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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데이

by 이븐도



좋아한다는 건 결국 한쪽 눈만 뜨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인가 싶다. 신기하다. 근데 평화롭기도 하고.






솔로콘서트에 갔을 때 응원봉을 몇 번 떨어뜨려서 금이 갔다. 접착제로 붙여볼까 했으나 어차피 흔들어대는 물건이라 오래 못 갈 것 같았다. 컴백할 때쯤 새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그냥 그 날 새로 주문하려 했다. 그런데 너무 비쌌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품절 표시만 떠 있고 다른 사이트에서는 몇 만원은 더 얹어 줘야 했다. 그래서 미뤘다.


2년도 오래 갔다고 생각은 간간이 했다. 나보다 잘 나가는 사람, 잘 버는 사람, 잘난 사람. 또 잘난 사람들. 퇴근길에 지겨울 만큼 때때로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사랑받는 게 직업이라 좋겠다, 라고. 팬싸인회, 음악방송, 공개방송, 콘서트. 일은 일이지만 결국 환호해 주고 소비해 주는 사람들 앞에서 펼치는 재롱. 부러웠다. 돈을 얼마를 벌고 뭘 어떻게 분투하든 결과 앞에서 그들은 늘 빛나는 사람들이라는 게. 그 업계에서 이십 년 가까이를 버틴 재능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빼도, 밑도 끝도 없이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미용실에 갔다. 염색을 다시 했다. 머리를 감고 긴 시간 안마의자에 누워 있었다. 몰랐는데 안마의자였다. 누가 머리를 조심럽게 만져 주고, 감겨 주고, 마사지해 주고, 뭘 마시겠냐고 묻고, 부드럽게 말하고, 존댓말을 써서 질문하고, 그 와중에 몸은 노근하게 풀렸다. 졸려 죽겠는 걸 참고 나온 거였지만 할 일을 하나 없앤 것보다는 예상치 못하게 관리를 받는 기분이었다.


증권사에 가야 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데이 근무, 오늘따라 늘어지는 인계. 분명 중요하지도 않은 걸 수선생이 오호호 하며 자기만 신난 채 말하는 시간. 내내 초조했고 열받았다. 시간 맞춰 가도 결국 안 해주겠다고 한다면, 로비에서 개지랄이라도 떨어대리라 비틀린 마음을 먹고 택시를 불렀다. 오후 세 시 병원 엘리베이터는 내려오면서 오만 층에 다 선다. 내가 유니폼을 입고 있었을 땐 늘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 정작 내가 엘리베이터 문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려 하니 문이 닫혔다. 모두 멀뚱히 서 있기만 해서.


환자복을 입었든 스크럽복을 입었든 사복 차림이든 그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뭣 같았다. 택시기사는 전화를 걸어 차 댈 데도 없는데 언제 오냐고 구시렁댔다. 금방 내려간다고 말했다. 차에 탔다. 빨리 가 달라고 하고, 라디오를 꺼 달라고 했다. 그는 네비대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했다. 빨리 가 달라고. 그리고 그는 또 네비대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가서 그는 본인 때문에 화가 났냐고 했다. 아니라고 했다. 한 마디만 더 하셨으면 나는 거기서 폭언 비슷한 걸 퍼부었을지도 모른다. 도착해서, 안간힘을 써 감사하다고 인사한 후 내렸다.





복도에서는 임종을 앞둔 누군가의 보호자들이 끊임없이 울고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그리고 환자는 아직은 사실 멀쩡한 건지 계속해서 마지막 말 같은 걸 이어갔다. 일하는 데 거슬린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갈 데까지 간 모양이니 어디서든 좀 닥치고 있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생각했다. 아니면, 원래도 정말 그랬나, 하고.


