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그리엄마 Nov 03. 2019

엄마 과학자 생존기 - 12

여자, 과학자 그리고... 엄마

12. 여자, 과학자 그리고... 엄마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나는 한 번도 내가 여자이기에 불리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원 생활만큼 내게는 평등한 시절이 없던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여자라고 굳이 오버해서 배려하지 않았고, (18L solvent 말통쯤은 성별 관계없이 모두 번쩍번쩍)

왜 화장도 안 하냐고 묻지 않았으며, (어디 감히 대빵 누님에게.....ㅋㅋㅋㅋㅋ)

치마를 입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chemical burn 주의!)


그랬기에 임신부 시절에 쭈글이로 살았을지언정 내가 여자라 과학자로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박사라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은 해도 아주 큰 차별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아주 큰 시건방이었다.


박사를 하면 취업이 잘 될 것이란 오해를 참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어서 취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 정점에 있기에 이를 필요로 하는 직업군이 적다. 취업은 석사> 학사> 박사 순으로 잘 된다. 석사 연구직은 테크니션이라는 이름으로 학사 연구원은 공정팀 (=생산) 연구원으로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만, 굳이 세세하게 공부하여 머리만 굵어진 박사급 연구원은 많이 반기진 않는다. 그리고 전공분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맞는 직군을 찾기가 어렵다. (대부분 박사급은 이러한 이유로 학교에 남거나 공공기관을 희망한다. 회사보단 전공 매칭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취업을 걱정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별이 발목을 잡는다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박사를 마친 입장에서 볼 때 취업문이 좁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내가 여성이란 사실을 인지하지 않고 그저 chemist (나는야 유기합성쟁이~)의 삶만을 꿈꾸었던 나는 취업시장에 나가서야 내가 [여성] 과학자란 사실을 마주해야 하였고, 심지어 [기혼 여성] 과학자란 사실을 확인해야 했으며,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 과학자라 불편한 존재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상당히 결함 있는 존재였다. 이곳에서는 말이다....


혹자는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 싶은데 이 일은 본인이 처음 취업전선에 뛰어들며 정면으로 마주한 현실이며, 현재 필자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일임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고구마 주의!)


졸업이 확정이 되고 나는 미친 듯이 이력서 (=떡밥)을 전국으로 뿌려댔다. 석사 이상의 학력이라 적히고 유기합성 전공이라 적히면 다 뿌렸다. 대략 매일 한 개의 회사에 이력서와 자소서를 뿌려대고 기도했다. 하나만 걸리면 평생직장으로 성실히 다니겠다 기도했던 듯하다.(평생직장은 개뿔...)

그리고 주변 박사님들도 나를 취업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본인들의 지인 찬스를 마구마구 활용하였고 나는 어디든 비비적거렸다.


그렇게 첫 번째 서류 전형이 통과되었다. 운 좋게 대기업 공채에 서류가 되었고 인적성을 보았으나 떨어졌다. ㅋㅋㅋㅋ졸업논문 때문에 그 회사 준비를 전혀 못하고 본 것도 있고, 추천으로 가는 것이라 좀 쉽게 되지 않을까 하고 쪼오오끔 기대하였으나 그냥 뭐... 그 회사의 인재상이 아니었나 보다. 첫 번째 취업은 그렇게 빠이빠이 했다. 이것은 억울함이 1도 없는 에피소드였다.


두 번째 서류 통과는 대구에 있는 한 공공기관이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연구소 박사님들이 많이 가 있던 곳이고, 내 전공분야와 완벽한 매칭이 되었기에 정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을 지원했었고, 박사님들 추천서까지 받아서 공개 면접, 실무자 면접, 이사장 면접까지 경험하게 되었던..경우였다.

그런데 그 면접.... 이상했다.


첫 번 공개면접은 전공 발표였다. 이것은 연구직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해서 전공면접을 보고 돌아왔다. 박사님들을 통해 들은 결과는 괜찮았다. 물론 내가 말실수를 하나 하긴 했지만, 그런것치곤 우야무야 넘어간거 같아서 다음 면접에서 꼭 만회해야지하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다음 면접을 기다렸고, 다음 면접에 올라가게 되어 또 대구에 가게 되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간 두 번째 면접은 이사장 면접이었다.

그리고 뭐지 이건.... 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 시점은 이때부터였다.

면접을 보는데 그냥 간단한 내 전공만 확인한 뒤 그후 나온 질문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이를 걸고넘어졌다.


"어이구 박사 해서 선임이나 책임급으로 오기엔 너무 어리네~박사를 빨리 했나 봐?"
"아 중간에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석박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석사 2년, 박사는 4년 반인데 제가 또 빠른년생이라 이른 나이에 공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아... 군대를 안 가서 그렇구나~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니까 스트레이트로 공부를 해도 30이 넘던데~OOO 씨는 군대를 안 가서 나이가 어린 거구먼~"
"........................."
"그리고 아이가 있네? 여기 오면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대구에 이모가 계셔서 이모도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제가 직접 기를 생각입니다."
"아... 그래요? 아이가 있어서 연구하기 힘들겠네?"
"..............(온갖 욕..)..."

젠장.... 내가 29에 박사 하는데 너님이 돈이라도 보태줬냐? 그리고 여기서 군대는 왜 나오냐 빌어먹을.... 그리고 부모가 애 키우는 게 당연하지, 내 연구는 안 궁금하고 내 애가 몇 살인지는 왜 궁금한 거야 젠장맞을!!!!

