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rated
유튜브 아이콘만 떠 있던 화면이 온갖 재미있는 것들로 채워졌다. 추천기능을 아예 꺼버린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한 손가락 안에 들던 구독 목록은 다 지웠다. 전통시장의 윤남노, 멤버가 바뀐 십이층, 가짜 핀란드인 레오 란타의 핀란드 여행, 사람들이 머리에 총을 맞은 채 발견됐다는 이란의 시위, 차은우의 탈세 의혹, 에픽하이의 지난 영상. 지나갈 것들.
두쫀쿠를 먹었다. 지난 주에 처음 먹었고 이번 주에 또 먹었다. 집 아래 빵집에 팔길래 하나 샀다. 십 초 돌리면 더 맛있다는 문구가 삐뚤하게 쓰여 있었다. 일단 한 입 먹고 정말 십 초 돌렸다. 떡도 모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 것 같지도 않은 이상한 맛. 이상한 맛?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 건 아닌 맛. 씹다가 싱크대에 뱉었다. 재료로 장난치는 곳은 아니었는데. 무화과가 징그러울 정도로 들어 있던 깜빠뉴, 고소하고 딱딱하고 부드러운 호밀바게트, 이게 빵인지 만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속이 들어 있던 단팥빵. 그런데 이건 맛이 없었다. 없는 건 없는 거지. 두쫀쿠의 맛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별로. 이렇게 비싸기만 한 게 인기라니 사람들 입맛 유구하게 고급이군 싶었다.
돈으로 사는 인간이라고 했다. 돈 아니었으면 진작 죽었을 사람이라고 했다. 에이, 어머니. 그런 말씀이 어딨어요. 여기, 여기이!! 여깄지, 어? 내가, 몇 천은 우습게 썼어요. 자기 멋대로 살다가, 남들 말들은 하나도 안 듣다가 저렇게 된 거 아니야. 십 년을, 이십 년을 잔소리를 했어. 잔소리 뿐이야, 부탁하고, 빌고, 싸우고, 울고불고 그랬는데도 이래요. 내가 이것 때문만이면 말을 안 해, 소송까지 껴서 지금.. 장성한 아들래미는 아빠 때문에 장가도 안 갔는데 속이 곯아터져 환장한다니까?
돈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많았다. 돈을 바르고 돈으로 숨쉰다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정말 그 기계와 그 약과 또 그 기구가 아니었다면 진작 숨이 끊겼을 사람들. 그녀가 대뜸 열이 받아 울분을 토하고 선 반경의 못 해도 열 명은 그렇게 연명하고 있었다. 소송. 진짜 소송이었구먼.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저러나 했다. 폐가 안 좋잖아, 입원하면, 담배 피우고, 또 입원하면, 또 피우다 걸리고. 그러다 쫓겨나고. 또 쫓겨나고. 하다하다 방법이 없으니 산 좋고 물 좋은 데 가라고 해서 휴양림에도 몇 년을 있었어요. 몇 천 쓴 게 장난이 아니라니까? 미쳐버리겠어요, 데리고 사는 게 맞나, 싶어. 내가. 그나마 여기는.. 못 갔지. 못 나간 거야. 다리가 저러니까.
데리고 안 사시면 어쩝니까, 라고 묻고 싶긴 했다. 안 물어봐도 알겠는 답. 무례함을 무릅쓸 수 없는 수준 낮은 질문. 그가 그전날 동정맥루를 꽂고 그날까지 몇 차례의 투석을 하다 타병원으로 전원을 가는 날이었다. 보호자로 아내가 왔다. 밤에 그는 웅얼거리면서 와이프도 간호사인데, 라고 했다. 틀린 정보였다는 걸 알았다.
이거 약값이랑 다.. 얼마 하지도 않는 거. 우리 딸도 간호사 하거든. 브리즈번에 있어요. 근데 아빠가 저러니까, 지금 한 번 멀쩡할 때 봐야겠다고 다들 온다는 거 아니야. 이게 진짜 뭐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나 진짜. 자식새끼들 보기 쪽팔린 것도 아니고.. 부모가 돼 가지고 뭐냐고 이게.
데이 번은 8호 3번 꼭 퇴원시켜야 한다고 나에게 쌍팔로 화이팅, 을 하고 갔다. 그게 그런다고 되냐고. 알겠다고 했다. 어차피 내 맘대로 안 되니까. 그녀도 알고 떤 너스레. 제발 여기서 그만 보게 해 달라는 뜻. 꼴보기 싫은 게 아니라 고된 사람이었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데는 종류가 있었다. 그는 덩치가 말도 안 되게 큰 생쥐같이 굴었다. 예를 들면 뉴트리아 같은 것쯤 될까.
제발 움직이실 땐 간호사를 불러 달라고 골백 번을 말해도 절대 콜벨을 누르지도, 담당을 찾지도 않았다. 카트를 그의 방향으로 한 채 앉아 다른 일을 하다 그가 움직이려 하면, 화장실 가시게요? 하고 물어 모니터링 중인 걸 다 떼고 화장실로 부축하고 또 침대 위로 데려다 놓았다. 복도에 앉아 있다가 부스럭 소리가 나면 후다닥 병실로 들어가 똑같은 짓을 하고 또 하는 게 그가 그 자리에 있던 며칠간이었다.
