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

요요카 꼬로록

by 이븐도




운명이나 기적 같은 거, 있을지도?






나는 그녀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신기했다. 저런 걸 다 알고 어떻게 세상을 등지지 않나 하는 웃긴 생각이 들어서. 보통은 세 가지로 본다고 했다. 소수자, 특정 국가로의 여행,그리고 완전한 불운. 치는 않지만.

첫 번째, 딱히 설명이 필요 없고. 두 번째? 대체로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고 했다. 열 명이 단체로 갔는데 왜 나만 걸렸냐며 스테이션에서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다고. 마지막. 어린 애들이 많다고 했다. 클럽이나 동남아시아 등지를 는데 눈을 뜨니 낯선 곳이고.. 하는 전개.


원내 감염은 별개로 쳤다. 니들링 같은 건 아예 배제한다는 거지. 그럼 애초에 이렇게 추리하듯 케이스를 나눌 필요도 없으니까.





아내분께서 아시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었다기보단 아무튼 아니라는 뜻을 비쳤다. 나는 그 뜻을 오독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비밀 같은 걸 병실 사람들이 알게 되지 않게 하지 않는 선에서 답을 유도해 내느라 세네 번은 같은 말을 했다. 이래저래 소곤댈 수도 없었다.


가실 병원 수소문을 보호자분이 해 주셔야 하고, 그러자면 저희 쪽에서는 그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다고. 혹시 아시냐고. 그는 모른다고 했다. 모르세요? 그랬더니 다시 까딱까딱. 모르신다는 거죠? 그는 아마 꽤 고학력자였다. 입원 당시 아내에게 학력을 묻자 대학원이라고 답했다가 대졸이라고 말을 바꿨기 때문에.

그는 인상을 찌푸 아니라는 뜻을 표했다. 아. 모르시는지 아시는지를 모르신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는 입꼬리를 늘렸다. 맞다는 뜻. 모르는지 아닌지를 모른다.




까만 수첩 같은 게 있었다. 그는 목울대로 말했다. 그 소리로 기척을 내면 나는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지 가래가 잘 안 나오는지 휴대폰이나 안경이 어디로 숨었는지를 확인했다. 그는 수첩을 손가락에 낀 채 볼펜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왜요, 안 나와요? 두 자루. 모나미 볼펜. 하나는 아예 안 나왔고 하나는 시원찮게 나왔다. 그의 손가락은 그 흔해빠진 볼펜과 두께가 비슷했다. 카트를 뒤져 네임펜을 손에 쥐어 줬다.


차락 지나간 수첩에는 장례, 같은 단어가 엉망으로 쓰여 있었다. 좋은 펜 나쁜 펜 가리지 않고 서툴게 힘줘서 끼적인 애들 낙서 같은 글씨. 생각해 보니 그랬다. 멀쩡한 상태로 쓸 수 있는 유서 같은 건 없을지도.






교수도 난감해했고 진료협력센터에서는 보호자에게 언제 연락을 하면 될지를 묻는 메신저가 계속 왔다. 처음에 그는 알려도 된다고 했다. 된다고 했다기보단 니들 좋을 대로 해라,에 가까웠지만. 주치의에 전담간호사에 수선생에 담당 교수까지 낀 그 회진이 지나간 후, 나는 아내에게 운을 뗐다.


약 드시고 계신 거 관련한 설명을 드려야 해서 의사 선생님이랑 말씀 나누셔야 되는데, 혹시 알고 계시냐고. 아, 약이요? 알죠. 어떤 건지 약품명을 아세요? 그건 몰라요. 약인 줄만 아는데. 아. 바이러스 관련 약인 걸.. 하며 나는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뱉으면서 망했다는 걸 알았다. 정말 모르는 표정이었어서. 전담은 분명 아내가 아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난 당연히 아는 줄 알았어요. 해탈이라도 한 줄 알았지. 그게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돌봐. 알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진짜 모르더라고. 교수님이 그 때 진단했던 선생님한테 연락했더니, 모르는 게 맞을 거래요. 외래도 항상 혼자 왔대. 그럼 십 년 숨기는 게 가능할 수도?


