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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Nov 03. 2021

마른하늘에 와이퍼 질

말레이시아의 교통사고 처리과정


자동차 좌우가 바뀌었다. 조수석 자리에서 운전해야 했다. 말레이시아는 좌측 주행이기 때문이다. 오른손에 익숙한 변속기는 왼손으로 옮겨졌다. 그나마 자동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에어컨 바람, 오디오의 작은 버튼을 눌러야 할 때는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지독한 오른손잡이인 나의 왼팔은 개별 생명체인 마냥 자꾸 자유 의지를 보였다. 이놈의 손이 왜 말을 안 듣냐, 주인의 다그침에도 바들바들 떨며 자꾸 엉뚱한 버튼을 누른다.


예외는 없다. 2019년의 말레이시아 도로 위에도 무법자는 있었다. 심지어 오토바이로 곡예 주행을 한다. 사는 나라가 바뀌어도 법질서 수호를 위한 정의감과 시민의식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반드시 주의를 줘야 직성이 풀렸다. "야! 이 자녀 분아, 그렇게 끼어들면 돌아가실 수 있다요!!" 주의시키기 위해 상향등을 냅다 쏘니 워셔액이 왈칵 뿜어져 나왔다. 깜빡이를 켜고 차선을 바꾸려니 와이퍼가 우왕좌왕했다. 무법자로 변해버린 나에게 뒤차가 상향등을 쏘아댄다. 이게 다 자동차 레버마저 좌우가 몽땅 바뀐 탓이다.


초보 시절을 맹렬히 겪던 아내는 평소에 차분하다가도 운전석에선 뭘 하든 분주해 보였다. 목과 팔은 왜 뻣뻣해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다 목이랑 팔에 담 오겠어, 여보. 크크크"

대꾸도 못 하고 운전석에 얼어 있으니 재미가 없다. 그러던 와중에 느닷없이 와이퍼를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와이퍼 질이었다. "엥, 지금 비와?" 시치미를 떼고 이유를 물었더니, "아니 뭐, 그냥" 아내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지만, 이유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히히.






그해 12월, 단둘이 보내는 데이트 날이 왔다. 우리 부부는 생일날이 같다. 생일이 같아 연애 땐 운명이라 믿었는데 생일파티 하나를 잃었다며 아내는 입을 삐죽거린다. 질투가 심한 딸내미가 수시로 펼치는 방해 공작 때문에 둘만 보내는 시간은 매우 귀하고 드물었다. 


둘만의 생일 축하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0) 업무 일정은 진작에 정리했다. 1) 아침 일찍 딸을 등원시킨다. 2) 곧장 파빌리온(말레이시아의 대형 쇼핑몰)에서 팔짱 끼고 쇼핑한다. 3) 우리나라 개봉 영화를 본다. 4) 평소 못 시키던 메뉴로 외식한다. 5) 유치원에서 딸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소박하지만 완벽한 데이트였다.


파빌리온에는 이제 10분 뒤 도착이다. 기대에 들떴다. 빨강 신호등의 짧은 틈에도 재잘재잘 떠들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수시로 참견하는 딸이 없는 우리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그때였다.


"쾅!!!!!"

"이게 뭐야!! 여보 괜찮아?!"


큰 충격이 왔다. 머리가 휙하고 젖혀졌다. 머리받이에 부딪힌 뒤통수는 다시 앞으로 튕겨 나갔다. 굉음과 충격으로 빠져나간 혼을 겨우 소환하고 보니, 5t 트럭의 보닛이 룸미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트럭 운전기사가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예측 출발을 한 거였다. 부주의한 운전으로 우리 차 뒤 범퍼를 세차게 들이받은 것이다.


트렁크는 도끼로 찍은 듯 비가역적 형상으로 움푹 찌그러졌다. 빨간색 후미등은 덧없이 사라질 우리의 데이트를 암시하듯 여러 조각 파편으로 길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이 우리에게 무슨 날인지 트럭 기사가 알았더라면 상처받아 너덜거린 우리의 마음에 동정의 눈물을 흘렸을 거다.


말레이시아 운전도 익숙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처음 겪는 교통사고라 적잖이 당황했다. 서둘러 자동차 보험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교통사고 현장에 보험관계자가 오지 않는다. 보험회사로 전화 후 받은 답변이다. 교통사고 현장 검증이 없는 셈이다. 경찰도 마찬가지인데 인명피해가 없다면 굳이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보험처리를 위해 사고 난 장소의 관할 경찰서로 당사자(가해자와 피해자)가 직접 찾아 24시간 이내에 신고해야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기록을 위해 사고 현장을 동영상으로 남기고,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챙겨두었다.


옴팡지게 찌그러진 트렁크를 끌고 파빌리온으로 향했다. 둘만의 데이트를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불타는 집념이었다. 그렇지만 스물네 시간 내 신고해야 한다는 압박을 이기기엔 집념이 약했고 보험 수리비가 아쉬웠다. 눈물을 머금고 영화를 포기했다. 관할 경찰서로 들어선 직후였다.


이곳은 북새통이다. 좀비 습격 후 피할 곳을 찾아 경찰서로 시민이 모여드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다. 조폭 입건 뉴스 이후로 경찰서에서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 적이 없다. 

휠체어를 탄 남자가 들어왔다. 깁스한 다리를 탱크 포신처럼 쭉 뻗고, 그 위로 드러난 허벅지에는 손바닥만 한 상처가 보였다. 양팔도 온전치 않아 도우미가 밀어줘야 거동할 수 있었다. 스물네 시간 안에 사고를 신고해야 하니 저 지경으로 출두했나 보다. '이게 영화지 뭐가 영화냐.' 공짜 영화를 관람할 판이다.




