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년만큼의 원인?
또는 죄.
그는 이미 죽은 것일지도 몰랐다. 앰퓨테이션. 폼 나는 단어. 다 썩어들어가 자를지 말지를 고민하는 발. 그걸 어떻게 한들 그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아빠보다 두 살 많고, 노엘 갤러거보다는 한 살 어리다. 그 락스타도 소싯적에는 안 해본 게 없을 텐데. 물론 사람이 그렇게 병실에 묶인 채로 갇혀 소리만 지르는 상태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요인이 관여했겠지. 식자재 일, 내일 당장 확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틀니 가격은 똑똑히 기억할 만한 경제력.
사백. 큰 돈이지만 의식을 혼동하고 있을 때까지 떠올려야만 하는 금액인가 싶은 그 액수. 나는 내가 죽기 전에는 뭘 어떻게 떠올리려나 궁금했다.
내 틀니 어딨어, 틀니요? 세면대에 있어요. 아 어어디 있냐고요. 여기요, 보이시죠? 안 보여. 저기 아저씨가 약을 다 쓸고 있잖아. 약을 쓴다구요? 김덕철님, 이 방에 저밖에 없어요. 여기 어디예요? 아아 왜 자꾸 물어어, 분당! 분당 어디예요. 여기 뭐 하는 곳이예요. 아이씨. 누굴 백치로 아나, 나는요오. 아이고야. 아파, 아파. 아프다고요. 이 씨바거.. 욕 하지 마시구요. 저 뭐 하는 사람이예요? 여기 어디예요. 아이씨. 병원! 병원. 그래요. 저 뭐 하는 사람이예요. 아, 병원에서 일하는 사라암. 그게 뭔데요. 의사. 말고, 또 누구. 코디네이터.
주말 내내 그 병실 앞에 카트를 갖다놓고 앉아 있었다. 어차피 가장 소란스러운 곳이라 무슨 소리가 들리면 다 나를 찾을 테니까. 이 일의 뭐 같은 점은 매 시간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것. 아프다는 말, 풀어 달라는 말. 나도 해 주고 싶다. 풀어주고 안 아프게 해 주고 싶다. 그런데 못 한다고. 내내 내지르는 소리보다 그걸 벽처럼 흡수하고만 있어야 하는 게 더 싫다.
여하간 대화는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생각해 보면 그래. 그리고 그는 계속 목 안 마르시냐고 물은 내게 별안간 인슐린을 잘 맞으라고 했다. 네, 네네.
나는 며칠 내내 한밤중에 가져온 도시락을 먹고 짬뽕을 시켜 먹고 퇴근길에 산 자갈치를 한 봉지씩 꼬박꼬박 먹었다. 인슐린. 그래요. 이 짓을 계속하면 저도 인슐린을 맞아야겠죠. 뭐 같은 인생. 당신이나 잘 좀 하시지. 진작에.
틀니 껴야 돼. 이리 줘. 안 돼요. 틀니 끼실 필요 없어요. 아 왜에, 껴야 한다고. 그게요.. 안 된다구요, 삼키실 수도 있어서 못 드려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그리고. 저 왔잖아요. 씨발, 껴야 된다구. 왜 끼셔야 하는데요? 안 끼면.. 변형이 돼요.. 얼마짜린데. 그게. 끼실 필요 없어요. 자정부터 물도 못 마실 거고 검사 하시고도 미음만 드실 거예요. 이빨 필요 없어요. 변형된다니까, 그게에 얼마짜린데.
그는 내가 논점을 피해간 건 알았으나 간호사라는 단어는 못 떠올렸고 이곳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쉬고 있잖아, 저요. 김덕철님 쉬러 오신 거 아니구요, 치료 받으러 오셨어요. 아파서. 아아니. 할일이 태산이라구. 그러니까, 이거 좀 풀어 주세요. 이게.. 응? 일이요, 무슨 일이요. 여기 병원이예요. 일해야지. 요기.. 식자재. 식자재 일이요? 다 낫고 나서. 치료받고. 그러니까 풀어 달라는 말이예요. 내려가서 해야 된다구. 프란시스, 걔랑 해야 돼.
프란시스 여기 없어요. 못 풀어 드려요. 하실 일도 없어요. 여기 병원이예요. 나참. 틀니 달라구요..! 이이거 좀. 이렇게 좀 묶어 놓지 말구.. 그러지 마십시다, 좀. 김덕철님 틀니 못 끼시잖아요. 손에 지금 장갑 있잖아요. 변형 온다니까요.. 어어허. 검사 하고 나중에, 드릴게요. 여기 멀쩡히 있어요, 봐요. 그르니까. 풀어 달라구요.
돌고 돌아 결국 같은 말. 지겨운 게 아니고 좀 지루한 대화. 그런데 지루하다고 하기에는 나 역시 소리를 빽빽 지르듯 말해야 했다. 말하는 나조차도 시끄러웠다. 틀니, 그래요. 얼마 짜린데. 응? 얼만데. 사백. 사백!
내내 땡깡 아닌 땡깡을 부리던 그는 여기저기를 긁어 달라고 했고 물을 달라고 했다. 그전날 그는 밤에 검사를 가야 했다. 진정약물을 써야 해서 금식이 필요했다. 정말 내내 물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발을 자르니 마니 하는 상황이니 냉장고로 걸어가 물을 꺼내먹을 수도 없고, 어디 손 닿는 곳에 빨대컵을 놔둔다 해도 마실 수 없다. 손도 다 침상에 묶여 있으니까. 오늘은 열두 시부터 물 못 드려요. 지금 목 마르세요? 그리고 그는 웃었다. 씨바, 누구 염장지르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하셨어요? 다시 말씀해 보세요.
