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DD

당신과 불행을 피하는 방법

by 이븐도






팔자. 그 시작과 끝.

엄마의 팔자소관.

그럴 때? 내팔자야아, 하는 거야. 알겠지? 라던 말.






네 개짜리 데이의 마지막 근무. 또 앉아 계시는 그 주치의. 여섯 시 사십 오분에 난 처방. 멋있어 보이는 거랑은 별개로 좀 많이 싫다. 근데 조삼모사긴 해. 내가 여덟 시 되자마자 존칭을 잔뜩 써 노티한 후 한참 뒤에야 쏟아지는 처방이나 그냥 덜 바쁠 때 알아서 나는 거나.


소변줄을 바꿀 건지 확인해 달라는 인계. 작년 12월, 올 1월의 모든 피검사를 다시 하고 싶어하는 환자. 졸려 그런 건지 건조해 그런 건지 감기는 눈. 나이트는 팔랑팔랑 다가와 쌤 남자친구 있어요? 있어? 한다. 선생님 나이가 몇이지? 아아니. 너도 언젠간 하겠지, 결혼. 그리고 건네는 청첩장. 우와아아아, 축하드려용.

사실 지난 주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게 티를 내는데 어떻게 몰라. 축하는 했다. 연하에 얼굴만 봐도 좋다고 떠드는 걸 들었다. 행복하기를 바랐다.






인계 전. 그 환자가 작년과 올해에 외래에서 한 모든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항목을 긁어서 메모장에 붙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뭐로 입원하신 누구 환자분 퇴원 예정이신데, 이전 12월, 1월에 하신 검사들 전부 재시행 원하셔서요. 어쩌고저쩌고 이러저러하지만 결국 환자분 뜻이 그러신데 혹시 가능할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미리 써둔 주치의에게 보낼 말, 이어 그 30개는 넘는 항목들. 하나하나 눌러 어떤 의뢰서가 필요하고 몇 시간 금식이 필요하고 각각은 결과보고에 며칠이 걸리는 건지 등등을 몇 시간 후의 나를 위해 정리해 두고. 분명 환자는 이 날 외래가 있으니 이 날 병원에 오고 싶다고 할 것 같으니 그 날짜를 봐 두고, 뭐 또 별의별 이유로 이 날도 안 되겠다고 하면 최소한 이 날까지는 다른 수치를 위해서라도 따로 와야 한다고 통보해버릴 날짜도 고르고.


짜증났다.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짜증났다. 의사가 아, 외래 때 하고 하죠, 하고 우다다 내는 처방. 또는 더 열받게 그럼 오늘 하시죠, 하고 떠나면 그 자리에 남은 걱정 많은 환자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들. 가퇴원과 회진이 이렇고 수가는 제증명에서 저렇고 하는 그런 거. 병원에 어떻게든 적게, 늦게 오려는 환자와의 그 줄다리기 같은 날짜 지정은 기본.





솔직히 간단한 사람이었다. 검사 띡 하고 슉 가버릴 사람. 달마다 바뀌는 주치의. 며칠 남지도 않은 이번 달 그냥 타부서든 타병원이든 순환을 떠나는 입장에선 기억도 안 날 흔한 환자. 더 솔직히 말하면 레지던트 얼굴 따위 안 비추고 그냥 집으로 보내버려도 무관한 사람.

그리고 그는 20분은 서서 그 환자의 모든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했다. 웃음이나 질질 흘리며 교수님과 외래에서 상의하시면 됩니다, 하는 말로 무마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단어 하나하나를 넘기지 않고 정면으로 반박하며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냥 그의 말들에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그런 멍청한 소리를 왜 하냐는 듯한 미소 띤 얼굴의 뉘앙스도, 질린다는 표정으로 결국 그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자포자기의 기운도 없이. 보통은 그래서 듣는 내가 다 민망했는데. 신기했다. 저거 다 아는구나. 그래서 저렇게 차분하게 말할 수 있구나. 진짜 똑똑하다.



그치, 의사 똑똑하지. 다 똑똑하지. 근데 처음 봤다. 그런 사람. 내가 정리해 놓은 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12월에 그가 한 혈액검사에서 이상했던 수치가 뭐였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1월의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으며 그건 이번 검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상세히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가? 하지만 대부분의 주치의는 그러지 않았다. 노티를 하면 나한테 그 수치 또는 약의 정체 자체를 문의했고 결국 대답은 교수님께 확인받겠다는 거였다. 그런 대답이면 다행이었다. 싸가지가 좀 없는 경우 그게 뭔데요, 그래서 얼만데요, 왜 해야 하는데요, 라고 답했다.


