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Old Stockholm
오아시스 투어가 끝나니 공허하다고 했다. 연애는 잘만 하면서. 공허가 다 얼어죽었다, 라고 생각만 했다. 딱히 답장할 말이 안 떠오른다. 내가 좋아한 그 시대의 그들을 본 것으로 충분하지 않니, 를 카톡으로 설명하기 귀찮은 탓에.
SRT표는 언제나 잡기 힘들다. 공연 취소표와 비슷하다. 새벽에나 어쩌다 한 번씩 잡게 되는 것. 집에 갔다. 잠을 많이 자서 신기했다. 데이 근무가 끝나고도 아주 짜증이 나 있지 않은 상태로 뭔가 하나를 더 할 수 있다니. 열흘 정도가 슥 지나갔다. 아홉 시에 자리에 누워서 못 해도 열 시에는 잤다. 원래 그랬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애써 기분을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간 가만히 잘 준비만 하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왔다. 그렇지도 않았다. 일곱 시간을 넘게 자니 감정의 등락이 크지 않았다. 가만히 다니는 게 목표가 됐다.
밥 몇 끼를 먹고 이제는 시시콜콜해진 이야기를 했다. 진작 가려 했지만 내 상태가 괜찮지 않았다. 울거나 화내면서 일화를 말하게 될 것 같아 미뤘다. 어떻게든 버텨, 하고 너스레를 떨면서 이야기했던 엄마는 그 세입자 나가면 그냥 니가 들어가서 살라고 했다. '봉키 병원'앞을 지나면서 그랬다. 대전에 병원 많잖아, 여기. 와서 살어. 돈 안 받을게. 웬일로 말이지. 내가 좀 보고 싶었나 생각했다.
소아과에서는 사랑을 찾으려 했고 이곳에서는 존엄을 찾으려 했다. 거창한 말 같아 스스로도 내놓기 민망하지만 그랬다. 파수꾼이 되는 걸 그만뒀다. 그냥 그렇게 됐다. 뭘 그렇게 길게 말하고 쓰고 생각했는지가 신기하다. 온갖 개인적인 기록들을 다 내버릴때 이 계정은 언제 없애게 될까 생각했다. 그 자취들이 새삼 신기해 아직은 먼 일 같다.
식당에서 잠시 엄마와 동생이 자리를 떴을 때, 아빠에게 나는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싶다고 했다. 삶의 중간값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하기 싫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서 했던 말은 아니었고 그냥 나왔다. 아빠한테는 가끔 그렇게 던지듯 말했다. 아빠는 그럼 어떡하냐, 그랬다. 나도 모르지. 그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생각이라 그냥 말한 거기도 했다. 충격이고, 지겨웠고, 또 충격이고, 지겨운 시기가 지나가는 것 같다. 내가 지나보내고 있다.
일을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퇴근해서 샤워를 하는데, 정말 2주 넘게 본 환자를 빼고는 그 누구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았다. 잠시 서서 숨을 멈추고 생각해보면 떠오르기야 했다. 근데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앞뒤가 똑같을 필요도, 누군가를 가여이 여길 필요도, 더럽거나 거친 것에 대해 예민하게 굴 필요도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거? 그 때뿐. 환경을 몇 번을 바꿔도 있는 절댓값이다. 규모와 부서와 연령대 등등을 다 차치해도 유지되는 절대치.
경찰과 도둑이 한때 화제였다. 이 동네에서도 하고는 있을 텐데 생각했었다. 어쩌다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입구컷. 00년생까지만 받았다. 나이가 많아 뭔가에서 출입이 안 되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래, 너거들끼리 실컷 해 먹어라.
형록이의 새해 인사에는 일주일은 지나 답할 수 있었다. 공허. 내가 좋아했던 그들은 언제나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이데아 같은 거였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 바랄 필요도 없는 것. 그게 콜드플레이든 오아시스든. 방점을 한 번 찍은 걸로 족하다. 지나가는 많은 시간이 그런 거 아닐까 생각했다. 그 때 한 번 그랬으면, 느껴봤으면, 보고 열광했으면 충분한 것. 더 갈망해도 그때뿐이고 그냥 출퇴근길의 이어폰 속에서 마주해도 충분한 것.
본가에서 돌아오니 택배가 와 있었다. 손동운 솔로 콘서트 굿즈. 그는 군대에 있을 때 매번 같은 말만 하려니까 나중에는 단어며 말을 다 잊어버리는 기분이라 필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도톰한 내지 안에 그가 고른 문장이나 어구가 있다.
아직 펴보지 않았다. 마음이 말끔하다. 시간을 담지 않아 마음이 부드럽게 말랐다. 공간이 비어 이제야 다른 것들이 들어올 수 있을지 모른다. 미래와 과거 어디가 아닌 그냥 여기서 스며들 것들. 그러다 다 날아가 버릴 것들. 그럼에도 언젠가는 아, 그 때 재밌었지, 하면서 또 고마워질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