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dy
결국 남는 건.
동기들 단톡에 지아 영상이 올라왔다. 누군가 깍깍거리면서 웃고, 또 누구는 이거봐 이거봐 하면서 귀여워한다. 그 화면에 나오는 모든 이들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그랬는데. 다 지워 버린 사진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거기서 움직였다. 더 커지고 더 건강해져서. 이가 하나도 없고 삐쩍 마른 몸이었던 아기에서 어린이가 된 그 애와, 이런저런 부서를 떠돌았음에도 결국 아는 사이로 남은 그들. 나는 분명 거기가 많이 지겨웠는데, 언제 관두나 생각했는데. 안과 외래, 잡을 때는 이 날이 언제 올까 싶었던 먼 날짜. 왔다. 멀쩡하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누구 간호사님. 보고 싶어요. 저 준수예요. 12월 언젠가 받아만 두고 저장은 안 한 번호. 한 번씩 생각이 났다. 침대에 놓여 있는 그 등푸른 생선. 준수의 피쉬. 성탄절, 새해. 건덕지를 잡을 수 있는 날들이 다 지나고 설날이 온다. 그 즈음 한 번 연락을 해볼까 싶었다. 먼저 왔다. 네가 준 그 친구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어 하나가 더 왔다. 공부 열심히 할게요.
인정하죠? 그랬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굳이 고개를 들어 던진 말. 마스크로 덮인 얼굴 외에 보이는 건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는 그 두 눈. 나이트가 무섭다. 퇴원 환자가 있으면 더 무섭다. 선생님, 다 하셨으면 좀 와 보세요. 왜 대충 해요? 이거 왜 제대로 안 봐요? 이젠 슬슬 온 지 얼마 안 돼서, 라는 핑계도 안 통하는 시기인가. 조금 있으면 세 달이지. 소아과는 입퇴원이 잦다고 했다. 그 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 이게 잦은 거라고? 여기 와서 알았다. 거긴 정말 많은 거였다.
이미 잡혀 있던 외래 뒤에 숨은 피검사를 찾아내서 날짜를 돌리고, 겹치는 항목은 알아서 취소하고, 당시의 교수와 지금의 교수가 다르면 어떻게 할 건지를 먼저 확인받고, 어떤 약을 먹고 먹지 말라는 건 노바스크는 복용하지 않습니다 한 줄로 끝내는 게 아니라, 어떤 모양의 어떤 약은 언제까지 드시지 않습니다, 로 한 줄 한 줄 다 고쳐야 하는 퇴원안내문 작성. 이걸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싶은데 그렇게까지 써야 했다.
문제는 내가 그 '그렇게까지'가 뭔지를 잘 모르는 데에 있었다. 잦지 않은 만큼 챙길 게 많은 퇴원. 투약도, 잘못된 오더를 찾아내는 것도 아닌 일. 대놓고 실수라고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잘한 일도 아닌 일들. 선생님, 이걸 왜 이렇게 놔둬요? 퇴원 준비 안 해봤어? 지금까지 뭐 하셨어요? 소아과에서는 그전 입원 시 잡은 외래나 예약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게 그 분과에서 언젠가 합의가 된 사항인지 그냥 절차상으로 적절한 거여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그건 알 바가 아니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측정, 수치, 드레싱, 배액관, 수혈, 투약, 항암 다 할 수 있는데 그건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트가 무섭다. 그런 전산상의 일들이 다 모이는 때라서. 3년, 4년 만에 누군가에게 그렇게 두 손 모으고 혼나듯이 내내 서 있어야 해서.
일은 소아과보다 안 바빴지만 퇴근시간은 비슷했다. 수선생은 노트북 옆의 콜드컵을 보더니 뚜껑이 있는 물통을 쓰라고 했다. 설거지가 귀찮아 일부러 뚜껑이 없는 걸 썼다. 막상 무겁기만 해서 처박아둔 텀블러를 써야 했다. 퇴근시간이 되면 그 전 근무자들이 탈의실에 몰린다. 그 인원이 대강 나가길 기다렸다가 그 깊은 텀블러며 뚜껑을 닦는다. 그걸 위층의 내 탈의실로 가져와 옷을 갈아입는다. 의외로 시간이 걸린다.
