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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Aug 28. 2021

야생 탐험대 (1) 오프로드

포토에세이 zoo is noT enOUGH #9 스피츠코프


오랜만에 곰살맞은 포장도로를 만났다. 크런치 초콜릿이라고 있다. 바삭바삭하고 오돌토돌한 알갱이가 씹히는 맛이 일품인 초콜릿이다. 아프리카의 포장도로는 크런치 초콜릿을 기대하고 집에 와 장바구니를 열었는데 잘못 고른 가나 초콜릿이 하고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잘 닦인 포장도로는 어느새 밋밋하고 심심해져 있었다.


울퉁불퉁한 진동에 재미 들린 궁둥짝들이 맨질한 주행감을 연신 지겨워했다. 길 너머로는 듬성한 나무들을 꼬나문 지평선이 느럭느럭 지나갔다.


그러던 순간, 범상치 않은 기운에 전율이 일어났다. 가마득한 거리에서도 위용이 느껴지는 사자 형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손을 치켜들고 우리를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위엄찬 모습을 당당히 드러냈다. 아프리카의 마터호른. 거대한 바위산의 향연. 진정한 캠퍼들의 성지. 부시맨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 중저음의 사자후를 내지를 듯한 곳, 이곳은 바로 스피츠코프였다.


화강암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는 1728m, 우측 하단 길 위 점 같은 사람으로 크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한 크기 한다고 동네에서 깐족거리던, 거창 금원사 지제미골 입구에 있고, 우리나라에서 단일 바위로는 제일 크다는 ‘문바위’를 자갈스럽게 보이게끔 만드는 포스를 뿜어냈다.


그런데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살펴본 결과, 애초 계획에 없던 공원 출구 쪽에 거꾸로 들어온 것 같았다. 원래는 입구에 위치한 공원 관리소에서 캠핑 사이트를 허가받아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캠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입구로 다시 가기 위해선 험준한 오프로드를 뚫고 지나야 했는데, 문제는 길이 여간해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준중형 크기 도심형 다목적 MPV 차량은 얌전한 아스팔트에나 더 잘 어울리는 차였다.

열 배는 더 큰 바위들 사이로 울퉁불퉁한 길이 이리저리 뻗어갔다.


탑승자 5명 전원은 상체 좌우각 45도를 유지하며 빠르게 진자 운동을 했다. 움푹 파인 오프로드를 한참 위태위태 지나갈 때였다. 유독 튀어나온 돌덩이를 끼고 있는 커브길이다. 크기가 좀 있었지만 지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처 커브를 빠져나오기 전,

 ‘쿠콰쾅쾅!’

하부에서 엄청난 충격음이 났다. 연이어 센 충격이 있더니 그대로 멈춰버렸다. 아연한 표정으로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여기에서 고립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음식은 충분하겠지', '차량 실손 보험은 들어 놨던가', '좀 더 크게 둘러서 지나갈 걸'. 누구도 말은 안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음을 직감했다.


진은 왱왱 성낼뿐 꼼짝을 안 했다. 일단 차에서 내려 무슨 일인지 살펴봐야겠다. 내리는 동안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하늘이시여. 우레와 같던 그 소리는 차 하부가 박살 나는 소리가 아닌, 자갈과의 가벼운 충돌로 생긴 소리이게 하소서.'


흙바닥에 납작 엎드려 하부를 살피니 한쪽 바퀴가 공중에 때뚱하게 들려 있었다. 등받이 쿠션 만한 돌덩이가 앞쪽 하부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 본 돌덩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으려다 차체가 그 위에 올라타 버린 것 같았다. 그 바람에 동력 바퀴가 훌렁 뜨게 됐다. 5명을 싣고 가는 차의 무게와 높이를 간과한 탓이다.


곧바로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어디서 인가 맥가이버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다. 바퀴와 지면 사이에 빈 공간이 있으니 여기를 메꿀 적당한 크기의 바위를 괴면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근처에 널린 돌덩이 중에 적당한 놈을 골라 바퀴 아래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차에 올라 타 가속 페달을 살살 밟았더니 이내 으드드득 뼈가 갈리는 기괴한 소리가 났다. 우당탕 털썩 소리를 내고서야 길 위에 네 바퀴를 모두 얹을 수 있었다.

 

"미..미안하다, 얘들아."

"괜찮아, 또 이러면 그땐 죽인다"


부주의한 운전으로 공포감을 선사한 것에 사과하는 내 말에 화답하듯 훈훈한 대화가 흘렀다.

