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살면
이렇게 되는 거야.
꿈을 꿨다. 이민기가 나왔다. 삐쩍 마른 얼굴에 눈만 희번득한 모습. 핏발 선 흰자가 커다랗게 보였다. 땀이며 먼지에 쩌들어 있어 멀쩡한 몰골은 아니었다. 내 손바닥과 손등은 다 갈려 피가 굳어 있었다. 그래서 뭘 하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도망을 치는 동시에 쫓기도 해야 했다. 정말 벗어나고 싶었지만 함께 있고 싶기도 했다.
이게 꿈이라는 걸 슬슬 느꼈을 때쯤 몸을 꽤 오랜 시간 못 움직였다는 걸 알았다. 임무인지 사기행각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게 끝난 후 그는 자취를 감췄다. 엉망인 손으로 뭘 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나도 퇴근. 이민기는 마지막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 여자에게 연락을 했다. 그 여자에게 갔던 카톡을 내가 확인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남편인지 아니면 과거에 사랑했던 남자인지 하는 사람이 그녀의 딸 또는 그녀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폭로하는 글이 길고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내용이 저열해 읽다가 창을 나갔다.
몸도 못 움직였는데 왜인지 좀 더 푹 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긴장감 넘치는 쫄깃함이 좋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은 채 꿈 내용을 상기하려 했다. 이미 절반 이상은 기억에서 날아가 떠오르지도 않았다.
확실한 건 아까웠다는 것. 재밌었는데.
최근의 그 무엇보다 더.
때아닌 반성을 했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단지 다른 일을 좀 찾아보려고 했던 건데 그렇게까지 되어 버렸다. 며칠간 근무 후에 가장 싫었던 점들을 메모장에 적었다. 두 개에서 네 개 정도씩이 적혔다. 기저귀 갈기, 입원이 몰려오는 것. 기저귀 갈기.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 그렇게 해서 환자에게 친절하게 못 해주는 것.
섬망에 고함을 치는 노인. 그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 그들을 묶어 놓아야 하는 것. 약제부 영양실 타과회신 검사실 연락 등을 의사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 그들에게 전화를 걸고 메신저로 타자를 쳐서 나는 너한테 언질했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과정의 반복. 밥 냄새. 또 기저귀. 낙상감지기가 손목에서 울리는 것.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도 그 진동이 계속해서 윙윙대는 것. 바깥의 띵동 소리. 각종 기계의 알람 소리들. 묶어 놓은 환자가 낙상할까 봐 그 자리를 못 떠나는 것. 화장실 가기를 계속해서 미뤄야 하는 것. 혹시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책임이 내게로 올까 하는 걱정.
내가 먼저 부르거나 주도하지 않으면 절대 환자 체위변경이나 기저귀 교환을 앞장서서 하지 않는 조무사. 피딩. 피딩하는 환자가 늘어서 오더만 보면 바쁠 게 없는데도 일은 자꾸자꾸 쌓이고 지체되는 것. 가래를 토해내듯 뱉는 소리. 야, 야 소리에 물을 떠다 줘야 하는 것. 침대 위의 작은 텔레비전 화면이 안 나온다는 말. 어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더라도 목소리 큰 이들을 잠재우기 위해 당장은 해야 하는 그런 것들.
어차피 오더로 안 나면 그만인 걸 구태여 회진 때 옆에 서 있어야 하는 것. 진료과에서 누락시켰더라도 담당간호사는 더 잘 챙겨야 한다는 수선생의 말. 그리고 이 뒤치다꺼리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성찰.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결론. 일? 이거? 아무런 자격도 지식도 없어도 할 수 있는 일. 이어 그럼 난 5년쯤 대체 뭘 한 거지 하는 질문.
그리고 그 모든 생각들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 나는 대체 얼마나 나쁜 걸까 하는 답 없는 의문에,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이런 생각이나 하는 나에 대한 한심함.