메신저고 뭐고 다 꺼버리고 싶은 걸 참는 것도 내가 월급을 받는 대신 응당 할 일이었다. 눈이 없냐고 말할 수는 없어 참았다. 상사니까. 누가 수평적이래. 인턴이든 레지던트든 그들은 이 세계의 권위자였다. 내가 부하직원이 아니면 누가 그따위로 말하는데. 그럴 때 가장 빡치는 지점이었다. 지식과 우위를 점한 쪽은 저쪽인데 질문에 답은 내가 해야 하는 글러먹은 위계질서.






환자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응급실 신환이 배정됐다. 외래 환자들을 정리하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빨간 이름이 떴다. 또 알콜릭. 또 술먹고 정신이 나 채 피똥을 싸며 피를 토한 사람. 맞은편 자리의 아저씨는 입원이 평생 처음인 사람이었다. 그는 오전에 환자가 잠깐 모두 빠져나가자, 이제 편히 잘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그들이 코를 고는 소리에 너무 힘들었다고 하면서. 해병대 배지를 붙여놓은 녹색 비니를 쓰고, 자주색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서는 3월 1일 행사에 본인이 없으면 안 된다고 내내 말했다.

염증수치가 너무 높아 퇴원은 안 됐지만 그래도 병원생활에 꽤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호시절도 끝이지. 소화기 환자 특유의 똥 냄새가 지독할 거고, 심하면 한밤중에는 그 욕설과 고성에 보안요원이며 간호사들이 병실을 우르르 들락거리게 될 테니까.





올라온 환자는 볼이 핼쓱한 몰골로 여기가 어디냐는 질문에 삼성서울병원이라고 답했다. 아내 말대로라면 세브란스와 무슨 요양병원 말곤 간 적이 없는데. 배우자에게 정보조사를 했다. 자녀는 둘. 음주는 35년쯤, 흡연도 35년쯤. 주량은 소주로 한 번에 적어도 한 병 이상, 일주일에 아마 4일. 그녀는 몇몇 질문에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 제가 일을 다니느라.


하긴. 60 다 된 남편이 회사 때려치우고 집에서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어떻게 눈 뜨고 맨날 관찰만 해. 그는 다 큰 남편의 대기저귀와 속기저귀와 물티슈를 빠짐없이 넉넉하게 챙겨 왔고 마지막으로 언제 이 병원 외래를 봤지만 어떤 이유로 더 오지 않았는지까지 모두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정확히는 몰랐다.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피우는지. 사실 그렇게나 상세히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겠지만.




수선생은 그 레지던트가 원내 무슨 모범전공의로 뽑힌 걸 축하했다. 그는 그냥 환자 많이 보면 주는 거 아닌가요, 했다. 수선생이 나이를 떠들어대서 알았다. 그 사람 나이도 그랬는데, 대충. 결국 그 의사의 말에 수긍하고서 어떤 검사도 쓸데없이 다시 하지 않는 처방으로 퇴원한 아침의 그 환자. 그 자리에 있던 몇 주 전의 다른 환자.


역시 검사를 위해 입원한 사람이었다. 174에 43kg. 인계를 받으며 나이도 젊은데 욕창이 있어요? 했었다. 아, 욕창은 아닌데.. 잘 봐야 할 것 같아요, 하고 데이가 그랬다. 병실로 가서 환자를 보고 알았다. 그럴 만하구나.

까딱하면 등이고 꼬리뼈고 다 짓무를 정도로 살집이며 기력이 없어 보였다. 아니지. 없었다. 그냥 뼈였다. 뼈인 사람. 말이 좀 그렇지만 정말 그랬다.




그는 먹어야 할 약을 하나도 먹지 않고 입원했다. 나는 향정신성 약물도 항생제도 아닌 그 경구약들의 위력을 그 때 실감했다. 가지고 있던 케모포트에서는 애진작 혈액채취가 안 됐고, 이후에 정맥주사팀이 다섯 번은 손을 바꿔서 겨우 짜낸 피검사의 모든 수치가 다 망가져 있었다. 보충해야 할 한두 개가 아니었고 혈압은 몸무게를 감안해도 낮았으며 주사는 또 더럽게 안 잡혔다.

