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햇빛

놓지마정신줄

by 이븐도




남산하늘숲길에 가려고 했다. 회현역에서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날이 너무 추워 휴대폰을 흔들며 돌아다니기가 어려웠다. 여기로 쭉 가는 건데, 하다 보니 또 서울역. 시린 바람에 눈알이 얼 것 같았다. 그래서 경복궁역으로 갔다. 단팥죽을 사 먹었다. 오가는 데 두 시간 이상, 먹는 데는 십오 분. 어떤 카페를 가나 늘 사람으로 차 있던 그 근방. 사람은 나와 모나카를 시킨 학생 하나밖에 없었다. 붕어빵 팥소만 빼서 떠먹는 기분이었다. 조용히 먹었다.



액운을 피하지는 못했다. 십 년은 모아 놨던 다이어리와 일기장들을 모조리 버렸다. 매일 그걸 언제 버릴까 생각하며 눈을 떴다. 낑낑거리며 박스를 열어 막상 펴 보면 그걸 쓰고 꾸미면서 즐거워했던 내가 너무 덕지하게 붙어 있었다. 그래서 못 버렸고 그래서 버리고 싶었다.


꿈의 양상이 바뀌었다. 그간 몇 년은 시간이 임박했는데 수학 문제집이나 시험문제는 한참 남은 장면의 반복이었다. 어제인가는 눈이 엄청 예쁜 아기가 나왔다. 쇼핑몰. 어쩌다 그 애를 줍게 됐다. 주웠다는 표현밖에 안 떠오른다. 정말 주웠다. 걔를 안고서 쇼핑도 하고 잠깐 어디에 앉기도 했다가 버스를 탔다. 그런데 품에 없었다. 다시 찾으러 가려고 몇 번을 생각하고, 어디서 그 친구를 놓쳤는지 되짚어 보다가 관뒀다. 무슨 깡패 같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계속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애가 혹시 미끼 같은 거였을까 생각했다. 거기다, 애를 놓쳤다고 경찰서라도 가면, 내가 유기 혐의를 뒤집어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러다 깼다.




환자안전보고서를 그 듀티의 차지와 수정하고, 또 바꾸고, 그러다 또 고치고 퇴근했다. 나 때문에 집에 못 가고 그런 거나 쓰고 있는 차지 옆에 서서, 나는 그 추가 혈액검사 비용을 물었을 환자보다 십 년 전쯤의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이런 어른으로 크고 싶지 않았어. 근래의 출근길. 자주 울었다. 그게 그렇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던 건 정말 한 번 울고 나면 아무렇지 않아졌고 딱히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서.

야, 워너원 재결합할 듯. 오, 진짜? 노래 나와? 다 각자 다른 거 하잖아. 인원도 많고. 나 앨범이랑 굿즈 다 버렸는데. 아깝네. 버렸어? 왜? 다시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음. 그렇겠네. 야, 근데 그게 벌써 9년 전이야? 아. 미친.


대학교 1학년. 기숙사 공용주방에 11시쯤 들어가면 정말 어디 숨어있다가 이렇게 나왔는지 모를 사람들이 배달음식을 앞에 두고 좁은 소파에 붙어 앉아 있었다. 회색 교복에 파란 넥타이를 맨 그들이 커다란 이름표를 붙인 채 노래하고 춤추는 광경. 나는 정수기를 쓰거나 고구마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벌써 십 년이나 다 되어 간다니. 친구는 재수에 삼반수를 거듭했고 나는 학교와 학과 어디에서도 늘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요새 자신감이 없어, 들어와서 이만큼 없는 거 처음이야. 2년 넘었는데. 신규쌤한테도 막 이상하게 알려주고.. 좀 그럴 수도 있지. 아, 어쩌면 그 때 워너원 덕질하고 재수하던 니가 지금보다 더 희망찼을지도. 그건 그래. 그건 정말 그랬다. 나는 그래서 꽤 멋진 말을 해 줬다. 야, 그 자신감이란 것도 결국 노답에 노답인 날들을 거듭하면서 박힌 굳은살이야, 다. 괜찮아. 그래서 걔는 그럼 그 말 그대로 너한테 반사, 했다.






수선생 앞에서는 대성통곡을 했다. 대성통곡까지는 아닌데 30분 내내 눈이며 코가 다 빨개지도록 울었다. 주먹을 쥐고 무릎만 쳐다보면서 참으려 했는데 멈추지를 못했다. 안정 휴가를 쓰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환자한테 발로 채인 날, 그 다음날 수선생님은 좀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일까 잠깐 생각했다. 그러다 아우, 저 지금 그럼 집에 가겠습니다. 했다. 수선생은 그 농담에는 웃지 않았다. 그런 날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맞으면서 일하기 싫다.


나는 두 달이 넘을 근무 내내 맞은 것도 아니고, 마동석 같은 사람에게 주먹질을 당해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싫었다. 어린애처럼 단순하게 생각했다. 맞기 싫다. 왜 지나가는 사람에게 맞으면 폭행이고 이 사람들에게 맞고 욕을 들어먹으면 그냥 일일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나 하며 이걸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언제 여기에 적합한 사람이 될까 생각했다.