이라고 면전에 말하고 뛰쳐나갔어야 하는데.....

취업준비생 따위였던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만 띄며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CX란 생각을 하며 면접을 마치고 실무자 면접을 보러 갔다.


실무자 면접도 뭐야 이건... 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무자 면접을 보고 나니 와.... 여기 어렵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내 연구에 관심을 가졌던 면접은 달랑 전공 발표뿐이었다. 실무자 면접에서는 나를 상당히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아이는 누가 키워줄 것이며, 누가 나를 도울 것이며, 내 남편은 무슨 일을 하는지를 그렇게 많이 궁금해하셨다. 아 그리고 나이가 어려서 책임으로 뽑을 수 없겠단 소리도 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언제부터 연구직이 나이순으로 뽑힌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런 헛소리를 들었다.


음........ 왜 다들 내 연구에는 관심이 없을까..... 참.....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게 열심히 연구를 했고, 그 연구소에 대한 질문도 열심히 생각해서 준비해 갔는데, 아무도 나한텐 관심이 없었다. 내 전공에 대해 그리고 내가 잘하는 실험 테크닉 등에 대해 물어보는 이들이 없었다...

그저 아이는 몇 살인지, 아이를 길러줄 사람이 있는지, 남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런 것에만 관심이 많았다.

내가 너무나 이 연구소에 가고 싶음을 어필하기 위해 남편이 이직이 어려우면 주말부부로 지낼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합격하면 이곳으로 이주할 계획이다라고 했는데... 오히려 이 각오는 나를 까는데 필요한 빌미가 되었다.


이 면접의 결과는 면접 본 그다음 날, 우리 연구소 박사님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를 가르친 우리 팀 박사님들의 강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주말부부를 하게 해야 해서 본인들이 매우 부담스럽다며" 까였다....차라리 다른 핑계였음 그냥 받아들였을텐데.....

날 추천한 박사님들께서 그게 말이 되냐고 항의해주셨지만 결국 그런 결과가 나왔다.

내가 저들이 면접에서 그렇게 운운한 "남자 30대 박사" 였다면 과연 저런 말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까...

이 결과는 추후 내가 공공기관으로는 가지 않겠노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저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가지 않겠다가 아니라 아마도 난 뽑힐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인 뒤 결국 심란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나는...

비슷한 시기에 면접을 보았던 블랙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ㅋㅋㅋㅋ 그래 하도 애 엄마라 까여서 애엄마도 괜찮다고 해준 블랙기업에 혹해서 가게 되었다.

가기 전에는 블랙인지 몰랐으나.... 지내면서 서서히 블랙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하튼.... 내가 앞서 면접에서 그런 식으로 까이지 않았다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기분 나쁘게 까인 터라 그저 여자도 괜찮고 애엄마도 괜찮다는 회사에 혹하고 말았다.

(to be continiue...)


이때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파이터로 레벨업)

면접에서 여자 운운하고, 군대 운운하고, 애엄마 운운하고, 둘째 계획 있냐는 질문에서 나오는 무례함을 온몸으로 받아본 덕분에, 나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석사, 박사를 따고 진출해봤자 내가 겪는 현실은 소설책에서 나오던 현실과 1도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아무리 공부를 하고 나와도 남자 연구원들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억울하고 억울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내 연구만으로 남자들과 동등해지려면, 최소한 결혼은 해도 아이는 없었어야 했던 것이다.

뭐 같은 현실이었다.

그래도 간신히 붙은 회사라 하하호호하며 살아남기 위해 눈치 보며 살았으나, 속은 말이 아니었다.

매일매일이 억울했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냥 내가 운이 나빴다.
나 스스로 내가 무슨 핸디캡이 있는지를 파악 못한 내 잘못이다.
저런 핸디캡을 모두 덮을 정도로 내가 엄청난 연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다.
아니지, 그냥 내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없었어야 했었는데 내가 실수했던 것이다.


매일매일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알고 있다.

나는 잘못되지 않았고, 그저 여자이고 아이 엄마이기 때문에 이를 포장하기 위해 위대한 업적이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 위대한 업적이 있어야지만 내가 과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이미 차별일 테니 말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나와 같은 평범한 과학자들이 자기 자신을 증명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성이고, 그저 아이 엄마란 이유로, 보다 더 훌륭한 업적이 있어야지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다.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저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란 걸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처럼 아이를 원망하지도,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분명할 배우자를 원망하지도,

또 엄청난 업적을 세워야지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지레짐작하여 마음을 졸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하루하루 본인이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원망하고, 또 그러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원망하며 보내기에는...

우리의 매일매일은 소중하고, 또 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지 못해 아이가 가장 이쁘고 사랑스러울 시기에 아이를 미워했고, 인생의 동반자라 생각한 이를 참 많이 원망했었다. 나처럼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기를 바란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절대로 바보 같은 짓이 아니다.

인생에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귀한 시간이다. (인간이 얼마나 레벨업이 가능한지를 알 수 있는 엄청난 아이템?)

그리고 나처럼 바보같이 헛소리 하는 거 다 들어주지 말고, 꼭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시원하게 날려주길 바란다.

개소리 쟁이들은 본인들이 개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과학자 생존기 - 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