당직은 챗지피티에게 포스텐과 KCL을 섞어서 줘도 되냐고 타이핑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옆에서 처방을 물어 가며 확인했다. 전산의 오더대로 수액을 섞어 가면 그새 당직은 마음을 바꿔 처방을 지웠고 약제부에서는 이렇게 주는 게 맞냐는 연락이 왔다. 그걸 두세 번쯤은 반복하고 신속대응팀까지 병실에 몇 명은 모여 푸닥거리 아닌 푸닥거리를 한 다음에야 그는 몸에 혈액팩과 수액을 서넛쯤 단 채 잠을 잘 수 있었다.




제정신이었다. 아이폰을 썼고 기저귀도 안 찼고 그 난리통에서도 죄송해요, 저 때문에.. 같은 이상한 오지랖을 부릴 정신력은 남아 있었으며 애초에 걸어서 입원한 사람이었다. 까딱하면 중환자실 입실을 고려해야 했다. 누군가 나한테 직계보호자 없어요? 친족 아무도 없어요? 했다. 없었다. 입원 때 보호자 번호를 묻자 소장님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소장이든 대장이든 그런 사람은 동의서에 서명해줄 수 없었다. 천만다행히도, 그는 그 와중에도 말귀는 다 알아먹어서 그 소장님이라는 사람에게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물론 그보다는 그 정도로 나빠지지는 않았다는 게 더 다행인 거지만.


그는 그렇게 열흘 정도를 컨디션 보전에 힘쓰다 당초 계획보다 훨씬 늦게 원래의 검사를 하고 퇴원했다. 종종 원목실의 수녀가 찾아왔고, 퇴원은 혼자 했다. 그 소장님이라는 사람과 관련된 곳으로 가나 했다. 거주지는 그 근방이었다. 짐가방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나는 가다가 쓰러지지나 말아야 할 텐데 생각했다.






피곤했고 지쳤고 짜증났고 열받았다. 팔자야. 내 팔자야. 이게 내 운명인가? 운명.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하는 고생. 맞지. 나는 똑똑한 적이 없었다. 성적이 어떻고까지 갈 것도 없이 술자리 내기며 대학로 카페의 보드게임 규칙도 그 자리에서 한번에 숙지한 적이 없었다. 정말 지능 문제였다.

자기비하가 아니라, 정말 이 정도 머리로 이렇게나마 살고 싶다면 뭐, 이게 운명이었다. 그래서 엄마가 팔자 타령을 했나, 생각했다. 어떻게 해도 그리 될 일은 그렇게 된다는 답 없는 운명론. 왜 그런 말을 하나 했는데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 게 없댔지. 내 팔자. 멍청한 내 팔자. 그렇게 싫으면 그냥 관두면 될걸 굳이굳이 연차를 채워 가고 있아.


나이트는 짬이 낮은 사람이 아니었다. 12월인가, 11월인가. 뼈 생검을 데이 때 하고 내가 인계를 받은 날. 검체 하나가 끝끝내 접수가 안 됐다. 사유는 검체량 부족. 그 듀티의 차지였던 그녀는 열몇 개는 넘었을 항목들의 검사정보를 샅샅이 뜯어본 후 이 항목은 이걸 포함하고 있어 저걸 대체할 수 있으니 이걸 이거로 다시 접수시키고 취소된 다른 검체를 저걸로 처리해 달라고 검사실에 연락하자고 했다. 주치의조차도 어쩔 방도를 몰라 그냥, 내일 교수님한테 말씀드려야죠, 하고 퇴근해 버린 항목이었다. 그리고는 나한테 그랬다. 선생님이 어싸인 아니예요? 제대로 안 봐요? 왜 확인 안 해? 나는 그녀가 그 때 보통 실력자가 아님을 알았다.


그런 말을 들어서 기분이 나쁘다기보단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열이 받았다. 백 일은 된 소변줄 바꾸는 걸 뭘 의사한테 확인을 받아. 그냥 하면 하는 거지. 그런 건 어차피 간호팀에서 관리하는 거고 의사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걸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말로는, 아냐아냐 그냥 컨펌만 받앙, 했지만 그게 어떻게 그런 말이 되냐고.





모든 간호사의 일들은 똑똑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과 몸만 있으면 정말 그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감사하기도 했지만 짜증도 났다. 멍청한 내가 어떻게든 출근을 해서 시간을 갈아넣고 몸을 굴리면 하게 되어 있는 일이고 받게 되어 있는 돈이었지만, 보통은 시간이 없고 몸이 너무 힘들었으니까.