1100 줘야 했던 약을 1000만 줬다. 중간에 환자가 중심정맥관을 뽑아서 약물은 샜다. 어차피 투약은 제대로 안 됐다. 아무튼 노티도 허술했고 주말이라 당직밖에 없던 탓에 농도검사를 다시 나갔다. 이래저래 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그 보고서 때문에 일찍 출근했다. 소아과에서 오셔서 용량은 잘 보실 거라 생각했는데, 그리고 이 약 처음 주시는 거 아니잖아요. 이건 태도 문제예요. 용량. 흔한 약. 수선생은 왜 집중을 못 하시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몰랐다. 상황이 웃기게 흘러가서, 나는 투약오류를 눈물로 면피하려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맞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수선생은 적잖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휴가를 주겠다고 했다. 잔뜩 우는 와중에 백 번은 생각했다. 이대로, 그럼 다시 유니폼 벗고 오프인 걔 불러서 정자역 카페나 갈까. 가서 뭐든 잔뜩 수다를 떨면서 오후를 보낼까. 이대로 도망갈까, 이게 도망일까.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이런 거, 마음 다치지 말고 일하라는 거야. 그런 것도 익혀야 해. 선생님. 그렇게 텀블러까지 그대로 들고 병동을 나갔다.




병원에서 펑펑 울면서 일했던 날들을 생각했다.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어도, 그 답 없게 외로운 기분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나가버리면, 절대 이브닝 퇴근시간까지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또 비상구였다. 그 때도 여기서 질질 짜다 다시 병실로 돌아갔었다, 언제더라. 그 때는 했고 지금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투약 에러에다가 환자며 병실을 이유도 모른 채 다 무서워하는 것 같은 지금. 이대로 나가면 정말 나는 다시 병원으로 안 올 것 같았다.


다시 들어가 일하겠다고 했다. 수선생은 나를 붙잡고 탈의실에 앉혔다.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저 이대로 가면 도망가는 거잖아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도망이라니, 라고 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도. 그래. 이거는 하루이틀 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야, 그런 분들은 늘 있잖아. 내과에, 섬망 환자들. 너무 많아. 선생님이 유독 그런 방을 보긴 했어. 그런데 그런다고 끝날 게 아니잖아. 나도 알았다. 모를 리가.




팀을 다시 배정하고 있던 차지는 그 환자를 뺀 병실을 보게 해 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일했다. 그 환자 말고 다른 사람이 말썽이었다. 몸무게 70kg인 31살 환자 혈압이 70에 37. 독성 쇼크로 진단한 진료과에서는 집중치료실 자리가 나는 대로 입실하자고 했다. 차지는 보호자 번호를 확인해 놓으라고 했다. 수선생은 나를 슬쩍 보고 일복이 많네, 하고 갔다.






잔뜩 울어서인지 나는 일을 잘 했다. 정말 집중해서 일했다. 눈물 콧물에 모든 잡념을 다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환자는 괜찮아졌다. 하늘나라에도 중환자실에도 안 갔다. 나이트한테는 쿠사리를 들었다. 이거 용량이 이러면 플루이드 희석 더 해야 하는 거 확인 안 해요? 왜 안 봐요? 이것도, 당직이 이렇게 한 건지 아니면 3시에 결과 나오고 나서 주치의가 이렇게 컨펌한 건지 물어봤어야죠. 왜 확인 안 해.


얼음이 그대로 든 물통을 들고 울면서 수선생 방을 나와 복도를 걸어나갈 때도, 나는 이미 이런 식의 퇴근이 임박한 장면을 그렸었다. 방구석에서 자괴감인지 뭔지 모를 것을 돌고 돌다 달리기나 하러 가는 저녁일지, 이렇게 뒷턴에게 또 허점을 질책받는 시간일지. 후자였다. 내가 나를 이긴 것 같은 웃긴 기분이 들었다.




친구는, 일의 전말을 듣고는 뭐가 널 그렇게 버티게 만드냐는 질문을 했다. 그냥 궁금하다고. 자격지심이고 자존심 같았다. 이렇게나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면서 버티는 거. 정체성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버틴다는 단어가 싫었다. 찔려서? 나는 충분히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힘뺀 채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서 아니꼬웠다. 나한테는 기력을 다 짜내지 않으면 되는 게 없었다. 나는 나만 힘들고 싶었다. 밥벌이가 힘든 건 기본값이었다. 그 기본을 이렇게 톡톡히 치르고 있으니 나는 이 삶에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만큼 했으니 앞으로도 하면 된다는 생각. 이거 말고는 남는 게 없다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


애초에 삶에서 쥘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나 노트며 종이쪼가리에 티켓을 붙이고 글씨를 써넣으며 시간을 포장하고 추억을 쥔 채 환상을 조각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리면서도 지겨웠다. 외면한 시간, 눌러담은 시간, 어떻게든 즐거우려 했던 시간을 다 버렸다. 처음부터 지나온 것일 뿐이었던 것. 그냥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한 걸로 충분한 것들. 후련했다. 전혀 아깝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수선생은 나를 아마 별종에 별종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망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걸. 단지 투약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마 그 오후의 내 행태 때문에. 친구가 그랬다. 너 안정성 때문에 이 직업 한 거 아냐, 왜 못 즐겨. 진짜 아무도 너 못 잘라. 그러게. 수선생은 나를 자르지 못한다. 늘 했던 생각의 다른 측면. 이건 정말 유니폼을 벗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이 세계는 그렇게 닫힐 거고 그러면 다른 문이 또 열릴 거라고, 내가 두드릴 테니까. 언젠가는.




친구는 우리가 젊다는 말을 했다. 정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말. 맞긴 했다. 신선했다. 그런 말이 너무 오랜만이라.


신년이 늘 싫었다. 올해는 좋다. 어제 많이 울어서. 그런 고비 아닌 고비를 지나와서. 내가 깨부셔서. 그런 기분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