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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그리엄마 Oct 12. 2020

엄마 과학자 생존기 - 28

28화. 취미생활의 변천사

28화 취미생활의 변천사



오래전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대략 한.... 10년 전?

하튼 그때부터 지금까지 돌고 있는 유명한 대학원생 유머(?)를 가장한 현실적인 조언 하나가 있다.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고...
대학원 초범은 2년, 재범이면 단기 3년에 장기 5년이라는 썰.....


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대학원에 다녔던 사람이라면 격공 할 이 멘트.

왜 전직 대학원생들은 이 이야기에 격공 하는 것일까?

그거야 우리가 그만큼 외부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 짱 박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전공은 내 전공이 아니니까 아주 잘 안다고 할 순 없고,

일단 내 전공만 비교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가 외부와 단절된다는 맥락에서 볼 때 연구소나 교도소는 또이또이 할 수 있다.

유기합성이라는 연구를 하는 이들은 대학원에 들어가는 순간 외부와 단절된다.

우리가 원해서 발생하는 일은 아니고, 그냥 상황이 그렇게 외부와 단절이 돼버린다.


의도는 아니지만, 제때 졸업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매주 반복되는 랩 미팅에서 멘탈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서....

대학원생들은 필사적으로 실험을 한다. (물론 미팅 이틀 전에 실험 폭주를 진행하기도 한다).

특히나 의약화학 연구를 하는 경우, 혼자서 하는 연구가 아니라, 다른 팀과의 협업이다 보니 더 시간에 쫓기게 된다.

우리 팀 박사님들의 재촉할 때 사용하는 멘트는 이러했다.

쥐가 크고 있다.... 혹은 세포가 크고 있다....
세포가 크고 있고, 쥐가 크고 있으니 당장 애들이 먹을 화합물을 만들어라....


뭐 그렇게 쥐가 크고 있고, 세포가 크고 있는 죄로 매일 야근을 했었다.


뭐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연구원 꿈나무로 지내던 대학원생 시절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장시간 노동환경에 처하면, 사람이 피폐해진다. 점점 피폐해지는 삶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대학원생들은 각자 탈출구를 만든다.


술을 사랑하는 이들은, 소주 패트나 맥주를 사다 놓고 1일 1잔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고, 담배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다. 참고로 이 케이스가 우리 신랑인데, 우리 신랑은 금연을 했더니 스트레스성 고혈압이 와서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희귀한 우리 신랑의 케이스를 랩실 사람들과 스터디해본 결과, 과도한 대학원생의 스트레스가 담배보다 위험할 수 있다는 자체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등장했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스트레스 해소법은 나하고는 잘 맞지 않았다. 일단, 나는 술은 좋아하지만, 술로 스트레스를 풀지는 않았다. 담배도 나랑은 맞지 않았으니 패스. 그런 내가 할 수 있던 취미는 미니어처 만들기와 각종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이었다.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 지금도 좋아한다.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핀셋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일도 좋아했다. 레고로 피겨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십자수며, 뜨개질, 코바늘 뜨기 등 온갖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DIY라고 적힌 모든 것들을 수행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나는 술과 담배 대신 온갖 종류의 만들기를 대학원 생활 동안 수행 했었다.

내가 대학원 시절 가진 취미활동들은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이 취미들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1. 혼자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를 습득했다.

2.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취미만 한다.

3. 단순 작업의 무한반복이 존재한다.

4. 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가진 취미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야근이 일상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씻고 논문 보기도 바빴던 시절, 운동하고 밥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이 없던 그 시절, 온갖 스트레스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취미가 필요했다.

그렇게 선택한 취미활동이 바로, 시간과 공간에 제약 없이, 옆에서 함께 해줄 사람 하나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취미 리스트였다.

특히 뇌를 쓰지 않는 것들을 선호했다.

사실 그 전엔 나는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한 뒤, 책 보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하루 종일 논문을 보는지라 굳이 책을 더 읽고 싶지가 않았달까.....

그래서 뇌를 쓰지 않아도 될 법한 것들을 찾아 헤매었고, 단순작업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십자수나 뜨개질에 꽂혔었다.


십자수, 미니어처 만들기는 특히 정말 나의 암울한 대학원생 시절 존재했던 한줄기 빛이었다. 실험 성공보다 망치는 날이 허다하고, 사소한 실수로 혼이 나기도 하고, 시험을 개 망하기도 하는 등등 온갖 일에 시달리고 퇴근을 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작업은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말 무념무상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이 작업은 어느 순간 흔적을 남긴다. 십자수로 쿠션이 탄생하기도 하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를 할 수도 있고, 뜨개질로 신생아 모자를 떠서 후원을 하기도 하고....

단순작업을 통해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흘려보내기도 딱이었고,

결과적으로 어떤 작품(?) 비슷한 걸 탄생시킴으로써, 내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미니카를 조립한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긴 학위과정....

매일 실패의 연속과, 다른 동료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스로의 무식함에 머리를 쥐어뜯었으며,

하루에도 열두 번 때려치워 말아를 고민했던 시간....

