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무가당바나나우유
설날. 나와 함께 남은 환자들. 덩그러니 앉은 병실. 내 나이가 몇이더라. 이제 스물아홉이지. 음. 스물아홉. 다채롭게 병든 중장년층들과 함께하다 보면 엄마아빠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의 내 나잇대쯤 과업 같은 것도. 어쨌든 나는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때의 엄마아빠도 그랬으니까. 그리고 어떡하지, 생각한다.
아빠가 우릴 데리고 미국으로 간 게 언제지. 내가 열 살 때. 아빠 스물아홉 엄마 스물여덟에 나온 나. 그럼 서른아홉쯤. 이십 년 전 일. 십 년 하고 또 십 년.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도 한 번도 아직 안 깨진 장면.
아빠와 엄마가 재촉하고 주인집 부부가 찍어준 사진. 스폰지밥에서나 본 것 같은 엄청나게 큰 선인장에 끝없는 땅. 진짜 그냥 땅. 흙바닥도 돌바닥도 아닌 평지. 빨간 안경을 산발이 된 머리에 비뚤게 쓴 나와 엄마가 아침에 입혀 준 남방을 그때까지 입고 있던 동생. 불퉁한 표정을 다 지우지 않은 억지 웃음으로 남은 시간. 핑크와 파랑 사이 애매한 배경. 먼지가 낀 것 같은 희부연 색.
기억은 시간에 미화되어 남았다. 그 지평선 위의 엄마와 아빠와 나와 동생. 피곤했고 지겨웠고 왜 이런 곳을 구태여 오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박제된 추억. 더더 시간이 지나 내 것인지 아닐지도 모를 미래를 잔뜩 그리던 고3때쯤 생각했다. 근데 그 때 좋았어. 그럼 나 나중에 그런 거 남편이랑 하고 싶다. 혹시 결혼을 하면? 할 수 있으면? 하고 남은 로망. 별 건 아니고 정말 그거였다. 별 거인가?
고작 두 달. 그 땅의 것들은 항상 컬러풀하고 선명하고 컸다. 단지 알록달록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그 단단하고 화려한 색깔. 수요일 급식에 나오던 짜요짜요보다 더 예쁜 색인데 크기는 두 배쯤 되는 것 같은 그 군것질거리.
그리고 나는 이제 그 가공식품들에 아낌없이 들었을 설탕과 색소의 양을 생각한다. 잃어버린 건 그 환상일까, 아니면 그냥 그 시간 자체일까. 잃어버린 게 아니라 그냥 지나온 건가?
나만한 아들을 둔 환자는 아홉 시 혈당을 잴 시간에 돌아와 봉투에서 바나나우유를 꺼냈다. 어, 지금은 드시면 안 돼요. 혈당 봐야 해서, 아 근데 이게 무가당인가요? 어. 아니아니, 선생님 드시라고. 나는 안 먹지. 드세요. 아, 저요? 아.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이거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뭐 걸려요? 맨날 이 시간에 계셔서.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다음날 퇴원했다. 고맙다고 한 번 더 하려 했는데.
그는 잘 먹었다. 구십을 바라보는 것치고는 다행히도. 나는 먹이는 것에 집중했다. 죽 한 번, 고기와 당근을 다져서 덜어 놓은 것 같은 거 조금, 푸딩처럼 만든 국 한 번,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액질 반찬 같은 것도 한 번. 조무사들이 모든 일을 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툰 숟가락질로나마 잘 먹긴 했다. 하지만 미처 입으로 다 가져가지 못한 참치 부스러기들이 시트에 말라붙어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자세를 바꾸거나 기저귀를 갈 때 잔뜩 보이는 그 찌꺼기들. 저게 대변에서 나온 건지 정말 음식물인지도 알 수 없어 일단 당황하게 되는 것. 나는 그 잔해를 보는 게 싫어 식사 보조를 했다. 누가 씹다 뱉은 것처럼 생긴 여기저기의 반찬들을 닦아내고, 엉망인 식판을 배식차로 가져다 놓다가 생각했다. 싫다. 정말 너무너무 싫다. 밥 치우는 것도 먹은 자리를 보는 것도 싫다. 결혼하기 싫다. 망했다. 나 진짜 어떡하지.