근데, 그게 보통 어떻게 나오죠, 했던 내 말에 그녀가 했던 대답이었다. 세 가지 경우의 수. 나이가 있는 남자니 세 번째는 아니고. 거기다, 본인이 예전에 일이라도 하다 그런 거면 배우자한테 애초에 숨길 이유가 없고. 그럼 둘 중 하나죠. 얘기해보신대요, 그만하면 오래 속였다고.

당장 전염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보균자 받아주는 병원이 잘 없긴 한데. 그렇다고 여기 계속 데리고 있을 수도 없으니까. 아, 말씀하신대요? 그런 것처럼 얘기하시던데요? 다음 주 중으로 그냥 갈 준비를 할 것 같긴 해요.






복귀하자 그 때의 그는 죽어 있었다. 자리가 비어 있길래 퇴원한 줄 알았다. 외래 베이스로 이름이 떠서 정말 집에 가셨나 했더니 그게 아니라 사망한 거였다. 누르니 표시가 검정색으로 떴다. 괜히 봤나 했지만 어차피 그 날 새벽에 임종한 거였다. 내겐 유책사유가 없다는 뜻.

중앙모니터를 보니 아직 그의 이름이 연동된 기기가 남아 있었다. 덜컹 했다. 정말 갔다니. 근무 시작도 전부터 뭐라 알 수 없어지는 기분을 막았다. 길거리 고양이나 비둘기가 죽어 있는 걸 봐도 묘해지는 게 사람인걸.




아내는 면회를 와서 그 분이 왜 없는지 물었다. 실상은 그녀가 오기 십 분 전쯤에야 정돈이 말끔히 된 그 병상을 보고. 가셨다고 답했다. 그녀는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제까지도 너무 괜찮으셨는데? 하고. 나는 그 때 병원에 없었으므로 그가 괜찮았는지 어쨌는지는 몰랐으나, 그녀가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건 알았다. 하긴, 이렇게 매일 면회를 왔으면 나름 자주 본 사람인 거니까. 같은 병실에서.


심사팀에서는 사망 환자의 미시행 검사 반납이며 검체 처리 문제로 계속 연락이 왔다. 외면하려야 할 수가 없는 그냥 일. 누가 죽었대. 헐. 슬퍼, 이런 거 말고 진짜 일. 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남편분께 이러이러한 감염력이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신가요. 그러나 실패. 대실패. 그녀는 정말 말갛게 몰랐다. 모르는거,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해. 그냥 직감이다.




그걸 진료과에 전달하고 나니 딜레마 아닌 딜레마였다. 교수도 딱히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문제부터가 잘못됐으니까. 없다 치는거, 아닌 척 사는 거. 틀린 거잖아. 결국 생각해 낸 게 해당 진단 당시의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 근데 그런다고 있던 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는 진료과의 판단에 따라 설명을 보류했다. 아아, 저희가 좀더 확인해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내일도 오시나요, 혹시? 하자 그녀는 그럴 거라고 했다.






출근. 그 콧대 높은 우육면집에서부터 녹음했던 소리를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제각기의 대화에 열중한 그 소리. 삼십 분이 조금 넘는 녹음. 노포. 나이 많은 딴딴한 몸집의 여자와 팔뚝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계산대 주변에서 격의 없게 나누는 말. 나보다 어린 것 같은 여자 직원이 뭐라 안 밉게 징징이는 소리.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복작하게 국수며 밥을 먹는 다양한 사람들. 중국어인지 아닌지도 사실은 모르겠는 대화.

이어 공원에서 애들이 시끄럽게 노는 소리. 내 옆 벤치의 남녀가 논쟁을 벌이는 듯한 높낮이.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는지 한 겹 멀어진 채 들리는 음성들.




