점은 하나도 없는 일일지언정 이름만은 누구나 다 알 법하게 붙은 규모인 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정말 간호대학 4년에 들인 시간과 비용은 다 잊은 것처럼 지냈을지도 모른다. 이 병원의 이름값이 나를 당당하게 살게 하나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생각했다. 직장은, 벗으면 끝나는 유니폼 같은 거라고.
어딘가를 다닌다고 그가 잘난 인간일 거라는 생각은 정말 하등 의미가 없었다. 이전에 다녔던 병원은 규모도 시설도 후졌다. 그러나 그곳에도, 18시간씩 병원에 있고도 그 무엇도 원망하지 않고 그다음 날도 멀쩡히 출근해 실수 없이 일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고작 몇 시간을 자고도 다 틀려먹은 오더며 인계사항을 다 걸러내는 선임들이 있었고, 나한테는 지랄할지언정 환자 안전이며 위생에는 신기할 정도로 철저한 사람들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그만뒀다. 일이 너무 뭣 같아서. 알아야 했다. 이 일이 힘든 건지, 이 병원의 낙후된 시설이나 발전 없는 시스템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병동에 올라오는 배식차의 냄새가 역하다. 설사나 무른 변이 묻은 기저귀를 갈다 그 장갑에 오물이 묻었는데, 그걸 바꿔 끼지 않고 다시 이불이나 시트를 만지는 조무사가 너무 꼴보기 싫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십 분에 한 번씩 나를 불러대는 환자도 싫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가 단톡에 올렸던 할아버지 사진도 싫었고, 지인이 자기 가족의 병세에 대해 언급한 것도 싫었다. 퇴근할 때가 되면 길거리의 모든 노인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싫었다.
어느새 나는 그 모든 게 정말 싫었다. 오피스텔 바로 앞의 편의점에 갈까 말까 늘 고민했다. 너무 아는 척을 해댔다. 러닝을 하다 정말 고민의 여지도 안 생길 때나 갔다. 그 주인장 아줌마는 또 아는 척을 했다. 어머, 생긴 건 어떠신데 너무 인사를 예쁘게 잘해주셔, 항상. 그랬다. 다른 젊은 여자한테도 그러겠거니 했는데 다른 손님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그래서 싫었구나. 나는 응대하는 게 싫었다. 응대에 응대에 응대. 그 어느 것도 응대가 아닌 게 없었다.
더러운 걸 참고, 냄새를 참고, 추한 걸 참고, 또 더러운 걸 참고, 대답해봐야 의미가 없는 것에 응하고, 또 참고, 참고. 참고. 나는 이 일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크고 작은 걸 못 본 것처럼 있으면 실수를 한다. 알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알았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에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 어느 것도 걸리적거리지 않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내게 돌아오는 건 없다는 것. 대충대충 넘기는 인간들이나 그렇게 자극을 다 흡수하는 나나 우리는 똑같은 월급을 받았고, 어찌되었든 다른 데서 문제가 터지면 결국 내 책임이었다. 아무리 환의를 잘 정돈하고 자세를 바로 해 줘도 십 초 후 환자가 난동을 피우거나 상처가 생겨 있으면 내 잘못이었다. 보호자는 간호사들이 사람을 방치했다고 하고 수선생은 라운딩을 돌 때 제대로 안 봤냐는 말을 했다. 왜 참아야 하는 걸까. 왜 열성을 들이고 민감하게 챙겨야 하는 걸까. 어차피 내 뜻대로 되지도 않는 거.
논점이 간호사, 인지, 그냥 일인지를 명확히 해야 했다. 내가 사무직이었다 해도 나는 그 일이 안 맞는 사람이라고 느낄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덜렁댔고, 단순계산을 자주 틀렸고 꼼꼼하지 못했다. 그건 여기서 일하면서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일? 알잖아. 나는 어떤 아르바이트도 길게 해본 적 없었다. 그럼 그냥 일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인 건데. 그렇게 살 수 있나? 살 수 있지. 못 살 건 없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돌아가는 걸 미치게 싫어한다는 걸. 그게 내 본질이라서.
