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는 죄가 없다

에스토니아_탈린

by 서작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오늘 네가 먹고 싶은 걸로 먹으러 가자.”


아이는 여행 중 통 먹지를 못하고 있었다. 원래도 잘 먹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낯선 음식에 더 입맛을 잃어갔다. 현지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열심히 설득했지만 그걸 이해하기에 아이는 아직 어린 9살 꼬마일 뿐이었다.


“맥도널드! 나 맥도널드 가고 싶어!”


여기선 찾기 힘든 김치볶음밥이라도 말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겨우 맥도널드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가. 그래 가자, 먹고 싶다면 먹어야지.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맥도널드는 유명 관광지보다 찾기 쉽다. 구시가지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모습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올드 타운에 맥도널드는 영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오히려 구시가지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비루 게이트'가 보이는 창가 좌석은 인기 있는 곳이다. 실제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으며 14세기에 세워진 탑을 보는 기분은 꽤 남다르기도 하다.


“Menu or meal?”


주문을 했더니 맥도널드 점원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지? 주문 후 내가 생각한 질문은 ‘For here or to go?’ 였는데 점원은 예상 밖의 질문을 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말했다.


“메에뉴~ 오어~얼 미이~일?”


천천히 말하면 내가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그가 2배 느린 속도로 말을 했다. 190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로 나를 내려다보며, 주근깨 가득한 핏기 없는 얼굴로, 가뜩이나 큰 입을 더 크게 벌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하자 그의 삐뚤빼뚤한 이빨이 더 잘 보이기만 할 뿐 질문은 여전히 내게 입력되지 않았다. 여전히 답을 못하고 쭈뼛대는 나와는 달리 그런 나를 바라보는 점원은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마치 너 같은 관광객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만난다는 듯 오히려 지겨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를 이해시키는 방법은 오직 천천히, 여러 번 말하는 것 밖에 없는 것처럼 어떤 제스처나 보디랭귀지는 사용하지 않았다. 꼭 전봇대처럼 뻣뻣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메에뉴 오어얼 미이일. 메에에뉴 오어얼 미이이일…


초록빛이 도는 회색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오직 입술만 움직이며 말을 했다. 점점 크게, 점점 천천히. 영어 기초반에서 발음 교정 수업을 받을 때 보았던 자료처럼 내 눈에는 그의 움직이는 입술만 클로즈업되어 보였다.


저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는데, 저 주근깨 놈에게 당당하게 대답해야 하는데.

내 눈과 뇌가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동안에도 그는 계속 메뉴와 밀을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말해. 천천히 말하는 거 그만 하라고!

네가 친절해서 여러 번 말하는 게 아니란 걸 나도 알아.

그만 그만!


갑자기 그가 말하는 것을 멈추고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니 어깨를 으쓱했나. 하여간 여전히 로봇처럼 웃지 않는 얼굴로 뒤로 돌았다. 나의 대답을 듣는 건 포기한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불현듯, 퍼뜩, 질문이 입력되었다. 그가 뭘 궁금해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내가 시킨 버거를 단품으로 먹을 건지, 세트메뉴로 먹을 건지 묻고 있었던 것이다.

‘메뉴’가 단품, ‘밀’이 우리가 말하는 세트라는 걸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이런 건 ‘여행 영어’ 에도 흔하게 나오는 거니까. 세트라고 하면 외국에선 못 알아들어요,라고 강사들은 한결같이 강조하므로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내가 예상했던 ‘For here or to go?’ 질문 전에 ‘Menu or meal?’이 나오는 게 당연한데 내 머리 속에서 순서가 누락되어 그만 못 알아듣고 말았다.


그가 멀어지기 전에 대답을 해야 한다.

내가 알아들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나는 그런 간단한 영어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저 주근깨 놈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아, 아! 헤이! 밀! 미이일!”


그가 내게 ‘밀’이 담긴 쟁반을 내밀었다. 여전히 웃지 않았고, 내가 자기 질문을 알아들었다는 것에도 (당연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내 순서는 이제 끝이 났다는 듯 이미 내 뒤의 사람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한마디를 보탰다.


“땡큐! (나 영어 그렇게 못하는 건 아니야. 이봐, 고맙다고도 하잖아.)

“유어 웰컴. (그만 질척대고 가.)




“엄마,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저 아저씨랑 무슨 얘기 했어?”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이가 내가 돌아오자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런 아이를 보자 갑자기 화가 불쑥 났다.

“너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거나 먹고! 맥도널드는 오늘이 마지막이야!”


갑작스러운 나의 호통에 입이 샐쭉해진 아이.

나도 안다.

맥도널드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이전 12화여행이란 다 그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