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bbering Wonderland

체리 베이비's 카라멜 드림

by 이븐도





단맛이 빠지면 남는 것.






구운감자와 쫄병스낵을 처단해 버리고픈 삶을 사는 중이다. 맛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단종되면 좋겠다. 못 먹게. 멀어졌다가도 다시 떠오르는 망한 추억 같은 맛. 에드 시런은 노래 가사에서 그랬다. 리멤머 라이프 이즈 몰 댄 피팅 인 욜 진스. 그리고 그는 살을 왕창 뺐지.

과자를 우득우득 씹으며 생각한다. 나도 말랐으면 좋겠다. 쓸데없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진짜 필요한 것만 남고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어떤 냄새도, 자취도 남지 않게. 근데 그러려면 내장이 다 사라져야 할 텐데?


향수는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다. 빡빡 깨끗이 씻은 개체에만 허락되는 것. 이전 병동에서 퇴근 때 탈의실에서 이를 닦고 있으니 선임이 '뽀뽀하러 가?' 라고 했다. 나는 그 때 뽀뽀할 사람이 없었다. 지금도 없다. 하지만 이제는 더 꼬박꼬박 한다. 비록 집에 가서 햇반을 까거나 냉동해 둔 밥을 녹이고 남은 반찬을 때려먹을지라도 치카치카를 한다. 굿바이 키스다. 누구랑? 병원이랑 하는.



요새는 매일매일 다음날 입을 걸 다 꺼내놓고 잔다. 코트에 니트에 청바지에 신발에 가방. 고작 한 시간이나 더 입을까 싶은 사실 다 비슷한 옷들. 뭐하면 그냥 가오나시처럼 까만 운동복이나 세 벌쯤 사서 돌려입을 일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나는 병원을 나와 버스를 타는 순간 다른 사람이어야 해. 한밤중, 널어놓은 그 옷가지들에 향수를 뿌린다. 어떤 건 딱 한 번, 어떤 건 서너 번.

베이비 아이 노 댓츠 댓츠 미 에스프레소 - 노래가 세계를 강타한 지 일 년은 족히 지난 한여름, 사브리나 카펜터 노래를 질리게 들었다. 진짜 진짜 출근하기 싫어서. 그 발칙하게 빛나는 시선과 살을 빼는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몸매의 총체가 매혹적이었다. 뮤비를 닳도록 봤다.






그는 마법사였다. 있지도 않은 나의 남자친구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아들과 그의 아내는 주말 내내 면회를 왔다. 그는 아내에게 당신은 정말 돈 안 밝히는 최고의 여자야, 라고 했고 그녀가 떠난 후 뭔가를 갈아 놓은 미음 같은 걸 창가에 내내 방치하다 한 입 먹고는 인상을 썼다. 어떻게 이렇게 맛대가리가 없지? 여편네 하여간.. 해오지 말라니깐, 하면서. 그러면서 병원식도 안 먹었다. 맛이 없을 만도 하지. 신부전당뇨죽식이라니. 하나만 해도 진짜 맛대가리가 솔찬히 없을 콤보. 그러고 그는 '고고하게 살고 싶어요'랬다.


나는 물을 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누가 손을 풀어주지 않으면 얼굴을 긁지도 못하는 옆방의 다른 아저씨를 떠올렸다. TPN이 들어가 배가 안 고픈 게 분명했다. 하여간 그의 이야기를 대며 배부른 소리 작작 하시라고 하고 싶었으나 어느 모로 보나 당연히 그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고고하게라. 그럴 수 있지. 기저귀를 하고 소변줄을 꽂고 몸을 혼자 일으키는 것도 침대 난간을 악력기라도 쥔 것처럼 잡아야 가능한 상태에서 꿈꾸는 고고함. 진짜 꿈 같은 단어다. 거기다, 모르잖아? 본인 엉덩이가 어떻게 까져 있는지. 욕창인지 상처인지 알 수 없게 잔뜩 짓물러 까맣게 된 엉치를 가지고 말하는 고고함.






