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 남편 연금 내놓으래요

45년 동안 몰랐던 남편의 정체

by 오래피스 orapeace

안녕하세요, 김명희입니다.

지난 시간에 제가 남편의 장례식에서 왜 웃었는지 말씀드렸죠.

오늘은 그 후에 일어난 일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장례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저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실에 큰 쓰레기봉투를 여러 개 꺼내놓았어요.

남편의 옷, 구두, 벨트, 시계, 안경, 모자...

40년 동안 제 삶을 짓눌렀던 것들을 하나하나 봉투에 넣었습니다.


현관에 놓인 남편의 낡은 구두를 집어 들었을 때... 문득 생각났습니다.

'이 구두로 나를 걷어찬 적이 있었지.'


화장실에 걸린 면도기를 보았을 때도...

'이 면도기로 면도하다가 내게 소리 지르던 게 생각나네.'


하나하나가 다 기억이었어요. 나쁜 기억들. 아픈 기억들.

남편 물건들을 버리는데, 혼자 마음이 너무 후련한 거 있죠?


거실과 침실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곳, 남편의 서재였어요.

평생 저는 그 방에 들어가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자가 함부로 남자 방에 들어오지 마" 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제가 서재 문을 열었을 때, 오래된 책 냄새와 찌든 담배 냄새가 났어요.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했고,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어요.


'여기도 정리해야지.'

저는 서랍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서랍: 오래된 영수증들, 명함들...

두 번째 서랍: 회사 서류들, 월급 명세서들...

세 번째 서랍: 잠겨 있었습니다.


잠겨 있다고?

궁금했습니다. 왜 이 서랍만 잠가놓은 걸까?


책상 서랍을 뒤지다가 작은 열쇠를 발견했어요.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었습니다.

서랍 안에는 오래된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자...

그 안에 편지들과 사진들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편지봉투들은 누렇게 바래 있었고, 여자의 필체로 쓰인 것들이었습니다.

'이게 뭐지?'


떨리는 손으로 편지 하나를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빠, 오늘도 오빠 생각에 잠을 못 잤어요. 우리 언제쯤 당당하게 만날 수 있을까요? 오빠의 마음을 알기에 기다릴게요. 오빠를 사랑하는 재희가."


재희?

그 이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

시누이 작은언니의 사촌동생 이름이 재희였습니다.


손이 떨렸어요. 다른 편지들을 하나하나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빠, 어제 본 영화 정말 재밌었어요. 오빠와 함께여서 더 행복했어요."

"오빠, 오늘 생일 축하해요. 오빠가 좋아하는 넥타이 보내요."

"오빠, 명희씨가 임신했다는 소식 들었어요. 마음이 아프지만... 오빠의 행복을 빌게요."


편지는 수십 통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2020년까지.

45 년. 우리가 결혼한 때부터 최근까지.


편지들 아래에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진: 젊은 남편과 한 여자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웃고 있었어요.

그런데 남편의 표정이...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행복해 보였어요. 진심으로.


두 번째 사진: 식당에서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모습.

남편이 그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세 번째 사진: 등산하고 있는 사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어요.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사진은 계속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었어요.


마지막 사진은 2020년에 찍힌 것 같았습니다. 이제는 환갑이 넘은 두 사람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그 여자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지만... 행복해 보였습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사진들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계속 흩어졌습니다.


45년... 45년 동안 저는 뭐였을까요?


남편이 저를 때릴 때, 남편이 저에게 소리를 지를 때, 남편이 "너는 팔자가 그래"라고 말할 때...

그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던 겁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어요.

분노의 눈물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허무함의 눈물이었어요.

'나는 대체 뭐였지?'


한참을 울고 나서, 저는 다시 편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마지막 편지, 2020년에 쓰인 것이었어요.


"오빠,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네요.

평생 숨어서 만나야 했던 우리가 이제는 당당하게 만날 수 있는 나이가 됐어요."