돌멩이를 쌓아 올린 관리소에 도착했다. 겨우 몇 가닥의 선으로 얼기설기 그려진 지도를 받았다. 드문드문 숨어 있는 캠핑 터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위치를 짐작하는데 용케도 무리가 없었다. 산속 깊이 들어가기 전 인적 없는 식당에 들러 미지근한 맥주를 몇 병 집어 들었다. 물망에 오른 몇 곳 중 한 곳을 마지막으로 선택했다. 바위산을 병풍으로 삼는 아래자락 즈음이었다. 그곳에 텐트 살과 거적을 펼쳐 자리를 선점했다고 알려 놓았다. 곧장 부시맨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바위를 찾아 떠났다.


그렇다, 당신께서 떠올리시는 그 부시맨이 맞다. 이미 크런치 초콜릿과 맥가이버를 단번에 눈치채신 연식을 알아보았음이다 (한 때 하늘에서 떨어진 코카콜라 빈병을 줍게 된 부시맨의 에피소드를 담은 코미디 영화 '부시맨'이 80년대에 인기를 휩쓴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흔적일 텐데 어찌 이토록 그림이 남아 있을까. 반영구적인 색소를 만든 것도 그렇지만 이곳에 그림을 그리던 부시맨을 마음속에 그려보니 여러 상상이 흘러갔다. 창을 들고 어떤 짐승을 둘러싼 모습이 있었다. 창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도 있었다. 낮은 바위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혼신을 다해 바위에 그림을 새겨 넣던 부시맨은 무엇을 보고 경험했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던 걸까.


해가 지평선 끝에 걸릴 듯 말 듯한 시간이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다.



태양이 저물고 있는 스피츠코프의 모습이다.



"우리 캠프 파이어 할까??"

"좋아, 그러자!"


갑자기 민과 안이 캠프 파이어를 하자고 제안했다. 순식간에 의기투합을 해 땔감을 줍기로 하고 흩어졌다. 우리 캠핑 장비는 본연의 기능에 최선을 다한 거라 간단하기 짝이 없었다. 캠프파이어 장비는 언감생심, 캠핑터 근처 돌로 동그랗게 쌓은 경계선만이 장작불을 허락한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들 주변에서 온통 마른 풀떼기만 한 움큼 쥐고 나타났다. 이걸로는 불 모양도 못 낼 판이었다. 그런데 수풀 너머까지 사라졌던 장 씨가  잔가지가 붙은 굵은 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돌아왔다. 처음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을 느낀 도인의 기운은 괜한 게 아니었다.


돌 산 위에는 어느새 해거름이 지고 밤하늘에는 어김없이 별들이 함초롬하게 박혔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주변에는 각자의 이야기가 두런두런 흘러갔다. 누군가의 예능과 연예인 이야기, 회사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 막연한 앞날에 대한 계획, 민과 안의 지나간 연애 이야기, 최앤장 부부가 세계 일주를 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미지근한 맥주를 맛있게 들이켰다.   


수북이 쌓였던 땔감이 울긋불긋하게 타오르다 재들로 변할 무렵이었다. 등 뒤에 있는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밤에 활동을 시작한 동물들이 주변에 나타난 것이다. 손전등으로 휘휘 훑어봤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주섬주섬 짐들을 텐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밥을 하고 설거지까지 마쳤는데도 모처럼 물이 넉넉히 남아 있었다. 다들 얼굴에 묻은 그을음을 닦아 내기에도 충분했다.


이슥한 시간까지 나뭇가지를 휘엉휘엉 저어 대던 바람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비라도 쏟아낼 듯한 으름장에 텐트도 부르르 몸을 떨기가 일쑤였다. 그렇지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텐트 안은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다. 부시맨의 숨결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스피츠코프에서 찍은 대부분의 사진은 훗날 찍은 사진의 동일한 일련번호로 덮어 씌워져 몇 장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분을 토한 것은 이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스피츠코프를 어험스럽게 지키는 바위산 자락에서 기지개를 켰다. 등짝에서 우두둑 뼈마디가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 정이 많이 들어버린 녀석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보호 구역이라고 하는 에토샤 국립공원이다.


우기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날씨 탓에 수시로 비가 내렸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물 웅덩이를 자주 지나가야 했다. 어떤 곳은 비가 내리면 지나갈 수 없다는 경고 팻말이 붙은 길도 있었다. 말라버린 계곡 줄기의 허리를 잘라 만든 길이라 물이 쉽게 불어나는 것 같았다. 웬만한 물웅덩이는 지나왔는데 이번 건 좀 도가 지나쳤다. 계속.


 




스피츠코프 옆으로는 지평선 너머까지 초원이 펼쳐졌다.
돌바위 옆 아늑한 곳에 캠퍼들이 자리 잡았다. 우리 터를 비롯한 어디에도 화장실이 없었기 때문에 나머지는 상상에 맡긴다.
돌바위에 걸터앉아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시맨이 그려놓은 바위 아래의 그림들이 보였다. 앞에 펼쳐진 초원을 달리며 사냥하던 장면을 그려 놓은 것 같았다.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터프(tough)리카 아프리카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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