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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Sep 12. 2021

야생 탐험대 (3) 빅파이브

포토에세이 zoo is noT enOUGH #11 세렝게티 사파리




프차가 평원을 질주했다. 엔진이 괴성을 내지르며 헐떡이는 동안 얼룩말을 쫓는 사자의 근육이 수축과 폭발을 반복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찰나를 프레임에 담기 위해 온 힘으로 렌즈를 겨냥했다. 한편 웅덩이를 찾아 이동하는 수 마리의 누우 떼 뒤로는 한가로이 초원을 지나는 코뿔소 가족이 보였다. 늪지에는 눈만 빼꼼히 내놓은 하마가 무료하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물을 뿌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비장하게 사파리 티셔츠를 걸쳤다.

사바나의 숨결, 야생이 요동치는 순간을 담기 위해.

떠나자, 야생 속으로!






<아프리카 사파리 규칙>

항상 차 안에만 머물 것
차량 밖으로 몸을 내밀지 말 것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말 것

* 위반 시 벌금


'엥? 이게 뭐냐.'


주의사항이었다. 동물이 주인인 곳 난데없이 찾아온 사람 시끄럽고 귀찮은 손님일 테니 이 정도 예의는 지키라는 의미였다. 꿈꾸던 사파리와는 다소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새 겸연쩍었지만, 동물과 공존을 선택한 아프리카의 방법은 무척 지혜로웠다. 자연에서 한걸음 물러나라는 경고가 역설적으로 자연과 더 가까워졌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기분만큼은 한껏 웅장해졌다.


사파리 경험이 이미 두어 차례 있는 최앤장 부부, 안과 민은 아껴 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그거 알아? 인간 냄새가 있어서 예민한 동물은 본능적으로 가까이 안 온대."

"그렇지, 보일 때있긴 한데 워낙 멀어서 말이야. 다 점으로 보여."

"맞아. 점같이 보이는 기린을 점린, 점같이 보이는 하마를 점마라고 하지, 크크크."

덧붙여 말하길 육안식별이라도 되면 다행이라고 다. 대서양을 건너기 전부터 품어 온 포부와 상당한 온도 차가 있는 말이다. '내 라이벌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인데….` 경쟁은 고사하고 동물 구경도 못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동트기 전부터 채비를 마쳤다. 어둑어둑할 때 동물보호 구역 입구에서 기다렸다. 장 시간에 맞춰 곧장 들어갈 참이다. 아침 볕이 길게 늘어진 초원이 나타났다. 가젤과 얼룩말이 한데 엉켜 풀을 뜯고 있는 사바나의 풍경이었다. 평화로운 아침이다. 상기된 표정으로 연신 감탄했다. 그런데 어째 이런 나를 더 흥미롭게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재미있다는 듯 민이 말을 걸었다.


- 우와! 저기 봐, 저게 톰슨가젤인가? 뿔 좀 봐!

- 블루야, 쟤네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 뭔데?

- 사바나의 맥도널드라고 해.

- 맥도널드? 그건 왜?

- 음. 이유는 곧 알게 될 거야.


나만 빼고 모두가 키득키득 즐거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옳다구나 하고 이마를 쳤다. 그건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즐겨 먹는 맥도널드와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 오후쯤이면 더는 가젤을 향해 렌즈를 들지 않을 테니 신기할 때 많이 찍어두라는 녀석들의 배려가 입을 꾹 다물었던 이유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신머리없수시로 등장하는 갖영양류 덕분 사진보다 눈으로 관찰하고 음미하는 시간이 늘게 된 것은 같은 날 오후였다.




 


아프리카 사파리에는 빅 파이브라는 게 있었다. 사자, 코끼리, 버펄로, 코뿔소, 표범을 일컫는데 공격성이 강한 동물을 묶은 거라 했다. 이를 다 봐야 사파리를 완성하는 거라고 바쁘게 자랑하던 블로그 글들이 떠올랐다. 미루어보아 이 다섯 종류 동물은 가볍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자, 코뿔소, 표범 편에서는 좀 억울할 것도 같다. 타고난 본능이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인데 람이 해가 중천일 때 와서는 보이니 마니 딴죽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오밤중 맵차게  두드소리.

 

'사람이 하는  대부분 부자연스러운 걸 작위적으 자연스럽게 만다는 걸 생각해 보면, 본능에 따른 짐승의 자연스러운 행동 사람 부자연스러워 보이게 되는 건가?', '어휴, 무슨 말이야.' 머릿속이 엉켰다. 그런데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동물원에서 푸석푸석한 낯빛으로 축 늘어진 야행성 동물을 만나게 되면, 밤낮없이 회사에 갇혀 늘어 내 모습이 떠올라 제는 은함앞설 거라는 거였다.


