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 탈출기(?)
개떡 같은 면접 이후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아니,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가 관을 짜고 누워 있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박사 이후 반짝반짝한 삶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성별로 까이고, 애엄마라 까일 것이라고 사실 예상을 못했었기에...데미지가 컸다.
사실 내가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에는 상당히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다.
토익 보기 싫었고
쎄가 빠지게 실험했는데 그 연구를 뒤에 놈이 실험 몇 개 더 하고 제1저자 가져갈 것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고..
그냥 박사님 소리가 듣고 싶기도 했고...
평생직장으로 전문직에 종사하고 싶었던...
뭐 이런 이유?
사실 나는 박사를 하고 나면 어디든 들어가서 오래오래 길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성별이나, 인종이나, 결혼 유무에 관계없이 말이다. 과학이란 언어로 오래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의 시간과 열정과 건강을 갈아 넣어 박사과정을 보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 결혼 유무로 인해 고배를 마신 취업 현실이 너무나도 큰 상처였다.
아니, 내 또래 남자 동기들은 결혼했다고 까이지 않는데, 왜 나는 결혼했다고 까인단 말인가....ㅜㅜ
존심이 상했다. 정말 말 그대로 부들부들이었다...
이러려고 내가 쎄가 빠지게 공부한 것인가에 대한 자괴감이 들어 하루하루 짜증이 났다.
물론 내가 갈 곳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친애하는 박사님들은 나의 이 불편한 현실을 해결해준다며 다른 본부에 포닥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졸업 전 취업이 안되면 그냥 그런대로 옆 본부에 짐 옮기고 새로운 연구를 하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사실 크게 부담스러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꼭 졸업 전에 취업을 하고 싶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박사까지 한 내가! 취업을 못한다면 경제활동에 일조할 수 없고 그럼 난 경제력도 없는 쭈굴이라는 생각에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계속 떡밥을 뿌려댔다. 그리고 한 곳이 얻어걸려 결국 바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그런데 블랙기업...).
이후에 내가 블랙기업까지 흘러들어 간 데에는 박살난 내 자존심이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급하게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 기업이 뭐하는 곳인지 또 어떤 분위기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내가 면접을 본 곳들 중 이곳만 내가 기혼여성인 것을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겐 그저 은혜로운 곳이었을 뿐, 이상한 분위기는 1도 눈치채지 못했다.ㅋㅋㅋㅋ
그래서 입사를 결정했다 (웰컴 투 헬....)
회사를 다니며 그냥 좀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몇 가지 존재했다.
연구용역 중심 회사였기 때문에 사실 자신이 담당하는 프로젝트만 신경 쓰면 된다고 했는데...
또 퇴근 눈치 안 봐도 된다 해서 입사한건데...
아이 케어 때문에 늦어도 7시에는 퇴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OK라 해서 입사했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뒤 인사고과에서 나는 생각보다 일을 많이 안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장난하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일해보았으나....
역시나 나는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닌 걸로 평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실 굳이 그 인식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바꿀 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 하다.
그래...처음엔 그러했다. 그러나 점점 부담이 몰려왔다.
이 기업에 입사할 때 나는 신랑도 데려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육아를 하기로 했었다. 그래 계획은 그렇게 잡았었다.
그런데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이 하원 도우미를 구하고 회사에서 7시 퇴근을 하는 사람도 나였고
주말에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도 나였다.
내가 아이를 케어한다는 것은 남편은 회사에 있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남편은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O과장...
열심히 하지 않는 O박사....
우리 부부에 대한 평가는 극명 가게 갈렸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를 이미 눈치깐 나는 서서히 남편을 멀리하게 되었고, 홀로 이직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간 회사에 남편이 온 이유는 아이를 함께 케어하기 위해서였다.
이전 기업이 야근이 많아 남편은 힘들어했고, 나와 함께 아이를 케어 하고 싶어 개인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회사에 입사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육아를 해야 했고, 남편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야 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데 우리는 차를 따로 타고 다녔다. 아이 등하원을 내가 해야 했기 때문이다.ㅠㅠ
어느 날 아이가 아팠다.
돌발진으로 열이 펄펄 끓어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가 왔던 날
나는 실험 중간이라 아이에게 갈수가 없었다.
당연히 남편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날, 반차를 내러 간 남편에게 남편 팀장이 물어봤다고 한다.
"O박사는 뭐하고?"
남편이 못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남편이 아이 케어를 하러 간다고 하면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꼭 질책처럼 느껴졌다.
[얼마나 바쁘다고 O과장이 갔나?] 라는 눈빛?
애엄마 바쁘니까 갔겠지....나 참....
어련히 둘이 알아서 시간 조율을 했을까....
분명 사회가 변했다고 했다.
육아휴직이 늘어났고, 우리처럼 아이를 직접 키우는 집이 많다고 했다.
아니,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아이엄마인 나는 퇴근은 할 수 있다. 아이가 아프면 휴가도 낼 수 있다.
아이를 케어하느라 조퇴도 할 수 있다. 걱정하지 말고 아이 키워라.... 고 회사는 말했다.
그런데 같은 회사에 있는 내 남편은 나갈 수 없었다.
애엄마가 있는데 애아빠가 왜 가냐는 식이었다.
너는 가장이니 일을 해라, 그리고 O박사가 아이 케어하면 되는 것 아니냐...
