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거짓말에 갇혀 살았던 날들

진짜 마음을 찾아가는 5년간의 기록

by 오래피스 orapeace

월요일 아침.

"주말 어땠어?"라는 동료의 물음에 나는 습관적으로 답했다.

"응, 괜찮았어."


하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토요일 밤엔 가족과 싸웠고, 일요일엔 혼자 있는 게 너무 외로웠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새벽 3시까지 뒤척였다.


그런데 왜 '괜찮았다'고 했을까?



어릴 때부터 배운 거짓말

7살, 놀이터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피가 났는데 어른들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프지 않아."


그런데 아팠다. 정말 많이 아팠는데....

그 순간 나는 배웠다. 아픈 건 부끄러운 거라고.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고. 아픔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이후 30년간 나는 '괜찮다'는 말로 모든 걸 덮었다. 상처받아도, 외로워도, 무너져도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내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UCLA의 매튜 리버만 교수 연구를 보고 충격받았다.

감정을 억제할 때 우리 뇌의 전전두피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는 거다. 마치 브레이크를 계속 밟은 채 달리는 자동차처럼 정신적 에너지가 고갈된다.

더 충격적인 건 이거였다.

심리적 고통을 느낄 때와 칼에 베이거나 불에 데였을 때, 뇌의 정확히 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

'아무렇지 않다'고 버티는 순간, 내 뇌는 실제로 다치고 있었던 거다.



왜 나는'괜찮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웠을까?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답이 보인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집단에서 배제되는 걸 두려워한다.

'괜찮지 않다'는 건 약함을 드러내는 거고, 그러면 집단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무의식이 판단하는 거다.

한국 사회는 더했다. "참는 게 미덕", "남에게 폐 끼치지 마", "강해야 해"라는 메시지를 어릴 때부터 주입받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감정조차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5년 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랬다.

"오늘도 우울하다. 하지만 괜찮아, 내일은 나아질 거야."


나도 나에게 '괜찮다'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르게 써보기 시작했다.


"오늘 정말 우울하다. 이유도 모르겠고 눈물이 난다. 그래도 괜찮다. 우울할 수도 있는 거니까."


거울 앞에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지금 힘들구나. 그럴 수 있어."

"아파도 괜찮아. 아픔도 너의 일부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게 인간이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진짜 '괜찮아'는 지금 상태를 바꾸라는 명령이 아니라, 지금 상태를 인정해주는 허락이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때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지금 많이 힘들구나."

"정말 아프겠다."

"그럴 만도 하다."


이런 말들이 진짜 위로다. 상대의 상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

효과가 놀랍다. 상대방의 얼굴이 확 달라진다. 긴장했던 어깨가 내려가고, 억지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그제서야 진짜 대화가 시작된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까. 빨리 괜찮아지라는 압박이 없으니까.


5년간의 일기를 쓰며 깨달았다.

진짜 용기는 '괜찮다'고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괜찮지 않다'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짜 사랑은 내 상처를 감추는 게 아니라 그 상처마저 따뜻하게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짜 괜찮아짐은... 괜찮지 않은 순간들조차 내 삶의 소중한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13세기 수피 시인 루미가 말했다.

"상처는 빛이 당신에게 들어오는 곳이다."



오늘 밤 나는 처음으로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상처투성이지만 괜찮고, 불완전하지만 괜찮고, 때로는 무너져도 괜찮다고.


진짜 괜찮아지는 비법을 찾은 게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된 거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진짜 괜찮아짐의 시작이었다.


당신의 상처받은 그 자리가, 바로 치유의 빛이 스며들 곳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 용기가 당신을 진짜 괜찮은 곳으로 이끌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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