응급실에서는 요양병원 환자가 올라왔다. 몸무게와 키를 보지는 못했지만 여하간 사람 다섯이 붙어도 몸 한 번을 뒤채기가 어려웠다. 몸을 네 번쯤 이쪽 저쪽으로 끌어당겨 뒤집어서 옷을 갈아입히고, 치골 엉치 팔꿈치 발뒤꿈치 뒤통수의 피부를 확인하려 등이며 다리를 잔뜩 붙들고 있을 때마다 인공호흡기 알람이 울렸다. 코에는 비위관, 목에는 기관절개관, 다 부풀어오른 고환에는 소변줄. 원래 표정이 이런 건지 아니면 다수의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 대느라 당신을 가만두지 않아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살찐, 또는 부은 얼굴이 터질 것 같은 표정.
잘 사는 동네의 요양병원. 보호자 둘은 늘씬하고 멀끔했다. '미숙한 의료진' 때문에 상태가 더 악화일로를 걷게 됐다며 인턴이나 신입 간호사의 처치는 안 받고 싶다는 말을 담당에게 전했다. 더웠다. 붓기 때문에 대단한 덩치가 버거워 모두의 등에 땀이 찼다. 별 수 없었다.
근데 그러면, 누가 그의 드레싱을 하고 엘튜브를 바꾸지. 저딴 걸 또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어야 한다니. 내 담당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엄청 일찍 일어나야 했다. 어차피 한여름 로스앤젤레스에는 해가 늘 중천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여섯 시 반도 안 됐을 시간, 주인아저씨의 혼다 밴과 동생과 나와 팀과 엄마와 아빠. 눈이 나갈 것처럼 밝은 햇빛 아래 세리토스 부촌 주택. 엄마가 억지로 발라댄 선크림 냄새와 엄청나게 큰 아이스박스. 한인마트에서 사 온 김밥과 멀미약과 키미테. 색색깔의 얼린 요거트, 보라색 흰색 빨간색 게토레이, 타겟에서 산 하늘색 신데렐라 선글라스, 차고에 늘 가득 차 있던 간식들.
몇 시간 가야 돼? 열 시간 넘어. 나는 왜 가냐고는 묻지 않았던 것 같다. 가서 뭐 해? 가서? 구경해야지.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야. 멋있어.
주인집 아들이었던 팀은 한국어를 잘 못 했고 나는 영어를 못 했다. 변기통에 강아지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주인공들이 쓸려 내려가는 애니메이션 DVD를 보다가 우리는 짜증을 냈다. 그래서 짜증을 낸 건지 그냥 짜증이 나서 짜증을 냈는지는 모른다. 도로가 울퉁불퉁해 씨디플레이어 화면의 등장인물들은 자꾸 웃긴 자세로 멈추다 서다를 반복했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캐릭터들. 다 녹아서 지겨운 뒷맛만 남은 요거트.
엄마 나 김밥. 아냐, 가서 먹어야 돼. 이거 먹어. 안 시원하자나아. 너 자꾸 찡찡댈래?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아빠. 얼마나 남았어? 한참. 한참이 얼만데? 아빠 운전하느라 힘들어. 성준이는 자냐? 그리고 엄마가 나를 깨웠다. 이 길고 토 나오는 여행. 나는 있는 짜증을 다 냈을까? 다 왔어? 아직. 아 근데 왜에. 사진 찍어야 돼. 나와. 아빠는 웃었던 것 같다. 그 긴 시간 운전을 하고도 왜 기분이 좋은지 신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건 기억난다.
얼마 후 우리는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다. 세상의 모든 전구가 다 모인 것 같은 곳이었다. 더웠다. 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덥고 밝고 또 번쩍였다. 우리는 호텔방에서 진라면 순한맛을 깨작거린 후 짓눌릴 것 같은 무게의 이불과 베개에 파묻혀 잠을 잤다. 그다음날엔 유리벽 너머의 사자들을 보고 인형 뽑기를 하고 식당에서 뭘 끊임없이 가져다 먹었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꿈꿀 수 있는 허용 가능한 판타지.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 나름의 사회적 지위를 만들고, 돈을 모으고, 비슷한 것 같은 사람을 만나서 꾸리는 가정. 근데, 아무리 애써도 피할 수 없잖아. 결혼? 한다면, 누군가 한 쪽은 필연적으로 해야 할 뒤치다꺼리.