손가락으로 꾹 누른 자리가 그대로 푹 들어가 한참을 복원되지 않는 모양새의 허옇고 퉁퉁한 다리. 절대 줄일 수 없는 산소. 가끔 뒤집힌 리듬이 보이는 심전도 모니터. 몸에 붙은 게 많아서라도 그는 거동이 쉽지 않았다. 환자분, 수액도 다리에 있고, 이거 기계랑 뒤쪽에 산소줄 다 꽂혀 있어요. 넘어지시면 정말 큰일 나요, 누구님. 저 부르세요. 화장실 가고 싶으실 때. 먼저 빼드릴게요, 네? 제발요. 제발.
그는 매번 고분고분 대답한 후 조용히 설치류처럼 움직였다. 이어 그가 퉁퉁 부은 발을 내딛기 직전 어디선가 타이밍 쩔게 등장한 내가 모든 뒤치다꺼리를 한 뒤에는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고 할 필요 없었고 그냥 나를 먼저 부르면 될 일이었다. 아니, 슬슬 치매끼도 오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그래도 아빠 제정신일 때 봐야 할 거 아냐. 안 그래요? 우리 딸 나잇대네. 하참. 힘드시죠? 고생하셨어요.
안 그래도 환자분 아무리 저희가 주의를 드려도 자꾸 잊으시는 것 같더라구요. 원래도 그냥 뭐 시키시는 걸 미안해하시기도 하는 것 같고.
맞아요. 그 양반이 말을 안 해. 미안해하는 거 맞아요. 근데, 그럼 넘어지지나 말아야지. 집에서도 혼자 움직이다가 넘어져서 간 거 아녜요, 저번에. 말을 안 해, 안 한다구. 근데 안 필요할 땐 해, 그래서 소송도 한 거 아니야. 아니, 경찰서 가서 그걸 싸인했다니까요? 자그마치 십 억이야. 어? 이러고 죽을 때까지 어떻게 데리고 살아.
쏘우인가, 컨저링인가. 공포영화를 잘 못 본다. 그래서 잘 모른다. 아닌가, 그럼 파라노말 액티비티인가. 전형적인 마귀할멈 같은 여자가 화면에 나왔던 영화. 난데없는 못이 얼굴에 박혀 있고, 눈은 충혈된 채 튀어나오고, 이마며 목울대에는 핏대가 벌겋게 서 있는 늙은 얼굴. 석션을 할 때 그녀의 얼굴이 그랬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는 흔한 말에 한 줄 추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은 말이 없다. 당연한 거지. 그녀는 말을 못 했다. 찢긴 목 한가운데로 누군가 계속 가래를 빨아들여야 하는 신세라서.
꽂은 그걸 빼내고는 그냥 다시 수술 자국만 남은 상태로 말도 하고 밥도 먹는 상태로 사는 케이스. 딱 한 명 봤다. 몇 년 전 소아과에서 한 명. 이 사람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어떤 확률도 가능성도 논할 필요가 없는 사실. 1 더하기 1처럼 자명한 것. 이 사람은 이대로 악화될 일만 남았다는 것. 말을 못 해서 표정으로 말했다. 눈도 핏줄도 다 튀어나올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져서. 흉했다. 이런 게 화면에 나오면 성인영화로 등급이 올라가는데. 병원은 나이로 출입을 막지 않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이렇게 늙고 병든다니.
그녀를 찾아오는 보호자는 남동생. 물티슈와 기저귀를 격리실 장 가득 채워 놓는 그는 누나, 맨날 잠만 자. 하다가 갔다. 잠. 왜 그 때 그 할머니나 이 사람이나 잠을 잔다고 할까. 죽어가고 있는 건데. 나는 그게 보호자들이 회피하는 중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닌 것 같았다. 왜 계속 잠만 잡니까, 밤에 잘 못 잤어요, 누나? 라고 한다. 잘 못 주무시는지 아닌지 저는 모르는데요. 말을 못 하시는데 어떻게 확인해요. 목에 가래 껴서 계속 눈만 떴다 감았다 하시는데. 그리고 잠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딴 얘길 한다. 설사를 원래 지난 주에는 하루에 몇 번 하셨고, 4일 전에 혈압약은 중단했다고. 줄어든 횟수, 불필요해진 약. 명확히 긍정적으로 떼어 말할 수 있는 사실을 전한다.
기실 거짓말. 하지만 당신의 73세 누나 분은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사도 아닌 내가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이유도, 권한도 없고.
윤석열 식으로 나이를 깎아도 27살, 그냥 살던 대로 살면 29살. 명확한 성인. 미성년자일때는 못 보던 잔인한 영화. 몰랐던 장면. 흉한 씬. 그녀의 입 안에 누렇게 낀 뭔가를 다 닦아내는 데에 솜 끼워진 스틱을 네 개나 써야 했다. 개수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한 사람의 입 속 혀며 위아랫니에 물때마냥 붙은 찌꺼기를 떼는 데에 그렇게 많은 개수를 써야 했다는 게 놀라웠다. 악어도 아니고. 태초의 인간들은 대체 어떻게 스킨십을 한 걸까 생각했다.