본 바이옵시 검체 조회든 폴리 꽂기든 못 할 건 없었다. 몰아닥치는, 그 때에 해야 하는 다른 일들도 많은 게 문제였다. 진단검사실이 문을 닫기 전에, 저 의사가 집에 가기 전에, 이 혈액과 항암제의 유효기간이 끝나기 전에, 이 사람이 열이 또 나기 전에, 저 환자가 더 지랄해서 난리치기 전에 해야 하는 일들. 응급실에서는 한 명이 더 올라와야 했는데 나는 그녀의 소변줄을 빼고 새로 꽂아야 했다. 하필 오늘.

중간에 자꾸 설사를 하는 바람에 세 번은 다시 해야 했다. 복도를 달려 이 재료를 다시 가져오고, 또 가운을 입고, 컨타된 걸 또 가져오고, 다시 세트를 까고. 또 확인하고. 나중에 사용한 재료의 수가를 넣을 때 보니 나이트는 아침 여섯 시 반에 관련 도구의 처치를 하나 입력한 상태였다. 할 거면 지가 하든가, 라는 생각을 어떻게 안 해, 그걸 보고. 이래도, 니가 하려다 나한테 넘긴 게 아냐?






퇴근은 늦었다. 괜찮았다. 내일 오프니까. 응급실에서 올라온 그 환자도 또 그 주치의 몫이였다. 아침 여섯 시 반이나 오후 네 시 반이나 똑같이 앉아서 미친 듯이 처방을 내고 의무기록을 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똑똑한 놈도 저렇게 사는구나. 저게 팔자인가.

돌고래보다 못할 지능을 가지고 몸으로 때우는 삶을 사는 나나, 아침 그 환자의 자리로 한참 이전에 입원했던 그 허약한 동년배나. 그걸 이 정도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그것과 비교하면 신분차이가 너무 나나? 근데 그게 팔자잖아.


알콜성 간경변 맞은편에 있던 아저씨는 유단자였고 태권도와 각종 무술 및 체력 단련에 도가 텄으나 한 달 전부터 시작된 다리 통증으로 지금은 십 미터도 똑바로 걷질 못했다. 당신 입으로는 자기가 꾀병을 부리는 모양이라고 그랬지만 아픈 건 아픈 거였다. 늘어진 것 같은 장딴지 살을 찝어보이며 그랬다. 이게이게, 다 근육이 있던 자리란 말이야. 어휴, 나이가 드니까 별 데가 이렇게 아파. 나 꾀병이지? 내가 꾀병이라 그래. 글쎄. 그렇게 살았으면 나와야 했을 아웃풋. 당연히 지하 1층 편의점도 못 가게 절뚝이는 모양새는 아니었을 텐데.




탈의실로 와서는 청첩장을 버렸다. 찢어서 버렸다. 혹시나 해서 집까지 가져와 버리려 했는데 그냥 버렸다. 다른 뜻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내가 버린 건 몰라야 하니까. 병원 물건을 집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았고, 애초에 갈 결혼식도 아니었다. 축하는 축하고, 귀찮은 건 귀찮은 거. 어차피 몇 시간 후 각 병동의 나이트번들이 그 탈의실로 들어오기 전에 한 번은 비워질 쓰레기통. 후련했다.


결혼. 하든가 말든가. 해서 행복하면 됐지, 뭐. 왜 그렇게나 하고 싶은 걸까 생각했다. 나는 그 알콜중독 환자의 입원 이후 내내 생각했으니까. 팔자라는 게 있는 건가, 하고. 애초에 남남. 술담배는 알아서 끊지도 못하고 스스로 몸을 망쳐 가던 사람.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인생을 망가뜨릴 이유는 많았지만 이건 너무 명확한걸.

그 남자의 음주와 흡연으로 인해 망한 건 그의 삶이 아니었다. 그 사람과 엮인 다른 이들의 인생이었다. 정말 오만한 생각을 했다. 그게 그 여자 팔자였을까. 그러니까 그냥 버리고 떠났어야죠, 조짐이 보였을 때.





살면서 모든 불행을 피할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둘이 되면 당연히 더블링되는 불행. 그걸 끌어안고도 사는 처절한 게 사랑인가보다 생각했다. 진짜 쪽팔리지만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나는 쉰몇살 먹고도 직장생활에 찌든 채 남의 성인용 기저귀를 사다 나르고 집안의 소주병을 치우는 삶을 기록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리고 남의 삶을 난도질해 동정한 대가로 생각한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불행을 가져다줄 사람일까, 하고. 내 팔자에 기록된 불행은 어떤 거고, 그걸 덜 증폭시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뭘 더 피해야 할지 떠올렸다.


엄마가 쪼끄맸을 나에게 장난처럼 떠들던 내팔자야, 가 생각나 그렇다. 내팔자야, 내 팔자야.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2화메틸렌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