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를 잃어버렸다
어제도 그랬다.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안 왔다.
평소 같으면 10분 안에 답장하는 친구인데. 내 머릿속은 온갖 시나리오로 가득 찼다.
'내가 뭔가 기분 나쁘게 했나?'
'아, 괜히 그렇게 이야기 했나?'
3시간 뒤 답장이 왔다. "아 미안, 운동 중이었어."
그제서야 한숨을 쉬었다. 괜한 걱정이었구나.
직장에서 상사가 인상 찌푸리면 하루 종일 신경 쓰이고,
동료가 인사를 성의 없게 해도 '내가 뭔가 잘못했나?' 생각한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내 말에 반응이 없으면 괜히 위축되고,
누군가의 표정이 조금만 달라 보여도 불안해진다.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타인을 신경 쓰는 걸까?
사실 '남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에 대한 불안은 인간의 생존 본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원시 시대에는 집단에서 버려지는 게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그래서 우리 뇌는 지금도 '집단 속에서 거부당하지 않는 것'을 안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즉, 내가 지금 불안한 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나를 지키려고 애쓰는 방식'일 수 있는 거다.
더 충격적인 건 뇌과학 연구 결과였다.
'사회적 거절'을 경험했을 때,
즉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실제로 '고통'을 느낀다는 것.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열 명이 나를 좋아해도, 단 한 명이 나를 싫어하면 그 사람에게만 집중해버린다.
좋은 피드백보다 안 좋은 말 한마디가 몇 배는 강력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희망적인 연구도 있었다.
2018년 예일대학교 심리학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을 모아 대화하게 한 뒤,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평가하게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은 우리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즉, 우리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타인의 평가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거다.
몇 년 전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싸이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후속작들이 예전만큼 히트를 치지 않자, 기자가 물었다. "속상하지 않으세요?"
싸이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이제서야 정상 같다."
뭐든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게 정상이라고.
강남스타일은 모두가 좋아해줘서 그게 오히려 비정상적이었다고. 그래서 전혀 속상하지 않다고.
전 세계를 열광시킨 싸이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우리는 왜 모든 사람에게 좋아받으려고 애쓰고 있을까?
"우연히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잠깐... 우리가 개구리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아니다. 우리에겐 힘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아는 힘,
그 돌을 피할 수 있는 힘,
아니 그 돌이 날아와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단단한 힘이 있다.
생각해보자.
나를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그 사람...
그 사람의 의견, 태도, 생각 중에서 나보다 더 나은 게 정말 있을까?
그 사람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 방식, 말투에서 묻어져 나오는 우월감, 잘난척, 비웃음, 조롱...
그런 것들에서 나오는 말들이 과연 진실일까?
다음번에 누군가 나를 깎아내리려 할 때, 이렇게 되뇌어보자.
"저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내가 더 잘 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 거, 이거 정상이다."
솔직히 말하겠다.
때로는 정말로 거부당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게... 사실 '정상'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리를 좋아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사람들에게 집중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으면, 남들의 호감도로 내가 쉽게 흔들린다.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줘야 내가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지지하면 어떨까?
몇몇 사람의 비호감쯤은 버틸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내 안에 이미 단단한 기둥이 세워져 있거든.
다른 사람이 나를 조금 존중해주지 않으면 어때? 제일 중요한 내가 나를 존중해주면 되는데.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맞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다.
모든 사람에게 좋아받으려 하지 않는 용기.
내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용기.
거부당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용기.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질문을 남기고 싶다.
"혹시 지금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정말로 상대방이 나를 싫어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잃어버린 나를, 천천히 되찾아가면서.
무엇보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소중하고,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다.
그 사실을 가장 먼저 믿어줘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