밤이 낯설었다. 10월 막주에 친구랑 코렐라인을 봤다. 상영관에 걸려 있길래 이런 걸 누가 또 보고 싶어하는 걸까 했는데 그게 내 친구였다. 어릴 때도 무서워서 보다가 패딩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그러지는 않았으나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쪼끔만.

왜 재개봉했는 알 것 같았다. 강렬했다. 거기 나오는 단추 눈을 보는 기분이었다. 불이 다 꺼진 병실. 자리마다 쳐진 커튼. 주름진 눈가의 까만 눈동자. 사람을 이루는 게 반이 영혼에 반이 신체라면, 1/4만 멀쩡한 인간이 내가 아는 말로 또박또박 헛소리를 하며 불안하게 움직이는 그 모습.



외마디 비명이나 잔뜩 볼륨을 키운 욕설이면 차라리 자연스러웠을지도. 쪼끔은 비틀거리는 채로 화장실을 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의 커튼을 만지며 집사람이 여기 있을 텐데, 라며 걸음을 떼는 게 그 단추 눈 인형을 앞에 둔 느낌이었다. 여기 어디예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오늘 몇 월이예요를 대여섯 번은 했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던 그는 굴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사람을 담배꽁초처럼, 이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다 밟아 가는 게 무슨 병원이야. 이러면 안 됩니다. 손님이 왕이란 말 몰라요? 내가 화장실을 가겠다는 게 왜 문제가 되냐 이거야. 이 정도로 자유를 말살하고.. 어쩌고. 이게 정말 이 병원 수준이야? 할아버지. 아니, 환자분. 저 여자 말 듣지 마요. 어? 여기 순.. 잡배들 소굴 아니야. 이거? 당신,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의료인이야. 내가 게시판에 글 쓸 거야. 써야겠어.






네. 내일 교수님한테 말씀드리세요. 못 가세요. 소변줄 하고 계시고 기저귀 차셔서 화장실 가실 필요 없어요. 가시다가 넘어지면 큰일 나요. 못 가세요. 오늘 중환자실에서 오셨잖아요. 네, 글 쓰세요. 항의하시고. 아무리 말씀하셔도 못 보내드려요. 절대 안 돼요.


글을 뭐 팔만대장경만큼 써도 당신처럼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항변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악독하게 생각했다. 왜 출근하자마자 다들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어제 낮까지만 해도 안 그랬던 할아버지는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에 정말 또렷하게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 주제에 그는 어느새 한겨울 빵모자까지 다 떨쳐입은 상태로 자꾸 아래층으로 가서 아들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겨우겨우 침대에 앉혀 놓으면 또 갑자기 문 닫힌 집중치료실밖에 없는 어둑한 복도를 가리키며 저기 가운 입고 친구가 서 있다고 했다.

없어요, 아무도. 여기 저밖에 없어요. 아니, 거긴 다른 환자분 계세요.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여기 어디예요? 모르신다구요? 저 뭐하는 사람이예요. 왜 오셨어요? 병원이잖아요. 치료받으러 오셨잖아요. 한 밤 자고, 오늘 지나면 퇴원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아래층 가실 필요 없다구요. 집사람, 없어요. 앉으세요. 혼자 일어나시면 안 돼요.





애들은 실컷 울고 나면 지쳐서 잠이라도 잤지 어른들은 그것도 아니었다. 끝나지도 않을 것처럼 잔잔히 난리를 피웠든 바득바득 헛소리를 이어갔든 그 망가진 정신을 절대 잠들게 놔두지 않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어두운 새벽 병실에서 눈을 반짝 떠서는 집사람이 저기 왔다고 했다. 등골이 섰다. 그리고 그 말을 받아 담배꽁초며 인권을 찾던 그는 아아주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저 냉혈한 같은 사람에게 말해서 좋을 게 없다고 열심히도 떠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기분이 나빠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이게 인격 모독이 아니면 뭐냐는 거예요. 병원이라매. 내가 가겠다고, 내가 책임진대니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언니. 그러면 안 돼.