일. 다른 일. 그럼, 좋아하는 일? 일은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건데. 그 앞에 좋아하는, 이라는 말을 붙이니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싫은 걸 빼기로 했다. 어떤 게 싫은지 알아야 해서 퇴근 후 적은 거였다. 문제가 생겼다. 일이 미치게 하기 싫어졌다. 직면하니 그랬다. 일, 이라 뭉뚱그리지 않는다면, 환자가 싫어졌다.
얼마 전 병동 곳곳에는 '올바른 장갑 착용' 에 대한 홍보자료가 붙었다. 요는, 검체나 감염 환자 접촉 시를 제외하고는 장갑을 끼지 말라는 것. 하지만 수선생이 없는 나이트 때는 장갑을 낀 채 라운딩을 도는 간호사가 많았다. 원래는 체위 변경이나 기저귀 교환을 할 때 쓰는 것.
몇몇은 장갑을 낀 채 혈압을 재고 그 손에 손소독제를 바른 후 다시 다른 환자의 체온을 재거나 배액관을 확인했다. 이 병동으로 온 지 얼마 안 됐을 땐 별생각 없었다. 손에 덜 나은 상처가 있거나 어디가 아픈가 싶었다. 슬슬 아닐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환자들은 꽤 자주 성인용 기저귀와 침대 시트와 그 아래의 방수포까지 다 젖을 정도로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봤다. 소독티슈로 자리를 닦고 시트를 갈아도 어쨌든 생리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당연히 끝나지 않는다. 그 시트를 갈거나 이불을 정리해줄 때는 각질 부스러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보였다.
퇴근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수액준비실에서 사원증이나 워치는 물론 주머니의 볼펜과 켈리와 가위 등등까지 하나하나 소독솜으로 집요하게도 닦았다. 틀린 행동은 아니었다. 다수의 환자와 접촉했으니까. 어쩌면 집으로 가는 나의 몸조차도 균의 온상이었다.
동물원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은 묶인 채 다리는 침대 바깥으로 힘껏 다 내놓고서 '야! 야! 이 썅년아! 씨발년아!' 하고 악을 쓰는 노인. 약 드셔야 하니 입을 좀 열어달라고 하면 입술을 앙다문 채 어딘가를 힘줘서 쳐다보는 나이든 눈.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서 상태 확인을 해야 하는 일. 벽에 똥칠한다는 말이 어디서 유래한 걸까 어릴 땐 궁금했었다. 이제는 그 말뜻을 안다. 그냥 늙으면 그렇게 되는 거였다.
소통이 되지 않고, 제지해야 하고, 자리를 끊임없이 정돈해 줘야 하고. 침대에 묶여 초점 없는 눈으로 발악하는 그들은 우리 안의 동물들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내 눈에는 그랬다. 사실 처음 한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버린 그 문장이 낯설지도 않았던 걸 보면. 그냥 지금까지는 나조차도 외면하고 있던 것일 뿐.
병동간호사는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라고 다를까. 왜 그 선진국들에서 영주권까지 줘가며 외국인을 수입하는지가 학생 때도 의문이었다. 진짜 이유가 뭐든 간에, 이제 나와는 정말 상관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승진을 했다. 4년을 채우면 자동으로 승격을 시켜 준다. 달라지는 건 없다. 몇 년 전, 선임 하나가 내가 며칠 전 받은 것과 같은 메일과 급여명세서를 조회한 후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 연봉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때 생각했다.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구나, 하고. 그녀는 본인이 차지를 볼 때마다 짜증을 내면서 그 근무에 신규가 많으면 싫은 티를 톡톡히 냈다. 그녀의 메일을 본 후 나는 그 행태를 이해하게 됐다. 같은 월급 받고 일은 더 하라 그러면 누가 안 빡쳐.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만 한 나는 지금 똑같은 처지가 됐다. 몇 년 전의 인증평가 때 나는 신규였다. 중간연차들이 매뉴얼을 외우고 추가근무에 시달리는 걸 보고 나는 겉으로만 어리숙하고 송구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다음 인증 때 나는 여기에 없을 테니까. 큰 병원 와서 월급도 받고 적응도 해나가고 있으니 나는 다 컸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 때의 나는. 그리고 올해 다시 인증이 돌아온다. 없어? 여기 없긴 왜 없어. 아무 계획도 없었으면서 어딜 가.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는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병원에 대한 아픈 기억이 하나쯤 없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히는 병원보다는 아픈 가족이나 친지에 대한 것. 그녀의 이야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연을 모아 놓은 팟캐스트, 유튜브 댓글, 입사자 단톡방에서 교수를 수소문하는 사람.. 그들은 하나같이 안타까워했고 다급했다. 그리고 나는 내내 그 사람의 섬망 양상을 상상했다. 얼마나 관리하기가 힘든 사람일까 생각했다.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큰삼촌 등등을 추억하거나 기도를 바라는 그 사람들의 일화들이 다 그런 식으로 내 안에서 흘러갔다.