그리고 간호는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치료는 처방을 내는 의사가 했다. 수행자로 내 이름이 찍히는 건 그냥 책임을 묻기 위한 근거 같은 거였다. 환자들은 의사를 보고 싶어하지 나를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보호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웃긴 일이었다. 의사도 환자를 안 보고 싶어했으므로. 그들은 바빴거나, 바빴다. 안 바쁜 사람은 없었다. 나도 바빴다. 그들이 의사를 찾아달라고 징징대는 소리를 듣고 대답하고 그걸 또 의사에게 전달하느라. 아무리 의무기록에 있는 말을 설명해 줘도 그들은 그랬다.
발레를 기다리다 사주집에 갔다. 내년에 연애해요, 저? 하고 물었다. 넌 앞에 사람이 얼쩡거리는 걸 싫어해, 라고 했다. 뭐 그런 다 아는 소리를. 누가 안 그래요? 넌 좀 심해. 아. 네. 나는 가벼운 얘기나 하다 오고 싶었다. 그러나 또 일 얘기였다. 하고 싶은 일 없어? 생전 그런 뜬구름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일이요? 유치한 말이었다. 하이라이트나 뉴이스트 덕질이나 예스이십사 티켓팅보다 더 유치하고 뜬금없는 말. 그런 걸 언제 마지막으로 생각했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하기 싫은 게 여까지 찼어, 내년에, 상반기까지 그래. 안 그런 사람이 있어요? 누가 일을 좋아서 해요. 넌 심하다고. 그러니까 취미를 찾아. 꼭. 아, 네네.
나는 윤성 씨를 생각하다가 갔었다. 이전에, 다른 애들이 죽었을 땐 불교 얘길 들었고, 거기서는 소금 양치를 하란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내가 환자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자 크게 웃으면서, 그걸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으니 힘든 거야, 라고 했다. 아. 네. 또 내 잘못이라 이건가, 싶어 열이 받을 뻔했다. 기운을 빼야 해. 안 좋아. 알겠지. 소금 양치 해. 소금요? 나도 니들 다 보내고 나면 향도 피우고 해. 해야 해.
나는 이 일을 대충 할 수 없었다. 잘해봐야 티는 안 나고 책임은 내 거였지만 잘못하면 뒤탈이 지나치게 컸으므로. 작게는 퇴근 후 카톡이나 전화가 오는 것, 보호자가 그 간호사 누구시냐고 찾던데요, 부터. 크게는 CPR이 나고 중환자실에 가고 사망에 이르는 것. 대충. 관두거나 제대로 하거나. 나는 안다. 이곳을 나가면 나는 다시는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 이 규모의 직장이 내게 갖는 의미는, 어느 정도의 월급도 어디 가서 백수로는 안 비칠 방패도 아니라, 내가 그냥 내 삶을 감당하고 있는 지표 같은 거라는 것.
이 자리, 일개 간호직인 내게 자리라는 게 있다면, 그런 자리다. 보너스 얼마, 어디 병원 이름값으로 엄마아빠가 어디 가서 짜치지는 않게 말하는 그런 거 말고, 냄새를 견디고, 열받는 말에 웃음과 가시 없는 말로 응하고, 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련된 것들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챙기는 것.
그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덜컹, 하는 기분이다. 여드름 패인 자국이 나 있던 볼, 쌍커풀진 눈, 뿔테안경. 엄마를 닮은 얼굴. 이들을 사람으로, 인지와 감각과 생각과 미안함과 일말의 사회성을 그래도 가진 인간으로, 사람으로 대하면서도 죽어버린 그들을 말끔히 잊는 것까지 포함이다. 내게 닿는 이 일은 그렇다. 무급으로 하는 활동이 아니다.
나는 돈을 받고 이름을 걸어놓고 일한다. 그게 싫으면, 정말정말 못 하겠으면, 그 때는 정말 그만두면 된다. 대충 하는 건 없다. 가거나, 그만두거나. 그만두고픈 생각?
언제나 하는 생각이다. 이전에도 생각한 것처럼, 스위치를 끄고 켜듯이. 수없이 많이.
내년에도 노엘이 내한을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