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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그리엄마 Oct 11. 2019

엄마 과학자 생존기 - 9

과학자가 육아를 대하는 방법

9. 과학자가 육아를 대하는 방법



사람이 사람답지 못했던 출산휴가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매일매일 쪽잠을 자며 아이를 케어하고 집에만 갇혀 있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그만큼 짜증이 솟구치던 시기....

아이를 사랑하지만 귀를 틀어막고 잠자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단전에서 올라오고...

보채는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아이가 먹을 분유를 타던 그때...

출산휴가 2달째... 산후조리 (엄마, 아빠, 동생들의 도움이 있던 꿈같던 시기..)가 끝나고 나 홀로 육아전쟁이 펼쳐진 그 시절....


육아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정말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케어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뭐든 글로 배우는 타입. 역시나 공부를 위해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의 언어를 강의해줄 수 있다는 태교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각각의 요구사항을 분석하여 통계를 낸 자료로 구축되었다고 한다.

암튼 믿거나 말거나 나와 신랑은 획기적인 데이터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고 땡그리를 케어하는 동안 이 데이터를 활용하겠노라 다짐하고 써먹고자 하였다. 그러나 실패하였다. 저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ㅋㅋㅋㅋㅋ


그런 경험을 켜켜이 쌓아가며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생각보다 육아는 실험과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았다.

물론 Introduction으로 활용할 백업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있어 이걸 실험이라 생각해야 하는 것인가 싶겠지만, 그냥 뭐 내가 일빠의 길을 걷나 보다... 하고 생각하면 뭐 실험이구나 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필자는 지금 실험을 하고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낮시간의 나 홀로 육아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대체 이건 언제 끝나는 것인가..ㅠㅠ)

그렇다면 육아와 유기화학 실험의 유사점을 찾아보자.


1. 세상엔 "같은 실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슷한 실험"만 있을 뿐이다.

 

자고로 유기화학 실험에서는 동일한 실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필자의 세부 전공인 의약품 합성화학에서는 모든 구조가 동일하지 않다. 아주 미세하게 다른 부분들을 만들고 실험을 하게 되는데, 앞에 비슷한 구조로 실험이 성공했다면 뒤에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추측하고 실험을 한다.

그래 말이 어렵다. 쉽게 말해보자.


어제 한 실험, 오늘 한 실험... 하는 모습은 비슷해도 내용이 다르다.

어제 애가 울고, 오늘 애가 울었다. 둘 다 울었으나 울게 된 이유가 다르다.

어제는 배가 아파 울었고 오늘은 배가 고파 울었다.

대충 이런 느낌?

실험이 안될 때 마음을 비우고 실험에 임했던 석사 시절을 되새김질하며 그때보단 덜 힘들다 마음의 위안을 삼으니 아이의 울음을 버틸 수 있었다.......(석사 때가 더 힘들.. 읍...)


2. 나름의 reference가 존재하고, 또 나름의 대조군이 있다.


앞서 비슷한 실험이라고 언급하였다. 비슷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선행한 연구자료가 필요하다. 과학자 또는 연구자들은 이것을 reference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든 연구는 누군가 선행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이런 선행연구와 비교를 하기 위해 대조군도 존재한다. 대조군은 나와 비교가 가능한 모든 것이 해당될 수 있다.


자 이것을 육아에 반영해보자.

우리 육아인들에게는 엄청난 양의 reference가 존재한다. 우리 자신이 바로 그 refenrece이다. 우리의 부모님(=aka 할머니, 할아버지)이 바로 그 reference를 탄생시킨 선행 연구자이며, 우리가 바로 그 연구의 산물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딱히 좋은 refenrece가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럴 땐 육아책을 뒤져 전문가의 경험을 reference 삼아 자신의 육아에 투영시키면 된다. 경험적으로 전문가 서적은 추천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compact 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전문가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안되는데 내 유전자를 받아 태어난 아이가 부합될 리가 없다. 고로 빠른 포기를 추천한다.


육아에는 나름의 대조군도 존재한다.

옆집 아이 윗집 아이 키카에서 만난 아이, 어린이집 등등등

여기저기서 만난 내가 아는 남의 아이가 곧 내 아이 육아연구의 대조군이 될 수 있다. 연구로 치면 타 실험실 연구와 비슷하다 생각할 수 있다. 이 역시 너무 귀담아듣지 않는 것이 좋다. 연구자들은 이미 겪어봤을 테고 다들 학창 시절에 경험했겠지만, 남의 반 (혹은 남의 실험실)은 늘 우리 반 (혹은 우리 실험실) 보다 좋아 보이는 법이다.


3. 엔딩이 보이지 않음....
실험이나 육아나 모든 가설이 맞지는 않는다.... 늘 요인 변경이 필요할 뿐...


