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ity

엄마 미안

by 이븐도





밤 열두 시가 다 되어 출근하는 택시를 잡는 기분이란.






알아서 다들 사들고 오는 커피보다는 과자가 낫겠지 하는 생각과 망했다는 생각과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편의점에서 오예스와 초코하임과 화이트하임 등등을 몇 박스씩 사들고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고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죄송하다고 전했다.


근무는 평화로웠다. 내가 11시까지 꿀잠을 때린 탓에. 그리고 함께 근무한 사람들이 정말 사회적 지능이 높은 친절한 사람들이었던 탓에. 모든 게 한 차례 다 휩쓸고 지나간 열두 시가 넘은 병동. 조용했다. 병원은 정말 사람을 갈아서 돌아가는구나 생각했다.




밤이면 최대 열네 명의 환자를 봐야 했던 소아과 근무 때는 그런 꿈을 자주 꿨다. 열 시 이십 분 인계. 아홉 시 오십오분에 잠에서 깨는 꿈. 개꿈. 허겁지겁 병원에 도착해 열한 시 십오분쯤에야 아무것도 못한 채로 겨우 라운딩을 나가는데 한 명 걸러 한 명이 열이 나고 주사에 문제가 생기고 애가 토했거나 똥이 묻었으니 시트를 바꿔 달라는 일이 반복되어 뭘 할 수가 없는 그런 거. 똑같은 일상이지만 내가 늦게 일어났기에 지독해지는 전개.

그렇게 나는 두 시가 되어서야 겨우 라벨을 뽑고 수가를 넣기 시작하고 응급실에서 올라오는 입원을 받고 오더는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정해진 일만 간신히 하고 뒷턴에게 뭐 같이 털리고 머리가 지끈할 때까지 집에 못 가는 그런 꿈. 언젠가부터는 안 꿨다. 안 꿨더니 현실이 됐네?




나이트. 아침 아홉 시. 퇴근. 열한 시에 잤다. 두 시에 한 번 깼다. 밝아서. 그리고 다시 네 시쯤 잠들었다. 그러고? 배달시킨 게 없는데 누가 저렇게나 벨을 누르나 했다. 끈질겼다. 좀 꺼져라.. 생각하다 깼다. 집이 너무 어두웠고 아빠와 엄마에게서 무수한 부재중이 찍혀 있었다. 경찰이니 문을 열어 달라고 했다. 이 집에 경찰이 몇 번 왔더라.


두 번. 오늘로 세 번. 내가 출근하지 않자 병동에서는 본가에 전화를 했고 엄마아빠는 내게 전화를 했으나 받질 않았다. 방법이 없어 그들은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뭐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층계를 내려가 저 괜찮다고 죄송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경찰관들은 나와서 얼굴을 보여 주셔야 저희가 갈 수 있다고 했다. 잠옷 차림에 허연 얼굴을 한 나를 보고 한 명이 어디 아프시냐고 했다. 그런 거 아니고 그냥 늦잠을 잔 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밤 열한 시에 늦잠이라는 말도 웃기다. 그들도 꽤나 어이가 없었을까?




아침에 수선생은 이래서 간호사들은 근처에 살아야 한다고 했다. 어느 직장인이든 일터 근처에 사는 게 낫긴 하지. 하지만 막상 그 말을 들으니 반성 비슷하게 하고 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나이트를 같이 한 사람들이 다 너무 잘해 줬기 때문이다. 그게 고작 환자 한 명씩을 더 잠깐 보는 거라도 열은 받았을 텐데. 수선생은 뭐,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여기 사느니 그냥 병원에 티셔츠 몇 장 갖다놓고 기거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떤 작가였나, 에펠탑이 너무 싫어서 매일 그 에펠탑 안의 카페였나 식당을 갔다고 했다. 거기가 파리 전역에서 그 흉물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라. 모두 병원 근방에 사는 동기들과 만나야 할 때마다 나는 무진 신기함을 느꼈다. 대체 여기 어떻게 살 수 있는 거지, 하고. 아니면 내가 사실 너무 회피해서 스트레스도 큰 건가? 여하튼 싫다. 그래서 오히려 퇴근할 땐 기분이 좋았다. 건물에 돌이라도 던지고 나온 기분이라서.

그리고 글러처먹었다고 생각했다. 이 나이 먹고 무단지각이나 하고서 상쾌함을 느끼는 게 정상인가, 하고. 복합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래, 그렇게나 많이 잤으면 그럴 수 있지.






관둘 때가 된 것 같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진짜 글러먹었어. 그치? 했더니 그게 수간호사의 재능 아냐? 똑같은 말도 그렇게 하는 거, 랬다. 오늘은 무파마에 파와 콩나물을 넣은 라면. 아니, 지가 일했냐고. 뺑이친 건 남들인데 왜 지가 그렇게 말해. 몰라. 이래놓고 반성도 안 하는 나도 참 갈 데까지 갔나봐. 니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수가 말을 그렇게 하니까.. 자기가 집 구해줄 거야?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러지.


나 보호자가 필요해. 어? 어그래. 야 나랑 살자고. 너 최근에 비스트 오빠들 말고 누구 앞에서 이렇게 웃은 적 있어 없어, 라고 했다. 그녀는 네 시쯤에 어떤 계시 같은 게 들어서 갑자기 병실로 갔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환자가 옷을 다 벗은 채 달고 있던 5DS는 침대에 널브러진 상태로 앉아 있었다고. 옷을 갈아입고 싶어 수액은 어떻게 환자복 속으로 팔을 넣어 뺐는데 그걸 다시 집어넣지는 못하겠어서 그러고 있던 거라고 했다. 아침에 알부민을 줘야 했는데 루트는 당연히 하나가 빠져 있고. 친구는 그러셨군요 했다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겼다. 12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오는 내내 웃었고 식당으로 향하면서도 웃었다.