"오빠, 이제 결단을 내려요. 명희씨와 이혼하고, 우리 함께 살아요.

자식들도 다 컸고, 우리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답장 기다릴게요. 사랑하는 재희가."


저는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명희씨와 이혼하고"


그러니까... 남편은 저와 이혼하고 그 여자와 살려고 했던 거군요.

그런데 왜 이혼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이혼 이야기 한 번 한적도 없는데.


다른 편지를 더 찾아야 했습니다.

다행이 남편이 아직 재희한테 전하지 못한 답장이 거기에 있었어요.


"재희야,

미안해. 지금은 안 돼. 명희한테 이혼을 요구하면 재산을 반으로 나눠야 해. 연금도 나눠야 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정년퇴직하고 연금 받기 시작하면, 그때 이혼하고 너한테 갈게.

그러니까 3년만 더 기다려줘. 사랑해, 재희야."


3년. 3년만 더 기다리면 남편은 저를 버리고 그 여자에게 갈 예정이었던 겁니다.

재산 분할이 아까워서. 연금이 아까워서.

그래서 저를 붙잡아둔 거였어요.



그 순간, 모든 게 이해가 됐습니다.

왜 남편이 저에게 그렇게 냉정했는지. 왜 저를 사랑하지 않았는지. 왜 폭력을 휘둘렀는지.

남편은 처음부터 저를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 저는 그저... 의무였던 거죠.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책임져야 할 가족. 버리기엔 아까운 재산.

그게 제가 남편에게 갖는 의미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바닥에 흩어진 사진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았습니다.

사진 속 남편은 행복해 보였어요.


저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우리 결혼식 사진을 떠올렸어요. 남편은 무표정했었죠.

돌잔치 사진도 그랬어요. 남편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가족사진이라는 것도 몇 장 없었어요. 명절 때 억지로 찍은 것들뿐.


그런데 이 여자와는... 수십 장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계절마다, 장소마다, 해마다.

환하게 웃으면서.

이상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감정이 먼저 왔어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이 불쌍했어요.


45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숨어서 만나야 했던 그 사람. 진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의무 속에 갇혀 있던 그 사람.

그리고... 저도 불쌍했습니다.

45년 동안 사랑받지 못한 줄도 모르고 살았던 제가. 혼자 애쓰고, 혼자 참고, 혼자 버텼던 제가.


'우린 대체 뭐였을까?'


남편도 저랑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매일 아침 제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여자를 생각했을까?


제가 빨아준 옷을 입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다른 삶을 꿈꿨을까?


사진들을 다시 상자에 넣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미운 정도 정인가 보다.'


45년을 함께 살았으니까. 사랑하지 않았어도, 함께 늙어갔으니까.


남편의 인생이 진심으로 불쌍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생 숨어서 만나야 했던 사람.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텐데, 책임과 의무에 묶여 살았던 사람.

그리고 결국... 정년퇴직 3년을 앞두고 죽어버린 사람.


'당신도 행복하지 않았구나.'


하지만 이해가 되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배신감이 밀려왔어요.


45년. 45년 동안 저는 성실한 아내였습니다.


남편의 밥을 챙기고, 남편의 옷을 빨고, 남편의 부모를 모시고,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맞으면서도, 욕을 들으면서도, 무시당하면서도,

저는 떠나지 않았어요. 이혼하자는 말도 하지 않았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걸 참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어땠나요?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저를 이용만 한 겁니다.

가정부처럼, 간병인처럼, 그저 필요한 존재로만 저를 대한 거예요.


재산 분할이 아까워서 저를 붙잡아둔 거였습니다.


저는 사진과 편지를 모두 다시 상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자를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다가... 멈췄어요.

'잠깐.'

아이들이 알아야 할까? 아버지의 진실을.


