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퇴원
"상태가 호전 중인 이재민님!"
나를 담당하고 계신 주치의 선생님의 명량한 목소리에 선잠이 화들짝 깼다. 매일 아침마다 받는 드레싱 시간, 왼뺨의 염증은 거의 다 가라앉았고 서서히 회복 중이었다. 다행히 염증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갔고 다음 주면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주치의 선생님이 어제 고갱이 사다준 KFC 박스를 발견하시곤 한 마디 하셨다.
"기름진 거 먹지 마세요!"
보라매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주말. 나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란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한 중년 여성이 암 진단을 받고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하는 4부작 단편 드라마다. 최근 내가 겪고 느낀 감정의 연장선에 놓인 듯한 이 드라마는 정말 우연히도 가장 적절한 시기에 tvN에서 방영 중이었다. 2017.12.17 일요일 저녁. 퇴원을 앞두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마지막 회를 말없이 시청했다. 후회하기 전에 건강을 챙기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야지. 암 그래야지. 괜스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보았다.
이윽고 퇴원 날 아침, 2주 동안 팔에 꼽고 있던 정맥 주사 바늘을 뺐다. 마치 쇠사슬처럼 나를 구속했던 폴대도 이제 안녕이다. 그동안 폴대를 끌고 다니면서 한 손으로 씻느라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두 손을 흔들어보니 정말 퇴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화장실로 가려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폴대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폴대에서 가만히 손을 떼어 보았다. 나는 폴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웠다.
'파블로프의 개..?'
나는 이 질병에게 정신적으로도 묶여있었던 것일까.
퇴원 수속을 밟기 위해 나는 옷장을 열었다. 2주 전에 아무렇게 처박아 둔 옷가지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입원할 때만 해도 저걸 언제 다시 입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나는 나의 자유로운 두 손으로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데스크에서 2주 치 약과 보험처리를 위한 진단서 서류를 챙기는 것으로 보라매 병상 생활은 완전히 정리되었다. 약은 아침, 점심, 저녁 3회 하루 15알 정도를 나눠 먹어야 했다. 내 생에 이렇게 많은 약봉지를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피부과에 들러 왼뺨에 찰떡같이 붙어있던 드레싱을 떼어냈다. 2주 동안 왼뺨 전반적으로 굳어있던 연고와 피지가 뭉친 딱지를 뜯어내고 약을 발랐다. 퇴원 후에도 한동안은 집에서 자가 드레싱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고름은 더 이상 없고 붉은 병변만 남은 상태라 처방된 항생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연고를 바르면 수개월 내에 사라진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안은 아주 냉랭했고 보일러는 고장이 났는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싸늘한 느낌에 곧장 베란다로 향했다. 보일러는 이미 터져서 물이 새고 있었고 바닥에 고인 물은 꽁꽁 얼어서 베란다는 작은 스케이트장으로 변해있었다. 급한 마음에 보일러 수리공을 불렀다. 십 분여 만에 도착한 수리공은 보일러를 뜯어보더니 나를 불러 세웠다. 보일러 내부가 불타고 있었다. 하마터면 초가삼간을 태워먹을 뻔했다. 덕분에 보험비로 받을 돈은 고스란히 보일러 구매 비용으로 지출했다. 새로 달린 보일러는 성능이 탁월했다. 집안도 금방 따듯해지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왔다. 이제야 내 왼뺨을 제외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퇴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두 손으로 샤워 하기'를 마치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이 때로는 간절해진다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 왼뺨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길,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두 번 다시 종합병원에 갈 일이 없는 삶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