지금 시작해서 빠르면 십 년 이십 년 후에 나 또는 내 상대가 감당해야 할 것들. 뭐 어디서의 결혼식도 어떤 웨딩드레스도 어떻게 생긴 키가 몇인 누구를 만나겠다는 그런 것도 다 없어진 후에 남는 것. 다 됐고, 좀 튼튼한 사람이면 그래도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로망. 그 지겹고 긴 길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같이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해서 아직도 버리지 않은 꿈의 장면 하나.
아빠는 없는 집에서 태어나 장교가 되어 내 나이 때 나를 낳았고 십 년 후 낯선 땅에서 추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 소아과에서는 애를 안 낳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이제 여기서는 결혼이었다. 왜 거꾸로만 가지, 어떡하지. 원래도 그 둘에 큰 환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곳의 것들이 너무 선명했다. 근데 이건 그냥 일인데. 이게 뭘 어떻게 치우고 뒤처리하고 또 제자리로 돌려 놓고 하는 건지와 상관없이 그냥 돈 주고 시간 바꾸는 일인데. 정말 그뿐인데, 어느새 나는 그 어느 것도 곱게 못 봐주는 사람이 되었다.
술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냥 사소한, 어쩌면 인간적인 습관들도 그냥 넘길 수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진짜 어떡하지. 사람이 살다 보면 좀 그럴 수도 있는데. 나조차도 엉망인데. 근데 나이드는 거랑 아픈 건 지위도 재력도 안 가리잖아. 환자들은 그럴 수 있어. 아직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근데 그게 쉽냐고.
그러니까, 평행세계의 내가 찍었을지도 모르는 그 평원의 사진에서 멀미에 짜증을 내는 어린애들은 진작 사라졌다. 어쩌면 누구의 엄마도 아닌 내 옆의 그 낯선 남자조차도 없을 가능성이 컸다. 재력 외모 학벌 뭐 그렇게 잘난 것도 없는 데다 애도 안 낳겠다는 지랄맞은 여자랑 누가 결혼을 해.
왜지, 왜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멀어질까. 원래 직업을 갖고 돈을 버는 건 그런 걸 좀 문제없이 하기 위함 아니었나. 어째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내가 언젠가는 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에 천천히 역함을 느끼게 됐을까.
이건 좀 문제가 있잖아. 정말. 내 잘못이야? 잔뜩 부드러운 목소리를 하고 호호호 웃으며 소개팅 백 번을 채워도 모자랄 때에 나는 왜 이러고 있게 됐을까. 진짜 문제였다.
바나나도 별로였고 바나나우유도 별로였다. 그럼 대체 뭐가 안 별로일까. 과자는 그렇게 먹으면서.
함량을 보니 진짜 무가당도 아닌 그것. 늦었던 인계에 없던 정신까지 더해져서 병동에 그냥 놔두고 온 걸 알았고 굳이 사복 차림으로 다시 올라가 가져와야 했다. 며칠 내내 냉장고를 열 때마다 눈이 마주치는 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당류가 9그램쯤 든 그 가짜 무가당 바나나우유. 맛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걸 다시 두 개 샀다.
나에게는 눈앞의 과자는 그냥 못 두고 먹어치워야만 하는 병이 있었지만 음료는 예외였다. 두 개. 하나는 그 향긋하고 단 맛이 생각난 날에 반쯤 먹었고 나머지 하나는 유통기한이 지났다. 2월 10일까지. 근데 뚜껑 안 땄으니까, 일주일이면 사실 아직은 괜찮지.
내 인생에 아이는 없다. 그래서 색소 가득한 핫핑크색 길쭉한 요거트를 살 날도 없다. 대신 생판 남이 준 그 바나나우유는 굿즈처럼 남았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잘 봐주세요, 하는 뜻 없는 그냥 선물. 원래 사는 건 좀 이런 건가. 환상도 취향도 아닌 뭔가를 어쩌다 들이게 되고 한 번씩 기분이 묘해지는 것.
웃긴 일이다. 취직해서 돈 벌고 어디 가서는 직업을 말할 수도 있는데, 왜 또 어딘가의 코스에서는 실컷 이탈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근데 어떡해, 이대로 지금의 나는 이런데.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된 건 아닌데. 당연한 걸 당연하게 못 받아들여서 길을 거꾸로 가고 있는 기분이다. 사람 늙는 게 별 일이냐고. 언제나 그랬다고.
근데 왜 이러냐고, 난. 엄마아빠는 이런 어른이 되라고 나를 키우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서 그냥 진짜 어떡하지다.
어떡해. 진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