이랬을 텐데. 아니, 사실은 더했을 텐데. 이 사람은 입으로 뭘 못 먹은지도 한참 됐으니까. 와중에 그 스틱조차 자꾸 깨물어 놔주지 않는 통에 혀 아랫쪽 누런 건 마저 못 닦았다. 수선생은 그 보호자가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아직도 요양병원 가는 거에 예민하게 구냐고 물었다. 그런 것 같았다. 욕창이 저렇게 심해진 것도, 원랜 말도 하고 과일도 먹고 맨정신이었는데, 병원이 아니라 요양병원에 있느라 뭘 빨리 못 해서 저렇게 된 거라고 나한테 그랬으니까. 수선생은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냐는 식으로 중얼거리다가 웃고 돌아섰다.
삶의 행태. 가끔 너무 성인 등급. 내가 매체에서 본 적 없는 것, 볼 일 없었던 것. 어쩌면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 보게 될지 모르는 것. 어떤 각본도 연출도 없는 것. 아들딸이 뭘 어떻게 생업을 굴리든 중독을 못 끊고 헛짓거리를 한 사람, 그러고도 악화된 병, 쳐놓고 보니 스케일이 장난 아니었던 사고, 골치 아프다는 말로 부족한 인생 돌아가는 꼴, 저 행색으로 화면에 나온다면 분명히 청불로 심사가 매겨질 비주얼. 짐짝 또는 미련이자 아픔이 된 말년.
조무사는 기저귀를 갈다 그랬다. 지난 주엔 기저귀를 가는데도 설사를 하셨어. 맞아, 그 때 저도 그랬어요. 그치? 지난 주보단 나아. 그러면서 한 쪽으로 자세를 뒤집힌 그녀는 새끼 파충류나 낼 법한 쌕쌕이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다시 벌겋게 물들인다. 말을 할 수 없어 표정으로 말한다. 어차피 듣지도, 들어도 아는 것도 아닌 사람.
내 엄마보다 조금 많을 나이인 조무사 선생이 그랬다. 뭘 잘못한다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닌데, 말야. 건강한 것만도 복인 걸 알아야 되는데도. 쉽지 않아, 그죠?
퇴근은 달다. 두쫀쿠처럼. 몇 년만에 처음이다. 퇴근. 해방이라는 느낌. 그전까지는 왜 몰랐을까. 승영언니는 내가 대뜸 두쫀쿠 맛없던데요, 어쩌고 하고 끼워 보낸 카톡에 진지하게 답했다. 쌤 집 밑이요? 여기네. 맞네. 찾아보니 맛집은 아니네요. 여기 맛집이래요. 제가 티켓팅 성공해서 쌤 존맛두쫀쿠 먹게 해드릴게요! 생각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보냈다. 티켓팅? 저걸 먹으려고 티켓팅까지?
화이팅, 같은 기합 들어간 인사인 줄 알았는데 정말 쪼끄만 박스가 왔다. 부산에 사는 그녀가 용인에 사는 내게 보낸 구로구 어딘가의 택배. 맛있었다. 퍼석퍼석. 화이트하임 또는 초코하임을 농축해서 씹는 것 같은 맛과 식감. 다 말라비틀어진 것처럼 빠작한 동시에 질깃한, 끊길 듯 안 끊기는 인생. 달콤한 퇴근.
많이 자고, 안 배고플 만큼 먹고, 굵은 소금을 귀에 뿌리는 것 같은 바람 속을 달린다. 그 찬 공기가 신선하다. 추운 겨울이다. 가질 수 있는 것도, 그렇다고 가져야 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왜 블러가 최소한 내게 커피와 텔레비전이 있다고 자위하는 기운 빠지는 노래를 냈는지 알 것 같은 느낌.
웃긴 걸 웃기게 보고, 시린 공기 속에서 입김을 하 불고. 북두칠성인지 뭔지 모르겠는 그 별들을 괜히 영하의 깨끗한 하늘에 그려 보고. 본 걸 봤다고 하지 뭐 어떻게 잊어.
내가 저렇게 될 거라는 예상. 엄마아빠동생 등등의 가능한 미래. 내 앞에서 매일매일 진행형인 장면들을 회피한 채 바라보는 눈이 얼어붙은 호수공원. 봄이 오겠지, 여기도. 날이 또 따뜻해지겠지. 그 때까지 내가 멀쩡하기를 바란다. 가볍게 진심으로 원한다. 이게 성인 등급이다. 내가 성인이라서. 여행은 안 갈지도 모른다. 연말정산 금액이 얼탱이가 없어서. 입맛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라 그렇다.
뭐 얼마나 더 쓰라고, 돈을. 절세하려고 머리 안 쓴 인간인 나는 돈 모을 자격도 없다는 거야, 뭐야.
인생.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