몽골 여행을 알아보다가 관뒀다. 지겨웠다. 다 패키지인 그 여행. 가면 또 누군가와 말하고, 하라는 대로 하고, 그 안에서 또 눈치를 보고, 하기 싫은 걸 하며 우르르 다녀야 했다. 나이트 때 빈 시간. 투어 상품을 보다가 그 생각이 들어 창을 껐다. 딴 데 가자. 하늘은 여기서나 보자. 좀 울고 싶기도 했다. 안 울었다. 데이 이브 나이트 할 것 없이 근무자가 많은 이곳. 오십 명에 달하는 간호사. 아예 서로를 모를 것 같지만 같이 일하거나 끝날 때 보거나 시작할 때 보는 식으로 익히지 않을 수가 없는 안면. 가끔 대학생 때 같다.
인원은 정말 많은데 나는 더 외로웠던 기분. 외로움이든 이유 모르는 공포감이든 알 수 없는 감정. 나는 이들과 어떤 교류도 하지 않지만 투명인간은 아니라는 사실. 책잡히면 말은 돌고 돌 거라는 추측. 나는 이미 여기서 운 적이 많았다. 일은 똑바로 못하는데 수틀리면 울기나 하는 멍청한 중간 연차. 그게 나일지도 몰랐다. 한밤중 스테이션에서 신규만도 못하게 혼나고서 질질 짤 수는 없었다.
연초에 일어나면 자기연민에 잠긴 채 울었다. 내 젊은 날이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는 게 싫어서. 쪽팔렸으나 어쨌든 울었다. 그 못난 흔적들과 내가 마주할 더 추한 것들이 다 싫었다. 그래서 다 버렸다. 준수의 인형도 버릴까 생각하다가 냅뒀다. 볼드모트마냥 자아가 강해 유치한 내가 다 버린 것들 중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흔적. 언젠가 또 지겨워지면 알아서 버리겠지, 싶어서. 기저귀 냄새일지, 이제 죽을 날밖에 안 남은 격리실 환자의 냄새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게 아직도 코끝에 남은 것 같아서 지겨웠다. 그렇게나 싫다면 그만둘 일이었다. 그만둘 수 없었다.
가고 싶은 만큼 갔던 콘서트, 사고 싶으면 다 샀던 것, 지구 바깥에서도 이름을 알고 있을 월드스타들의 공연 관람. 그럼 그게 내 지겨운 현실의 대가인가. 대가라고 하기에는 약소했다. 그만큼 나는 내가 지나왔고 향할 곳이 지겨웠다. 처절할 만큼 더럽고 역한 냄새가 나는 말년. 누구도, 이런 현실을 사는 나조차도 피할 수 없었다. 남는 건 내가 모은 돈과 지금의 나뿐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은 더 빛나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자 괴로웠다. 이만큼의 연차가 되어서 열몇 명의 사람이 숨죽인 가운데 욕을 먹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나 돈을 안 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저축액 목표를 정해두긴 했으나 내가 꽤 절실했구나 싶었다. 악착같이 뭘 한 게 아니라 욕심이 가라앉았다. 퇴근하면 끝이었고, 8시간을, 내가 욕먹는 몇 시간을 눈감고 흘려버리면 끝이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도 남을 진실. 사람은 늙고 죽는다. 나도, 쟤도. 그런 식으로 혼날 때마다 드는 생각. 내가 A같은 존재일까.
A는 소아과의 트롤이었다. 본인은 온갖 사고를 치고도 애매한 날짜에 오프를 요구하고 퇴근하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지나치게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일 따위는 절대 없었다. 밟아도, 태워도 안 태워지는 대명사 같은 신규. 그녀는 1년 후 퇴사했다. 잘 지낸다. 이곳에서 빌빌거리는 그 누구들보다 더.