나 나름, 애들 죽으면 장례식도 찾아가고 며칠 정말 많이 힘들어하기도 했는데. 그게 어떤 기전에서건 그런 적도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나 생각했다. 언제더라. 작년 또는 일 년 반 전. 긴 시간인가? 어떻게 보면 사람이 아주 변할 만한 시간은 아닐 텐데. 왜.
일하다 보면 요양원, 요양병원은 대체 어떤 곳일까 아득해진다. 여기서 더 해봤자 나아질 게 없어 퇴원을 해야 하지만, 집에서는 관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 가는 곳. 똥오줌 못 가리고, 혼자 움직이면 넘어져 사고가 나고, 섬망이 심하고, 이런저런 관을 삽입하고 있거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나는 그 명칭에 기가 찬다. 내가 어릴 때 그냥 생각한 요양, 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요양병원으로 갈 사람들이 여기 태반이다. 늙고 지저분하고 추한 사람들. 한때는 누군가의 엄마거나 아빠거나 할아버지 또는 귀여운 이모였을 사람들.
이어 생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람이 망가질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서. 걷고 말하고 웃고 교류하는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가 이렇게 다 빼앗아가는 그 사이클이 지나치게 독해서.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연명하다 죽어 버릴 거니까. 그것까지가 이 악독한 단계의 완성 아닌 완성이다.
벚꽃이 많이 피었다. 공원을 뛰다가 아름이를 봤다. 꽃 사이에서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한 달에 44장의 칭찬카드를 받은 적이 있다. 홈페이지에 쓰인 숫자를 보고 오류가 아닌지 다들 신기해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녀는 그랬을 사람이었다. 병원 안팎을 떠나 늘 올바르고 친절했으므로.
입사 당시 기숙사에는 아름이와 나와 소아과 동기를 포함한 다섯 명이 살았다. 6개월 뒤 한 명이 짐을 쌌고, 일 년 반 후 나와 같이 방을 썼던 한 명이 퇴사했다. 나와 함께 소아청소년과로 배치됐던 동기는 지금 정형외과 병동에 있다. 그녀는 내게 메신저로 외과에서는 배울 게 없다며 내과로 가고 싶다고 한다. 그 병동에는 아름이도 있었다. 최근에 그녀의 근황을 물으니 동기는 그녀가 퇴사했다고 했다. 왜? 힘들어서? 아니. 걍 부서 이동이랑 뭐가 안 맞았대.
밖은 춥다. 친구를 통해 전해들은 바깥세상은 혹독했다. 기본적인 것도 안 지키는 상식 이하의 회사며 일자리가 널리고 널렸다. 사실 그런 쪽이 더 흔했다. 어차피 당장 나갈 건 아니지만, 그러지도 못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쉬운 건 정말 없다는 게 두렵다. 난 뭣도 없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게 맞나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없다. 아무 노력 없이도 가능한 걸 굳이 바라지는 않는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5년 뒤에도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똑같으면 다행이게?
얼마나 더 속이 썩어들어가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녀를 봐서 잠깐 좋았다. 퇴사한다고, 병원을 나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어서.
그렇게 멋대로 내린 결론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