아니면 시누이들한테 알려야 할까? 오빠가 평생 바람을 피웠다는 걸.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복수하고 싶었어요. "당신들이 그렇게 존경하던 남편이, 오빠가, 아버지가 이런 사람이었어!" 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뭐가 달라질까?'


남편은 이미 죽었어요. 편지를 보여줘도, 사진을 공개해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만 줄 뿐이고, 시누이들과 싸움만 생길 뿐이고, 저만 더 힘들어질 뿐입니다.


저는 결정했습니다.

이 비밀은 저 혼자 가지고 가기로.

남편의 장례식에서 웃었던 이유도, 제 마음속에만 간직하기로.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이제 자유롭다는 것. 제가 이제 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

그 날 밤 제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습니다.


배신감도, 분노도, 슬픔도... 전부 사라진 것만 같았죠.

거울을 봤습니다. 제 얼굴에 미소가 번졌어요.


이번에는 장례식 때와 달랐습니다. 무의식적인 웃음이 아니었어요.

진짜 미소였습니다. 해방의 미소였습니다.

'이제 정말 자유구나.'


남편에게 묶여 있던 마음도, 배신감에 묶여 있을 제 미래도,

전부 끊어버린 겁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일찍 일어났습니다.

45년 동안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었죠.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어요.

하지만 오늘은 달랐습니다.


부엌으로 가지 않았어요.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어요.

45년 동안 해 뜨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엌에서 밥 짓느라 바빴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봤어요.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구름이 붉게 물들고, 해가 천천히 떠오르는 걸.

아름다웠습니다.


'내가 살아 있구나.'

진짜로, 진심으로, 제 의지로.


그때였습니다. 전화가 걸려왔어요.

큰시누이였습니다.

"올케, 나야.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와. 가족회의 할 게 있어."


"무슨 일인데요?"


"오빠 재산 정리 문제. 그리고... 올케, 우리 엄마가 올케 집에서 같이 살고 싶대. 혼자 계시기 힘드시니까."


저는 전화기를 꽉 쥐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서 같이 살겠다고요? 재산 정리는 또 무슨 소리죠?


"언니, 재산이 뭐가 있다고..."

"올케, 연금 있잖아. 오빠 공무원 연금. 그거 유족연금으로 나올 거 아니야. 보험도 정리해야 하고..."


아, 그렇구나.

시누이들은 지금 제가 받을 유족연금을 노리는 거였어요. 그리고 시어머니를 저한테 떠넘기려는 거고요.

45년 동안 시댁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남편 없이도 저를 이용하려는 겁니다.


그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언니."

"응?"

"저, 못 갈 것 같아요."

"뭐? 왜?"


저는 심호흡을 하고 말했습니다.

"언니, 저 이제 제 인생 살고 싶어요."

"...뭐라고?"

"45년 동안 시댁을 위해,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살았어요. 이제는 저를 위해 살고 싶어요."


"올케, 정신 차려.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며느리 도리 아니야?"

"언니."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제 며느리 안 할래요. 저는 그냥 김명희로 살고 싶어요."


"...올케, 미쳤어?"

"아니요, 이제야 정신 차렸어요."

저는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제가 먼저 전화기를 끊다니. 심장이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후회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45 년 만에 처음으로, 제가 제 입으로 "아니요"라고 말한 겁니다.

베란다로 다시 나갔습니다. 해는 이미 떠올라 있었어요.

저는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봤습니다.

"이제 시작이야. 내 인생의 진짜 시작."




여러분.

저는 유품 정리를 하며 남편의 비밀을 알게 됐습니다. 45년 동안의 남편의 바람을.

처음에는 배신감에 무너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밀이 저를 더 자유롭게 만들어줬습니다.

'아, 이 결혼은 처음부터 거짓이었구나.'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미련 가질 필요가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명확해졌어요.

이제 저는 제 인생을 살 거예요. 누구의 그림자가 아닌, 김명희로서.


그런데... 그날 저녁, 시누이들에게서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 한 통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다음화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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