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앞에서 머리를 뜯으며 짐승의 소리로 포효하는 저 아이는 내 일곱 살 된 딸로, 마흔두 살인 나와 마흔한 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무이한 자식이다. 앞으로 내 관찰 대상이기도 한 이 녀석은 부모의 얼굴과 퍽 닮아있다. 즉,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어디서나 눈에 띄는 수려한 외모는 아닐 수 있다는 뜻으로 객관성 유지가 어려운 고슴도치 영역은 관찰에서 제외하기로 정한다.
둘째의 얼굴을 가상으로 그려보면 부모가 워낙 비슷한 생김새라 그 나물에 그 밥일 건 자명한데, 부모의 호기심을 떠나 녀석은 천상 외동으로 클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다. 이맘때 연령의 아이는 동생을 낳아 달라고 떼를 쓴다던데 어째서 동생 이야기에 몸서리부터 친다. 우리끼리 오손도손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게 유일한 이유라면 훈훈했겠으나, 자기가 돌봐 줘야 한다는 둥 양보해야 한다는 둥 꼬리가 줄줄이 붙는다. 그래서 자꾸 말 안 들으면 동생 낳아 버린다, 를 강제 협상과 협박 수단으로 쓰게 될 줄 몰랐으니 삶은 역시 뜻밖의 연속이다.
결국 내 역할은 건강하고 올곧은 마음을 가지고 커서 훗날 비슷한 심성의 짝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기도하는 것에 머무르게 될 텐데 일단 됐고, 지금은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에 어떤 도둑놈도 허락지 않겠다. 이놈들아!
새 학년을 시작하고 삼 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까지 등교한 날을 손에 꼽을 수 있다. 아침마다 울부짖는 이유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뜬금없이 거실을 두어 바퀴 뛰고도 남아도는 일곱 살의 체력을 온라인 수업으로 묶어 두니 괴성을 발산하기까지에 이르게 된 거다. 온라인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도 다르지 않다.
"할머니가 그러는데 엄마가 잔소리하는 건 내가 잘되라고 기도하는 소리래. 근데 왜 사납게 기도하는 거야. 그렇게 기도하면 아무도 안 들어줘."
자기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말은 또 아니다. 모녀가 파국으로 치닫기 전, 다음 주 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드디어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게 됐다며, 딸의 온라인에서 해방됐다며 각자의 이유로 모녀가 지르는 환호가 퍼져나갔다.
학교에 나간 지 이틀째 되는 저녁, 비밀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옆에 앉힌다. 어제까지 엄마와 귓속말을 속닥거리며 얼굴을 붉혔다가, 등 뒤에 냉큼 숨는 행동을 반복했으니 뭐가 있으리라 짐작은 했다. 아무도 없는 거실이지만, 비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귀를 내줘야 한다.
"아빠, 학교에 갔는데 퐁이 Fong Yi 라는 애가 있는 거야. 그런데 퐁이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
"그런 아이가 있어? 어떤 아이인데?"
"엄~청 젠틀한 아이야. 나는 젠틀한 사람이 좋거든. 또 얼굴이 예술이야. 하얗게 생겼고 눈썹이 엄청 길어. "
"젠틀한 사람이 좋아? 그럼 아빠도 젠틀한 사람이겠네."
"아니 아빠는 웃긴 사람. 가끔 젠틀하기도 한데, 닭처럼 덜렁거리기도 하고 피에로처럼 웃겨. 그래도 아빠는 좋아.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서 퐁이 옆으로 갔는데 다리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더라니까."
닭처럼 덜렁거린다는 표현에 이른 의식의 흐름까지는 따라갈 순 없으나, 수줍은 마음만큼은 온전히 알게 됐다. 말하면서도 짧은 다리를 이리 꼬고 저리 꼬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온라인 수업을 옆에서 지켜봤던 아내의 말로는 동서양이 섞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로, 작은 화면에서도 유독 눈에 띄던 꼬마라고 했다.
"아빠, 그런데 수업 중에 자꾸 뒤돌아보고 싶더라."
"뒤는 왜?"
"퐁이가 뒷자리에 앉아 있거든. 계속 보고 싶어서."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간식을 먹는 뒷모습이 시무룩하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네가 좋은데, 너는 누가 좋아? '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퐁이도 자기를 좋아한다고 했다며 신나 했던 녀석이다.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게 울상인 이유였다. 여전히 코로나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감기 증상만으로도 집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했다.
"아빠. 학교에 아이들이 점점 안 나오기 시작했어."
"그러게, 아직은 코로나를 조심해야 하니까…. 누가 안 나왔어?"
"퐁이가 안 나왔고, 그리고 퐁이… 또, 퐁이."
"그럼 퐁이만 안 나온 거네. 한 명만 안 나온 거 아냐?"
"맞아."
"근데도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어?
응, 이라고 슬프게 대답한 지 일주일이 흘렀으나 퐁이는 아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한참 고민 끝에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발표하기에 이르러, 비상용 남자친구를 만들겠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론을 도출했다.
과정이 까다롭다. 에르한은 말이 너무 많고 선생님도 말 폭탄 맞을까 봐 수업 시간에 잘 안 시킨다고 거절, 쥬노스케는 코까지 마스크를 내려쓰는데 친해지면 코로나 옮을 것 같다고 거절, 새드릭은 너무 유치해서 딱 질색이고 장난도 많이 친다고 거절, 레이첸은 비상용으로 적당할 것 같은데 너무 조용하고 수다가 좀 많아야 재밌을 것 같다며 보류.
"난 누구랑 사귀냐고~ 퐁이가 좋은데~"
"근데 레이첸이랑은 좀 친해?"
"아니, 아직 말은 안 해봤어. 친해지면 되지."
우리 집 거실에서는 난데없이 거절부터 당하는 남자아이들의 기막힌 사연이 속출했다. 고백 과정은 당사자 의사와 상관없이 생략됐다. 귀한 아들을 둔 부모님은 꿈에서도 알 길이 없겠으나 미안한 일이다. 언급된 남자아이들의 마음과 의견도 들어보는 게 옳을 텐데, 라는 타당한 질문에 내가 사귀자면 좋다고 할 걸, 이라는 자신감을 비치며 일련의 과정을 몽땅 날려버린 충만한 자기애가 놀라웠다. 비상용과 남자친구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걸 알려주는 데 시간을 적잖이 할애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퐁이는 오늘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실에 켜진 모니터로만 퐁이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근황을 들었다.
이번 주면 끝나는 짧은 학기 중에는 나오지 않기로 한 것 같다. 하지만 딸은 여전히 삼 분만에 학교가 끝나는 것 같다며 씩씩하고 재밌게 잘 다니고 있다.
눈에 흙이 들어오는 건 고사하고 먼지도 들어오기 전인데 딸은 이렇게 커 간다. 첫 번째 사랑은 비록 비상용을 곁들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저렇게 즐거워하는 걸 보니 어쩌면 마냥 싫지만은 않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