사건, 인과, 감정, 대화, 분노, 권태, 실망, 기대 등 모든 게 세면대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장면을 그렸다. 그게 낡은 파이프 같은 걸 타고 바다로 흘러들어가 마침내 아무런 형체도 없어지는 거.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가는 아주 멀지도 않은 땅의 다른 이들이 그렇게나 열심히 지내는 모양새가 실상 나에게는 어떤 울림도 주지 못하는 소리로 흩어진 것처럼. 아무리 짙고 옅은 것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 맑고 넓게 모였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어쩌면 그 여행이 내게 준 가장 실질적인 희망. 누구도, 무엇도 주인공이 아니며 어느 것도 대단한 일이 못 된다는 것. 뭘 알아들어야 그게 무슨 일이고 어떤 무게인지를 알지. 외부에 선 이에게는 그 어떤 묵직한 사건도, 전자렌지에 햇반 돌아가는 소리보다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평안했다.






그는 내가 콧줄로 약을 주고 나자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접은 종이가 끼어 있었다. 나한테 주는 감사 쪽지 같은 건 줄 알았다. 수첩을 뜯은 종이쪽. 반은 모나미 볼펜으로 쓰다 만 그 엉망인 글자. 나머지는 내가 건넨 파란 네임펜으로 쓰인 글자. 나의 병명과 사인이 장례까지 모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말씀을 안 드렸으면 좋겠다는 뜻이신 거죠? 라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한 긍정. 나는 그 흔들리는 글씨가 적힌 종이쪼가리를 주치의에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렇게 찾아가 노티하기 편한 사람이었다.

아, 근데 어떡해. 안 알릴 수가 없다는데? 나 썼어여, 진협 의뢰 이미 썼는뎅. 교수님한테 말은 해 볼께용. 어뜨케, 근데.




하수구. 모든 것들이 다 모여드는 하수구. 결국은 큰 물로 모이겠지. 잘 모르지만 그건 맞잖아. 오염된 바다? 그런 자잘한 오물보다는 페트병이나 비닐 봉지나 유조선 침몰 같은 게 눈에 띄었는데. 보통 어디서 본 건 그랬는데. 그럼 그런 건 빼더라도. 이건 희석될 만한 사건일까,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정말 없을까 생각했다.

사실은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숨기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그 당시엔 그랬을 일. 그는 내게 덧붙였다. 뭘 자꾸 말하려는 것 같길래 사실 열 번은 가까이 물었다. 중요한 일이니까. 그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추측하자면 그랬다. 뭐가, 희생이? 기만이? 아니면 내가 모르는 뭐 어떤 게?






어차피 주말에는 교수가 없다. 주치의도 달이 바뀌니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나는 내일도 그다음 날도 이브닝 근무다. 보호자들은 오전에 면회를 온다. 내가 그런 말을 전하거나, 자리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통수를 맞는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참 뭐한 사건의, 아니. 시간 또는 신뢰의 스케일. 장례도 사망도 이제 그에게는 그리 극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그럼 그간 그의 옆에 있던 그녀에게는? 나는 내가 그 때 병원에서 그녀를 맞닥뜨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처럼 희석된 반응을 보이든, 그 사망 환자를 떠올리며 안타까워한 것과 비견도 못 할 어떤 형태든.




그래서 역으로 드는 생각. 사실 운명이나 기적 같은 것도 있겠다고. 이런 게 있다면 그런 것도 충분히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 전담이 말한 세 가지 케이스 바깥의 어떤 사유도 있을 수 있는 거잖아. 하수구를 거치고 폐수처리장을 건너 강에서 바다로 넘어가는 그 길목에 그런 게 하나쯤 없을 리가. 이런 게 있다면 그 반대도 있어 줘야지.


내가 내 눈 앞에서 못 보고, 못 알아들어 그렇지 다 뭐 그 땐 이유가 있고 기전이 설명되는 사건들이었을 테니.


우글우글 쓸리듯 떠 가는 플랑크톤 같다.

조용한 바다 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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