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업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작가 Sep 11. 2020

집합 금지 시대, 작가의 하루

글을 쓰다가 빨래를 한다

한동안 스터디 카페에 가서 서너 시간 글을 썼다.

집에서는 집중하기 힘들고 그렇다고 카페에 가서 노트북 펼치고 앉아있는 것도 잘 안 맞아서 스터디 카페에 갔다. 마침 새로 생긴 스터디 카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몇 시간 집중해서 내 시간을 갖기 좋았다.

오픈 기념으로 50% 할인을 하길래 큰 맘먹고 150시간 쿠폰을 구입했다.

쓰고 있는 원고의 마감일을 따져보니 그때까지 150시간은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2.5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운영이 중단됨을 알려드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의 급증으로 고위험 시설에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스터디 카페도 고위험 시설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간단히 먹고 씻는다.

그리고는 우리 집의 가장 상전인 아이를 깨운다. 방학 이후 계속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는 여전히 방학의 연장선처럼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도 집합 금지에 나처럼 집에 갇혀 있는 신세인지라 늦잠 정도는 봐준다.


컴퓨터를 켠다.

어제 쓰던 원고 파일을 열고 이어 쓰기 시작한다. 아, 쓰기 전에 커피를 먼저 마셔야지.

커피를 내려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어제까지 쓰던 원고를 다시 읽어보면서 글을 쓰는 무드를 찾아보려고 애쓴다.

음악을 들어볼까?

분명 멜론을 열려고 했는데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휴대폰을 끄기가 어렵다.

겨우 다시 쓰던 글로 돌아온다.


겨우 한 줄 썼는데, 아이가 아직 안 일어난 것 같아 다시 가서 깨운다.

아이 방에 갔다가 오는 길에 쓰던 수건을 주워 빨래통에 넣는데 빨랫감이 넘쳐난다.

세탁기를 돌린다.

다시 컴퓨터 앞, 아까 어디까지 썼더라? 뒤에 뭐라고 쓰려고 했더라?

아, 맞다. 그걸 쓰려고 했지?

막 쓰려는데 아이가 눈을 비비며 나온다. 배가 고프단다.


아이의 늦은 아침을 차려주며 일찍 좀 일어나라며 잔소리를 한다.

밥 먹는 아이를 지켜보다가 상을 치우고, 이제 정말 을 쓰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책상에 앉기도 전에 띠리리 세탁기의 세탁완료 소리가 들린다.

아 제발!



이러다 보면 정말 순식간에 오후가 되고 만다.

빨래고 밥이고 신경 쓰지 말고 글을 쓰면 되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핑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집에 있으면 집안일이 눈에 보여 도저히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하기가 힘들다.

결국 두세 줄 쓰고는 마음이 급해져 남은 시간에는 후다닥 쓰게 된다.

나에게는 저녁이라는 또 다른 빌런이 남아있으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오늘 써야 할 몫은 어쨌든 써야 하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집합 금지 명령이 해제되었으면 좋겠다.

단 몇 시간만이라도 온전히 집중할 시간과 장소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한 줄 쓰고 밥을 차리고, 한 줄 쓰고 빨래를 하다가는 무엇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150시간짜리 쿠폰은 100시간도 더 남았는데 원고 마감일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제발 집합을 허가해주시길.

코로나는 생활형 작가를 생활 완전 밀착형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이런 업그레이드는 절대 사양이다.


내일은 빨래도 밥도 다 제쳐두고 오직 글쓰기에 매진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면서 지금 브런지에 글은 왜 쓰고 있냐고!


 



매거진의 이전글 2002년 월드컵 제발 지라고 빌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