한 시간을 기다리고 아내를 먼저 보냈다. 5)번 계획을 실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서른여 개의 의자가 있었지만, 빈자리는 없었다. 그만큼 사람이 더 서 있었기 때문이다. 까치발로 움직여 두 시간을 더 기다렸다. 경찰서 서버가 먹통이라 일 처리가 늦어진다고 했다.


접수를 마치고, 뒤편 3층짜리 디귿형 건물로 이동했다. 조사관 사무실과 경찰 숙소가 통합된 곳으로 보였다. 드문드문 빨래 널린 창가를 보니 여기가 경찰서인가 꿈속인가 싶다. 낯선 풍경이다. 접수에만 세 시간, 아침 햇살을 받고 집을 나와 말레이시아 경찰서에서 노을을 감상하게 될 줄은 꿈에서도 몰랐다.


네 시간이 더 흘렀다. 어둠은 빛바랜 푸른색 3층짜리 건물을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미 뒤엉킨 접수 번호는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전광판에는 내 번호만 뺀 숫자들이 나타났다 하나둘 사라졌다. 열대야 후텁지근한 기온에 노출된 공간은 불쾌 지수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대기실에 새로 나타난 얼굴이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이내 볼일을 마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분명 들었다. '핑' 소리였다. 바닥을 드러낸 인내심에 꼭지 도는 소리였다.

"이봐요!! 여기서 지금 일곱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얼마나 더 기다리라는 겁니까?! "


냅다 소리를 질렀다. 누구를 향한 말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사무실을 향한 건 분명했다.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릴 즈음 누군가 부랴부랴 뛰어나왔다.




침침한 형광등 불빛이 비치는 사무실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여러 개의 책상은 공간 양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서류 더미가 책상마다 가득 쌓여 있다. 배정받은 책상 앞에 앉으니 담배 절은 퀴퀴한 냄새가 의자에서 풍겼다. 유니폼 윗단추를 풀러 의자에 깊게 앉은 담당 경찰은 새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재떨이에 짓이겨진 꽁초에선 아직 꺼지지 않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일로 오셨죠?"

"빨간 불에 서 있는데 뒤에서 트럭이 우릴 들이받았어요, 보험 신청하게 신고하려고요."

"상황을 한 번 봅시다. 여기에 그려보세요."


미리 준비한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주머니에서… '응? 그림을 그려 달라니??'

생각할 겨를 없이 손에는 연필과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뜻밖에 예술혼을 불태우게 되었다.


빨간 정지 신호에 3차선 신호대기 중인 우리 차를 먼저 그렸다. 뒤에서 5t 트럭이 출발하는 모습을 세 개의 동선으로 생동감 있게 그린 후, 범퍼에 부딪히는 강력한 충격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뾰족뾰족한 원을 그려 넣었다. 마지막으로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후미등을 길 위에 묘사했다. 

경찰은 자세한 상황 설명에 흡족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빈 공간에는 일 년만의 데이트가 무산된 슬픈 내 마음을 눈물로 새겨넣었다는 것을.


가해자에게 내 핸드폰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담당관에게 바꿔주는 기염을 토했다. 내 진술과 비교 검토하는 과정이었다. 책상 위에 있어야 할 전화기가 없는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또 한번 옮긴 장소에서는 파손 부위를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 벌어졌다. 어두운 비포장 주차장의 웅덩이를 휘청거리며 빠져 나올 때는 시계바늘이 9시를 넘기고 있었다.






차 수리까지 무사히 끝났지만, 마음속 앙금은 오랫동안 불을 지폈다. 만나는 말레이시아 친구들에게 매번 하소연을 늘어놨다. 경찰서 신고하는데 일곱 시간이 걸렸네, 교통사고 대비해서 미술학원 끊고 그림부터 배워야겠네, 수리하는 동안 탈 차가 없어 택시비를 내가 다 냈네 등 울분을 토하며 부당하게 겪은 경찰의 안이하고 느려터진 처리 과정을 늘어놨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보험회사 교통사고 처리 과정도 알려주었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게 있어? 베리 굿~ 근데 여긴 원래 그래."

"음… 그, 그래?"

"예전에 차 유리가 깨지고 노트북을 도난 당했거든? 그때도 경찰서에 직접 가서 신고했는 걸."


갈 길을 잃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법질서를 수호해야 하는 건지, 아니, 원래 말레이시아의 법질서가 이런 거라면 내가 적응하는 게 맞는 건가. 사는 나라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던 법질서 수호를 위한 정의감과 시민의식은 갈 길을 잃고, 담당 경찰 사무실의 담배 연기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이제는 자유자재로 직진(?)을 구사하는 아내를 보며 시간이 흘렀음을 느낀다. 여전히 후진 주차에는 인내와 노력, 때에 따라 전면 주차가 가능한 자리를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하지만 말이다. 지금도 가끔 새로 사귄 말레이시아 친구들에게 그때를 떠올리며 물어본다. 여전히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전에 익숙하다 느낄 때 사고가 난다며 아내에게 조심하라 또 한 번 당부했다.


극동과 서양 문화의 공존, 선진국과 후진국의 모습, 배울 점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들이 뒤섞인 말레이시아에서 오늘도 우리 가족은 하루를 보낸다.



*개인적으로 겪은 일이며 실제 말레이시아의 교통사고 처리 과정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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