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탄 취삥

사람들

by 이븐도




여행을 구상하며 제미나이에게 받았던 대답 중 하나. 중국어를 하나도 못 해도 이건 알아가라. 우탄 취삥. 그리고 그 말을 쓸 일이 없었다. 파파고만 돌려서. 뒤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서웠고 점원이 나를 보며 뭐라 말하면 일단 얼었다.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차라리 휴대폰을 들이미는 게 나았다. 충전 부탁드립니다. 충전 후 결제 부탁드립니다. 또 충전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힘껏 웃었다. 나 같은 모지리를 상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궁금했다. 일곱 시 사십 분 동먼 역 앞. 내가 숙소를 잡은 곳이 시장 쪽이라 그런지 음식을 파는 곳이 진짜 많다. 오리, 닭, 군고구마, 샌드위치, 옥수수, 죽, 만두, 도시락.. 그리고 또 도시락.

사람들은 비닐봉지나 작은 가방을 같이 들고 지하철역으로 걷거나 횡단보도에 서 있다. 키링은 여기서도 유행이다. 학생들은 교복이 아닌 생활복 같은 걸 입고 있다. 그 위의 회색 후드집업. 양말에 운동화. 백팩에 달린 포토카드 홀더. 트와이스 다현과 뉘신지 모르겠는 한국 남자 아이돌 포토카드를 같이 달았던 여자애. 앞머리를 내렸거나 안 내렸거나 길거나 묶었거나. 한국 애들과 비슷하다. 염색은 안 되는 것 같고 길이 제한은 없는 것 같다.




유치원생쯤 된 남자애 둘이 개찰구 주변에 앉아 바나나와 주먹밥을 먹었다. 옆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아침 끼니를 많이 본 적이 있나? 7-8시쯤에 밖에 나갈 일이 잘 없긴 했지만 나 학생 때도 잘 안 그랬던 같은데.


빵보다는 밥을 먹는 사람이 많다. 삼각김밥 같은 것도 아니고 정말 그 둥근 한솥도시락 용기 같은 것에 담긴 걸 테이크아웃해서 길에서도 먹고 벤치에서도 먹는다. 그렇다고 살찐 사람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다. 온종일 먹을 걸 마주치는 기분. 여기서 먹는 사람, 저기서 먹는 사람. 군것질보다는 식사를 해결하는 느낌. 그런데 거리는 한국보다 깨끗하다. 생각해 보니 한국처럼 일회용 음료수컵이 어딘가에 열받게 잔뜩 놓여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그렇게나 길거리에서 뭔가를 다들 먹고 있거나 먹기 위해 들고 다니는데 쓰레기는 잘 없다.




지하철역 탑승 위치에는 가로 방향으로 테이프가 붙어 있다. 그렇게 양옆으로 서 있으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정말 그 선 안에 서 있고 무엇보다 열차에서 사람들이 내린 다음에 탄다.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고갯짓이라도 하며, 횡단보도에 서서 차를 먼저 보내려 하면 손짓으로 먼저 가라고 해 준다. 애초에 누군가와 교류를 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이곳에서 사람 때문에 불쾌했던 적은 없다.


미안하다는 표시, 감사하다는 표시, 먼저 가라는 표시, 마주치면 눈웃음. 이들을 모두 알 수는 없겠으나 대체로 날서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 슈퍼 코너, 서점에서 둘러앉는 자리, 계산대에서의 응대. 어쩌면 내가 예민하지 않은 상태라 그랬을까.






까르푸에서 결제가 안 됐다. 대만에 여행을 온 거라면 이지카드를 쓰라고 했다. 통상 카드처럼 쓸 수 있는 도구다. 전철을 탈 때 찍고 계산할 때 내밀고. 단점은 잔액 조회가 안 된다. 어플 연동 시스템이 없어 내가 어디서 얼마를 쓰고 얼마가 남았는지 숙소 방구석에서 확인이 어렵다.

총 220대만달러가 나왔는데 아마 잔액은 217달러쯤이었다. 그녀는 내가 당황하면서 신용카드를 찾는 동안 카드를 보고 귀엽다고 했다. 뒤에서 누가 기다리니 눈치를 주는 듯한 표정도, 짜증나는 일이 늘었다는 경직된 눈초리도 없었다. 이런 귀찮은 손님에게 그런 여유를 보인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그런 게 없진 않았는데.


오피스텔 앞의 씨유, 미금역의 세븐일레븐. 이브닝 근무가 끝나면 삼각김밥이나 김밥을 샀다. 프링글스나 구운감자일 때도 있고. 가방이 귀여워요, 웃는 게 어때요, 아가씨 이거 어디서 샀어요, 등등. 어쩌면 그들이 내게 던진 말들도 친절의 일환이었다. 나는 그런 게 너무 귀찮았고 짜증이 났다. 입을 여는 것조차 힘겨웠다. 웃음을 돌려주기 싫어 받기도 싫었고 말하는 건 더 힘들었다. 이제 와 생각한다. 어디서나 사실 사람들은 비슷했고 다른 건 결국 나였던 건지.





그런데 아닌 것 같기도. 내가 횡단보도를 똑바로 건너고 있었어도 그냥 달려드는 차가 있었던 게 대체 몇 번인데. 아침에 내리지도 않은 나를 치고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때문에 눈부터 부라린 게 진짜 몇 번인데. 나는 내가 성질이 더럽다고 생각했다. 그치, 그것도 맞고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이 경우가 없는 것도 맞다. 대만이 한국보다 아주 잘 사는 나라는 아닐 수 있겠으나, 정말 그게 다는 아닐지도 모르지. 돈이 최고긴 하지만.

지인들이 오토바이며 자전거를 그렇게나 타고 다니는데 생각보다 사고는 잘 안 나는 듯한 것도 혹시 그런 데서 기인하는 거 아닐까 엉망인 추론을 해 본다. 처음 봤을 땐 놀랄 정도였으니까. 이렇게나 다들 맨몸으로 도로를 달리면 안 다치나, 하고. 차랑 부딪히면 끝이잖아.




그래. 여긴 신호조차도 길어. 뛰면 3초컷일 횡단보도도 신호가 삼십 몇 초는 됐다. 이러니 사람들이 덜 볶인 상태인 걸까? 양날의 검이겠지?

한국인들은 성질이 더러울까? 정말?

얼마나 더러울까?




아님 진짜 나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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