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틸렌블루

over 60

by 이븐도






다섯 시 반. 엄마를 쫓아 뒤뚱이며 먹는 초코픽. 목도리의 흰 털방울에 거뭇하게 묻은 초코. 다섯 시 반?집에 가서 씻으면 저녁 맘마나 먹어야 할 시간.

쟤는 과자를 지저분하게 먹었다고 엄마한테 혼이 날까? 엄마는 왜 밥때데 저런 간식을 허용했을까?






고등학생 땐가 그런 게 있었다. 서울 길거리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붙들어 하는 인터뷰. 인터뷰라기보단 프로젝트 같은 것. 그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질문은 별 거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녁으로 뭘 먹을 건가요, 어릴 땐 뭐가 되고 싶었나요, 집에 가면 뭐가 기다리고 있나요. 사람들의 대답 역시 별 거 아니었고 그래서 재밌었다.


정작 대학생이 되어서는 잊어버리고 지냈다. 떠올렸다 해도 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즈음 정류장과 지하철역과 대형서점과 카페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대는 불특정 다수에 그제서야 슬슬 질려 가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 출근이면 여섯 시 반쯤 병동에 앉는다. 레지던트 A는 늘 유니폼을 입고 앉아 있다.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일곱 시. 당직들이 어쩔 수 없는 오더를 내고 잠 없고 꼬장꼬장한 교수들이나 처방을 바꿔대는 시간. 당직이 아닌 의사들은 아마 집에서 나오고 있거나 나올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러나 노티를 하기도 전에 나 있는 어제 안 난 처방들과 뒷처리 같은 것들. 당연히 A가 당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집에 안 갔구나, 곧 가겠구나. 8시. 열두 시 되면 사라지는 신데렐라마냥 없어질 그를 다급히 쫓았다.


다다다 할 말을 쏟아내는 내게 그는 저 너무 급한 거 아니면 이따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랬다. 아. 아니구나. 그러게. 그제쯤 당직 아니었나. 이렇게 금방 또 할 리가 없지. 그런 며칠을 거듭해 지나 든 생각. 대체 몇 시에 오는 걸까. 병원을 그렇게 사랑하나. 그리고 반복 아닌 반복. 신규와 출근시간이 똑같은 나와 아직 아무도 없어야 할 자리에 퍼런 옷을 입고 멀뚱히 앉은 A. 밤새 거기서 안 움직인 사람처럼.





그 사람은 익파도 안 해요, 랬다. 얜 왜 이렇게 나오는 대로 떠드나 싶었다. 안에서 새는 뭐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딱. 머리가 좀 빈 타입이구나 생각했던 게 언제더라.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맥락의 말. 그래도 반성했다. 나도 그 생각을 몇 번은 했다는 걸 그 근무자의 말에 순간 상기할 수 있었어서.


주치의는 그녀가 승압제를 단 날 최대 용량을 컨펌했다. 가능하면 2단위로 증량하되 12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는 늘리지 말 것. 1에서 2마이크로그램을 오가다 떼고, 또 투석을 가거나 열이 나면 또 달았다가 혈압을 보고 중단. 백 일을 넘긴 재원기간 중 두 달 반 이상은 그런 식이었다. 이 병실의 환자가 너무 많아 다른 팀에서 그녀를 담당하기를 열흘쯤인가. 얼굴을 보는데 오랜만인 걸 알았다. 이렇게나 시커멓진 않았는데. 피부가 냉장고에 이틀쯤 넣어 둔 바나나 색이었다.


6에서 8이 되고 10이 된 노르에피네프린. 안 끊기는 열. 자이복스에 타조페란에 반코에 메펨에 세페핌. 분명 나 이 병동 처음 왔을 때도 다 이 사람한테 줬던 항생제들. 달이 넘어가 주치의도 바뀌었는데 왜 또 회귀한 것처럼 똑같은 처방.

끊으니 열이 났고 항생제를 다시 쓰자니 설사가 잦아져 구멍이 뻥 뚫린 엉덩이 살점에 변이 들어갔다. 이런저런 검사들을 했으나 원인 불명의 열이라는 의무기록의 서술. 비닐가운을 입고 들어가 온갖 뺑이를 쳤던 기억. 그 사람 폴스트 받은 거 아냐? 왜 이렇게까지 해요? 하던 탈의실에서의 말들.






모르죠, 라는 대답을 할 필요도 없는 현상. 그냥 죽을 때가 된 걸지도 모르는 거. 혈압의 뒷자리 수에 2를 곱하고 앞 숫자를 더한 후 3을 나눈 값. 그 수치가 60을 넘어가는 게 기준이었다. 이브닝번은 간신히 타겟 안에 든 숫자를 보고는 약을 줄인 채 인계를 줬다. 병실에 들어가 잰 혈압은 61에 26이던가. 코다론. 나 이거 단 사람 처음 보는데. 맥박이 90 이하로 떨어지면 끊으랬는데 한 번 죽었다 소생한 심장은 엉망으로 뛰었다. 0이었다 176이었다 92였다가 다시 37인 식.