누구 염장지르냐구요. 그 전에, 뭐라고 하셨어요. 염장지르냐고. 다시 말씀하세요. 씨발 누구 염장지르냐고오! 목 안 마르세요? 그럼 저 갈게요. 줘요! 물! 네. 드리면 되죠? 예. 고맙습니다. 욕 하지 마세요. 네.
현실감을 제공한다, 라는 간호진술문이 있다. 8시간 내내 그가 하는 헛소리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불쌍하잖아. 그는 물을 못 드린다고 떽떽거리며 말하는 내게 당신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했다. 불쌍하죠. 개같이 불쌍하죠. 사실 쌍욕을 하건 말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었다. 씨발이 뭐야, 그보다 더한 욕을 퍼부었어도 충격은 아니었을 것 같다. 상황이 그렇잖아. 욕 좀 하면 어때. 근데 그 단어보다는 와중에 비꼬는 게 열이 받았다. 그래서 말을 계속 다시 시켰다. 그러면 안 됐나. 차라리 끝까지 욕을 했으면 안타깝지나 않지.
막판엔 나에게 존댓말을 쓴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정신줄을 다 놓은 와중에도 사회성을 챙겨야 한다니. 그래요, 나도 열 받아요. 아빠뻘인 당신이 울부짖는 걸 들으면서 어떤 요구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게. 어쩌다 이리 되셨어요, 생각했다. 주치의는 진정치료를 하다 사망할 수도 있다는 걸 보호자에게 전화로 설명했다. 그리고 그 죽을지도 모르는 그는 여전히 풀어 달라고 끊임없이 말했다. 주치의는 전화를 끊고 그랬다. 그러니까 왜이리 방치를 하셨어, 했다. 방치, 방치라.
병동에 누군가 입원하면 정보조사를 한다. 귀찮은 일이다. 어차피 의사들이 이런저런 검사 결과를 보고 쓸만한 근거는 다 잡아낼 텐데. 말이 초기정보조사지 중언부언 이어지는 인생 이야기와 사연 속에서 필요한 정보만 골라내려 말을 끊는 일의 반복이다. 나 그런 나쁜 사람 하기 싫다고. 그런데 해야 했다. 하우스에서도 이런 건 진료실에서 대충 물어 놓고 가택 침입에 남 옷가지 뒤지기, 주변인 뒷조사에 현장 잠입 등으로 근거를 잡던데. 그래. 근데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어쩌겠나, 그들이 하는 백 가지 말 중에 쓸모있는 건 열 개쯤이라도 해야지. 병원에서 하라잖아.
나이든 이들은 내가 물은 게 E였다면 그 E에 이르기까지 A부터 D에 달하는 인생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듣고야 싶지. 남이 살아온 이야기, 얼마나 재밌어. 하지만 나는 바쁘다. 그래도 궁금은 해. 언제부터 드셨어요. 술! 이라 묻고 노트북에 30년, 40년 숫자를 기입할 때마다. 저 사람은 그럼 이 질환으로 입원한 게 본인의 업보라고 생각할지. 김덕철씨는 술담배를 많이 했을까?그럼 이게 그의 죗값인가? 근데 인생이 뭐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지나, 어디.
그걸 안 했다 해도 혼자 몸을 일으켜 바지를 추어올리는 것도 못 하는 만신창이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지난 주 언젠가는 퇴근하며 내내, 내가 술도 담배도 즐기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가장 강력한 죄목 같으니까. 그런데 뭐, 눈치 보느라 밥 먹으러 갔다 온다는 소리도 못 하다 퇴근하고 먹는 과자나 니코틴에 알코올이나 그게 그거다.
그는 남이었다. 서울역 어딘가에서 구걸하며 엎드려 있을 누군가나 그나 나에게는 다를 것 없는 사람. 나는 그곳에서는 그들을 지나쳐 기차를 타면 됐고, 여기 병원에서는 처방을 수행하고 월급을 받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참으면 됐다. 걱정과 연민 등등은 내 몫이 아니라 이 곳에 그를 던져놓을 수밖에 없던 그 친지나 과거 젊은 날의 본인뿐이었다. 그래도 본 건 본 거잖아. 안 잊혀지는 걸 어떡하라고. 그 모습들이 나 또는 나와 가까운 이들의 미래 어느 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하는데.
붕대를 감은 발에서 나던 냄새도. 젊었을 적 어쩌면 준수한 외모였을 그 이목구비도, 합병증으로 여기저기가 가려운 그 상태도, 다 남의 일이다. 거기다 나는 아직 젊다고. 내가 어떤 난리를 어떻게 친들 달라지는 건 크게 없을지 모른다. 인생에서 예측대로 되는 게 어딨냐고. 다만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그것과 먼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건 맞다. 알았잖아? 봤잖아, 어떤 건지.
멀고 가까울 그 언젠가 싸가지 없는 간호사 앞에서 담배는 언제부터 했고요, 술은 언제부터 얼만큼 했구요, 라고 신장이 다 나가고 팔다리가 썩는 채로 간신히 대답하지 않으려면.
대답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일까? 엄마 말마따나 천지분간도 못 하고 그렇게 누운 상태가 아니라는 거잖아. 쿨한 것과 회피하는 건 다르다. 스스로를 속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얼굴에는 때가 끼고, 온몸이 각질 덩어리인 지저분한 그가 가엾고 많이 불쌍한 것만큼 그렇다.
노화와 병세가 잔인하다 느껴지는 것만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