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이 임박한 태아가 당장 세상으로 나오겠다고 알린 신호는 파급력에 비해 작고 미미했다. 코르크 마개 따는 소리와 닮았다고 회상하는 아내의 말로는 퐁하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그 직후 나는 반복 연습 끝에 익숙해진 일련의 행동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실행했는데, 다름 아닌 출산 준비물 가방을 챙기고 예행 루트를 따라 병원으로 신속히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게 뭐 어렵다고 연습까지, 라고 할 수 있겠으나 당시의 긴박함을 떠올리면 바지 위에 팬티를 입어도 이상한 걸 몰랐을 수 있다.
'당황할 필요 없어. 연습처럼 차분하게 하면 돼. 착착.'이라고 주문을 되뇌며 평정을 유지하려 했음에도 정신을 반쯤 잃었던 이유는, 그간의 연습 과정에는 새벽녘 자다 터지는 양수를 대비하는 심화 과정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토닥인다.
아래는 미국 서부 시간 기준, 2015년 2월 8일 새벽 두 시 반경에 벌어진 일이다.
"오빠, 내 눈이 이상해. 왜 이래?"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가 남자의 잠부스러기를 단번에 털어냈다. 침대 옆에 놓인 스탠드 스위치를 돌려 새벽어둠을 몰아냈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남자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얼굴로 서 있는 아내를 보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만삭인 여자의 눈두덩이가 배만큼 부풀어 올라 있던 것이다.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눈을 뜰 수 없다고 했다. 이유 모를 급성 알레르기 반응이다. 하필 구급상자에 있던 알레르기 연고가 바닥났고 복용할 응급약이 없었다. 금방 오겠다는 말로 여자를 진정시킨 남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노스리지의 새벽 거리로 용수철처럼 튀어 나갔다.
사십사만 평 규모의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를 끼고 있는 주택가 새벽 거리 곳곳에는 달빛이 스며있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이 휘적휘적 어둠을 몰아냈지만 기력이 달리는 듯 보였다. 일터와 학업의 피로에 지쳐 집에 숨어들은 사람들이 곤히 잠든 시간이라 사위가 고요했다. 그 적막을 뚫고 미친 듯 질주하는 흰색 자동차가 있었다.운전대를 잡은 남자가 식은땀을 흘리며 외쳤다. "왜 문 연 약국이 하나도 없는 거야!"
미국의 약국은 대형 마트 내에 달려있거나, 약국이라도 마트처럼 온갖 잡화를 함께 팔고 있어 단출한 형태를 찾을 수 없었다. 영업시간은 진작에 끝난 터라 하나같이 불이 꺼져있었다. 새벽 영업 중인 약국을 찾는데 세 번째 허탕을 친 후, 마침내 불이 켜진 곳을 찾았다. 매트로 된 센서를 밟으니 여닫이 자동문이 스르르 열렸다.
- 우와 여보. 깜짝 놀랐네. 이제는 다 가라앉은 것 같아. - 태어나서 이런 일은 처음 겪었어. 눈이 하나도 안 떠지더라니까... - 지금 먹은 알레르기약, 아기한테도 괜찮대.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부부는 좀 전의 사건을 벌써 지난 일처럼 무용담으로 나누는 듯했다. 저만치 달아난 잠을 이제 와서 찾는 건 불가능해 보여 놀란 마음이라도 달래려는 뜻이었다. 아내의 칭찬이라도 바랄 요량으로 남자는 한껏 부풀려 말문을 열었다. "자기 그거 알아? 내가 말이야, 약국을 찾느라고 온 동네를 바람처럼…."
퐁!
"오빠, 큰일 났어." "아니 큰일은 아직 시작도 안 났지. 아니, 두 번째 간 약국도 불이 꺼져 있는 거야" "나 양수 터졌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양수가 터지다니. 아니겠지."
솥뚜껑 보고 놀란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불을 걷어 올리던 남자의 손이 얼어붙은 것은 여자가 앉아 있는 침대 시트를 중심으로 맑은 액체가 퍼져나가는 것을 본 직후였다.
그렇게 내달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출산을 앞둔 딸을 위해 미국에서 함께 지내시는 어머님의 발가락이 방 문에 찍혀 피가 흐르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 확인한 초음파 속 태아가 하늘을 보고 있었고, 아침 일곱 시 주치의가 오고 나서 단번에 제왕절개 분만을 결정하기까지 밤새 어중이 인턴이 여러 차례 내진했고, 떠중이 인턴의 손톱에 긁힌 상처가 갓 태어난 딸의 이마와 부은 입술에 날카롭게 남아 있었고, 제왕절개와 사흘 입원을 포함한 병원비가 미화 사만 달러의 청구서로 날아들었고, 보험으로 전액 보상된 걸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당시 우리가 살던 이층짜리 목조 아파트 단지 곳곳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있었고 간혹 주먹만 한 솔방울이 떨어지고는 했다. 패티오에는 길게 뻩은 나뭇가지가그늘이드리워졌다. 작은 동물의 간식거리인 견과류를 쌓아 둔 이웃 덕분에 청설모를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그날은 땅콩을 손에 쥔 녀석이 우리 집 패티오에 앉아 소풍을 즐기기로 한 모양이다. 그때까지도 그냥 여느 평범한 날 중 하나인 줄 알았다.
그때 팔 개월 된 아기와 청설모의 눈이 딱 마주쳤다. 구슬프게 울고 있던 아기는 순식간에 눈과 입이 동시에 활짝 벌어졌다. 어딘가 홀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뜬금없는 태세 전환이다. 당황할 여유도 주지 않고 난생처음 만난 낯선 생명체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모습이 펼쳐졌다. 나는 그때 본 꾸밈없고 순수하게 놀라는 표정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알 수 없는 나름의 사정으로) 금방 전 울고 있기까지 하지 않았나.
감정과 마음을 오롯하게 담은 표정을 얼굴로 드러내던 날은 태어난 지 이백사십일 무렵이다. 새로운 서막을 알리는 결정적 순간으로, 이후 기발하고 신기한 방법으로 다양하게 감정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가청주파수를 벗어난 돌고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사람이 알 수 없다. 일곱 살의 감각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어른이 알 수 없다. 다만, 놀랍도록 섬세한 촉각으로 세상을 구석구석 살피고 감정의 원천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어른에게 말라비틀어진 촉수가 일곱 살 아이에겐 살아서 펄떡거린다.
잊고, 놓치고, 모르며 살아온 것들을 의식하게 되면서 불쑥 절박함이 찾아왔다. 손가락 사이로 하염없이 흩어지는 모래를 보는 기분이다. 이제 계속 넋을 놓고 있을지 얼른 유리병에 쓸어 담아 모래시계를 만들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늘로 그물을 던지는 어부의 마음으로 그동안 허투루 흘려버린 것과 당연한 듯 흘려버린 것을 잡기 위해, '닭처럼 덜렁대고 피에로처럼 웃긴' 아빠가 일곱 살 내딸기記(내 딸 관찰기)를 시작한다.
미국과 말레이시아를 떠도는 부모 탓에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우리말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아이, 하지만 순 토종 부모 덕분에 우리말이 더 편한 아이, 집에선 우리말 동화책을 읽지만 학교에선 외국인 또래들과 어울려 크는 아이.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느리지만 꾸준히 관찰한 걸 유쾌하게 남기겠다는 의도인데, 속 빈 강정이면 어쩌나 염려를 중얼거리며 관찰기 머리말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