엉망인 비피와 하트레이트에 알림음을 멈추지 않는 모니터. 그리고? 뭐나 되는 것처럼 나를 쳐다보고 슬쩍 던지는 말. 저 처음 씨피알 쳤던 사람이 노에피랑 아미오다론 같이 달았던 사람인데.. 둘이 같이 줘도 돼요? 모르죠. 진짜 모르죠, 그랬다. 그러고 그냥 불안하게 웃었다. 의사가 된대잖아. 달으라잖아. 나보고 어떡하라고, 라는 말을 참고. 이 사람은 왜 닥치는 법을 모를까, 생각하면서.





나는 그녀가 그날 죽을 줄 알았다. 열이 안 나면 전원을 고려한다는 말은 늘 오더 맨 아랫줄에 있었으나 그 날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렇게 기관절개관과 꼬리뼈 드레싱을 매일 하고, 투석을 가고. 승압제와 항부정맥제를 뗐다가 붙였다가, 열이 나면 배양병 여덟 개쯤에 컬쳐를 나가고, 일주일에 한 번 항문을 찔러 검사를 나가다가 아마 이곳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젠가부턴 그랬다.

아니지. 사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람인가. 심장을 덜 빨리 뛰게 하는 약을 줘야만 하는 상태. 쥐어짜서 나오는 박출량. 몸무게가 그녀의 10분의 1쯤이나 될 신생아한테서나 나와도 좀 객쩍은 혈압. 내가 거기서 그런 걸 바라고 있을 줄 몰랐는데 제발 오늘은 아니기를 빌었다. 3시에 아미오다론은 반으로 줄이라는 처방이 있었다. 속도를 감량한 후 인계를 주기까지 4시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모니터를 쳐다보며 빌었다. 빈 건지 졸려 죽겠는 정신을 붙잡은 건지는 애매하지만. 둘 다인가?


어차피 약제가 붙잡고 있는 목숨이었다. 그래도, 제발 저 미친 것 같은 맥박이 지속되지 않기를, 3초, 5초, 아니면 10초 후 다시 125나 117쯤으로,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데이에게 인계를 줬다. 12까지 꽉꽉 증량한 승압제. 가능하면 테이퍼링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희부옇게 밝은 아침, 머리가 깨지게 아픈 느낌. 아, 이렇게 더 살단 딱 죽겠구나, 싶은 감각. 하지만 머리는 깨지지 않고 나는 안 죽지. 함께 들어간 일곱 시 병실에서의 혈압은 65에 몇이던가. 이래도 씨피알 콜을 할 상황이 안 된다는 게 신기했다. 머리에 불이 탁 켜지는 기분이었다. 이젠 뭘 더 쓰나, 나는 모르는 의학의 세계. 이제 더 쓸 게 남아있나 궁금했다.




열심히 산다, 라는 말의 모든 구성이 싫다. 남에게 하기도 나에게 하기도 싫은 말. 그냥 내뱉기가 싫다. 남에게 던지자니 평가하는 것 같고, 나에게 하자니 한심해 그렇다. 대체 얼마나의 결기를 가지고 뭘 꿈꿨던가 하는 부질없음이 뭣 같아서.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있나, 정말 죽었나 싶어서 들어간 EMR. 연휴의 토요일. 집이 여긴가 아니면 펠로우가 되면 다 그렇게 사는 건가 싶을 정도로 늘 병원에 있는 것 같은 담당의가 스테로이드 CIV를 처방했다. 결국 스테로이드구나.


소아과에서, 천자에 생검에 온갖 항생제를 다 때려부어도 안 잡히던 열이 살론 한 번에 사그라들었다. 그 때 의사가 복도에서 유레카를 외치듯 그랬다. 스테로이드! 답은 스테로이드였어요, 하면서. 그러나 이건 아마 그런 반짝이는 순간은 아니었겠지. 신장도 심장도 다 망가진 이 사람에게 유레카 같은 건 없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지금의 약이 다 들어가고 나면 당연히 한동안 못 쓸 방책.

곳곳이 기능을 다한 그녀에게는 결국 임시방편이 아닌 게 없다. 그럼 이 다음엔? 그럼 어떡하지? 진짜 할 게 더 있나? 병원 전산에 접속하기 전, 구글 제미나이에게 물었다.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몸무게는 이만저만인데 이런 약을 이만큼 썼다. 이제 더 줄 만한 게 있어?





그 레지던트를 보며 꾹꾹 덮어 뒀던 생각을 연다. 참 열심히 산다. 왜 저렇게 열심히 살까. 뭐, 보는 환자가 좀 많긴 하지. 그래도. 항상 저렇게 먼저 와서 알려주지도 않은 걸 알아서 다 찾아보고 먼저 처방을 내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재밌나, 정말 일을 사랑하나. 모르지. 어떻게 알겠어.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요, 하고 물을 것도 아니고. 그 열심히란 것도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를 테니까.

