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카노
당직이 복도에 기대서 한참을 전화했다. 신기능이 거의 다 망가진 상태고, 암 합병증으로 심기능도. 네네, 신장이랑 심장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머니께서는 의사소통도 잘 되시고 의식도 명료하신 상태지만, 언제든.. 네. 목숨줄을 약으로 붙여 놓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지금 시간이 늦어서 방문이 어려우실 텐데 구두로라도 확인을 받아야 해서 그렇습니다. 집중치료실에 계시긴 하지만, 저희 병원 중환자실로 실제로 입실하실 건지, 그런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을 하실 건지요. 어머니께서는 안 하시겠다고 하셨지만 아드님들 의견도 들어봐야 합니다. 자제분들 다 연락 되실까요? 네네.
통화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병실 문을 닫았다. 당직은 전화를 끊고 오더를 낼 테니 일단은 스탠바이 시켜 놓고 떨어지면 바로 주자고 담당에게 말하고 떠났다. 그리고 옆의 담당이 나한테 하는 말. 선생님, 문 닫아 놓으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초록불 환자가 싫다. 정확히 말하면 그걸 띄워 놓는 응급실 놈들이 싫다. 뭐 당연히 자기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 막상 받아 놓으면 그냥 너무 빡빡 우는 애거나 단지 부모가 지랄맞은 애인 경우도 있었다. 주변에 애들을 받아주는 병원이 적어 이 쪽으로 모든 응급 소아들이 몰렸던 소청 근무 시절에는 그랬다. 때때로 교수 자제기도 했다.
아무튼 응급의 응급이라는 뜻이다. 빨리 받으라는 의미. 몇 분 안에 병동으로 올려받지 않으면 사유를 입력해야 한다. 나야 지표든 점수든 알 바 아니지만 수선생과 간호부와 진료과는 아니겠지.
출근했을 때부터 응급실 환자가 떠 있었다. 초록맨. 근처의 중소형 병원에서 입원한 게 다였다. 원래 엄청 아팠던 사람도 아닌데 왜 초록불이야 싶었다. 다른 환자가 바빠서 응급실에서 뭘 했는지 자세히 보지도 못했다.
외래 입원 63세 할아버지는 혈압이 220에 몇이었다. 도관을 하나 박고 투석을 한 번 하고 왔다. 저녁이 되자 초록불 환자가 올라왔다. 그 초록맨을 받느라 투석실에서 온 후 그 환자의 혈압을 못 쟀다. 그동안 그는 40분쯤 병상에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혈압은 195에 101이 나왔다. 니카디핀을 입원하자마자 네 번은 줬는데. 당직은 CIV처방을 냈다.
왼발에 엄청나게 큰 물집이 잡힌 그 응급실 초록불의 혈압은 250에 140이었다. '왕건이' 환자였기에 그 때까지도 집에 못 간 주치의는 내가 스테이션으로 가서 숫자를 말하자 아 환장하겠넹, 하고 웃었다. 병동에서 CIV 다나요? 달아야겠다, 달죠. 하면서. 금요일. 항암이나 단기 투약 환자 입원이 많은 날. 인퓨전 펌프가 없었다. 옆 병동에서 간신히 하나를 빌렸더니 그새 전화가 와서 그거 몇 층에서 이미 가져가기로 연락을 받아놓은 거라고 했다. 내가 근무했던 곳. 애들 렘시마 주는 거 급하지, 근데 그게 250에 140보다 급해?
안과 협진에 심초음파에 응급 CT에 MRI에 절개배농 몇 번을 하느라 병동 입원이 늦었다. 교수는 기다리다 집에 갔다. 주치의는 보호자를 절대 집에 보내지 말라고 했다. 오자마자 그녀와 그에게 얼마나 상태가 나쁜지에 대해서 말했다. 언제든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투석을 해야 하고, 하신다고 해도 엄청난 호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주치의는 젊고 키가 컸고 잘생긴 사람이었다. 목소리며 대화 톤이 좀 가벼웠다. 그래서 그 말이 그렇게 심각하게는 안 들렸다. 모 교수였다면 좀 더 심각하게 들렸으려나 싶었다. 그는 그의 운명을 모르겠지.