안 그래도 생리하느라 배가 아픈데 정말 복부가 끊어질 것 같아서 멈춰 서야 했다. 그리고 친구는 또 옆에서 그래 웃으면 복이 와, 라고 했다.






비스트 오빠들? 걔들 보고 최근에 웃은 적 없는데? 잘 보지도 않아. 너 보고 이렇게 웃은 게 다일걸? 이라고는 말 안 했고. 그게 어떤 건지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처지라 그렇게 웃긴가보다, 했다. 걔가. 그런가. 안 그래도 잠 못 자고 우울해해서 NP 컨설트 다시 봤거든, 그 사람. 근데도 잘 못 자니까. 아 막 별일은 아니라서 다행이라 싶긴 한데 또 루트 잡고 치우고 생각하니까 화는 나는데 말을 들어보니까 납득은 되고. 그래. 그거다. 공감? 공감.

온몸에서 기운이 좀 빠지는 기분인데 그나마 중심정맥관도 담도배액관 같은 것도 섬망도 아니라 그만하길 낫다는 안도감. 그리고 친구는 마곡 사는 사람과 소개팅을 받았다고 했다. 보호자, 보호자라.




근무는 끝났고 고과는 수선생이 알아서 깎을 거고 남은 건 엄마와 아빠. 딸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라. 작년의 보이스피싱 때문에 그랬느냐고는 물을 수 없었다. 당연히 그랬을 것 같아서. 피해 사실을 안 새벽에 경찰이 자취방에 왔었고 사기범에게 전화를 걸어 쌍욕을 하며 소리를 지른 직후에 내가 호출해서 경찰이 또 왔었다. 엄마아빠 오실 때까지만 같이 있어 달라고. 그리고 오늘.

타지에서 알아서 출퇴근하고 밥먹고 혼자 놀면서 지내는 다 큰 딸. 자느라 전화도 안 받는 딸. 상태를 알아낼 수가 없어 선택한 방도. 원랜 이사를 갈까도 생각은 했는데 그냥 살았다.


보호자? 보호자. 며칠 전에 응급실에서 입원한 사람.160에 29kg. 이전 기록상의 몸무게는 36킬로그램이었으나 그 다음날 잰 걸 보니 29였다. 정말 뼈에 가죽밖에 없었다. 가죽도.. 뭐, 좀 싼 인조가죽 같은 거. 특정 질병 감염력이 있다는 사실을 와이프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인계가 넘어왔다. 그러나 차지는 그들을 슬쩍 보고서는 스테이션으로 나와서 말했다. 아는 것 같지? 얼버무리는 게 아는 것 같아.


물증은 없었으나 그녀가 그런 것 같다고 하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감염내과 약만 딱 두 개 복약 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해당 질환의 치료제였다. 모르기가 더 힘들겠지. 저 정도 중증인 사람과 같이 사는 보호자인데. 그리고 그에게도 정신과 협진이 났다. 죽고 싶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죽고 싶을지도. 입원을 받을 때 그는 쇳소리 같은 목소리로 내가 묻는 질문에 답했다.

미라 같은 몰골과 다르게 제정신인 답변들을 했다. 여기 어딘지 아세요? 병원 말고, 라는 말에는 이 병원 로고송을 따라 부르는 것 같았고, 제가 뭐 하는 사람이예요? 하자 미스코리아? 라고 했다.




몸무게는 다 빠지는 동안 아직 최후의 사회성까지 다 끌어모을 정신력만 남은 거였다. 안 죽고 싶은 게 더 이상하지. 내 어떤 과거도 다 아는 것 같은 보호자도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게 삶의 무게였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보호자가 나눠 줄 순 없는 거. 우울평가? 하면 뭐 해. 누가 봐도 그렇잖아. 어떤 신경정신과 약도 천년의 사랑도 해결해줄 수 없는 게 있다. 보호자의 기능에도 한계가 있는 거지.






그러니까 보호자는 보호자인 건데. 나 대신 급한 연락을 좀 받아주고 아직 살아있을 엄마아빠에게 의도치 않을 완충지대가 되어야 할 사람. 어쩌면 나도 그래야 할 거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주제에 배우자 조건만 늘어가면 안 되는데 인생이 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사실 어제오늘 일도 아닌 걸 보면 늘 그랬던 거지만. 언제나 혼자 좀 잘 살고 싶었으나 어째 그게 그렇게 탐탁치 않은 모양새 같아서. 안 물어봐도 알 것 같아서 문제다. 엄마와 아빠는 이 일 이후로 또 빨리 쟤를 어떻게든 시집보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을 거란 걸.


이게 맞나 싶은데 그래서 정말 엄마아빠에게는 그 친구 번호를 알려줬다. 근데 거기까지다. 뭐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누굴 만나고 있었어도 그 사람 번호를 알려줬을 것 같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호자. 보호자라. 어쩌면 그냥 더 강력한 알람시계를 사면 될 일. 어쩔 수 없다.

보호자든 부모님이든 모든 일을 막아줄 수는 없어서. 퇴근길 교통사고도 대상포진도 보이스피싱도 뭐 아주아주 늦은 늦잠에 공권력을 알람 삼아 깨는 이 행태들을.. 어떻게 다 막아. 한심하지만 그렇다. 노력은 하겠다만.



하나는 확실해졌다. 이제 내가 가족 단톡을 오랜 시간 안 읽거나 전화를 늦게 받는 건 정말 큰일이 될 거라는 거.

몇 년간 해온 교대근무라는 방패가 없어졌다.


내가 깨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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