가장 육아가 내가 하는 연구와 비슷하다 느낀 가장 큰 부분은 매일매일 다른 이슈가 발생하고 이슈를 해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리고 미션이 해결되면 다시 새로운 미션이 생기고 내가 도출한 가설은 맞기도 하지만 맞지 않을 때도 많다. 그리고 이 작업은 무한반복이 되며 매일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쌓아간다. 결론 끝이 보이지 않는다.....ㅠㅠ 


학위를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해서...

내가 실험을 다 끝내서...

혹은 문제라고 생각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학위는 일종의 자격증과 같다.

너는 너의 답을 찾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서다 증서..

그리고 이만큼 연구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 또 다른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도 찾으러 갈 수 있다는 자격증...

(물론 영혼과 몸을 갈아 넣었다는 증거.. 읍...)


즉, 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노력했다는 말이지 답을 찾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이것은 그저 시작일 뿐..... 계속해서 질문은 이어지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도 이어진다.

저 위에 도돌이표는 평생 동안 되풀이되는 매일매일의 일상일 뿐이다.


육아가 그러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의 표정과 울음의 높낮이를 살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답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주고, 재워주고....

실험을 수행하고 2시간 아이가 잠이 든 틈을 타서 힘들게 만들어진 축적된 데이터를 육아일기에 업데이트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배우자 혹은 가족들에게 아이의 상태를 보고하고...

잠깐 커피를 마시며 쉬고 나면 아이가 운다.... 그리고 난 다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고 육아 실험을 시작하게 된다.


이게 연구랑 다를게 무엇인가....ㅠㅠ

나에게 육아란 그랬다.

끝나지 않는 대학원을 다니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밖에서 다니는 대학원은 말이라도 통하지 이건 딴 나라 지도교수님 하고 대화하는 것도 아니고, 지도교수 (aka 아기)랑 말이 안 통한다 ㅠㅠ (아이가 지도교수인지 내 실험 데이터인지 사실 분간은 가지 않는다....)

하튼, 실험할 대 반응이랑 대화도 해본 나지만, 반응은 나한테 대꾸를 하지 않으니 낫지 애는 울어서 힘들다.

귀가 따갑다. 귀에서 피가 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해봤다.

아무튼 옆집에서 사람 찾아오기 전에 아이를 달래고 재우고 그런 일상이 반복된다. 그래서 빠른 복귀를 희망했다. 집에서 육아를 해보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가 어려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난 미치는 줄 알았다...ㅠㅠ)


나는 사람다운 삶을 누리고 싶어 아기띠를 하고 애를 들쳐 매고 혹은 유아차에 애를 태우고 하루에 한 번 무조건 나갔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책을 들고 가서 카페모카를 시키고 아이가 잠든 잠깐 빠르게 책을 읽고 나왔다.... 아주 짧은 30분~길어야 한 시간의 그 시간이 나에겐 사람답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루에 한잔의 커피를 사 먹는다는 게 흔히 말하는 맘충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보는 낮시간에 아기띠 혹은 유아차를 끌고 나온 사람들은...

정말 그냥 성격이 나쁜 사람도 있겠지만, 대게 나처럼 사람이 보고 싶어 나온 사람일 수 있다.

그냥 삶에 찌든 대학원생 하나 본 것처럼 생각하면 된다.

실험실 생활에 찌들어서 커피 한잔 시키고 멍 때리는 모습이 당신이 볼 때 대학원생의 사치로 보이는가?

그냥 짠해 보이지 않겠는가?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대학원생이나 피곤에 쩌든 모습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매일 마신다고 하면 이것이 사치라 생각되겠는가?

그런데 묘하게 육아인이 나와서 그러고 있음 사치가 된다.

왜 사치가 될까?

사람이 보고 싶어서, 어른들과 사람다운 대화를 하고 싶어서... 혹은 누군가 말하는 게 듣고 싶어서...

그래서 나온 이들이 마시는 커피 한잔이 사치라고 말한다면, 연구자들이 마시는 커피 역시 사치라고 생각해야 한다.

위에서 서술한 대로 육아방법과 과학실험 방법은 딱히 다르지 않으니까...

육아인들도 연구자들만큼 매일매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된 삶을 살고 있으니까...

그러려니 해주면 된다.

아니지, 사실 남 커피 마시는 걸 쳐다보는 당신이 문제일 수 있다.

남의 일에 무슨 상관인가. 당장 신경을 끄길 바란다.

그리고 굳이 쳐다볼꺼라면, 조금은 측은지심을 갖고 바라봐 주길 바란다.

생각보다 힘들다.....ㅠㅠ



오늘 글은 세상 모든 육아인들에게 바칩니다. 당신들은 위대한 사람입니다....ㅠㅠ

성평등 용어 쓰기 캠페인에 따라 유모차 대신 유아차라 칭하였습니다. 많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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