그 발 상처가 어쩌다 이불 등에 스칠 때 말고는 아프다는 소리를 안 했다. 혹시 무슨 일을 하셨었죠? 택배 일 하고 골프 레슨 했습니다. 아아. 원래는 특별히 문제가 없으셨던 거죠? 네네. 건강했습니다. 네. 이제 주말이라 크게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일단 피검사 수치 보면서 항생제 쓰고, 월요일에 다른 과에서 답 주시는 대로 검사나 처치를 추가로 할 거예용. 너무 아프시면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꼭 말씀하시구요.
데이번한테 인계를 받으려 하니 '캐릭터 주의' 라는 말이 추가되어 있었다. 이거 뭐예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 그건 아니고.. 밤에는 좀 많이 짜증내시고, 여튼 좀 특이하셔서. 밤에 화 냈어요? 왜? 잠을 못 자게 한다고. 아 그건 뭐 계속 니카 조절해야 하는 건데 어떡해. 그거랑, 제가 대변 보시면 말해 달랬더니 왜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럼 누가 갈아 주는 거냐고 하면서. 그럼요, 제가 갈죠. 하니까 아아 똥이 쏙 들어가네. 하고 웃더라구요. 아. 그래요? 알겠어요. 그래서 혹시 되면.. 지형쌤한테 부탁을 드려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뭐, 남자라서? 됐어요. 안 급한가보지. 제가 할게요.
그가 실제로 특이했는지는 모르겠고, 아직은 존엄을 못 내려놓은 사람 같다고 느꼈다. 내 근무 동안 두 번 정도 대변을 봤다. 그리고는, 이쪽으로 돌아누워 주세요, 네네. 이쪽 잡으시고, 천천히, 등등의 말에 따르며 계속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라고 했다. 사람이 똥 싸는 건 미안할 일은 아닌데. 그러니까 아직은 화장실로 걸어들어가 문을 잠그고 변기에 앉던 때의 사고방식을 못 버린 거였다. 어떻게 버리겠어. 버릴 필요가 있나? 그런데 사실 내가 보기에는 그는 이제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아닌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보이긴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연명의료중단 동의를 친족들에게 구두로 받아야 했던 그 환자는 60살 여자였다. 80쯤 되었나 했더니 나이가 겨우 그랬다. 엄마가 몇이더라. 물론 그 사람은 폐암 말기였다. 그러자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 날의 나이트가 끝나고 친구와 구내식당에서 라면을 먹었다. 라면이나 먹고 싶다, 하고 메신저를 보냈더니 아침에 지하에서 먹고 가자, 라고 했다. 싫었다. 죽어가는 인간들과 멸시만 남은 코워커들이 가득한 곳에서는 빨리 나와야 했다. 그녀는 나보다 2년 늦게 입사했다. 요새 탈의실이나 바깥에서 마주치면 활기가 넘쳤다.
일한 지 2년. 딱 그런 시기인가 싶었다. 나도 그랬는데. 2024년 상반기쯤. 물론 그 땐 병원이 좀 텅텅 빈 시기였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했고. 그래도 그 땐 지아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그랬는데. 다 옛날 얘기니까 미화된 거겠지만.
로맨틱하다. 먹고 싶다니까 진짜 먹게 해주네. 야, 야 이거 물 버려야 돼. 어? 좀 싱거워. 이거 하나 더 꺼내서 물만 받아. 오키? 대단하다, 야. 맨날 죽상이던 그녀는 이제 나이트가 끝나면 꼬박꼬박 구내식당 메뉴를 체크해 밥을 먹고 씩씩하게 퇴근하는 일원이 됐다. 아니,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 내 기숙사 애들도 그렇게 말하더라구. 물이 많아. 그녀는 콩나물과 파를 야무지게 넣은 참깨라면을 끓였다. 나 어제 강남역에서 어떤 아저씨가 팍 쓰러지는거야.