취미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었다.

나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있고, 지금 나의 삽질은, 언젠가 학위논문이라는 결과로 일단 학사모를 쓸 수 있을 수 있다는 희망...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며, 아 내가 아주 멍청한 인간은 아니구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나는 지금 취미 부자다. 심지어 가끔 겁나게 심란해지면 빵을 구울 정도로 손으로 하는 모든 짓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인트칠도 할 수 있는데 우리 신랑보다 내가 더 잘한다는 재능도 발견했었다.


이런 취미활동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임신 중에도 이어갈 수 있었던 나의 온갖 취미활동들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모두 stop 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시간 중에는 도저히 나의 무념무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1~2시간을 빼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결국 아이가 태어난 뒤, 나는 나의 원 취미생활을 고이 접어 서재 한편에 keep 해야 했다.


취미생활이 없어진 후, 많이 힘들었다. 아이를 케어하게 되면서 연구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아이를 케어하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아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의 감정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도, 퇴근 없는 삶도... 심지어 아픈 것도 내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모든 현실이 너무 힘들었었다.

아! 물론 만들었는데 안 먹는 아이를 보며 힘들었던 것 역시 포함이다...

아이와 분명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엄청 노력을 하고는 있는 게 맞는데, 무언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1도 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아이가 어릴 땐 아이가 잠든 1,2시간 그 찰나의 순간...

그리고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뒤에는 아이가 잠든 이후 늦은 저녁의 시간...

유일하게 내가 무언가 혼자 있을 수 있는 그 시간, 그러나 너무나도 짧은 그 자유의 시간,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잠깐잠깐 핸드폰으로 슥슥 넘길 수 있다는 장점에 웹툰은 괜찮은 취미가 되었다. 그런데 너무 짧았다. 나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에 내가 보는 콘텐츠의 양이 너무 적다는 느낌이었다. 즉, 충족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웹소설을 보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에 팬픽에 빠져들듯이 그렇게 소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은 육아를 하는 일하는 엄마가 가지기엔 완벽한 조건의 취미였다. 순간 짧게 읽고 손가락을 슥슥 넘기면 한편이 순삭이었다. 그리고 다음 편은 어차피 하루가 지나야 볼 수 있으니, 남은 시간 하루 동안 아이를 케어하면서 기무 (기다리면 무료)가 뜨기만 기다리면 되었다. 물론 기무(기다리면 무료)는 나에게 [기다리면 무리]였다. 과거 취미활동을 위해 사용하던 돈을 여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취미는 아니었지만, 혼자서, 빠른 시간에,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할 수 있다는 취미라는 점에선 과거 취미를 대체하기엔 훌륭했다. 그리고 현실도피를 하기엔 정말 딱이었다.


과거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었다. [드래곤라자]와 [묵향]을 사랑하던 아이는 PC통신 대신, 어플을 통해 웹소설을 읽게 되었고, 이 취미생활이 육아와 일로 지친 내 마음을 달래는 큰 힘이 되어주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취미가 탄생되었다.


엄마의 취미란 참 갖기가 어렵다. 부캐가 유행이고, 아인슈타인 역시 바이올린을 그렇게 잘 연주했다고 하고, 취미를 가져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양육자가 되는 순간 취미란 참 갖기 어려운 사치품이 되는 듯하다. 건담 조립이 취미였던 신랑은 많은 건담이 아이의 손에 아작 나는 참사를 만나야 했고, 운동을 시작해봤지만 아이가 매일같이 들러붙어 운동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골목길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아이 양육을 하면서 걷기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모든 이동을 자가용으로 해야 했다. 당연히 내가 만든 미니어처는 아이가 박살을 냈고,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니 내가 좋아하는 호러영화는 어차피 못 보게 되었다. 나와 신랑이 좋아하던 게임 (특히 갓 오브 워)는 잔인한 장면이 많아 아이가 잠이 들기 전엔 절대로 할 수 없는 게임이 되었다.


참 어렵다. 양육자의 삶이라는 게 말이다.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사소한 일상을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시절이라 그런지 더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소소한 내 취미를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 포기하는 것이 나를 포기하라고 하는 거 같아 힘들 때도 있다. 이런 작은 것조차 나를 위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진달까.... 아이는 늘 사랑스럽고 (대체로)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가 아이를 위해서만으로 국한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아이를 안아줄 때마다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비타민 충전할게~땡그리가 엄마 비타민이야"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비록 지금은 나의 것들을 포기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내 다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지킬 것이고, 내가 포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를 이렇게 안고 있음으로 다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자 하는 내 다짐.


그래도 이 다짐은 꽤나 효과가 좋다. 아직 아이를 키우는 7년간 이 다짐은 내가 나를 양육자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말썽을 지켜보기 힘들었을 때도, 아이와 기싸움을 할 때도, 나는 이 다짐을 되새기며 아이의 마음을 먼저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나는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누군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아는 것도 없고, 처음이라 그저 서툰 것 투성이지만,

그래 그래도 그럭저럭 흘러가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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