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1600원의 주간
가장 서러울 때는 잠을 못 잘 때. 자고 싶은데 사방은 밝고 끊임없이 이런저런 소리가 들어올 때. 기차에 앉아서는 선희 씨의 누런 눈과 시커먼 피부가 아른거려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로테이션 첫 날부터 전체인계가 내려오던 사람은 그 날 죽었다. 산소포화도 모니터에 65가 떠 있어서 오늘이 날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그는 두 시간 뒤에 갔다. 이 병동에서는 임종이 오면 뭘 하는지 알아야 했다. 별다를 건 없었다. 내가 울지 않았고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다는 걸 빼면. 성현이가 갔을 땐 정말 다시 없을 것처럼 울었는데.
열 시 이십 분인가. 인계시간 5분 후. 이브닝번은 당연히 퇴근이 늦었을 거고. 나이트번? 아마 전산을 보면서도 어떤 감정보다는 장례식 연락과 서류 발급 안내 등등을 머릿속에 먼저 떠올렸을까. 아내와 본인 모두에 관련된 주의사항이 몇 년치씩 인계되던 사람. 외래에서 어떤 막말을 했고 병상에서 얼마나 꼬장을 부려댔든 이제 그는 고인이었다. 죽었으니 더 이상 환자도 아닌, 병동 매뉴얼 형식에 따르면 시체. 거기에 고인 몸의 배액관을 뺀다, 고는 안 나와 있다.
그렇지. 죽어서 영혼이 멈춘 그 대상은 시신이라 부르지. 울음 섞인 말소리들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던 건 내가 그 환자와 아무런 관계도 감정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튼 병원은 지겹게 울적한 곳이었다. 가끔 슬픈 것도 안타까운 것도 사치인 곳. 도처에서 모인 딸 아들 아내 지인 등등은 대성통곡을 했지만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인가.
퇴근이 너무 늦었고 미용실은 지하철역에서 어중간하게 멀었다. 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았는데 그 날이 아니면 어려웠다. 그는 최근에 승진했다. 네이버로 예약을 하려고 보니 팀장으로 직함이 바뀌어 있었다. 그는 화요일이 휴무였다. 일주일에 하루 쉬면서 승진. 승진하신 거죠? 하니까 네. 덕분에요, 했다. 그는 항상 사르르 웃었다. 나는 궁금했다. 머리를 얼마나 잘라야 매번 새로운 얼굴형과 이목구비와 모질의 머리카락을 욕 안 먹게 만질 수 있는 걸까.
몇 년을 하시면 직급이 오르는 거냐고 했더니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했다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의 나이를 모른다. 십 년이라고 던졌다가 아니면 민망하니까 낮춰 말했다. 아, 그럼 못해도 5,6년은 하신 거네요? 어, 그렇죠. 안 힘드세요? 일주일에 하루 쉬시잖아요. 재밌어요, 하는 거. 아, 머리 자르시는 거요? 네.
나는 그의 연봉이나 그 미용실의 복지에 대해 알지 못했으나 하여간 일주일에 하루 빼고 8시간을 일하면서는 얼마나 대우가 괜찮든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았다. 그런데 대답이 재미라니. 재미있어서 하는 일. 사실상 욕 아냐? 재미 빼고는 버틸 만한 이유가 없을 일.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낯선 사람도 싫었고 음악이 끊임없이 나오는 환경도 싫었고 실컷 해 주고도 욕을 먹는 게 기본값인 응대도 싫었다. 그한테는 그런 게 아무렇지 않은가? 그, 인턴 때를 버티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아, 머리 자르시는 일이요?
네. 저보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던 친구들 있거든요, 걔들도 관뒀어요. 오오, 대단하시네용. 이라고 내가 했나? 사실 기억이 잘은 안 난다.
나이트는 개판이었다. 딴엔 80점은 되겠지, 하며 내민 시험지를 숫자 20이 뻘겋게 적힌 상태로 되돌려받는 기분이었다. 내내. 환자수는 반토막에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이라 엎드려 자도 모르겠다 싶게 안 바빴다. 그리고 나는 잔뜩 긴장해 오만 것들을 다 빼먹었다. 빽을 봐주던 사람은 얘 이런 식으로 어떻게 4년을 일했지, 했을 것이다.
아예 쌩신규면 붙잡고 다 가르치기라도 하지. 난 그러기에는 덩치만 어중간하게 큰 천덕꾸러기였다. 이것도 같이 넣어 주셔야 하고, 저거는 오늘이 이걸 하는 날이 아니라 수가 빼 주시면 돼요. 그리고 어제는 이게 안 들어가 있던데,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 주시면 돼용.
얼굴에 이름을 절대 못 외울 정도로 간호사가 많은 병동이라 감정이 쌓일 일은 없겠지 생각했다. 멍청한 예측이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들과는 계속 봐야 했다. 아마 그 선임은, 한두 달간 내 앞뒷턴을 받으며 끔찍하게 답답하고 열이 받을 본인의 미래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몇 년을 다채로운 생각을 하면서 다녀도 결론만은 항상 똑같은 게 신기했다. 그만두고 싶다. 때려치우고 싶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실려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상태로 바깥을 보다 그 생각을 다시 또 접었다. 나한테 퇴사 생각은 그냥 방 불 스위치를 껐다 켜는 그런 행위 같은 거라는 걸 알았다. 여기 내려와서 살까, 그냥? 하면서 쳐다본 풍경의 모든 지점에는 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게 분당이, 미금역이 싫어서인지 아니면 간호사가 싫어서인지를 분간해야 했다. 사실 할 필요도 없지. 어차피 간호사 할 거면 여기서 하는 게 나아, 근데? 근데. 힘들다. 자리보전도 쉽지 않은 인생. 망할. 때려치우긴 뭘 때려치워, 그리고 그 생각을 또 병원 보면서 하냐? 바본가.