누가 그래서 거기서 의사나 간호사 없냐고 소리지르더라? 그래서, 갔어? 갔지. 일단 갔는데.. 이미 누가 엄청 안정적으로 컴프레션을 하더라고. 손바꿔서 나도 하다 보니까 구급대원 오고. 와 너 뭐 뉴스 나오는 거야? 멋지다. 아니지. 근데 그 사람은 뭐야? 아. 학생이래. 야, 그사람 의대생인 거 밝히니까 거기 서 있던 할아버지가 엄청 역시 의대생이라 사람 살린다고 하더라. 걔는 나보고 혹시 현직자냐고 묻고. 그래서? 말했어? 뭘 말해. 대충 얼버무리고 집왔지. 멋있다, 너.
너도 갔을 거 아냐? 넌 그런 적 없어? 나? 안 하지. 왜? 한다고 사냐. 에이. 다르지. 그래서 그 사람은? ROSC 된 것 같던데, 다행이지. 다행이야? 그렇게 살아서 뭐 해. 이미 망가졌잖아. 야. 너 많이 바빴냐, 싸게싸게 집가야겠다.
인계를 받을 때 데이번은 '그래도 오늘은 10호실은 안 보잖아요' 했다. 사실 친했다면 좀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근데 왜 보기 싫은 거예요? 기저귀 많이 갈아야 해서? 비피 왔다갔다해서? 난 그녀의 꺼먼 얼굴을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빴다. 괴로울 것까지는 없고 기분이 그랬다. 그녀의 친지는 분명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를 애매하게 알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연명을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녀는 분명히 살고 있었으나 형태는 지나치게 잔인했다. 사람은, 치유되지 못한 엉치 욕창과 못 쓰게 된 도관들을 가지고 죽는다. 지름 15센티미터는 넘어가는 것 같은 그 뻥 뚫린 상처의 조직에 묻은 대변을 닦고 연고를 뿌릴 땐 내가 다 아팠다. 보호자는 이런 걸 알까 싶었다. 이러고도 살려 놓고 싶을까 궁금했다. 근데 퇴원은 언제 할까요? 라는 말에는 여기서 익파할 것 같다는 말을 참았다. 그건 모두의 기정사실 아닌가. 모르지, 여기서 겉도는 내가 굳이 그런 얘기를 나눌 필요도 없긴 하고.
명줄을 쥔 사람. 물론 보호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저승사자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질 게 아니라 붙들어두는 중인 상태. 본인들도 알고 있었다니. 다들 똑같이 느끼는구나. 저건 사는 게 아니라 연명이라는 걸. 가운을 입은 사자구나. 의사들.
내가 언제까지 미달일지 모르겠다. 당초에 브런치 계정을 열었을 땐 혹시 내가 유명해질까 생각도 했었다. 웃기게도 그렇다. 그리고 지금은 그럴 일이 없어 너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여긴 감정과 장면의 쓰레기장이다. 잊어야 하고 버려져야 할 것들이 남은 페이지.
혼자 메모장에 쓴다면 처음과 끝을 마무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실히 버리지 못할 것들을 모은 곳. 곧 아무것도 아닐 일들.
백의의 전사 또는 천사가 된 것 같은 친구가 신기하다. 난 뭐지? 다른 의미로도 신기하다. 진심이구나. 자기 일에.
여기가 어느 정도의 바닥일지 궁금하다. 그걸 알면 내가 느끼는 게 어느 정도의 비정상인지도 객관화할 수 있으니까.
근데 해서 뭐 하나 싶기도 하고. 지옥이 아닌 일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