이건 무슨 종류의 지독함인지 알 수 없었다. 돌아버리게 바빠서 욕이 목 끝까지 차는 것도 아니었고, 날카롭게 우는 소리에 키보드며 사원증을 다 집어던지고 나가 버리고 싶은 그런 기분도 아니었다. 까만 눈을 똑바로 뜨고 멀쩡한 것 같은 몰골을 하고서 지치지도 않고 어른의 문장을 구사하는 걸 보고 있는 게 심히 피곤했고 조금 무서웠다.

소아과에서 나는, 한 단계씩 어떤 방식으로든 맛이 가는 것 같은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사랑을 배웠다. 여기서? 남의 썩은 상처와 죽은 자는 말이 없어 미처 몰랐던 말년과 노화를 보고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삶은 길었으나 멀쩡히 살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근데 그게 그거잖아. 늘상 듣던 말이라도 직접 보는 기분이 썩 상쾌하지는 않았다.






겨울 향수의 관건은 농도 조절이다. 찬 공기에 내 옷에서 올라오는 잔향이 합해질 정도로만 나야 한다. 말이 향수지 그것도 공해잖아. 나는 파우더 향이 너무 싫었고 각종 꽃향기도 잔뜩 싫었고 인센스와 습기가 합해진 것 같은 사우나 냄새 같은 것들도 싫었다. 내 것도 남들에게 그렇겠지. 혹시 내 체취나 두꺼운 섬유 사이사이에 뱄을 냄새가 그 인공적인 향들과 섞인다면? 음. 그럼 안 뿌리는 게 낫나? 사실 그럴지도 몰랐다. 근데 그러기는 싫어서 전날에 뿌린다. 기대하며 퇴근하는거지. 캐비닛을 열어 옷을 갈아입을 때, 그 안감이 내 얼굴을 통과할 때 냄새가 얕게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그는 내게 쉽게쉽게 가자고 했다. 흉관도 빼고 하이플로우도 뗀 그가 주절주절 주말 내내 떠들던 인생사를 들으며 나는 그와 조금 친해졌다. 사실 친해질 것도 없었다. 그가 회한에 젖어 하던 이야기에 반응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내가 광교 인근에 산다는 것을 듣고 토끼띠인 자기 아들이 어떠냐고 했다. 아핳, 그럼 한 살 어린 거네요 하하. 했더니 아니지, 여덟 살이지. 여덟 살이요?

내가 알기로 호랑이가 토끼 다음이었나, 그 반대였나 그랬는데. 열한 살이든 여덟 살이든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우리 아들 어때, 응? 쉽게 가자. 그.. 이 병원에서 일하면 다 이 대학 나온 건가?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하하. 왜, 나이 많으면 더 잘해줘, 쉽게 가자. 그래서 만들어냈다. 아이, 저 남자친구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는 아쉬워했다. 나를 싸가지 없게 보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같은 결론으로 끝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신기하다. 캐시미어, 앰버, 피그, 씨솔트, 또 앰버. 어쩌고. 사실 표현력이 딸려 뭔지도 잘 모르겠는 설명과 이름들. 어차피 세탁해버리면 다 끝장날 향들. 아무리 박박 닦고 얼룩을 뺀다 한들 누런 지하철 시트에 앉으면 다 무용지물일 것들. 고깃집 한 번에 스타벅스 한 번이면 다 역하게 섞일 냄새들.


30만원 들고 상경해 이런저런 일을 해서 광교에 집을 사고 딸은 홍익대 미대를 보내 6급 공무원인 남자와 결혼을 시키고 한 달 전까지 멀쩡히 출근을 했으나 인생사 파고를 따라 이렇게 되어 버린 그, 옆의 나. 화장실을 못 가게 하자 사람을 담배꽁초처럼 취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직감한 것처럼 그는 참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섬세하고 까다로웠다. 엉덩이가 다 까지고 원인불명의 독성쇼크가 온 게 절대 그의 잘못은 아니었던 것만큼이나 덧없고 강렬하다. 사브리나 카펜터 스위트 투스가 그렇다.