명문대 의대를 졸업해 최고 수준의 학력을 가진 교수들 밑에서 일상을 굴리는 사람의 열심은 나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으므로. 그래도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인생이었지만 그와 나의 시간은,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유한한걸.






똑똑한 듯 모자란, 혹은 나의 모자란 근거에 한해서는 최선이었을 인공지능의 답은 셋이었다. 에크모, 메틸렌블루, 그리고 또 뭐더라 기억이 안 나는 하나 더. 이미 중환자실은 안 들어가기로 한 사람이었고 아무리 멍청한 나라지만 에크모는 답이 아닌 것 같았다. 이래서 의사가 똑똑해야 하는구나, 이렇게 단어 몇 개 던져준 후에 뭘 알려준다고 다 정답은 아닌 건데. 이걸 생각해내야 하는 거 아닌가. 또는 외운 거나 경험에서 추출해내야 하는 거.


메틸렌블루. 염료였다. 통상 검체를 염색해 뭐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 시약이나, 정말 필요할 경우 최후의 해독제 같은 것으로 쓰기도 한다고. 그러고보니 중환자실 오더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병동의 나는 평생 구경할 일도 없는 이름. 메틸렌블루. 발음부터 폼나는 명칭.

저걸로 살려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정도까지 간 사람도 저걸 쓰면 정말 툭툭 털고 일어나 아 네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집으로 갈 수 있까.






나이트오프가 끝나고 다시 졸려 죽을 것 같은 상태로 앉은 아침의 병동. 또 당직이었나 싶게 앉아 있는 A, 전산의 오더와 랩 수치로 먼저 보는 아직 안 죽은 그녀. 외면하고 싶은, 길고 짧은 시간 외면해 온 질문과 단어.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건가. 열심. 열심이라.


그녀의 남동생은 바세린이 없어져 다시 사 왔다고 했다. 시커매진 얼굴 상태는 진작 받아들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아, 그거 여기 있습니다. 하고 찾아 건네자 그는 진작 사 왔던 체리색 립밤을 그녀에게 발라 주고 손톱을 깎아 준다. 누나, 자꾸 잠만 자, 하면서. 이 사람 시야에서 이 누나는 아직, 여기에 있는 사람일까. 민비피 60을 넘기면 시작하는 약. 아니면 끄는 약. 반복에 반복에 반복.

면회시간이 끝나 그는 떠나고 나는 몇 명의 상대적으로 멀쩡한 사람들의 입원을 받았다. 60살을 넘기면 활성화되는 섬망 평가. 60에 60. 백세시대라는 말이 웃기게 그 중의 1/3을 들어내야 나오는 숫자. 60. 그 나이를 지나면 제정신을 아예 못 챙길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척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읽다가 관뒀던가 싶은 책. 줄거리는 기억 안 나도 중간중간의 문장과 장면은 강하게 남은 그것. 강아지의 시간이 언급된다. 그들은 원형의 시간을 산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강아지도 느닷없이 병들긴 할 텐데. 그럼 그 때 슬퍼하는 건 그 강아지를 보는 인간일까 어쩌면 진짜 강아지 그 자신일까. 열심이라는 단어가 역겹게 싫었던 만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열심. 어떻게 사는 게 열심일까.

인생에서 어쩌다 주어진 30을 쳐내면 남는 나머지 30. 그래도 멀쩡히 살 수 있다는 기저가 깔린 숫자. 60. 어떻게 사는 게 열심히 사는 걸까. 60을 넘기기 전에. 안 넘은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





강아지와 어린애의 공통점. 즐거워 보인다는 것. 그렇다고 나는 뭐 그 여자애한테 넌 원형의 시간을 사니, 라고 묻고 싶었던 건 아닌데. 궁금한 거지. 애 아니면, 그 애의 엄마에게. 왜 지금 과자를 주셨어요? 쪼꼬 쪼꼬 하면서 땡깡을 부렸어요? 밥을 너무 안 먹어서 저거라도 먹는 게 다행이예요?

길거리 난데없는 미취학 어린이나 저편 병원 어딘가의 그 노인이나. 생판 상관없는 남의 인생. 그래도 열심, 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왜지. 뭐, 왜긴 왜겠어. 난 앞으로 늙어갈 일밖에 안 남았으니까. 운이 꽤 좋으면 60까지는 메틸렌블루도 자이복스도 없이 살 테니까. 정말정말 운이 좋으면. 그리고 세상은 각자의 운때를 공평히 봐 넘기지 않았다. 내가 봐온 건 그랬다.



그래서 돌고 돌아 열심이다. 뭔지도 모르는데. 열받게 그렇다. 부정해봐도 그렇다. 메틸렌블루도 스테로이드도 답이 못 되는 흐름. 열심의 답? 모른다.


그래도 열심 같다. 재수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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