물웅덩이를 찾아 곳곳을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볼 수 없어 허탕 친 곳도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탐험을 나섰지만 벌써 태양에 달구어진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하늘과 맞닿은 땅이 강물처럼 흘러갔다. 적도의 태양은 강렬했다. 이글거리는 열기로 온몸이 지글거리고 있었다.


"우와아아! 저기 사자가 있어! 대박!"


이번에 찾은 웅덩이에는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해 차창 밖으로 몸을 쭉 빼고는 사진을 찍느라 여념 없다. 그 사이에 사파리의 규칙은 갈 곳을 잃고 안드로메다 어디쯤을 떠돌았다. 역시 인간이란.

먹잇감을 추격하는 박진감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 프레임에 담아졌다. 그렇지만 사이를 가로막는 창살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탄산수 같은 짜릿함을 느꼈다. 동물의 왕은 일개 미물의 방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궁둥이를 쭉 내밀고는 그저 그늘을 즐기기에 바빠 보였다. 와중에도 웅덩이 건너편 풀 뜯는 물소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건 잊지 않았다.


동물을 만나는 게 낯설지 않게 된 어느 날 늦은 오후, 노랗게 물든 노을이 등 뒤에서 비칠 때였다.

주변이 사위스러워진다 싶었는데 시커먼 구름이 내려앉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다. 또 한바탕 비쏟아 모양이다. 반으로 쪼개진 하늘에서 섬광이 뿜어져 나다. '콰쾅!' 귀 옆에서 터지는 천둥소리에 어깨 움츠렸다. 곧이어 툭탁툭탁 소리가 나더니 세찬 빗줄기가 쏟아졌다. 


초원 위로는 옅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홀연히 어디선가 얼룩말 떼가 나타났다. 신기하게 서로 약속이나  듯 나란히 서는,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꼼짝을 않는 거였다. 온몸을 빗줄기에 맡기고 있었다. 우거진 아카시아 뒤 몸을 숨기던 기린도 머리를 쭉 내밀었다. 빗속에 있는 우리를 무리 중 하나라 생각했는지 경계를 풀고 흠뻑 젖어 는 모습이었다.


신성하리만큼 고요한 이 순간을 치기라도 할까 얼른 시동을 껐다. 를 즐겼다. 땅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야생 동물과 한 공간에서 간을 보내는 지금, 함께라는 일체감이 몰려와 전율이 일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생각 했다.


"너무 좋다. 비 오는 초원에 매료됐어. 감동이야."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 세렝게티는 킬만자로산의 서쪽에 있는 세계 최대의 평원입니다. 전문 가이드를 대동한 여행이라 더 편하고 더 요령껏 다양한 종류의 동물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먼 길을 한달음에 와 준 최앤장 부부, 짧은 기간에도 정이 든 안 그리고 민과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세렝게티에서는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하게 탐험을 이어나갔습니다. 두 번의 사파리는 인상 깊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여러 날을 보낸 덕분일까요, 말라버린 줄 알았던 감각이 섬세한 촉수처럼 반응했습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자극이었습니다. 똑같은 초원, 한결같은 지평선, 거대한 구름은 반복하는 지루함이 아니라 이 세상 속 내가 얼마나 작은지를 매번 깨닫게 하는 촉매제였습니다. 자연으로 회귀하는 기분이었지요. 아수라장이었던 삶에서 구원받은 안도감과 마음속 고요함에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사이사이를 알뜰하게 메꿔준 동물은, 살아난 감각이 주는 기쁨에 덤으로 주어진 행복이었습니다. 빅 파이브가 탐험의 중요한 비중이 더는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은 집에서 다큐멘터리로 보는 게 답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미흡한 글로는 도저히 그때의 감동을 감히 전달하기 어려워 여러 장의 사진에 의지해 보려 합니다. 조금 더 생생히 나누고픈 욕심이라 이해를 구합니다.

밤낮을 가정과 직장에서 고생하시는 분께, 퇴사 후 다음을 고민하는 퇴사자께, 꿈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여러분께 잠시라도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보시게 될 사진은 에토샤와 세렝게티의 두 공간이 하나의 시간으로 묶인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야생 탐험대는 여기서 끝.
적도가 관통하는 검은 대륙에서의 모험은 계속됩니다.





* 갇힌 곳을 떠나고 싶은 자유로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zoo is noT enOUGH (동물원으로는 부족해)의 대문자를 따와 터프(tough)리카 아프리카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동경했고, 사진에 미쳤고, 아프리카를 꿈꿨던 그때로 돌아갑니다. 내용은 모두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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