달큰해 미치겠는 냄새. 독한 단내가 짙게 지나가고 나면 역시나 두꺼운 잔향이 남는다. 이름이 카라멜 드림이다. 이제껏 좋아하지 않은 냄새. 근데 그게 좋아서 샀다. 꿈 같은 달콤함. 인생. 그는 중환자실에서 돌아와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드디어 깨닫고 난 다음날 오전 내내 주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인생사를 청산하는 시간을 가졌다. 멈춰 있던 근황과 안부를 전하며 병원 바깥의 늦가을을 쳐다보고 눈가를 훔쳤다.


이어 내게 젊음은 소중한 거니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물었다. 그런가요, 어떻게요? 즐겁게, 즐겁게. 그거밖에 없어.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그런 멋있는 척하는 말을 해놓고 또 밥을 안 먹으면 속으로 비웃으려고 했는데, 그러고 그는 열심히, 눈썹 휘날리면서 살겠다며 죽 몇 수저를 뜨고 국은 다 비웠다. 그러고는 잘 잤다. 본인이 떠들어대던 건 생각 못 하고 다른 환자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꼭 2인실을 신청해 달라는 당부를 속삭인 후에.





몇 년간, 매일 병원을 나서며 이 정도로 양치를 하고 손을 닦지는 않았다. 손이 미끄덩거리는 게 싫었으나 핸드크림을 엄청나게 바르기 시작했다. 나는 병동에서 여전히 폐급이다. 커피를 몇 번이나 쏟았는지 모르겠다. 인계를 주다가 텀블러를 미끄러뜨려 종이며 라벨이 다 젖은 게 어제로 세 번째다. 즐겁게. 즐겁게. 어차피 남는 건 없고 쥘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니 즐겁게. 섬망 환자들이 기승을 피우던 그 나이트가 끝나고 나는 아빠에게 냅다 전화를 걸어 인생이 너무 짧다고 했다. 나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이렇게 사는 게 맞아? 나 지겨워. 남의 썩은 내 그만 보고 싶어.


다 늙어빠진 사람들 헛소리 들으면서 멀쩡한 날들 보내기 싫어. 아빠, 나 어떡해? 아빠는 다 큰 내 투정을 한심해하지도 않고 들었다. 친구랑 놀러가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구경 하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아빠도 나이 들면 그럴래? 더 나이 들면? 헛소리하고 나 힘들게 할래? 그래서 아빠는 그렇게 안 되려고 지금 공부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그런 걸 물어봐서 미안하다고 했다. 상관없다고.






작년 27일엔 첫눈이 왕창 왔다. 올해는 얼마나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많이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길 얼면 달리기 못 한다. 황사인지 미세먼지가 난리인 요즘에는 아마 공기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냥 먼지가 잔뜩 껴서 한밤중의 도로 위 가로등 불빛이 무대 위의 핀 조명처럼 넓게 퍼져서 멋지다. 미세먼지 최악인 날의 달리기? 즐겁게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뭐 어떻게 난리를 떨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안 일어나야 했을 일도 생기는 게 인생인 모양이던데.



달콤한 향, 차가운 냄새, 차고 단단하고 깨끗한 것.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어서 그렇게 향수를 찾아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냥 핑계고 돈이 쓰고 싶은 거겠지. 덧없을 하루지만 소중해야 하는 시간. 나를 위한 즐거움. 쫄병스낵과 구운감자는 여전히 처단의 대상이지만 향수는 아직 아냐. 냄새와 각질을 촉발하는 그 모든 걸 닦아내려면 그냥 세상에서 기능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잖아.


존재한다는 건 그냥 닳고 부패하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싫은 걸 어떡해. 나는 아직 병원 밖의 사람인걸. 꿈 같은 시간이다. 뭐가? 멀쩡한 내 인생. 나는 아직은, 늙는 걸 아름답게 생각하는 법은 모르겠다. 정말 그렇다.


그냥 매일을 지내야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고 있든. 당장의 매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