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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May 24. 2022

불꽃놀이를 보러 오늘 밤도 눈을 감는다.

일상 에세이

 문득 누군가의 삶 속에 들어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버스 차창에서 바라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한 순간이란 물살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지느러미 같은 팔을 뻗어 흔들고 꼬리처럼 규칙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며 물살을 헤쳐나가고 있다. 그 사람의 세상의 조각이 되어 나는 잠시 머문다. 버스라는 공간의 조각이 햇살 사이를 지나가고 시간을 가로질러 오후가 된다. 무심히 지나가면서 어딘가 누군가 살고 있겠지.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하고 직감했다. 듣고 무의식 중에서 희미하게 느꼈었다. 하지만 오늘은 보았다.

 한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버스 위에 올랐다. 운전기사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었고 아이 엄마는 유리상자에 지폐를 넣었다. 아이는 신기한 듯이 올려다보더니 딸그랑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고 동전을 받아내었다. 운전기사는 웃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도로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이제 통로를 걷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노인들은 몇몇 무심한 사람들을 빼고는 아이에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의 차원을 넘어 존재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그 직설적인 시선에서 오는 정직함과 묵묵한 진실됨이 보였다.

 어제 나는 한 아이의 과거 한편의 조각이 되었다. 미소 짓는 사람들로 가득한 버스와 직설적인 눈 마주침.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세계에는 작은 우주가 있었고 종이 인형처럼 옆얼굴만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절대 알 수 없는 사물들의 숨겨진 단면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우주들이 각자의 음을 읊조리는 소리가 맞추어지고 부딪히고 깨어지면서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아름다웠다.

 내 소리만 메아리처럼 부딪혀 돌아오고 울려 퍼지던 감옥에서 벗어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 나는 가볍게 걸었다. 그렇게 날듯이 걷다가 새로운 음을 발견했다. 아이의 직설적인 눈빛 속에서 들렸던 음. 버스는 오늘도 공간을 옮기고 시간을 옮기고 소리들을 옮긴다. 누군가의 소리가 속삭였다. 나도 여기 있다고.


 눈을 감았다. 검은 어둠 위에 무수한 소리의 색들이 펼쳐져 있는데 나는 나의 파란색 소리에서부터 잠시 멀어져 어둠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몇 걸음만 나아가자 어둠이 걷히고 총천연색의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세계가 있었다. 타인의 존재는 불꽃놀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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