입사 때 했던 칼퇴가 가능하단 이야기는 배려 같았지만 배려가 아니었다.
인사평가에서 남편과 나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날...
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어졌다. 부부 사이도 갈라지기 시작한 거다.
그렇게 같은 직급인 남편은 회사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 되었다.
억울했다.
일찍 퇴근을 하는 만큼, 주말에 나올 수 없는 만큼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점심 먹고 쉬지 못하고 일한 적이 더 많으며, 점심을 거르고 일을 했던 적도 있고,
내 나름 시간을 맞춰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도 일을 더 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빌어먹을! 옆 팀에 있는 내 남편을 퇴근을 시켜줘야 나도 일을 할 것이 아닌가.
우리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도 그래야 퇴근을 할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는 나에게 입주 도우미 쓰고 아이를 거기다 맡기고 회사에만 올인하면 된다는 사장의 조언이 말 같은 소리였겠는가?
뭐 결국 나중에 같이 나오긴 했다... 위에 있는 이러한 이유가 반영되어
나의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가 되었고, 사장은 친절하게 (=매우 무례하게) 동료인 내 남편을 불러 나의 퇴직을 언급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퇴직을 하게 되었다.
회사는 물론 난리가 났다.
어차피 애를 키워야 하는 O박사만 나가면 되지 왜 일 잘하는 O과장까지 내보내냐며 난리가 났다 ㅋㅋㅋㅋㅋ
회사 입장에서는 어차피 아이를 키워야 하고 가장도 아닌 나를 내보내더라도 돈 때문에 내 남편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난리가 날 거까지야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상처만 가득했던 첫 직장과 안녕하고 집에 짱 박혔다.
2차 구직 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안 그래도 입사 전 자존감이 떨어졌던 나는 첫 회사의 상처로 자존감을 바닥을 쳤다...
집에 짱 박혀 고민이 늘었다..
어차피 다시 회사에 가도 이런 문제가 발생될 것이라면 회사로 가는 거 하지 말고 시간 강사라도 뛸까... 아니면 수능을 다시 봐서 약대나 교대를 갈까....
한 1년 빡시게 하면 수능 볼 수 있지 않을까....
1년 8개월 동안 엄마, 아빠보다 이모님이랑 시간을 더 많이 보내야 했던 땡그리와 좀 더 많이 놀 수 있게 쭉 아이 케어할까....
회사를 다시 간다면 아이를 시댁이나 친정에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연구직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합가를 할까...
꼬리를 무는 생각들의 끝은 결국 아이를 키우며 연구직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로 자꾸만 다가갔다.
내 인생이 허무하고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던 시기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포닥을 할걸....
아니지 포닥을 한다고 해서 이런 일을 겪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데...
그럼 결국 아이가 있으면 안 되었던 건가....
부정적인 생각만으로 가득했던 시기를 보냈다.
편하게 잠을 잘 수 없고, 미친 사람처럼 SNS만 뚫어져라 보던 시기였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그때 우연히 본 페북 기사가 날 끌어당겼다.
그게 장하나 의원이 쓴 칼럼이었고, 만나자는 말에 득달같이 땡그리를 끌고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언니들을 만났다. 만나서 펑펑 울고, 부정적인 생각을 조금씩 떨쳐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엄마와 과학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아슬아슬한 일상을 보내게 되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학력, 직종, 생활환경이 모두 다른 이들이 결혼 후 아이가 생긴 뒤 직장에서 겪는 현실이 모두 같았기에 더 위로가 되었다.
세상에 나 혼자만은 아니구나... 이렇게 그냥 주저앉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매일매일이 전쟁 같다.
실험을 하다가 불현듯 작아진 아이 옷이 생각나 실험 중간에 옷을 주문해야 하고,
아이 간식을 주문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정도로 멀티플레이를 해야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여전히 아이 등 하원은 나의 몫이고, 난폭운전을 해가며 출근시간 맞추고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일찍 퇴근을 하는 죄로 빨래도 내가, 식사 준비도 내가, 뒷정리도 내가 해야 하는 개똥 같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아슬하게 엄마의 삶과 과학자의 삶을 같이 유지하고 있다.
힘들지만 지속은 된다.
지속하다 보면 볕 들 날이 있겠지 싶어 지속 중인데, 사실 빠른 성공으로 가지 못할까 불안하기도 하다.
이렇게 별 연구성과 없이 30대를 보내버릴까 봐 매일매일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와의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은 실험하는 것만큼 재미가 있다.
지금 당장 큰 커리어를 잡을 순 없겠지만, 엄마로서의 삶도 소중하기에 그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보는 것이다.
엄마의 삶과 과학자의 삶에서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고민하지 말라 말해주고 싶다.
둘 다 가능하다.
약간씩 모자란 삶은 될 수 있겠지만 둘 다 놓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한 엄마는 불가능할 것이고, 엄청난 연구력을 지닌 과학자는 될 수 없을지언정
그래도 엄마이고, 그래도 과학자로 지낼 수 있다.
그렇치만 도돌이표처럼 역시 개힘들다...ㅠㅠ
꼭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가능은 하다 정도만......;;;;;;;;;;;;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역시 이렇게 개힘들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이 제때 퇴근만 해도 난 덜 힘들어진다...(젠장...)
그럼 결국 결론이 그렇게 간다.
칼퇴가 답이다......
문제는 이게 잘 안되서겠지만.... 언젠가 되지 않겠는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