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_마지막화
맛있는 김치찌개 냄새가 거실에서 자고 있는 최민혁을 깨웠다. 눈을 떠서 부엌 쪽을 보니 윤소라가 분주하게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제가 너무 잤네요.”
“민혁 씨, 일어났어요? 너무 곤히 자길래 일부러 안 깨웠어요. 민혁 씨 덕분에 전 푹 잘 잤어요(오랜만에).”
“저도 세상모르고 잤어요(오랜만에).”
“아침식사로 김치찌개 괜찮아요? 밥하고 김치찌개, 계란프라이랑 김뿐이에요.”
“와, 진짜 맛있겠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제 최애음식이 김치찌개인 거?”
최민혁의 말에 윤소라는 “저도요!”라고 답하며 둘은 미소를 지었다.
소파 앞에 작은 상을 펼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를 함께 먹기 시작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행복을 깨는 "삐-" 소리가 윤소라와 최민혁의 핸드폰에서 동시에 울렸다.
긴급재난문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현재 전국에 동공이 확장되고 새까맣게 변하는 바이러스가 전파 중.
이런 증상이 발생하거나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을 발견 즉시 신고 바랍니다.
윤소라는 긴급재난문자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TV를 켰고 최민혁도 TV 화면을 응시했다.
“속보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동공이상 현상을 동반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공이 비정상적으로 확장되고 그 색이 완전한 검은색을 띠는데, 이런 증상을 정부는 일종의 바이러스로 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외신에서는 동공의 색이 피치 블랙(pitch black)인 점에서 ‘피랙’이라고 명명하며 특히 한국에서만 전파 중인 이 바이러스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경우 피랙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뉴스 속보는 윤소라와 최민혁의 마음에 피치 블랙처럼 칠흑 같은 어둠을 드리웠지만, 서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절망적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형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지만 부재중이었다.
“아무래도 형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소라 씨는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집에 있는 게 좋겠어요.”
“네, 그런데, 민혁 씨, 조심하세요.”
윤소라는 최민혁이 나간 후 B101호의 현관문을 닫고 안전고리까지 잠그고서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설거지를 하고 스펀지로 싱크대의 물기를 모두 제거했다. 평소대로 믹스커피를 타서 책상 앞에 앉았다. 달력을 들어 어제의 날짜에 파란색 색연필로 사선을 그었다. 노트북을 열고 파일을 열어 쓰던 글을 계속 써 나갔다. 이렇게 하면 이 끔찍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윤소라의 소설 속 여주인공은 이제 막 뉴욕 JFK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잡아탔다. 뉴욕 맨해튼으로 향하는 노란색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무지개 빛 인생을 꿈꾸었다. 그 마음을 아는 듯 택시는 신나게 달렸고 여주인공은 차창을 열어 새로운 도시의 새로운 공기를 만끽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뜨니 택시가 도로가 아닌 외진 곳을 달리고 있었다. ‘뭐지?’ 싶어서 백미러에 비친 택시기사의 얼굴을 확인하는데, 그 얼굴은 그 눈은 분명 남리수였다.
‘이럴 리가 없어.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여긴 뉴욕이야!!’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어야 할 편의점은 영업을 안 하는 곳처럼 어두웠고 형이 있어야 할 계산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최민혁은,
“형? 형 어디 있어?”
라고 불렀지만 어두운 편의점 안에서는 어떠한 인기척도 없었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뭔가가 발에 차였고 들어서 보니 형의 핸드폰이었다. 그런데 핸드폰에서 붉은색 액체가 묻어 나왔다. 깜짝 놀라 시선을 앞쪽으로 향하니 형이 쓰러져 있었다. 칼에 찔린 형은 이미 과다출혈로 움직임이 없었다.
“형! 형, 왜 이래? 형!”
이미 창백하게 식은 형의 몸은 아무리 흔들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윤소라 어디 있어?”
몸을 돌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남리수였다.
“네가 우리 형을 이렇게 한 거야? 도대체 왜? 왜!”
“윤소라는 내가 먼저 발견했고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아주 가끔 외출하는 윤소라를 난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지. 나랑은 다른 부류거든. 아주 착하고 진실한 영혼을 가진 그런 여자.”
