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한계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얼마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하는 말과 행동, 정말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하고 있을까?"
"남들은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마흔이라는 나이는 어느 순간 삶의 언어와 의미를 점검하게 되는 시기다.
말은 많이 했는데 마음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은 허전함,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밀려온다.
그러다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만났다.
"빨간색을 어떻게 설명하겠어?"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췄다.
"장미 같은 색이야", "피 같은 색이야"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빨간색의 실제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빨간색을 본다는 그 '느낌' 자체는 언어로 전달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언어의 한계가 바로 이것이다.
언어는 인류를 성장하게 만든 위대한 유산물이다.
언어가 없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협동해서 사냥할 일도, 농사 지을 일도, 산업화 시대의 대규모 공장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언어에도 한계가 있다.
"물 좀 주세요."
이 말의 의미는 단순히 H2O를 달라는게 아니다.
목이 마르다는 상황,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관계, 예의를 지키려는 마음...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언어게임'이라고 불렀다.
"언어의 경계가 곧 나의 세계의 경계다."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이 더욱 와닿는다.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의 한계가 곧 우리가 사유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라는 뜻이니까.
곧 마흔이 되는데,
진짜 깊은 사랑일수록 말로는 더욱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해"라는 말을 천 번 해도 그 사랑의 실제 느낌은 전달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100번 하는 것보다,
그냥 딱 안아주고 뽀뽀를 몇 번 해주는 게
아이들 입장에서는 훨씬 더 '나 사랑받고 있구나'하고 느끼는 것 같다.
예전에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수록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사랑, 그리움, 외로움... 이런 감정들을 온전히 언어로 담아낼 수 있을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다.
젊을 때는 이 말이 소극적으로 들렸다.
'왜 침묵해야 하지?'
'세상에 말할 수 없는 게 어디 있나?'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마흔이 다 되어가니 이해가 된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깊은 소통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사랑, 친구의 우정, 연인과의 깊은 교감... 이런 것들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영역을 함부로 말로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갑자기 철학적으로 시간의 본질을 묻기 시작하면 혼란에 빠진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혼란이 언어의 잘못된 사용에서 온다고 봤다.
마치 "엔진이 공회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언어가 실제 삶의 맥락을 떠나 공허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마흔의 나이에 이런 관점이 정말 도움이 된다.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이게 정말 의미 있는 문제일까?" 하고 되물어보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을 다시 읽으며 깨달은 것들.
1. 절대적 진리의 환상에서 벗어났다.
철학의 문제들이 언어의 혼란에서 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2. 관계의 복잡함을 알게 되었다.
언어게임이라는 개념이 인간관계를 이해하는데 정말 도움이 된다.
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3. 침묵의 가치를 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깊은 소통임을 알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깊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삶의 의미, 내면의 진정한 감정,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언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불안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로 설명하기보다 체험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다."
언어와 세계의 관계를 이해하면 삶이 단순해진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는 것은 사실 일부일 뿐이고, 그 나머지는 행동과 경험, 삶의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
삶의 의미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안해할 필요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경험하느냐다.
스승님께서 비트겐슈타인을 전공하고 연구하셨고, 나 역시 그의 책을 5권 가까이 읽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한번 그의 통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비트겐슈타인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와 사고를 복잡한 철학적 미로에서 꺼내어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는 일인 것 같다.
쓸데없는 관념적 고민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
마흔이라는 나이에,
나는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언어의 미로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진짜 삶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