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제법 쌀쌀한 가을 공기를 들이마시며 퇴근길 차 시동을 건다. 3년 전, 까치산에 다시 돌아올 때는 반드시 합격해서 오겠다고 다짐했었던 그날도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나는 요즘 종종 작년 이맘때가 떠오른다. 아직도 7급 군무원 시험 합격자 발표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절로 철렁거린다. 내 수험번호가 합격자 명단에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나는 고3 수능 시험 때 내 인생의 모든 운을 모두 끌어다 쓴 줄 알았는데 약간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첫 발령지로 오고 난 후 한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새로웠다. 환경도 업무도 사람도 무엇 하나 익숙한 것이 없었지만 어쨌든 나는 적응했다. 적자생존(適者生存), 적응한 생물만 살아남는 대자연의 제1원칙에 의거하여 지금까지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그런데 앞으로 25년간 이 거대한 조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한 군무원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세 번' 그만두고 싶을 때가 오는데 그 세 번을 넘기면 된다고. 상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누구하나 위기 없이 그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 없다. 다행히 이곳에서의 생활은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잘 지내고 있지만 나에게 그 위기가 닥쳐왔을 때 나만의 체계가 없으면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IT벤처에서 군 부대로 이직하게 되면서 완전히 상반된 조직문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업무는 수평보단 수직으로, 자율보단 공문과 근거에 의해 이루어진다. 발령 전에는 이런 점들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익숙함을 넘어 마치 원래 해오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몰랐던 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때도 있다. 나는 지금껏 나를 자유롭고 정해진 틀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독립적이면서도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면에서는 공무원이 꽤나 적성에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삶의 동기부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지난여름, 표창 하나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나에겐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던 일이다. 지난 회사들을 돌이켜 보면 노력에 대해 인정해 주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도 서서히 사라지고 동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무미건조한 시간만 보내곤 했다. 남들에게는 누구나 하나정도 챙겨주는 흔한 표창일수는 있지만 나에겐 직장인으로서의 첫 인정이자 큰 동기부여로 다가왔다. 나는 누군가로부터의 인정에 대한 목마름이 컸었던 것 같다. 매년 성적표나 다름없는 정기 감사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계단 한계단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정년퇴직하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서야 서울이 이따금 그리워진다.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생각했었는데.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것도, 소중했던 것도 대부분 그곳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한강에 돗자리 하나 깔고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지는 노을을 정말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이미 늦어버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를 때도 있지만, 이미 늦어버린 건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있는 법이다. 한번 쏜 화살이 돌아올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