나는 원래 성격이 나빴다.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기에 언제든 임계점을 넘으면 누가 나를 죽여도 아쉽지 않을 것처럼 난리칠 수 있었다. 일할 때는 참아야 했다. 원래 밥벌이가 그런 거니까. 시야각 저 끝에 걸린 사람도 뭔가 이상한 것 같으면 도움을 줘야 했고, 거슬리는 소리가 나면 달려가서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야 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친절한 척 꾸몄고, 생글생글 웃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나를 족치는 선임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그렇게 참고, 참고, 또 참고, 어떻게든 계속계속 참고 병원 밖을 나서는 길에는 머리가 다 마른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해서. 또는 뭐.. 원래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싶은 마음.




언제더라, 무슨 공연 일정 때문에 휴대폰 관련 일을 매니저가 해 줬다는 언급이 있었다. 애초에 그 대상과 나는 아주 다른 세계 사람이었는데 그런 게 생경했다. 새삼. 나는 시간을 내고 잠을 줄이고 잔뜩 기다린 후 내 힘을 또 빼서 해야 하는 그런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있는 거구나. 필요하지만 시간은 항상 안 맞는 일을 해결하려 전철 시간에 맞추려 숨 차게 뛰는 일도 영영 없을 거고, 매일매일 아파 예민한 사람들 앞에서 웃으면서도 다음 일 우선순위를 생각하고 어디에 또 전화를 걸어 빌고 실수한 게 있는지 찾고 또 웃고 비는 일도 없겠지. 대신 그렇게 머리를 손질받고 화장을 받고 매무새를 정돈받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일'의 일환이었다.


또? 그 나이에, 남사스러울지언정 이런저런 요구들을 듣고서 애교며 공감에 응해 주는 게 '일'이었다. 그런 리액션? 깊게 할 필요도 없잖아. 몇 초쯤 진정성 있게 꾸며내면 끝인걸. 내가 병원에서 8시간 내내 하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거기서 올라오는 이상한 박탈감 같은 걸 늘 모른 척했다. 그래서 어쩌면 덕질은 피곤했다. 눈을 반쯤은 감고 있어야 해서. 힘들어요? 뭐가 힘들어요. 힘들었다는 말도, 힘내라는 말도, 어떤 공감하는 멘트도 역해지는 순간이 왔다. 무시했지만 무시할 수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안 힘든 일, 없지. 다 각자의 고충이 있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너무 비뚤어져 버린 데 있었다.






긴 시간을 견뎌 아직 건재히 활동한다는 점이 멋졌다. 어쩌면 딱 거기까지로 남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신기하다. 어떻게 이렇게 다 말라 버렸지. 응원봉을 버리는데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혹시 그래도 다시 살까 생각했지만 그게 차지하고 있을 공간이 벌써 거추장스러웠다.


어떤 사건사고가 있던 것도, 팬들을 서운하게 할 만한 이벤트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썼던 돈과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행복했으니까. 놀랐다. 공연장에서 찍은 사진들. 예쁘지도 않은 내가 나온 것만 남기고 다 지웠다. 그 와중에도, 그 때의 나는 너무 즐겁고 좋아 보여서 신기했다. 와, 나 예뻤네?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해 보여서.





방을 재계약했다. 24년 콘서트 포스터가 꽤 마음에 들었었다. 뒷모습만 나온 공연장의 그들. 떼고 다른 걸 붙였다. 벽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어진 기분이라 묘했다. 이 집을 나갈 때까지 붙어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웃기다. 나는 승영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언젠간 해야겠지. 아직은 아니다. 혹시 모르지. 그 전에 또 갑자기 와 너무 멋있다 너무 귀엽다 너무 잘생겼다 아 너무너무 좋다 하는 순간이 올지.

마음이란. 정말 물이 가득차 있던 둑이, 한여름 흙바닥마냥 쩍쩍 갈라지기도 한다. 흔적도 찾을 수 없어 나조차도 놀랍다. 어떡하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래도 되나, 싶어서.


정말로, 진짜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려서. 무섭다. 뭐가 문제라 이렇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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