때려치우고 싶어. 어떻게 내내 이렇지? 안 그래, 아빠? 아빠는 본인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0년간 힘들었다고 했다. 10년? 뭐, 그럼 난 안 힘들어야 한다는 거야? 에이. 그런 게 아니고. 다 그렇다고. 아빠도 되게 힘들었어. 그래서 그만 할까 했는데, 그러다 엄마랑 결혼하고, 너랑 성준이 낳고 그래서 그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한 거야. 아빠 대학원도 그래서 갔어. 혹시 뭐 딴 게 있나 해서. 아, 그래. 근데 그게 10년이었다고? 그래. 소령 지나고 나니까 좀 괜찮아진 거지. 글쎄.
이리저리 추워 죽겠는 지역만 골라 다니며 한새벽에 나가 주말에도 부대에만 처박혀 있던 게 어떻게 쉬워진 거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본인이 그렇다니.
굳이 어디까지 가야 하천 산책로인지를 알려 주겠다고 했다. 사실 좀 귀찮았다. 다 아는 길, 그냥 도착지 정해서 뛰면 되는데. 근데 생각해 보니 나랑 얘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뛰어서 어디까지 가는데. 충대. 그럼 어느 정도냐? 왕복 7키로 나오네. 음.
내 동기는 집을 사네 마네 하던데. 니 동기? 병원? 뭐 대출 땡겨서 시흥인가 어디 사려나 봐. 나도 관둔다는 소리 안 하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하나. 아니야. 너 세대 때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더 힘들어. 그럼 뭐 어쩌라고. 일단은 조급하면 안 되고, 은행에만 넣어두는 것도 안 좋긴 하지만.
내가 뭐 용사도 영웅도 아닌데 두려웠다. 아는 것 하나 없는 상태, 공부해 간다고 그게 다가 아닌 일들. 뭐든 추가로 하라고 처방나면 어떻게든 쳐내야 하는 와중에도 밀려드는 퀘스트. 뭣 같은 병원. 맨날 똑같은 생각. 난 어째서 간호사 같은 걸 선택했을까. 나도 다른 거 할 걸 그랬나, 아빠.
그래서 너보고 그 때 선생님 하라고 했잖아. 선생님은 더 싫어. 지금도 싫어. 그럼 뭐.. 다른 사무직 알아봐야지. 다 계약직이야. 월급도 그런가? 뭐, 그렇다고 하더라.
아빠에게 그 미용사 이야기를 했다. 쉬운 일이 없나봐. 그런데 그 사람은 지금까지 버텼으니 앞으로 계속 잘 되지 않을까. 헛짓거리만 안 하면? 난 미용실 망하는 거 잘 못 봤는데. 그렇겠지. 자기 빼고 다 관뒀대잖아. 너 근데 니 병원 걔들은 안 그만두냐? 몰라. 나만 징징거려, 맨날.
안 뛰어본 길을 달리면 오히려 속도가 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뭐, 익숙치 않으니 더 집중하게 되니까?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 논리면 나는 이 병동에서 더 잘해야 하는 거니까. 적당한 시기였을 거고, 필요한 전환이었지만. 뭐, 무섭고 싫은 걸 어떡하라고. 일이랑 달리기랑 같냐. 그래도 뛰니까 기분은 나았다. 고작 두 시간을 잤는데도. 굳이굳이 러닝화를 챙겨온 보람이 있었다. 그러고 집으로 들어와 팩을 발라 놓고 반신욕을 했다.
지겨운 일인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대충 할 수도 없고 정말 출근을 안 해버릴 수도 없고. 시간을 버텨낸 모두가 신기하고 대단하다. 늘 그랬지만 더 그렇다.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르러 간다. 그럼 12월의 나는 좀 나은 표정으로 앉아 있을까. 제발 기현 씨가 안 그만두면 좋겠다. 기현 씨는 그 미용사다. 안 없어지면 좋겠다. 내가 지금 좀 그런 상태라 그렇다. 더 이상 아무것도 좀 안 변했으면 좋겠어.
아니어야 한다는 걸 알지.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만큼 무력한 짓도 없다. 근데 좀 그럴 수도 있잖아.
수서역에 도착하니 그 때 전남자친구와 왜 더 일찍 헤어지지 못했는지 알았다. 어떤 방식으로 차고 차였고 하는 걸 떠나서, 나는 정말 걔가 필요 없어졌던 게 맞았다. 그러게, 그러고 보니 당시에도 그 말에 반박은 못 했다. 너 이제 적응 다 해서 나 필요 없는 거 아니냐고. 맞아, 그랬던 것 같다. 신규 땐 진짜 그랬다. 걔가 그렇게나 좋았다기보단 부표 같은 게 필요했다. 그래서 그랬다. 어쩌면 그 땐 더 했을지도.
뭐, 그런 시기를 그냥 멀쩡히 또 지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지나갈 시기야. 삼십 분이라도 즐겁게 뛰고 오면 된다. 답답할 때마다. 오늘, 내일, 모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