나는 어느 시점부터 A를 다시 떠올렸다. 그렇게는 안 되어야지, 하는 것보다 그게 나쁜가, 하는 생각. 사람들은 A가 혹시 다른 병원에 또 원서를 낸 건지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이곳에서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일했다. 나는 늘 내일을 생각했다. 내일을, 한 달 뒤를, 반 년 뒤를.
27년 10월. 퇴사 날짜가 아니다. 30살의 10월. 지금처럼 별 탈 없이 모으면 잔고에 쌓여 있을 금액. 아는 사람들은 충분했다. 나를 애증 섞인 그 무엇으로라도 환대할 사람들은 이미 많았다. 그게 친분이든, 아니든 어쨌든 그들은 나를 반가워할 거였다. 이전 부서에서의 사람들이 그렇다. 나와 엮였던 그 치열했던 본인들의 모습이 아쉬워서라도 그들은 내게 그럴 것이고, 나 역시 그럴 테니까.
그 때의 지아와 준수와 등등을 공유하는 사이니까.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요양병원 또는 장례식으로 갈 이곳 사람들을 여기의 간호사들은 추억으로 공유하지 않는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나는 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게 없고, 있다 해도 대가는 만만찮게 비싸겠지.
시간이 얼마나 어떻게 흐르면, 나 역시 다 망가진 장기를 가지고서 표독스러울 정도로 한두 개의 수치에 내 모든 것을 거는 날도 오겠지. 별로 나아질 것도 없어 보이는 인생, 처절함을 넘어 악독함이 깃든 눈빛. 절뚝이며 걷는 걸음으로 이 멀리 떨어진 병원까지 버스며 전철을 타고 와서 지켜내는 그 알 수 없는 남은 삶. 인생의 모든 날이 소중하다는 그런 말이 이제는 우습다. 젊은 날은 미치게 소중하다.
그렇게 안 아프니까, 안 추한 것이니까. 모든 날이 빛난다는 말만큼의 거짓은 없다. 분변과 배액 냄새와 끔찍할 만큼 떨어지는 각질에 남들의 찡그리는 표정이 그 날을 둘러쌀 텐데 그게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어.
이전이면 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며 다른 근무자들이 나오길 기다렸겠지. 그냥 다회용 타월을 아예 끊어서 탈의실로 올라갔다. 위층에는 세제는 있었지만 수세미가 없었다. 그래서 늘 병동에서 씻은 거였는데, 간절함이 부족한 거였다. 지금 쓸 만큼 가져와 버리면 되는 걸.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혼나고도, 일을 대충 하고도 집엔 잽싸게 가는구나, 하고 누군가 생각할까 봐.
나쁜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닫힌 병동 문을, 지나친 엘리베이터 어딘가를 계속 곁눈질하며 안 씻은 텀블러를 들고 병동을 나왔다. 나에게, 인정하느냐고 물었던 그녀가 이미 옷을 다 갈아입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얼타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까딱했다.
친구와는 크게 다퉜다. 서로의 역린을 건드렸다. 나는 그녀에게 넌 네가 늘 피해자가 아니느냐는 말을 했고 그녀는 내게 그렇게 거기선 빌빌대면서 주변인에게는 그러느냐는 말을 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할 말이 없었다. 나를 똑바로 보며 인정하느냐는 말을 굳이 덧붙인 그 표정만큼이나 그 말이 자주 겹친다. 맞아. 빌빌거린다. 이런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빌빌거린다.
인생은 유한하다. 남는 건 둘뿐이다.
당장의 몸과 돈. 정말 두 가지가 끝이다.
추억은 가둬진 상태로 남는다.
6월, 집에 귀여운 고양이가 있다는 말을 준수가 했었다.
나는 이제 그 고양이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