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줘요 요마이걸-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 그 사람은 정말 그 거대고양이 굴에 들어갔다가 살아남은 사람일까?호랑이인 건 언제 알았을까?
본능? 아니면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가 이렇게 저렇게 생긴 건 호랑이야, 하고 알려줬을까?
1일차. 살아 움직여 거동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몸에서 그렇게나 각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또 뭔 생각을 했더라. 내일의 나는 망했다? 그리고 2일차. 망했다. 그리고 역시나! 생각한 방식으로 망하지 않았고 아예 다른 방식으로 망했다. 일하는 게 그렇지 뭐. 같이 일한 선생님은 나 때문에 퇴근이 무진장 늦었다.
글을 써서 올리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느 정도로 관종인가. 아예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미주알고주알 온라인에 써서 박제하는 건 대체 내가 어느 정도로 허영에 목말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걸까. 근데 모르겠다. 하지만 명확한 장점이 있다. 한 명이라도 보긴 본다면, 그 생각과 지난 날들은 좋았든 나빴든 완전한 과거가 된다는 것.
그게 어떤 일이었든 나는 내일을 준비하고 오늘을 살아야 하는걸. 나 혼자 쓰는 일기처럼,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부유하는 비밀스러운 기록이 아니라 증명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는 것. 나한테는 그렇다.
이틀 새 꽤 울적했다. 하지만 너무 울적해질 수는 없잖아. 할 일이 많았다. 나는 내가 꽤 잘 할 거라고 생각했나봐. 입원정보조사 때도 이걸 이렇게 올리는 게 맞나, 이건 어떻게 하나. 하며 버벅이는데 조금 울고 싶었다. 아마 뭐, 배란기나 생리 직전이었으면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니라서. 같이 일한 선생님은 어제 입사한 애도 아닌데 그런 걸 꾸물대는 나를 안 빡쳐하면서 알려주었다. 감사했고 행운이었다. 그건 다행이긴 했는데.. 이제 누가 나한테 어떻게 화를 내는지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사실 하루종일 소리를 빽빽 질러도 좋으니까 나한테 이 병동의 A부터 Z를 좀 알려주면 좋겠다. 하지만 그들은 내 엄마아빠가 아니야. 뭐가 뭔진 내가 알아내야 한다.
매뉴얼은 매뉴얼일 뿐 침상목욕을 거부한다는 사소한 인계 내용이며 드레싱 주기를 표시하는 방법까지 모든 게 다른 이곳에서, 나는 진실로 지난달 입사한 신규보다도 못하다. 아니, 사실 그건 의미가 없지. 기록에 찍힌 내 사번이 쪽팔릴 정도다. 나 들어온 지 몇 년인데 왜 대체 이것도 못하냐. 이래서 어떡하지, 했다. 나도 답은 알지. 관둘 거야? 그만둘래? 그럼 뭐 할래? 난 언제나 교보문고에서 일하고 싶었어. 여기 엘포트몰 안에 거기로 지원서 낼까? 그래. 나중에 생각해보고.
아무튼 바보가 된 기분이다. 그리고 실제로 맞다. 예전에, 누구지. 누구였더라. 진짜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떤 아이돌이 원래는 한국무용인가 현대무용을 했는데 아예 새로운 춤을 연습하려니 모든 게 달라서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딱 그 기분이다. 거기서도 했던 검사, 시간대별로 하는 일, 또 그 일을 하는 방식, 쓰는 방식, 전달하는 방식 등등 모든 게 다 다르다. 분명 전산 디자인도 병동 페인트색도 내가 입은 옷도 똑같은데 정말 다 다르다.
메모 한 줄을 남기는 것도 이런 식이 맞는지 저런 식이 맞는지 찾고 고민하느라 지체가 심하다. 그러는 사이에 메신저는 계속 쌓이고 저쪽 방에서는 환자가 호출을 하고 그렇게 들어간 방에서는, 투석을 마치고 돌아와 '예민공주'가 된 할아버지가 '나보다도 아는 거 없는데 얘한테 말해서 뭐하냐' 라고 한다. 하아. 그래요, 할아버지. 그런데 어쩌십니까. 저랑 계속 보셔야 하는데요. 내내 앉는 것도 서 있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있다 보니 다리가 너무 아팠다.
바보라. 정말 내가 약 4년을 허송세월했든,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다 무용지물이든, 둘 중 하나겠지. 근데 그게 중요해? 확실한 게 있다. 넘어가야 할 단계고, 좋은 쪽이라는 것. 어떤 세계의 뉴비라는 건 새로 왔다는 뜻이잖아. 나 거기서 일 잘 했어. 안 해 본 거? 딱 하나. CDDP 스케줄링. 정말 다 했어. 거기서 새로 넘어온 거야. 인생을 매번 고인 채로 아 내가 원랜 한 가닥 했었는데- 하면서 살 게 아니면 언제 어디서 뭘 하든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오늘 사직서를 쓸 게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실제로 그럴 거야. 내과. 진짜 내과. 나 대체 4년 전 거기서는 어떻게 일했지. 여기보다 작은 규모, 후진 시스템, 활활 태우는 인간들. 거기서는 퇴사의 핑계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없다. 여기서 멈추면 진짜 도망이다.
호랑이는 호랑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걔는 늑대 또는 쌩뚱맞은 코끼리 아니면 그냥 기분이 많이 안 좋은 멧돼지였을지도.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살아서 그런 말을 남겼다는 것. 아, 죽었는데 누가 남겨준 건가? 아니야. 아닐 거야.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다시 다 시작이다. 난 그동안 뭘 했나, 난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은 그만. 인계 정리와 투석과 소화기 검사와 이 병동의 루틴과 노티 방식과 방종외래 치료 예약 등등 나는 정말 모르는 게 많다. 오늘 내일은 더 모르겠지. 슬프게도 연말까지는 계속 그럴 거야. 하지만 눈싸움은 해야 해. 11월이야.
울적한 생각은 막 일어난 이부자리와 비슷했다. 언젠간 개서 치워 놔야 오늘 다시 편안히 잠에 들 수 있다. 그걸 안 정리하고 다시 침대를 쳐다보는 순간 다시 그 감정으로 빠져들게 된다고. 생각은 어차피 변하는 거야.
정신 차려야지. 이게 어떤 짐승인지 알아야 안 죽고 살아남을 수 있어. 하지만 정신만 차리면 안 돼.
다시 알고 익혀야 한다.
화이팅,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