남리수는 피랙이 된 눈으로 최민혁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어갔다.
“니 형도 착해 빠져서 칼로 찌를 때 저항 한번 안 하더라.”
그러면서 남리수는 피식 웃었다.
그 순간 최민혁은, 무관심한 부모님 밑에서 어릴 적부터 자신을 챙겨준 따뜻한 형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며, 그 소중한 존재를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자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 같았다.
남리수에게 달려든 최민혁은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죽일 듯이 때리다 보니 어느새 남리수는 죽었는지 기절했는지 모를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최민혁은 이미 싸늘한 형에게 다가가,
“내가 곧 다시 올게, 형.”이라고 말한 후 편의점을 뛰쳐나갔다.
갑자기 울린 핸드폰 벨소리에 윤소라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글을 쓰다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던 것이었다.
“여보세요? 민혁 씨?”
“미안해요, 소라 씨. 나 소라 씨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왜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형이 죽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이 죽었다고요?”
“그리고 내 눈이……. 나 아무래도 피랙이 된 것 같아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민혁 씨는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지금 편의점이에요? 제가 그리로 갈게요. 기다려요!”
“아니에요. 오지 말아요. 소라 씨가 위험해질 수 있어요.”
“경찰이 있잖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경찰은 소용없어요.”
“어쨌든 나는 괜찮으니 어서 여기로 돌아와요 민혁 씨, 제발요!”
“…….”
통화가 끊어졌고 윤소라가 다시 걸자, 부재중이었다.
윤소라는 핸드백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B101호를 박차고 나왔다. 편의점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편의점에 도착하자 경찰차와 응급차가 보였다. 남리수의 동선을 따라 추적하던 이바다 형사가 최민혁의 형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형사님, 최민혁 씨는요?”
“최민혁 씨는 못 봤어요. 남리수는 드디어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최민혁 씨의 형은 지금 응급실에 있어요. 과다출혈로 조금만 늦었어도 목숨을 잃을 뻔했어요.”
“민혁 씨의 형이 살아계신다고요? 이형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당연히 제가 할 일인걸요. 최민혁 씨는, 혹시 사라진 건가요?”
“아마도요…….”
윤소라는 뭔가 말하려는 이바다 형사를 뒤로 하고 서둘러 민혁 씨의 옥탑방으로 향했다. 옥탑방의 현관문을 열고 안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싱크대 위에 놓인 짙은 파란색 머그컵을 보자 눈물이 나왔다. 그 옆에는 자신이 마시는 것과 똑같은 믹스 커피가 몇 개 놓여있었다.
“민혁 씨……. 어디 있는 거예요. 흑흑.”
윤소라는 옥상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파란색에 하얀 구름이 펼쳐진 멋진 밤하늘이었다. 서울의 야경은 피랙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숨긴 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민혁 씨, 피랙이 되어버렸어도 좋으니 제발 나타나줘요, 제발…….”
이렇게 절실하게 누군가를 찾게 될지 몰랐다. 심장이 절이도록 민혁 씨가 보고 싶었다.
“야옹~!”
어디서 고양이 소리가 났다. 옥탑방 마당 뒤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윤소라를 보고 있었고 어두운 구석에 누군가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민혁 씨!!!!”
윤소라는 최민혁을 발견하고는 그를 꼭 안았다.
“소라 씨, 내 옆에 있으면 안 돼요…….”
최민혁은 윤소라를 애써 밀어내며 고통스러워했다.
“민혁 씨 제발요, 날 좀 봐요.”
윤소라는 최민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피랙이 되었다는 최민혁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민혁 씨 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원래대로 착하고 따뜻하고 멋져요.”
“정말이요?”
“네, 정말이요, 민혁 씨 그리고 형이 살아계셔요. 이형사님이 발견하자마자 병원으로 이송되었어요.”
"형이 살아있다고요?? 흑흑."
최민혁은 그제야 윤소라를 온전히 바라보았다.
"민혁 씨,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아요."
최민혁과 윤소라는 포옹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입을 맞추었다.
둘은 B101호로 돌아왔다. 처음 만났던 그곳으로…….
“삐-”
긴급재난문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현재 대한민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피랙 증상의 확산으로
범죄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니 외출자제를 권고합니다.